이불 들고 모임
이영주 우리는 건물 꼭대기에 모였습니다. 이 모임은 심장에 흰 이불 하나씩은 넣어둔 사람들. 심장 깊숙이 사물을 넣어두고 침묵에 빠진 사람들. 결정적일 때 꺼내어 쓰는 빛나는 초능력자들. 잠들지 못해 꼭대기에서 서로의 심장을 쓰다듬고 이불을 덮고 잠들어 보려고 모인 것입니다. 우울하고 우울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우울의 피톤치드가 우리 피의 속성이라고 생각했는데 미세하게 갈라지는 서로의 얼굴을 보다가 감자칩처럼 바스라지는 표정을 보다가 각자 맥주 한 병씩 벌컥벌컥 마십니다. 수분을 채우려면 물을 마셔야 하는데 꼭대기는 너무 춥고 알코올은 따뜻하고 서로에게 기대면 이불을 함께 덮을 수 있고 바스라지는 얼굴을 서로의 침으로 잘 붙여볼 수도 있습니다. 아래층에 걸려 있는 발 밑의 인공 달을 나눠 가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자리는 아무도 알지 못해서 세계의 끝인지 시작인지 매번 헛갈립니다. 하지만 우울의 숲은 어디에나 있으므로 서로의 심장에서 이불을 꺼내 펼치면 우리는 잠들 수 있습니다. 이런 모임에 와도 될까? 의사 몰래 조각난 이불을 들고? 모임에 오면 모든 일에 반성하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습니다. 깊은 잠에 전염될 수 있습니다. 이불을 들고 간지러운 눈발을 맞으며 내가 너인지 네가 나인지 —계간 《포지션》 2026 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