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와 계명대, 대구한의대가 대구지역 약대 유치를 위해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약대 유치를 하면 좋고 못해도 사실상 잃을 게 없는 경쟁이지만 죽자사자 매달리고 있다.
왜 이렇게 집착할까? 대학들이 약대 유치를 하겠다는 명분이나 운영방안을 보면 '표면적인' 이유는 알 수 있다. 경북대는 '기존의 약학 관련 연구 인프라를 기반으로 해 신약개발 중심으로 대학을 운영하겠다'고 하고, 계명대는 '지역 중심의 글로컬 약대를 만들겠다', 대구한의대는 '동서양 융합의학을 육성하는 약대를 만들겠다'고 한다. 약대 유치를 신청한 전국의 33개 대학이 대부분 비슷한 명분을 내세운다. 이런 이유로 이들 대학들은 대구에 배정된 약대 정원 50명을 모두 자신들이 독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묘하게도 이들 대학들이 내세운 바로 그 명분이 '50명 독식'보다는 15~25명 정도씩의 '분리 배정' 방안을 더 합리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것이 약대 유치의 첫 째 모순이다. 정말로 대학들이 신약개발을 위한 고급 연구 인력을 배출하려 한다면 굳이 약대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약학대학이 아니라 분리배정된 정원을 약학과 신설로 돌려 자연대에 두고 다른 BT관련 학과와의 공동 커리큘럼을 운영하면 오히려 약대생 이상의 융합적 지식을 갖춘 인력 즉 첨단의료복합단지에 더욱 맞는 우수한 약사 인재를 배출할 수가 있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우선 다른 학문과 '교류'할 경우 법적으로 약사자격시험을 볼 수 없다. 또 약학과든 약대든 약사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최소 20명 이상의 교수와 고급 연구 기자재가 필요한데 달랑 20여명의 입학정원으로 학과를 운영한다면 낭비가 이만저만 아니다. 그래서 기존의 약대들은 입학정원 50명도 적고 최소 80명 이상이어야 정상적인 학과 운영이 가능하다며 약대 신설보다는 기존 약대 학생의 증원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도 정부는 약대 신설을 공고했으니 이제와서 기준을 바꾸기도 힘들게 됐다. 두 번째 모순이다.
이와 함께 이들 대학의 유치 명분대로 약대 졸업생 모두가 첨단 의약 연구인력으로 진출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대구의 대형병원들은 지금도 약사 정원을 채우기가 쉽지 않다. 애써 구한 약사 직원이 약국을 개업하겠다고 사표를 내고 나가면 속수무책이다. 대구의 첨복 업체들에게도 이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첨단 연구 인력 배출 명분을 무색케 하는 졸업 후 동네 약국 개업, 이것이 약대 유치의 세 번째 모순이다.
이와 함께 일정요건을 갖춘 대학이라면 모두에게 50~80명씩 정원을 주어 약대를 자유롭게 설립하고 서로 경쟁하도록 하는 방안이 있지만 이 역시 약사회 등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분리배정보다는 50명 정원을 한 대학이 가져갈 가능성이 훨씬 크다. 대구의 세 대학 모두 병원을 가지고 있고 관련 학과도 충분해 모두 약대 운영에 대한 자격과 능력이 있다. 하지만 이 중 두 개 대학은 약대를 가져갈 수 없다. 네 번째 모순이다.
이런 모순 속에서 약대 유치전이 전개되고 있다. 이런 모순을 깰 첫 당사자는 정부다. 분리배정 방안을 두고 정부가 고민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정부와 대학은 진정 약학(약대)과 신설목적이 동네 약사 배출이 아니라 첨단 연구인력 양성이 목적이라면 약사자격증 취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약학과 또는 제약학과를 신설해 이 과의 졸업생들이 국내외 제약·바이오 회사 등에 고급인력으로 쉽게 취업할 수 있도록 하는 파격적인 발상도 필요하다. 이런 회사들은 약사 자격증이 아니라 실력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약사회의 반발도 줄일 수 있다.
첨복 조성을 앞두고 있는 대구엔 이같은 방안이 더욱 현실성이 있다.
경북대는 부산대, 전남대, 충남대, 강원대 등 다른 국립대도 약대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계명대 역시 대학설립부터 약국으로 시작된 전통과 10년째 계속해온 약대 유치 숙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약대유치 실패 땐 모두 자존심 타격이 심각할 것이다. 때문에 이들 대학들은 일단 정원 분리 배정 방안이 나온다면(무조건 '나눠먹기'라고 비판할 일이 아니다) 이를 수긍하고 추후 증원을 요구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류상현(대구본부 부장)
-출처: 경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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