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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관 없는 일본 정치인은 '대중(對中) 카드' 없다, 일본인 학교 아동 살해나 간첩 혐의 체포는 유감의 뜻만으로는 구할 수 없다 / 10/24(목) / 엔도 타카시(중국문제 글로벌 연구소 소장, 츠쿠바대학 명예교수, 이학박사)
심천(深圳)에 있는 일본인 학교 학생이 살해되거나 중국에 체류 중인 일본인이 간첩 혐의로 체포됐을 때 일본 정부는 그저 심히 유감이라는 유감포를 쏘거나 의연한 자세로! 같은 정신론만 내놓을 뿐 실효성 있는 수단을 취한 적이 없다. 그것은 중국에 대한 「카드(히든카드)」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왜 카드를 가질 수 없느냐 하면, 패전 후, GHQ(General Head quarters, 연합군 최고 사령관 총사령부)에 의해 철저한 속죄 의식이 심어져, 오로지 미국의 눈치를 보는 일을 일삼는 한편, 중국에 대해서도 「나쁜 것은 일본입니다」라고 하는 자세를 취해 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일본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이념과 같은 독립국가로서의 국가관을 갖지 못하고, 정치인은 선거에서 자신이 당선되느냐 마느냐에만 관심을 갖는 열화된 민주주의 선거만이 만연해 있다.
◆ '국가관' 보다 '내가 당선될 수 있느냐' 만이 최대 관심사
자민당은 오랫동안 자당이 집권 여당으로 남아 있기 위해 옛 통일교회의 조직적 지원과 비자금 문제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왔다. 거기에 있는 것은 「아무튼 당선하고 싶다」라고 하는 각 의원의 사욕이며, 공명당과 연립을 이루어 온 것도 자민당이 정권 여당으로 있고 싶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으로 남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주의주장(主義主張)은 오른쪽부터 왼쪽까지 거의 모두 자민당 내에 갖추어져 있고, 니카이 도시히로 전 자민당 간사장과 같은 극단적인 친중파가 있어도 좋고, 수많은 대중 강경파가 있어도 좋다.
일찍이 필자는 자민당 기관지 「자유 민주」에서 중국 문제에 관해 논고를 연재하고 있었지만, 「시진핑 국가주석을 국빈으로서 일본에 초대할지 말지」에 관해, 아주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것을 적은 원고를 제출했을 때 등, 「당내에는 여러가지 생각을 가진 의원이 있으므로」라고 각하된 경험이 있다.
자민당에 있어서, 「어떻게 해서든」이라고 하는, 당의 공통항으로서의 「국시」는 없고, 공통되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것」이라고 하는 아욕임을 통감하게 되었다.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일 테니 선거는 국민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어야 하는데 민의가 선거에 반영되지 않는 것은 그동안 옛 통일교회의 조직표가 있었기 때문이며 최근에는 정치자금 파티 등 부정한 비자금으로 표를 사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의 시진핑 정권의 행동을 당내 파벌투쟁으로 비판하는 논자가 일본에는 많지만 우리나라 자민당 내 파벌투쟁만큼 격렬한 것은 드물다.
미국처럼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다른 당파간의 투쟁이라면 알 수 있지만, 일본의 경우는 같은 자민당내의 투쟁이므로, 파벌은 해소하기는 했지만, 현재(적어도 이번 달 27일까지)의 이시바 정권은 전 아베파를 배제하는 사적 원한이 목적이었던 것 같은 상황이므로, 결국 당내 파벌 투쟁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관을 논하는 듯한 자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 간첩 혐의로 구속된 일본인에 무력한 일본 정부
예를 들면 2023년 4월 3일의 칼럼<카드 없이 구속 일본인 해방을 요구해, 「탈중국화는 하지 않는다」라고 맹세한 하야시 외상>에서 쓴 것처럼, 방중하고 있던, 당시의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상은 옛 친구인 왕이 정치국 위원(중국 외교 톱)을 만나 기뻐할 수 없다는 웃는 얼굴을 했을 뿐, 같은 해의 3월 25일에 아스텔라스 제약의 주재원이 북경에서 스파이 용의에 의해 구속된 것에 관해서 「협상의 카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단지 구두로 유감의 뜻을 표시했을 뿐 "석방하지 않는다면 ~~한다!" 는 식의 효과적인 카드를 보여주지도 않고 외교수장과 만나고 있는데 더없이 반가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대만 매체 중천신문(中天新聞)이 비아냥거리듯 소개하고 있을 정도다.
