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훈련소에서 우편물이 날아왔다. 아들을 입대시킨 후 노심초사하는 부모들의 불안감을 덜어주고 군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높이기 위해 '훈련병 모친 초청 병영체험 훈련'을 실시한단다. 공개추첨을 통해 200명 을 선발했는데 아들 내무반에서 어머니가 초대되었다는 내용이었다. 2박 3일을 아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데 망설일 까닭이 없었다. 어머니들은 지급해 준 전투복과 군화, 군모로 환복하고 연병장에 모여 입소식을 가졌다. 훈련대장으로부터 아들과 함께 받는 훈련, 아들의 훈련 참관, 어머니들만의 훈련, 아들과 함께 하는 외곽 초소 경계근무 등의 일정 소개와 식사시간, 기상과 취침에 관한 규칙, 인원점검 요령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입소식 절차가 끝나고 내무반으로 안내되었다. 문을 열고 내무반으로 들어서자 가운데 통로를 중심으로 마주 보며 서 있던 병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곁에 서 있던 조교가 "어머니가 내무반 병사들의 어머니 자격으로 오셨으니 여기 있는 병사들 모두가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아들들의 인사를 받으십시오!"라고 말했다. 병사들은 거수경례를 하며 인사를 했고 나는 병사들을 차례로 끌어안아 주었다. 병사들도 주저하지 않고 나를 마주 안고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얼마나 어머니가 그리웠으면 동료의 어머니를 안고 이렇게 뜨거운 눈물까지 흘리는 것일까? 맨 마지막에야 아들과 마주 섰다. 딸이 없는 내게 막내아들은 살가운 아들이다. 가슴팍에 얼굴을 파문고 응석을 부리기도하고, 부엌을 드나들며 김치볶음밥이나 카레라이스를 끓여내고 엄마가 좋아한다고 군고구마나 붕어빵을 품에 품고와 내밀곤 하던 정 많은 녀석이었다 아들은 차마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입으로만 '엄마!' 하고 부르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아들을 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밤 12시 30분쯤 되었을까? 한 시간이 넘도록 전방만 주시하고 서 있다 아들과 엄마가 지척에 있는데도 서로 말 한마디 주고받을 수 없다. 외곽 초소에서 야간 경계근무를 서는 중이다. 의지할 곳 없이 휑한 데에서 한 밤중에 꼼짝 않고 서 있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였다. 총신을 잡은 손이 시리다 못해 저려왔다. 아들도 춥지 않을까 슬쩍 바라보니 녀석이 선임병 눈치를 슬슬 살피며 조금씩 게걸음으로 내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장정 보폭으로 서너 걸음 간격으로 서 있는 중이다. 저러다 선임병에게 들켜 기합이라도 받게 되면 어쩌나 싶어 조바심이 났다. 그때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앞만 보고 있던 선임병이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슬쩍 돌아서 주었다. 아들이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엄마, 보고 싶었어!" 라고 속삭이며 나를 덥석 끌어안았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돌아서준 선임병에 대한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제 마음도 민 이병 마음과 같습니다. 맘 편히 가지셔도 되지 말입니다." 하고 안심까지 시켜주었다. 후임병의 마음을 헤아려 따뜻하게 배려해준 선임병의 너그러운 마음 씀이 고마워 목이 메었다. 아들과 손을 꼭 잡고 오순 도순 정담을 나눌 수 있게 된 순간부터 남은 외곽 초소 경계근무는 춥지도 지루하지도 않았고 손발이 시린 것도 잊었다 선임병이 베풀어 준 뜻밖의 선물 같은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