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
창 3: 14~24
범죄하여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 자체에 부정적 변화가 발생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죄라고 하는 것은 인간 자체를 변질시키고 부패시킵니다. 그러나 죄가 정말 무서운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의 저주(심판)을 가져오기 때문에 더욱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 범죄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저주를 내리셨는지를 살펴보면서, 이 혹독한 저주로부터의 구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사탄을 저주하셨습니다(창3:14~15).
하나님의 피조세계 전체가 하나님께 반역을 하였습니다. 이 반역의 주체는 사탄이고 뱀은 도구였으며, 인간은 반역의 실체이자 피해자였습니다. 땅은 반역의 장소가 됨으로 사실상 모든 피조세계가 반역에 참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저주는 모든 피조세계에 내려졌습니다. 그 중에서 뱀에게 내린 저주를 살펴보겠습니다. 뱀에게 내린 저주는 사탄의 도구가 된 뱀에게 내려진 저주이면서 사탄에게 내려진 저주입니다.
하나님은 뱀에게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저주를 받아]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짐승보다]는 [모든 짐승 가운데서], [모든 짐승들로부터]의 뜻입니다. 즉 뱀은 사탄의 도구로 이용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짐승들 중에서 가장 경멸을 당하는 짐승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모든 짐승들로부터 경멸을 받는 사람과 짐승 모두에게 지독한 멸시를 당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뱀과 사람이 원수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뱀과 사람이 서로 싫어하는 관계, 증오하는 관계가 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뱀과 인간은 가장 친밀해지기 어려운 관계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사탄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즉 사람과 사탄은 원래가 친밀한 관계가 아닙니다. 그런데 사탄이 그 특유의 거짓과 위장술로 사람에게 다가와 사람을 유혹한 것입니다. 사탄과 사람은 가깝게 지내어서는 안 되는 관계인데 가깝게 지냈으므로 하나님은 다시 둘을 떼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과 사탄은 친밀하게 지낼 수 없는 관계입니다. 서로 대화할 필요도 없고, 알고 지낼 필요도 없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사탄과 친밀하게 지내려 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사탄과 접촉하는 것도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사탄과 인간은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사탄의 실체를 모르고 가까이하고 있습니다. 사탄과 교제를 합니다. 사탄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탄과 함께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사탄의 실체를 잘 파악하여 사탄과 대적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뱀의 후손은]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며, [여자의 후손]은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는 사탄과 사람 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계속해서 있게 될 것을 말씀하는 것이며,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에 의해서 사탄이 완전한 패배를 당하게 됨으로 사탄이 영원한 파멸을 맞게될 것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탄과는 휴전이나 협상이 있을 수 없습니다. 계속적인 전쟁만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오셔서 그 전쟁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인하여 사탄의 종에서 해방되었고,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사탄을 이기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탄이 영원한 결박과 형벌을 받는 것만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날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입니다. 우리는 그날까지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세로 사탄과 싸우며, 사탄이 점령한 이 세상을 구원의 복음으로 구원하는 일,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사탄으로부터 승리하시고, 사탄에게 종된 사람들을 복음으로 구원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 하나님은 여자에게 저주하셨습니다(창3:16).
사탄은 뱀을 도구로 썼고, 여자는 뱀의 유혹을 받아 사탄의 도구가 되어 남편을 넘어뜨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러므로 여자에게 그 죄 값을 묻지 않을 수 없으셨습니다. 그 저주는 잉태와 출산의 고통을 [크게] 더하는 것과 남편을 사모하고 다스림 받는 것입니다.
잉태와 출산은 여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큰 축복이었습니다.
물론 타락한 후에도 이것이 큰 축복인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여성이 아기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입니다. 이 일보다 성스럽고 아름다운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 이 성스러운 일을 감당함에 있어 큰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출산의 고통은 이 세상에서 겪을 수 있는 고통 중에서 가장 큰 고통입니다.
그리고 남편과의 관계는 남자와 여자와의 동등함이라는 질서에 변동을 가져왔습니다. 인격으로서의 동등함은 여전한 것이지만, 가정에서의 질서는 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남편을 여자의 머리로서 확고하게 세우셨고, 여자는 이를 인정하여야 하며(사모하고의 뜻), 남편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즉 남편에게 순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인격적인 면에서는 동등하나 모든 생활에서 남편의 의사를 존중하고 순종해야하는 질서를 지킬 것을 명령받은 것입니다.
여성이 창세 이후로 남성에 의해 억압을 받고 고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허락 하에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내리신 판결이 남성들에 의해 잘못 이용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권의 회복은 남성들이 왜곡시킨 것을 바로 잡으려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지, 하나님께서 타락 후에 세우신 질서를 깨뜨리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3. 하나님은 남자를 저주하셨습니다(창3:17~19).
하나님은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라고 하셔서 아담을 책망하셨으며, 어쨌든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것에 대하여 저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 저주는 종신토록 수고하는 것과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타락 전에도 사람은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사명으로 일하는 것이었고, 하나님께서 그 모든 수고에 복을 주시고 보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사명은 둘째치고 먹고살기 위하여 피땀을 흘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그렇게 아둥바둥 살아도 전과 같이 풍족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인생의 끝은 허무만 남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타락은 먹고사는 문제의 어려움을 가져왔습니다. 이는 인간이 인간 됨을 버리고, 사명을 버린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은 먹고사는 것이 최대의 과제이자 고생이며, 그 끝은 허무입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잘 해결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인간 본래의 삶이 아니기 때문에 그 끝은 허무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여 먹고사는 문제를 잘 해결하고도 참된 기쁨과 평화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타락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저주에서 벗어나 인간을 회복하는 것과 사명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삶의 고통과 짐을 가볍게 해주시고, 허무가 아닌 생명과 복과 영광이라는 삶의 열매를 주십니다. 그 회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신앙은 남성들이 더 가져야 하고, 남성들이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남성들이 바르게 배우고 바르게 서서 살아야 자신과 가정,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에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4. 하나님이 땅에도 저주를 하셨습니다(창3:17~18).
땅이 저주를 받은 것은 창3:17에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라고 기록된 대로 인간의 범죄 때문입니다. 사탄과 인간이 결탁하여 하나님을 반역할 때 반역의 장소가 되었으니 저주를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 땅에게 내린 저주는 황폐화입니다. 창조 당시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 황폐화됨으로 최적의 환경에서 황폐화된 환경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저주는 지금까지 지구의 황폐화를 가져왔습니다. 지구는 사람이 파괴하지 않아도 계속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사막이 늘어나고,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지진이나 기상이변 등으로 사람에게 많은 위험과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황폐화는 인간의 파괴로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 땅은 하나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 인간의 삶의 장소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그 수명이 다하게 될 것입니다. 이 날이 마지막 때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아예 파괴하여 없애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구원받은 자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모든 저주보다 무서운 저주는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아담에게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신 것은 인생의 허무뿐만이 아니라 죽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는 아담에게 말씀하여 모든 인류에게 내리신 죄에 대한 저주입니다. 죽음은 단순한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리스도에 의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면 영원히 하나님과 끊어지는 것이며, 영원한 형벌로 인하여 둘째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계21:8).
그래서 우리에겐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의 저주를 대신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가 회복될 뿐만 아니라 모든 저주로부터도 벗어납니다. 물론 우리가 완전히 저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죄와 육신, 세상과 마귀의 모든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는 부활을 주실 때이며, 부활한 몸(영화 된 몸)으로 천국에 들어갈 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정말 필요한 신앙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사는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고, 말씀을 따라 거룩하게 살아가며, 회복된 지위를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사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 후에 모든 것이 회복되는 은혜를 천국에서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