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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5일째-류큐왕국의 꽃, 슈리성
오키나와를 작은 섬으로 생각하고 나름 여유있게 5일 정도 잡았는데 본섬만 서둘로 둘러봤는데도 턱 없이 시간이 부족했다. 주변 섬까지까지 보려면 앞으로 2번 정도는 더 찾아야할 것 같다. 조선과 친분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한 많은 우리 민족과 동병상련을 느껴서인지 류큐인들이 그저 친구처럼 반갑다. 생김새도 우리랑 닮았다.
오키나와를 떠나는 마지막날을 슈리성으로 잡았다. 원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을 장식하는 법. 슈리성은 470년간 류큐의 정치, 문화, 종교의 중심지로 성 안에 왕궁이 자리하고 있다. 오키나와에서 가장 인파가 많은 곳으로 이곳을 제대로 보겠다면 일찍 찾는 것이 좋다. 8시에 성을 개방하고 입장료를 받는 정전은 8시 30분에 입장할 수 있으니 8시 반 전에 슈리성 주변을 둘러보면 딱이겠다.
모놀레일의 종점은 슈리성 입구. 여기서 버스를 타고 입구에 갈 수 있지만 성벽을 따라 걷는 것이 좋다. 슈리 모놀레일 역사를 나와 길을 건너면 길 옆에 슈리성 올라가는 길이 있다. 성벽에서 체온이 전해질 정도로 운치있는 곳. 그 곡선이 마음을 열게 한다. 이곳은 견고한 성벽 그리고 탁 트인 나하 시내를 조망하는데 최고
왕궁 외곽을 두른 성벽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한글 안내판이 있어 찾기 쉽다.
슈리성 화장실은 성과 잘 어울린다.
내부도 역시~~
10여분 정도 성벽을 따라가게 된다. 이른 시간이라 관광객이 깨끗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久慶門..경사가 오래 지속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겠지. 우리네 궁궐처럼 문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슈리성의 숨은 볼거리는 날렵한 성곽의 곡선. 우리 성벽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투박하지만 돌이 무뎌서 다듬기 좋다. 맵시 있게 모서리를 치려 올렸다. 마치 처마 끝을 보는 것 처럼
성벽을 따라가니 드디어 입구인 슈레이먼이 나왔다. 예를 지키는 문으로 우리네 숭례문과 비견된다. 류큐는 조선처럼 예절을 중시하는 나라인가보다.
류큐 전통의상을 입은 아부지..울 아부지는 외국가면 늘 전통 옷을 입는다.
2015년 6월 5일, 울아주지랑 3번째 해외여행
이곳은 단체 사진 찍는 장소다. 아예 단체사진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입구를 지나면 소노향우타키이시몬 園比屋武御嶽石門. 1519년 창건한 문으로, 사람이 드나드는 문이 아니라 왕이 외출할 때 안전을 기원하는 예배소다. 류큐의 석회암으로 지붕을 만든 것이 특이하며 부연장식까지 볼 수 있다. 1933년 국보로 지정되었지만 오키나와 전추로 지붕이 파괴되어 다시 복원했다고한다.
歡會門. 슈리성의 제 1정문으로 중국항제가 보낸 특사를 환영한다는 의미를 가지고있다. 정전 올라가는 문,계단이 물결처럼 부드럽다.
견고한 성벽. 자로 잰 듯한..마치 앙코르와트 벽면을 보는 듯
종루에서는 바라본 풍경. 나하시와 성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슈리성에서 가장 멋진 전망 포인트다.슈리성은 일본화폐 2000엔에 들어가 있으니 살펴보시길
왕궁 역시 시샤가 지키고 있다.
자금성의 축소판이랄까. 정전의 문은 奉神門 으로 이곳이 신의 영역임을 말해준다. 문이 3개가 달려 있는데 가운데 문은 국왕과중국 사신만 드나들 수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관광객은 가운데^^ 정전 안내도
붉은색 복층 건물에 지붕은 주황색....중국풍 분위기 가운데는 입처럼 벌힌 형태는 당파풍으로 일본양식을 가미하고있다. 류큐라는 국명도 명나라에서 지워준 이름이다. 중국인들이 유독 오키나와를 많이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글거리는 태양 그리고 꿈틀거리는 용. 당초문, 화려한 색상,금박 용기둥
기둥을 휘감고 있는 용과 히죽 웃고 있는 사자. 말아 올린 꼬리가 이채롭다.