◆ 중국의 반일교육 실태를 너무 모르는 일본
필자는 1980년 초부터 중국인 유학생을 돌봤지만 당시 유학생들은 전후 3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일본이 중국에 비해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듯한 엄청난 발전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 일본을 동경하고 일본을 공경하며 일본을 예찬할 뿐이었다.
일본이 과거 '중국을 침략한 것' 따위는 추호도 내지 않아 반일 감정은 완전히 제로였다.
그것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에 가까워졌을 무렵이다.
태어날 때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에 물든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젊은이가 성인이 되어 일본의 대학이나 대학원에 유학해 올 무렵이 되면, 갑자기 「반일 감정」이 병존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1994년부터 애국주의 교육의 이름으로 장쩌민에 의한 반일교육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을 필자는 '중국동만신인류(中国動漫新人類)' 라고 이름 붙여 동명의 서적도 출판하고 있지만, 80년대 초반 일본에 쇄도한 중국인 유학생이나 취학생과 달리 2000년대 전후의 중국인 유학생들은 일본어도 유창하고 부자여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이외에서는 일본을 존경하지 않고, 위에서부터 시선으로 과거의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한 악감정을 병존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주된 원인은 장쩌민의 친부가 중일전쟁 시절 일본의 괴뢰정권이었던 왕자오밍 정권의 관리였음을 감추기 위한 교활한 전략에 있었지만, 중국을 불손하게 만들고 위에서 시선으로 일본을 보는 듯한 젊은이를 만든 원인 중 하나는 일본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9년 6월 4일의 천안문 사태로 중국 공산당에 의한 일당 지배 체제가 붕괴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어리석은 자민당 정권은 '덩샤오핑을 고립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천안문 사태에 대한 대중 경제 봉쇄를 제일 먼저 해제시켰다. 그로 인해 많은 외자가 중국의 시장을 찾아 쇄도하는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 경제성장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천안문 사태로 중공 중앙 총서기가 된 장쩌민은 1992년 방일해 천황폐하 방중을 성사시킨다면 중국은 절대 역사문제에 대해 일본을 비난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1992년 10월 사상 첫 일왕폐하 방중이 성사되자 장쩌민은 곧바로 전언을 번복하고 1994년부터 애국주의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반일교육을 시작했다.
이 때문에 1980년 이후 태어난 중국 동만신인류는 반일교육 세례를 받고 있기 때문에 80년대 초 중국 유학생에게는 전무했던 반일감정을 갖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있다.
반일 교육의 환경하에서는, 반일물의 영화나 드라마라면 바로 허가가 나왔기 때문에, 90년대 중반부터 반일물의 영화나 드라마가 급증해, 그것이 넷 시대에 들어가 동영상 전달의 비즈니스로 전환해 갔다.
야스쿠니 신사 돌기둥에 낙서는 그 흐름의 일환으로, 반일은 이제 비즈니스가 되어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반일 무죄」가 중국 사회의 축에 있다.
2012년 9월 중일 수교 후 전례 없이 격렬하게 불타오른 반일 폭동 속에서 탄생한 시진핑 정권(같은 해 11월)은 그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중일전쟁 중 가장 용감하게 일본군과 싸운 것은 중국 공산당군이라는 가짜 이야기를 꾸며냈고, 그 결과 반일교육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 현실을 대소고소에서 인식하고 독립된 주권국가로서의 국가관을 일본은 가져야 하지만 그럴 처지는 아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국회의원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만 생각하고 있다.
국가관의 소란이 아니다.
