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기도의 영적원리
눅22:31-38
2026년5월7일(목)
기동찬
31.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35.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36.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37.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38.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중보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원리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31.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하나님, 욥기(1장)에 기록된 말씀처럼 사탄이 주님의 제자들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영적질서를 봅니다. 욥기 1장에 기록된 말씀처럼,
6.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7.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8.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9.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11.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12.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욥1장).
주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루는 “사탄이 너희를(you all)...요구”(31절) 했다고 했습니다. 왜, 요구했냐, “밀 까부르듯 하려고”(31절), 제자들의 영혼을 탈탈 털어 버리려고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성부 하나님께 그냥 요구 하지 않습니다. 합법적으로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그 공의를 향하여 합법적인 것을 가지고 요구합니다.
그동안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사탄은 성부 하나님께 참소할 거리를 많이 충분히 확보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서로 높아지려고 서로 다투고 시기 하는 모습’(24절)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런 장면을 사탄은 결코 놓치지 않습니다. 하루 해가 지나고(엡4:26-27), 그 다음 날이 되면 사탄은 어김없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참소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제자들이 저렇게 서로 시기하고 다투고 서로 높아지려고 하는데, 그냥 두십니까, 제가 가서 저들을 심판하겠습니다.’ 라고 검사처럼 재판관 되시는 하나님께 요구합니다. 그러면 검사 같은 사탄의 참소를 변호 해 주는 분은 성부 하나님께 중보 기도하는 자입니다.
31.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you all)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사탄은 시몬뿐만 아니라 제자들 전체 “너희를(you all)...요구”했다고 했습니다. 이 장면을 성자 예수님께서 그 곁에서 보시고, 변호 해 주셨습니다. 32.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그렇습니다.
사탄의 참소보다 더 강력한 것이 주님의 중보기도 이십니다. 결국 베드로는 세 번 주님을 부인하며 넘어졌을지라도, 주님의 중보기도 덕분에 완전히 파멸하지 않고 다시 회복되어 초대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사탄은 제자들을 키질 하여 완전히 넘어뜨리려고 시도하지만, 그 권세는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음을 알게 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주님의 제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저들의 허물과 실수를 가지고 사탄이 검사처럼 재판관 되시는 공의로우신 성부 하나님께 참소하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래 그렇구나, 네 말이 맞네, 그의 생명에는 손대지 말고, 네가 알아서 하라!’고 허락하실 수도 있는 분이심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이 때, 중보기도 자가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적용하며, ‘성부 하나님, 사탄의 참소는 합당하오나, 아무개 죄인을 위하여 주님께서 친히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신 바, 그 보혈을 적용하오니, 그를 용서해 주시고,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라고 믿음의 사람이 중보기도 할 때, 성부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24시간 전에, 천사들의 금향로에(계8:4), 중보기도가 올라 온 바, 네가 참소한 그의 죄는 지우개 보다 더 강력한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이미 그의 죄를 지웠으니, 너의 참소는 합당하지 않고 더 이상 적용될 수 없는 바, 너의 말에는 내가 동의 할 수 없구나, 더 이상 참소하지 말고 내 앞에서 물러 가거라.’ 하시고 사탄의 참소를 합법적으로 지워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사탄의 참소 보다 더 강력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적용함으로 중보기도하는 것임을 선포합니다.
31.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주님께서 이렇게 시몬에게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시몬은 아직도 주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여, 큰 소리 치고 있습니다.
33.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인간적으로는 귀한 고백이나, 영적인 공식으로 볼 때는 위험한 ‘자기 의’입니다. ‘인간의 의’는 영적인 공격에 미약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영적인 존재이신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간구할 때 가장 강력한 존재가 됩니다.
베드로는 사탄의 공격(밀 까부르듯 함)을 자신의 정신력으로 이길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아닙니다. 육신적인 존재는 영적인 존재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육신을 가진 인간이 가장 강력한 영적인 존재를 의지할 때는 능히 사탄의 존재를 이길 수 있음을 선포합니다.