남으로는 광동, 베트남. 필리핀,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와 교역을 했고 북으로는 일본과 조선그리고 류큐와 같은 위도에 있는 는 복주를 통해 중국과 교역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대마도가 중개를 해서 부산과 울산을 통한 교류가 많았다고 한다. 지금이야 두 시간이면 비행기로 가지만 예전에는 왕복 1년이 걸린 긴 항해였다. 울산-대마도-알기-하카다-사쓰마-나하 조선의 대장경이 해로를 따라 오키나와까지 갔다. 조선시대에 류큐의 사절단이 그 먼길을 50여 회나 오갔다고 한다.. 한양의 경복궁까지 들어왔다고 하는데 1431년 9월의 기록을 보면 사신들은 한양 동평관(東平館)에 머물렀다고 한다. 동평관은 남산 주변에 설치되었던 왜관으로 주로 일본과 대마도, 류큐 사신들이 머물던 곳이었다.
용상. 1층은 시챠구이라고 해서 주로 왕이 정치를 행했던 장소로 섬세한 나전칠기 용상이 있고 양옆에 용이 지키고 있다. 대룡주.용기둥 용의 발톱은 4개. 중국사신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2층은 왕비와 신분이 높은 궁녀들이 사용했던 공간. 그외에 집무실, 왕자들이 머문 곳 등이 복원되어있다.
왕관
칠기로 만든 용상. 그리고 황금용
바닥응 유리가 깔려 있어 내부구조를 볼 수 있다. 일본 여인들은 발가락 양말을 신는구나
슈리성에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류큐왕국 전통 복장을 하고 있다. 이런 것은 우리도 배울만 해
성 아래는 류탄연못이 있고 인공섬을 조성해 놓았다.
그 섬에 조선왕으로부터 증여받은 경전 방책장경,즉 고려판 대장경을 보관하기위해 당집을 설치했는데 전쟁으로 분실되었다고 한다. 아치 다리는 천녀교, 선녀가 넘나드는 다리인가봐 조선 정부는 류큐에 1455년부터 1500년까지 여섯 번에 걸쳐 고려 대장경을 전해 준다. 1455년에는 중 도안(道安)이 와서 장경을 구한다는 기록이 일본에도 있다. 전해 준 대장경은 이곳 수리성 밑 장경각에 보관됐다. 장경각은 류큐의 정신적 중심지가 되었다.
낡은 한글 안내판이 반갑다.
성의 남쪽으로 화원이 조성되어있다. 규모는 작지만 꽃나무들이 마음을 맑게 해준다.
가장 남쪽에 전망대가 서있는데 나하시내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얀 건물이 밀집되어 있는 나하시
목예문으로 빠져 나갔다.여기 성벽은 벌집모양. 木曳門은 나무를 끄는 문으로 슈리성 공사때 자재를 옮기던 문이다. 평소에는 닫아 놓았다고 한다. 잘 빠진 아치문이 일품이다.
긴조 돌길 목예문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긴조돌길이 나온다. 1522년에 만들어진 돌길로 당시에 왜구 퇴치에도 이용될 정도로 군사도로 역할도 했다. 남부로 이어지는 돌길로 당시에 10km에 이르렀지만 전쟁으로 소실되어 지금은 238m 만남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서 돌이 맨들맨들하게 닳아 있었다.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어 생명력이 느껴진다. '일본의 길 100선'에 선정되었다.
노파가 거니는 돌길 세월의 무상함이 전해온다.
석감당. 돌을 감당하라.길조심하라는 얘기일까 원래 중국에 기원을 둔 재난방지 돌로 오키나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길가 양편에는 예쁜 집들이 많다. 찻집을 겸하기도한다. 시사의 표정을 보는 맛이 좋다.
도자기로 만든 시샤
마을 아래쪽에는 신목이 자리하고 있다.
이 동네가 금성촌인가보다. 옛 건물을 볼 수 있다. 혹시 김씨 집성촌은 아니것지
맨발 벗고 돌길을 걸으니 아주 편하다.