중국에 대해서 「카드」가 끊어지는, 거대한 관점으로부터의 전략이 나오는 상황에는 없는 것이다.
이런 일본에서는 국민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없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세는 11월 1일 출판의 「중국 「반일의 어둠」떠오르는 일본의 어둠」에서 말했다.
https://news.yahoo.co.jp/expert/articles/5b7f0bdf76cff0effdfbbd48241bfd8f51e6684a
国家観なき日本の政治家は「対中カード」なし 日本人学校児童殺害やスパイ容疑逮捕は遺憾砲では救えない
遠藤誉中国問題グローバル研究所所長、筑波大学名誉教授、理学博士
10/24(木) 18:18
国会議事堂(写真:つのだよしお/アフロ)
深圳にある日本人学校児童が殺害されたり、中国に滞在中の日本人がスパイ容疑で逮捕されたりしたときに、日本政府はただ「甚だ遺憾だ」という遺憾砲を発するか、「毅然とした姿勢で!」といった精神論を発するだけで、実効のある手段を取ったことがない。それは中国に対する「カード(切り札)」を持っていないからだ。
なぜカードを持てないかというと、敗戦後、GHQ(General Headquarters、連合国軍最高司令官総司令部)により徹底した贖罪意識を植え付けられ、ひたすらアメリカの顔色を伺うことに明け暮れる一方、中国に対しても「悪いのは日本でございます」という姿勢を取ってきたからだ。その結果、日本国はどうあるべきかという理念のような独立国家としての「国家観」を持つことができず、政治家は選挙で自分が当選するか否かだけにしか関心を持たないという、劣化した民主主義選挙だけが蔓延している。
◆「国家観」より「自分が当選できるか否か」だけが最大の関心事
自民党は、長いこと自党が政権与党でいられるために、旧統一教会の組織的な支援や裏金問題など、さまざまな手段を取ってきた。そこにあるのは「ともかく当選したい」という各議員の私欲であり、公明党と連立を組んできたのも自民党が政権与党でいたいためだ。
政権与党でいられるためには手段を選ばず、主義主張は右から左まで、ほとんど全て自民党内に揃っていて、二階俊博元自民党幹事長のような極端な親中派がいてもいいし、数多くの対中強硬派がいてもいい。
かつて筆者は自民党機関誌「自由民主」で中国問題に関して論考を連載していたが、「習近平国家主席を国賓として日本に招くか否か」に関して、ほんの僅かでも批判的なことを書いた原稿を提出したときなど、「党内にはいろいろな考えを持った議員がおりますので」と却下された経験がある。
自民党にとって、「何としても」という、党の共通項としての「国是」はなく、共通しているのは「何としても国会議員に当選すること」という我欲であることを痛感させられた。
日本は民主主義国家のはずだから、選挙は国民の思いを反映したものでなければならないが、民意が選挙に反映されないのは、これまでは旧統一教会の組織票があったからで、最近では政治資金パーティなど、不正な裏金で「票を買う」ような事態が起きていたからだろう。
中国の習近平政権の行動を、党内派閥闘争として批判する論者が日本には多いが、わが国の自民党内における派閥闘争ほど激しいものは滅多にない。
アメリカのように民主党と共和党という別の党派間の闘争ならわかるが、日本の場合は、同じ自民党内の闘争なのだから、派閥は解消することにはなったものの、現在(少なくとも今月27日まで)の石破政権は元安倍派を排除する私怨が目的であったような状況だから、結局のところ党内派閥闘争でしかない。
このような状況では、「国家観」を論じるような姿勢には至らないのも当然だろう。
◆スパイ容疑で逮捕拘束されている日本人に無力な日本政府
たとえば2023年4月3日のコラム<カードなしに拘束日本人解放を要求し、「脱中国化はしない」と誓った林外相>で書いたように、訪中した、当時の林芳正外相は旧友の王毅政治局委員(中国外交トップ)に会って嬉しくてならないという笑顔を振りまいただけで、同年の3月25日にアステラス製薬の駐在員が北京でスパイ容疑により拘束されたことに関して「交渉のカード」を持っていなかった。
