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고 야구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잘 꿰인 구슬'이다. 경북고 박상길 감독은 "경북고는 조직력의 팀이다. 경북고가 우승기를 들 때마다 항상 최고 선수들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북고는 항상 최고의 팀이었다"고 자랑한다.
크기가 다른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경북고 야구에는 '개인의 기량'을 더한 것보다 휠씬 강한 '모두의 힘'이 있다.
▲너는 나의 스승, 나는 너의 코치
경북고 야구부는 1920년 5월11일 첫 훈련을 시작했다. 그러나 정구부에서 온 학생, 야구공을 처음 만져본 학생 등으로 급하게 만들어진 탓에 오합지졸이었다.
당시 꼭 9명으로 구성된 경북고 야구부는 서로가 동료들의 코치가 됐다. 야구룰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말이 통하지 않는 일본인 코치 미연 고유뿐이어서 부원들은 자신의 토막지식을 나누며 서로의 코치로 나섰다. 그래봤자 제멋대로 캐치볼을 하고 방망이를 휘둘러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둠을 뚫고 전진, 또 전진
경북고는 인문고의 이미지가 워낙 강한 까닭에 60년대까지 선수 스카우트마저 쉽지 않았다. 59년에는 야구부원에게 특기생에 대한 혜택을 주지 않기로 한 학교방침 때문에 야구부가 6년 동안 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러나 6년 동안의 시련이 약이 됐을까. 다시 뛰기 시작한 경북고는 무서운 질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2년 만인 67년 대통령배 첫 우승팀으로 이름을 올린 뒤로,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중반까지 경북고는 아예 우승기를 달고 다녔다.
특히 71년에는 대통령기 청룡기 봉황기 황금사자기 등 전국 4개 대회를 싹쓸이, 천하를 통일했다. 남우식(전 아마 롯데) 정현발(전 롯데 코치) 손상대(두산 코치) 배대웅(전 한화 코치) 천보성(전 LG 감독) 정구왕(전 삼성) 황규봉(전 삼성 코치) 이선희(삼성 코치) 등이 71년 우승멤버.
▲21회 우승…. 그 자부심
경북고는 93년 군산상고와의 청룡기 결승에서 이승엽(삼성)의 결승홈런으로 우승을 한 뒤 10년 동안 '우승 맛'을 보지 못했다. 경북지역 전체적으로 선수자원이 부족했고, 야구열기가 식었기 때문.
그러나 경북고의 전국대회 21회 우승경력은 경북고 교표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야구부원들에게는 여전한 자부심이다. 경북고는 전통뿐 아니라 우승 횟수에서도 부산고(22회) 경남고(20회)와 함께 전국무대 빅3로 꼽힌다.
▲너는 학생이다, 그리고 지금은 과정이다
"
요즘은 프로의 시대입니다. 따라서 고교야구가 야구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고교 때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졸업한 뒤 대학과 프로에서 제자들의 기량이 꽃피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감독은 고교야구는 프로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당장의 승부를 위해 어린 선수들을 혹사시키기보다는 선수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기를 살려주는 데 훈련의 중점을 둔다고 말한다. 또한 유니폼을 벗으면 명문 경북고 학생임을 잊지 않도록 당부한다.
오늘도 경북고 운동장에서는 '제2의 이승엽'을 꿈꾸는 새싹들이 자라고 있다.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서영준(3년·투수)과 성진원(3년·포수)의 배터리, 2학년이지만 벌써부터 프로팀 스카우트의 표적이 되고 있는 만능 유격수 오상준 등이 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