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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태용 선수의 프로활동을 보면 크게 2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먼저 처음 데뷔해서 3연패를 달성했을 때, 그리고 2001년부터 다시 3연패했을 때의 팀을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가 있는가?
처음 3연패를 했을 때(1993년 ~ 95년)는 선수 구성으로만 보면 3연패할 수 있는 멤버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는 선수들이 내 몸을 던져서, 골이 들어가면 내가 죽는다는 마음으로 했기 때문에 3연패를 달성할 수 있었다.
2001년에 우승할 때도 우승할 수 있는 멤버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우승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점을 선수들에게 접목했던 것이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2002년, 2003년이야 최고의 멤버 아니었겠나. 그래서 쉽게 우승을 할 수 있었다.
두 팀을 비교하긴 그렇고, 일단 박종환 감독님이나 차경복 감독님이나 두 분 다 스타일이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비슷하고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성남의 6번 우승에 모두 공헌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 성남 엠블렘에 별 6개가 새겨지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고 평가된다. 모두 소중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우승이 있다면.
여러 번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역시 1995년 3연패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포항과의 챔피언 결정전은 정말 대단했다. 동대문경기장에서 열렸던 1차전 때는 대표팀에 가서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뛰지 못하고 본부석에서 경기를 봐야했다. 포항에서 열린 2차전에서도 허리가 다 낫지 않아서 전반에 벤치에 있었는데, 0-2로 지고 있었다.
그 때 벤치에 앉아 있으면서 ‘이번에 우승 못하면 MVP 또 못 받는다’는 생각을 했다.(웃음) 93년과 94년에는 (고)정운이 형과 (이)상윤이 형이 MVP를 수상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가 받을만 했기 때문이다.(웃음) 그런데 당시 포항 가서 선제골을 내주면 한번도 못이기는 징크스까지 있었던 터라 답답했다.
박종환 감독님이 전반 끝나고 “허리 괜찮냐? 한번 뛰어볼래?” 물었다. 그래서 뛰겠다고 그랬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번 뛰어보고 지든지 하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들어가서 내가 2골을 넣으면서 2-2로 만들었고, 마지막에 정운이 형에게 패스해줘서 3-2로 역전을 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1분을 남겨놓고 라데에게 헤딩 동점골을 내주고 말았다. 정말 명승부였다. 아마 그 경기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 근래 들어 리그에 젊은 선수들이 많이 나타나고, 그 선수들에게 관심이 많이 집중되는 것이 사실이다. 리그의 베테랑으로서 이것을 지켜보는 느낌은 어떠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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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우승 후 샴페인을 터트리며 기뻐하는 신태용 ⓒ베스트일레븐
| 내 위의 선배들이 없었으면 나도 이 자리에 없었고, 내가 이 자리에 없었으면 후배들도 없다. 그런데 지금 언론들이 너무 인기에 연연해서 한 두 선수에만 포커스를 맞춰 그 선수들이 모든 프로를 이끌어가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그런 것은 잘못된 것 같다.
관심이 너무 일부 선수에게만 치우치니까 웬만한 선수들은 그냥 잊혀져버린다. 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들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것도 나름대로 좋은 기사거리 아닌가.
- 정말 오랜 기간 ‘축구’ 속에서 살아왔다. 이제는 젊은 선수들을 볼 때 베테랑만이 감지할 수 있는 ‘이 선수는 괜찮겠다’는 감이 있을 것 같다. 혹시 최근에는 그런 것을 느껴본 선수가 있는가?
음..최근 어린 선수중에서 살펴보면 박주영이는 크게 성장할 선수다. 그리고 김승용이도 볼을 찰줄 아는 것 같다. 백지훈이도 경기하는 것을 보면 어린 나이임에도 참 좋은 선수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지금은 일본으로 건너간 김진규, 이 선수도 충분히 크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성남 내에서는 김철호나 전광진 같은 선수가 조금만 더 세밀하게 다듬으면 대표급까지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이런 선수들이 계속 나온다는 것 자체가 한국축구를 위해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 성남팬들은 김철호를 ‘신태용의 후계자’로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기대할 만한 선수다. 다만 철호를 위해 조언을 한다면 성격을 조금 바꿔야 한다. 나와 룸메이트였는데, 항상 느긋하고 착하다. 물론 성격으로 볼 때에는 나쁜 게 아니지만 경기장 안에서는 달라져야 한다.