ただ口頭で「遺憾の意」を表しただけで、「解放しないのなら~~するぞ!」といった効果的なカードを見せることもなく、外交トップと会っているのに、この上なく嬉しそうな顔をしているのを台湾のメディア「中天新聞」が皮肉たっぷりに紹介しているほどだ。
◆中国の反日教育の実態を知らなすぎる日本
筆者は1980年初頭から中国人留学生の世話をしてきたが、当時の留学生は「戦後30年ほどしか経っていない日本が、中国と比べて天と地の開きがあるような凄まじい発展を遂げていること」に仰天し、日本に憧れ、日本を敬い、日本を礼賛するばかりだった。
日本がかつて「中国を侵略したこと」などおくびにも出さず、反日感情は完全にゼロだった。
それが変化し始めたのは2000年に近くなったころだ。
生まれた時から日本アニメに染まった日本アニメ大好きな若者が成人して日本の大学や大学院に留学してくる頃になると、突然「反日感情」が併存し始めていることに気が付いた。
1994年から、愛国主義教育の名のもとに江沢民による「反日教育」が始まったからだ。日本アニメ大好きな若者たちを筆者は「中国動漫新人類」と名付け同名の書籍も出版しているが、80年代初期に日本に殺到した中国人留学生や就学生と違って、2000年前後以降の中国人留学生たちは日本語も流暢で金持ちで、アニメや漫画以外では日本を尊敬しておらず、上から目線でかつての「日本の侵略戦争」に対する悪感情を併存させていた。
このような状況を招いた主たる原因は、江沢民の実父が日中戦争時代、日本の傀儡政権であった汪兆銘政権の官吏だったことを隠すためという狡い戦略にあったが、中国を不遜にさせ、上から目線で日本を見るような若者を作った原因の一つは日本にあると言っても過言ではない。
1989年6月4日の天安門事件で中国共産党による一党支配体制が崩壊したかもしれないのに、愚かな自民党政権は「鄧小平を孤立させてはならない」という考えから天安門事件に対する対中経済封鎖をイの一番に解除させた。それにより多くの外資が中国の市場を求めて殺到するという状況を招いたのだ。そして中国が経済成長するきっかけを作ってあげたのである。
天安門事件により中共中央総書記になった江沢民は1992年に訪日し、「天皇陛下訪中を実現させたら、中国は絶対に歴史問題に関して日本を責めない」と誓いながら、1992年10月に史上初の天皇陛下訪中が実現すると、江沢民はすぐさま前言を翻して1994年から愛国主義教育の名のもとの反日教育を始めた。
そのため1980年以降に生まれた中国動漫新人類は、反日教育の洗礼を受けているため、80年代初頭の中国人留学生には皆無だった反日感情を持っているという皮肉な現状がある。
反日教育の環境下では、反日ものの映画やドラマならすぐに許可が下りたので、90年代半ばから反日ものの映画やドラマが急増し、それがネット時代に入って動画配信のビジネスへと転換していった。
靖国神社石柱への落書きはその流れの一環で、反日は今やビジネスになっているほどなので、「反日無罪」が中国社会の軸にある。
2012年9月、日中国交正常化後、前例がないほど激しく燃え上がった反日暴動の中で誕生した習近平政権(同年11月)は、その流れに逆らうことができず、「日中戦争中に最も勇敢に日本軍と戦ったのは中国共産党軍だ」という偽物語をでっちあげ、その結果、反日教育に力を入れざるを得ない政策を推進してきた。
この現実を大所高所から認識し、独立した主権国家としての「国家観」を日本は持たなければならないが、それどころではない。どうやれば自分が国会議員として生き残れるかしか考えていない。
「国家観」どころの騒ぎではない。
中国に対して「カード」が切れるような、大所高所からの戦略が出てくる状況にはないのである。
こんな日本では、国民は尊厳を以て生きていくことはできないし、安全に生活していくこともできないだろう。
これらの詳細は11月1日出版の『中国「反日の闇」 浮かび上がる日本の闇』で述べ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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