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16. 큐티
시편 41:1 ~ 4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관찰 :
1) 표제어
-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 본 시편의 표제어에서는 이 시편이 다윗의 저작이란 사실과 더불어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제의 음악이라는 사실만 나오고 있습니다. 성경 학자들은 이 시편이 다윗이 병들었을 때로 추정되는 시기에 아들 압살롬이 추종 세력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킨 사건을 접하고 지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본 시의 내용이 당시의 정황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9절의 내용은 압살롬의 모사로 자청한 아히도벨을 연상하기에 충분한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시편은 비탄시가 아니라 지혜시로 분류됩니다. 다윗의 답답함을 토로하는 내용도 있지만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 찬양과 약한 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자가 누리게 될 복을 소재로 하는 교훈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다윗이 백성들에게 지혜를 가르치고자 한 지혜시로 분류하는 것입니다.
2)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의 복
- 1절.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 시편 41편은 시편 1권의 마지막 시편입니다. 본 시편은 히브리어 어법상 “복이 있음이여”(אָשֵׁרִי, 아쉬리)로 시작합니다. 시편 1편 절도 이 단어로 시작합니다. 시편의 1권이 “אָשֵׁרִי”(아쉬리)로 시작했서 “אָשֵׁרִי”(아쉬리)로 끝나는 것입니다. 시편의 편집자가 제 1권의 시작과 끝을 “אָשֵׁרִי”(아쉬리)로 정리한 것은 시편 제1권에 대한 하나의 주제를 드러내고자 한 의도라 풀이됩니다. 즉 누가 복 있는 자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복된 삶인지를 가르쳐주기 위한 의도가 담겨진 것입니다. “אָשֵׁרִי”(아쉬리)는 ‘곧다, 똑바로 가다’라는 일차적 의미를 지닙니다. 그리고 ‘번영하다, 성공하다’란 의미의 복수형입니다. 그렇기에 “אָשֵׁרִי”(아쉬리)의 의미는 복되고 형통한 삶을 사는 비결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르고 정직한 삶, 의로운 삶을 사는데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편 1:1에서의 “אָשֵׁרִי”(아쉬리)는 복 있는 자의 조건은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 위에 서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살아가는 자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본 시편 41편에서의 복 있는 자의 조건은 “가난한 자” 즉 사회적 약자를 권고하고 돕는 자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시편 1편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시편 41편에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부각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다윗은 가난한 자를 돕는 자가 복이 있는 이유가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가난한 자를 권고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보호가 보장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어려운 형편에 처한 이들, 약한 자들을 외면하지 않고 돌아봄으로써 재앙의 날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 2절.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 이웃 사랑을 실천한 사람, 특별히 사회적으로 가난한 자들, 비천한 자들의 곤경을 돌아보고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복되게 해 주실 것임을 이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를 지키사”(יִשְׁמְרֵהוּּ, 이쉬메레후)는 ‘관찰하다’, ‘지키다’, ‘보호하다’라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이는 어려움에서 구조한다는 의미 뿐만 아니라 그의 삶의 전 영역을 감찰하시고 필요한 것들을 충족시켜 주시기 위해서 그 삶을 지켜보고 보존하고 채워주심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사회적으로 가난한 자를 사랑하고 돌보아 주는 자는 현실 가운데서 하나님의 지극한 관심과 풍족한 공급을 받고 살 것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복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2) 병을 고쳐주소서
- 3절.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 다윗은 이웃 사랑을 실천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의 보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돕는 이웃 사랑의 계명을 실천한 자는 어떤 질병이나 곤경에 처한다 할지라도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병을 고쳐주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 자신이 지난 날 이미 심한 질병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완전히 고침 받은 사실을 회고하면서 본 내용을 기술한 것임을 짐작하게 됩니다.
3) 나를 고치소서
- 4절.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 다윗은 자신에게 맞추어서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이 표현은 기도하는 자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자주 사용되는 전형적인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윗 사람이 아랫 사람에게 몸을 굽혀 관심을 표명하고 그의 상황을 주시하고 해결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일반적인 의미의 자비를 구하는 상황에서 다윗은 자신의 범죄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범죄 사실을 고백하는 이유는 다윗이 현재 빈약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 자신의 범죄 때문이라는 것을 자각한 결과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범죄 사실을 고백하면서 그것을 “주께 범죄하였사오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범죄한 대상이 다름이 아닌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의미는 다윗이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범죄를 짓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또 사람과 상관없이 하나님께만 범죄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윗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모든 범죄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하지 않은 반역행위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나를 고치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여기서 “나”는 ‘나의 영혼’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명과 인격의 중심인 영혼이 자신의 범죄로 인해 오염되고 병들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육신적 질병의 치료를 구하지만, 거기에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며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다윗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바른 자세라는 것을 자신에게,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외면 받는 자를 돕는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게 되는 통로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 다윗은 자신의 육신의 질병을 치유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육신의 질병으로 죽을 위기에 처했던 다윗이 간절히 하나님께 자신의 치유를 위해서 간구한 것입니다.
3) 다윗은 자신이 처한 모든 상황, 육체적 질병과 관계의 단절을 포함한 원수들의 괴롭힘으로 말미암은 고난의 상황들을 자신의 범죄함으로 인한 결과라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범죄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고쳐달라고 대놓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뻔뻔해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가장 바른 길이었습니다. 다윗은 그런 면에서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에 대해서는 천재적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다윗은 육체적인 회복 뿐만이 아니라 그의 영이 새롭게 되는 은혜를 얻게 되고, 죄 용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적용 :
1) 이웃 사랑은 하나님의 백성이 추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의 관계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가르쳐 주신 원리이고, 예수님께서도 강조해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특별히 가난한 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살핌은 하나님의 보호를 끌어내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살핌을 실천하는 존재입니다. 특별히 미얀마에서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에 있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되는 대로, 주님 주시는 지혜로 돕는 것은 마땅한 바인 것입니다.
2) 몸의 질병 뿐만이 아니라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을 향한 범죄에 대해서 죄사함을 구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다윗은 그 길을 바르게 걸어갔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육체적 질병 뿐만이 아니라 모든 영적 문제들도 해결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 역시 하나님 앞에 회개의 열매를 맺기를 간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언제나 중요하게 여기는 중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3) 주님을 앙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