“너 아니면 내가 죽는다” 하는 식의 강한 투쟁심이 필요하다. 철호는 너무 착하다보니까 경기장 안에서 그런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기본적인 재능과 노력으로 어느 선까지 도달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경기장 안에서만큼은 전사와도 같은 강인함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 어떻게 보면 K리그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라는 포지션에 가장 잘 맞는 선수였다고도 생각된다. 혹시 비슷한 유형의 선수 중에 경쟁심을 가졌던 선수는 있는가?
사실 경기를 하다보면 모든 선수가 다 라이벌로 느껴진다. 어느 한 선수 쉽게 생각하지 않고, 어느 팀의 어느 후보선수라 할지라도 경기장 안에서 맞붙으면 긴장감을 갖고 상대한다. 내가 강하게 보여도 마음 속으로는 ‘저 선수 나오면 내가 어떻게 볼을 차야할까?’ 하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정신력이 더 살아난다. 상대를 얕보는 것은 정신적으로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단 나와 비슷한 유형을 꼽는다면 윤정환이나 노정윤, 고종수 같은 선수를 들 수 있는데, 이 선수들과 부딪힐 때마다 항상 긴장하고 두려워하고, 이 친구들보다 더 잘해야겠다는 투지를 불사른다. 이런 경쟁을 통해서 내 자신을 다잡는 것이 내 방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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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우승의 현장에는 언제나 신태용이 있었다. ⓒ베스트일레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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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너킥을 차러갔을 때 상대 서포터가 물병을 던지자 그것을 주워 마시고는 그 서포터에게 박수를 보낸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러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내가 가장 싫어하는 행위 중 하나가 바로 그런 거다. 자기 팀을 워낙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넓게 보면 함께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서로 가슴에 못 박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애가 두명 있는 아버지인데, 나보다 훨씬 어린 조카뻘 되는 사람들이 “야! 이 XX야” 하면서 입에 담기 험한 말을 하고, 물병을 집어던질 때는정말 보기 안 좋다.
그렇게 되면 축구가 좋아서 자녀들의 손을 잡고 경기장에 오는 부모님들이 어떤 생각을 갖게 되겠는가. 이것은 미래의 축구팬들마저 없애는 행동이다.
물론 자신의 팀이 이기기 위해서 응원하는 것이지만 어느 정도의 매너는 지켜야한다. 팀이 이기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 뛸 수 있게끔 독려해주는 것까지가 팬들이 할 일이다. 그런 것이 진정으로 자기 팀을 사랑하고, 축구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 때 나에게 물병이 날아왔을 때 내가 화를 내고 그 사람에게 같이 손가락질하고 욕을 했다면 상황은 더 악화됐을 것이다.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박수를 쳐주면서 그 물병 던지고 욕한 사람이 뭔가 느끼기를 원했다.
이것은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운동장에서 후배들이 선배한테 욕하고 그러는 것을 절대 못 본다. 우리 팀 선수들이 상대팀 선배에게 욕하는 것도 못 봐준다. 축구를 하면서 상대에게 거친 태클이나 몸싸움이 들어갈 수도, 아니면 자신에게 그런 태클이나 몸싸움이 들어올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고의적으로 거칠게 하기도 한다. 그것은 축구의 일부이기 때문에 당연하다.
그러나 축구 선배는 어디에 가든 또 보게 된다. 축구와 관련되지 않는 욕설 등으로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 그러고 보면 유난히 팬들에 대한 배려가 많았던 것 같다.
팬들이 없는데 축구선수가 있을 수 있나? 같이 나아가야 하는 존재다. 축구인들과 팬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야만 축구가 더 많은 발전을 할 수 있다.
예전에 올스타전에서 이런 경우가 있었다.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상암경기장에서였을 것이다. 코너킥 기회에서 오른발로 킥을 하려고 하는데, 관중석에서 “신태용 선수! 왼발로 차주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왼발로 차줬다.(웃음)
올스타전은 그야말로 팬들을 위한 경기 아닌가. 팬들이 왼발을 원하면 왼발로 차주는 것이 당연하다. 승패를 떠나서 같이 즐기자고 하는 경기이니까...그런 마인드가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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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호주 이야기를 해보자. 호주 퀸즐랜드 로어팀과는 어떤 인연으로 계약을 맺게 됐는가?