자신의 의지력을 믿고 베드로처럼 큰 소리 치면서 영적전쟁에 나갈 때는 백전백패하지만 아무리 의지력이 약할지라도 가장 강력하신 주님을 신뢰하고 기도함으로 영적전쟁에 나갈 때는 백전백승할 것임을 선포합니다.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영적전쟁에서 모래성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라고 말씀해 주신 줄 믿습니다.
그러니, 베드로는 아직까지도 이렇게도 중요한 중보기도의 원리를 몰랐던 셈입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그리 말씀하실 때, ‘맞습니다. 주님, 제게는 주님의 중보 기도가 필요합니다. 계속해서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저도 더 깨어 있겠습니다.’ 라고 주님의 중보기도를 인정하기 보다는 자신의 각오를 더 내 세움으로 중보기도의 사역을 가볍게 여긴 셈입니다.
그러니, 베드로는 저는 말입니다. 주님이 “옥에도 죽는데에도”(33절)가신다면 다 따라 갑니다. 라고 큰 소리 쳤지만, 계집종 말 한마디(영적유혹)에 무너졌습니다. 칼을 휘두를 용기(육체)는 있었지만, 비난을 견딜 만한 믿음(영적인 힘)은 없었습니다. 육신에 속한 자는 영적인 전쟁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영적전쟁에서의 승리는 기도와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결과임을 선포합니다. 영적전쟁에서의 승리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바, 개인적으로 “항상 깨어 기도”(눅21:36)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더 강력한 기도는 홀로 기도하기보다, “두 세 사람이 합심하여 기도”(마18:19,20)하는 기도가 더 강력한 기도가 됩니다. 일명, 삼삼삼중보기도, 이 기도가 능력이 있음을 선포합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도 가룟유다도 다 위해서 기도해 주셨지만(끝까지 발을 씻기주신 사랑에서 추론), 두 사람의 결과는 갈라졌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자비(약속)를 바라 보았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스스로 정죄하며 괴로워함으로 후회 했습니다. 그는 죄의 책임을 자신 스스로 지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절망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회개(Repentance)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후회(Remorse)는 자기 자신에게 갇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비록 연약하여 넘어졌지만, 그의 마음 중심에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고, 그는 끝까지 마음을 완악하게 했고, 주님께서 떡을 주시며 기회를 주셨음에도 그는 거부했습니다. 그를 위한 중보기도가 부어져도 그 은혜를 받아 들일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던지신 기도의 줄을 붙잡았고, 가룟유다는 그 밧줄이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어둠 속으로 걸어 갔습니다. 이 차이가 베드로와 가룟유다의 차이요, 이 차이가 ‘반석’(베드로)과 ‘비극’으로 갈라놓은 줄 압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중보기도의 원리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사탄은 저의 허물을 틈타 공의로운 법정에서 저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끊임없이 참소하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주님의 중보기도가 저를 덮고 있음을 선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보혈을 제게 적용함으로 성부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베드로처럼 나의 의지가 대단한 줄 알고 착각해서 “죽는 데에도 가겠습니다.”라고 큰소리치는 어리석음과 교만은 제게 없는지, 말씀의 거울에 제 자신을 비추어 봅니다.
실패의 순간, 가룟 유다처럼 후회하며 절망의 어둠으로 숨지 않게 하시고, 베드로처럼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붙들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저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주님과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저를 위하여 기도하는 모든 분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천국에 가는 그 날까지 제 홀로 서기보다 믿음의 형제들과 합심하여 기도함으로 영적 전쟁에서 백전백승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 하루도 주님의 손에 올려 드리며
제 삶의 주인이시며 저의 영원한 변호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Declaration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는 공식을 친히 보여주시고, 중보기도자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몸소 보여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I praise the Lord, who has personally shown us the formula for victory in spiritual warfare and what it looks like to be an intercess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