석탑의 나라 대한민국 처럼 오키나와 역시 그 진면목을 돌에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딱딱한 돌도 부드러운 곡선미를 자랑하는 석벽으로 재 탄생했으니 말이다. 거기다 돌은 석감당과 시샤로 생명력을 불어 넣어 주고있다. 오키나와 돌 문화의 정점은 바로 옥릉(다마우둔)이다. 1501년 류큐의 3대 국왕은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옥릉을 세운다.
왕릉은 중실, 동실, 서실로 이우러진다. 류큐는 전통적으로 화장이 아니라 풍장 풍습이 강했던 모양이다. 왕이 죽으면 5년 정도 지나면 시신이 부패해 뼈만 남게 되는데 그 때 뼈를 깨끗이 닦아 유골 항아리에 담아 보관하게 된다. 오늘날 납골당으로 보면 된다. 조선왕릉은 개별 능인데 반해 이곳은 왕의 시신을 한데 모아 두었다. 집 형태를 띄고 있는 것이 특지인데오늘날까지 오키나와 묘지의 모습이 이렇게 자리잡고 잇다. 입장료 300엔
문을 열면 가장 왼쪽이 동실로 왕과왕비의 유골을 모신 장소,가운데는 시신보관소,가장 오른쪽은 서실로 왕족들 유골을 모시고 있다. 내부는 천연 돌벽을 이라고 한다. 인공이 아니라 자연석을 활용하기도 했고,목조건물처럼 부연장식도 사용했다. 해학적인 용문양. 민가에 시샤가 있다면 왕궁에는 용이 더 많다 돌을 목조건물 처럼 다루었다. 목조건물 부연장식
시신 보관소 문
옥릉 내부 안내
자연석 위에 사자가 앉아 있다. 자연과 인공의 절묘한 조화라고 할까 옥릉 경내 뿌리가 예뻐서 한 컷
울 아부지도 서운할까봐 슈리성역까지 너무 힘들어서 택시를 탔다. 기본 500엔. 뭐 이렇게 덕지덕지 붙어 있은 것이 많지?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장치도 재미있고 무엇보다 친절하다.
공항가기전 온몰에 가서 아부지 신발을 사드렸다. 엔화가 떨어져 쇼핑할 맛이 나지 뉴발란스인데 4만원이야.
마지막 식사는냉 우동. 면발이 쫄깃,국물맛이 끝내줘요.
모노레일에서 바라본 일본 전투기. 태평양전쟁때 사용했겠지 나하공항. 일본의 다양한 저가항공기를 볼 수있다. 국제선보다 국내선이 더 크다. 제주도에도 국제선 터미널이 있었던가?
바닐라 비행기도 있네
일본 본섬에서 오키나와까지 비행기가 10분마다 한 대씩
마지막 남은 동전을 탈탈 털어서 맥주 한잔 사먹었네 오키나와의 자존심. 오리온 맥주 여행작가 아들과 함께 다녔으니 얼마나 피곤했을까? 공항 의자에 그냥 쓰러지셨네
10번 해외여행 약속을 했는데 이제 3번 지켰어요. 앞으로 7번 숙제가 남았어요. |
첫댓글 이제 오키나와 숙제 끝~~유럽 다녀오면 오키나와 기억이 다 사라질까봐 급히 썼습니다. 오키나와 문화적 동질성, 역사 등 우리와 흡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산호 바다가 있고 물가 싸고 먹을 거리 풍부하고.....오키나와 강력추천합니다. .
아부지를 쏙 빼 닮은 붕어빵 대장님 화이팅!
멋진 여행 부럽습니다!
아버님과 함께 열번의 해외여행 조속한 시일내에 숙제 하실 수 있도록 기원합니다.
유럽의 멋진 여행 후기 기대합니다
딸래미 일본 친구가 저희 집에서 자기도 했는데 오키나와가 고향이라고 해서 궁금했었는데
대장님 덕분에 신나게 구경 한번 잘했습니다. ㅎ ㅎ
제주도 같은 분위기도 느껴지고 언제고 한번 가보고 싶네요.
아버님과의 3번째 여행 참 흐믓한 풍경에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회사 그만두고 농사일 하느라 이제사 보는데 대장님 덕분에 오키나와의 멋진 풍광과 이야기 즐겁게 잘 보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