원래 한국에서 은퇴를 하려고 했는데, 호주 브리즈번에서 축구학교를 하고 있는 (김)판근이 형이 “올해부터 호주에서 프로리그가 정식 출범하니까 한번 와서 뛰어봐라. 너 정도 수준이면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더라.
그래서 내가 “형, 저는 나이도 있고, 또 호주는 영국식 축구라서 힘있는 축구를 하는데 제가 가능하겠습니까?” 했더니 “충분히 할 수 있다. 해봐라”고 하셔서 우연찮게 일이 진행됐다. 그리고 1월 말에 호주에 가서 직접 2경기 정도 뛰기도 했고..
그 팀 감독님이 한국 선수들을 좋아하셔서 전격적으로 가게 됐다. 사실 이번 호주 행은 여러 가지 길을 모색하는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잘하겠다는 것보다는 선수로 뛰면서 그 나라의 문화에도 적응해보고, 무엇보다 영어를 빨리 배우기 위한 것이 크다.
- 이번에 서혁수도 같이 가게 됐는데.
그렇다. 좋은 선수이고, 잘 알고 있는 선수이기에 추천했다. 지금 은퇴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선수라고 생각했다. 좋은 실력을 갖고 있어도 운이 맞지 않으면 안 풀릴 수가 있는데, 성남에서의 서혁수가 그랬다. 호주에서의 테스트에서도 잘했고, 함께 가면 괜찮을 것 같았다.
우리가 가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 최근 호주가 AFC에도 가입하려고 한다고 들었는데, 어쨌든 아시아와의 교류도 더 많이 늘 것이고, 우리가 그 발판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 호주에서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예전에 잉글랜드에서 공부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선수생활이 끝나면 호주보다는 영국 쪽으로 가고 싶다. 호주에서 2년 정도 선수생활을 하면서 귀와 입이 어느 정도 뚫리면 영국에서 부딪치는 것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계속 축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축구에 대한 감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고...
호주보다 한 단계 위인 영국에서 부딪쳐보는 것이 나에게도 큰 경험이 될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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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신태용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스포탈코리아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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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년간 프로무대에서 뛰었다. 지금 이 순간 생각나는 가장 기뻤던 순간, 가장 슬펐던 순간, 아쉬웠던 순간 등이 있는가?
모르겠다. 정말 긴 세월이었다. 먼저 슬펐을 때는 94 월드컵 최종 명단에서 제외됐을 때, 그리고 97년에 대표팀에서 탈락했을 때인 것 같다. 그 때는 정말 가슴 아팠다. 또 97년에 발목 연골이 닳아서 선수생명을 끝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많이 힘들었다.
반면 우승할 때는...해마다 우승할 때 그 기분은 항상 다르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시합을 이기고, 우승컵을 손에 넣었을 때는 모든 힘든 것들이 다 잊혀진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행복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 기쁨을 맛본 선수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웃음)
- 훗날 한국에 돌아온다면 어떤 모습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가?
'신태용이 정말 신사가 됐구나. 운동 선수도 저렇게 변할 수 있구나'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꼭 지도자가 되겠다, 뭐가 되겠다는 생각은 아직 하지 않는다. 일단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니까 그 곳에서 뭔가 새롭게 내가 변해서 와야겠다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 와서는 사업가로도 변할 수 있고, 국가대표팀 감독을 목표로 지도자의 길에 뛰어들 수도 있다. 그 밖에 다른 분야를 생각할 수도 있고...여러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상태다.
- 축구팬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지도자의 길로 들어오길 바랄 것이다.(웃음)
내가 축구로 이렇게 컸고, 축구밖에 모르고 살았지만 내 인생에 있어 축구 외에 어떤 자질이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도 있는 것 같다. 만약 선수 시절보다 지도자가 더 자질이 있을 것 같다고 판단되면 지도자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길을 모색할 것이다. 어쨌든 인간 신태용에게 있어 최고의 길을 찾아보려고 한다.
- 마지막으로 ‘축구선수 신태용’을 오랜 기간 꾸준히 지켜봐온 팬들에게 인사를 해달라.
