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다가옵니다
아궁이가 있는 옛 고향집 모습이 눈에 선히 떠오릅니다
솥뚜껑 달그락거리며 새어 나오던
구수한 쇠죽향기도 한번 맡아보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엔 이른 아침에 일어나 쇠죽을 끓여내던
일상의 일이 가장 싫고 귀찮았었는데,
어느덧 세월은 힘든 기억은 하얗게 지우고
아름다운 풍경만 남았습니다
오늘 하루 나의 일상은 먼 훗날에
또 어떤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게 될까요
어떤 풍경으로 떠올라 먼 훗날의 나의 하루를
또 그리움으로 가득 채우게 될까요
고향집 아궁이가 있는 방,
아궁이에 가득 장작을 넣고
세파에 시달려 찹디 차가워진 몸과 마음을
한나절 따끈따끈하게 데우고 싶습니다
날씨가 춥습니다
따뜻한 화요일 되세요
온돌방 / 조향미
할머니는 겨울이면 무를 썰어 말리셨다
해 좋을 땐 마당에 마루에 소쿠리 가득
궂은 날엔 방 안 가득 무 향내가 났다
우리도 따순 데를 골라 호박씨를 늘어놓았다
실겅엔 주렁주렁 메주 뜨는 냄새 쿰쿰하고
윗목에선 콩나물이 쑥쑥 자라고
아랫목 술독엔 향기로운 술이 익어가고 있었다
설을 앞두고 어머니는 조청에 버무린
쌀 콩 깨 강정을 한 방 가득 펼쳤다
문풍지엔 바람 쌩쌩 불고 문고리는 쩍쩍 얼고
아궁이엔 지긋한 장작불
등이 뜨거워 자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
우리는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갔다
그런 온돌방에서 여물게 자란 아이들은
어느 먼 날 장마처럼 젖은 생을 만나도
아침 나팔꽃처럼 금세 활짝 피어나곤 한다
아, 그 온돌방에서
세월을 잊고 익어가던 메주가 되었으면
한세상 취케 만들 독한 밀주가 되었으면
아니 아니 그보다
품어주고 키워주고 익혀주지 않는 것 없던
향긋하고 달금하고 쿰쿰하고 뜨겁던 온돌방이었으면
카페 게시글
방문 흔적 남기기
온돌방
류삼곤
추천 0
조회 3
24.02.06 22:12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