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속의 우주 29 - 변의수
[3200년 전 이집트의 건축감독자 켄헬 케프셰프가
남긴 200여 장의 파피루스엔 시도 있고 일기도 있다.
그의 아버지는 케프셰프에게 “어려서는 공부에만
매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못난 어른이 되고 만다."
고 했다. 케프셰프는 연인에게 아름다운 연애편지도
썼다고 한다.]
은빛 달이 태양과 함께 하늘에 나타난다. 잠에서 깬
뱀은 빛의 계시를 받아 적는다. 구름아래 날려 쓴
글씨들이 푸른빛과 함께 바람에 흩어진다. 뱀은 문자를
어둠의 세계로 퍼뜨리지만 곧 어둠을 밝히는 잎사귀를
검은 땅에서 피어나게 한다.
사물의 심장을 움직이는 시간은 사물의 기운이자
사물의 영이다. 시간은 모든 문자의 변화를 기억한다.
문자의 이동과 문자의 건축은 고대 이래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검은 돌의 시간이 은빛 광물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달라진 것은 없다.
새의 부리가 문자를 삼키는 건 문자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이다. 태양이 문자를 삼키는 건 문자를 빛으로
제련하기 위해서이다. 달빛이 문자를 삼키는 건 어둠의
신비를 더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문자는 사랑을 고백할 수 없다.
사랑은 시간을 이동시키는 수단이요 시간을 지속시키는
궁극의 이유이다. 사물의 영혼이 숨을 쉬는 이유이다.
문자는 교배하고 결혼하고 빛을 낸다. 문자는 문자를 낳고
꿈을 꾼다. 시간의 움직임을 쫓아 문자는 한없이 뻗은
뉴런들의 푸른 우주를 구성한다.
고대의 아침은 파피루스 위에서 빛나지만, 오늘의
태양은 책상 위에서 빛난다. 빛은 언제나 하나의 형상에서
흘러나온다. 시간은 사물의 기운이자 혼이다. 기호는
처음과 끝이 정확하게 일치한다. 시간은 처음으로 돌아갈
문자의 위치를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문자가
남겨온 기록들의 열쇠이다.
첫댓글 제목부터 '양파 속의 우주 29 '
흔하지 않은 시를 읽으면서
의미를 파악하느라 노력중입니다.
좋은 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 번 읽으며 의미를 새겨보는 시
선생님과 함께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