팬들에게는 정말 고맙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무엇보다 생각지도 않게 2005년 초에 은퇴를 발표하게 되면서 K리그 그라운드에 설 수 없게 되어 팬들에게 죄송스럽다. 저를 사랑하는 팬들도 아쉽게 생각하겠지만, 당사자인 나 역시도 아쉽고, 죄송스럽고 그렇다.
그러나 신태용은 죽지 않고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여러분 곁에 돌아올 것이다. 돌아올 때 더 많은 박수를 보내주시고,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주실 것이라 믿고 해외에서 더 열심히 내 길을 찾는 노력을 할 것이고, 그 길을 발견해서 돌아오겠다.
- 그 동안 K리그를 지켜줘서 고맙다. 부디 좋은 모습으로 한국에 돌아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 신태용 프로필
0 생년월일 : 1970년 10월 11일 0 키, 몸무게 : 175cm, 70kg 0 출신지 : 경북 영덕 0 출신교(팀) 대구공고 - 영남대 - 성남(천안) 일화(1992년 ~ 2004년)
0 K리그 경력 - 1992년 K리그 신인왕 - 1995년 K리그 MVP - 1996년 K리그 득점왕 - 2001년 K리그 MVP - 시즌 베스트 11 : 총 9회. 1992년 - 1996년, 2000년 - 2003년 - 우승 : K리그 우승 6회(1993년 - 1995년, 2001 - 2003년) FA컵 우승 1회(1999년) 아시아 클럽 선수권 우승(1995년) A3 챔피언스컵 우승(2004년) - 출전 시즌 : 1992년 - 2004년까지 총 13시즌 - 통산 출전 경기 : 401경기 - 득점 : 99골 - 도움 : 68개 - 실점 : 2골 - 반칙 : 576개 - 슈팅 : 755개 - 경고 : 30회 - 퇴장 : 3회
0 국가대표 첫 발탁 : 1993년 3월 0 A매치 데뷔 : 1993년 3월 9일 친선경기 캐나다전(장소 캐나다) 0 A매치 마지막 경기 : 1997년 5월 21일 친선경기 일본전(장소 일본 도쿄) 0 A매치 통산 기록 : 21경기 3득점 0 주요 국제 대회 참가 경력 - 1987년 세계 청소년(U-16) 대회 (캐나다) -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예선, 본선 - 1995년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 1996년 아시안컵 (U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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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는 최고였고 나의 우상이었으며 진정한 K리거 였습니다. 전설이 되어 그는 떠나지만 팬들은 그를 기억할것입니다. "K리그 MVP는 J2리그에서 뛰지 않는다."
그의 말은 아직도 저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영원한 K리그 MVP이며 진정한 K리거 신태용선수 어디서나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위에 정말 멋지네여...... K리그 MVP는 JE 리그에서 뛰지 않는다....ㅎㅎ 너무 멋지네요 역시~~
성남팬은 아니지만 신태용같은 선수는 감히 레전드라는 말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아들이 꼭 여자처럼..ㅡㅡ;
아들... 사진보고 당연히 딸이구나 생각했는데 -_-;;;;
ㅎㅎ 그러게여...사진밑에 글은 안보구 무심결에 그냥 딸두 참 이쁘게 생겼네 그랬는데....ㅎㅎ 정말...아들이라는 소리에... 너무 이쁜 남자 아이네요
K리그 MVP는 J2리그에서 뛰지 않는다." 아..감동..ㅠㅠ
성남팬은 아니었지만 좋아했던 선수... 대전전에서 교체선수 없어서 골키퍼로 나왔을때 기억나네... 나 그때 대전팬이라;; 신주장이 삽질하기를 바랬지만 그렇지는 않았던;;
포항의 H-H라인에 필적할만한 거의 유일한 선수라고 보이는 선수인데.. 70-70클럽은 정말 아쉽네요..
신태용씨..전 1994년부터 그대를 지켜보고있었어요..(스토커? ㅋ) 은퇴라니 아쉽내요/// 호주에서 꼭 성공하시고 뛰어난 지도자가 되어 성남으로 복귀하시길...
저 아들내미...나중에 여자 꽤나 울릴 꽃미남 될듯..ㅎ
쩝...축구라는것에 재미를 느껴가는차에 한명의 뛰어난 한국선수 한사람이 사라져서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