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자유
아스라이 떠오르는 사춘기 시절, 현실이야 어떻든 현란한 오색 꿈으로 풍선처럼 팽창되었던 시절,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도 가슴이 콩닥거리고, 부끄러운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쿵쿵거리는 가슴 때문에 사람을 대할 때마다 긴장되고 불편했다.
거기에다 얼굴까지 화끈거리는 열기로 달아오른다. 원래 창백한 편이라서 겉으로 눈에 띄게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양 볼이 내 살이 아니라 불덩이로 달려 있는 느낌이었다.
어른들이 한창 피느라 그런 거라면서 ‘참 좋은 때’ 라는 말들을 하실 때면 ‘좋은 일도 없는데 좋은 때는 무슨, 차라리 좋은 때가 아니라도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쫑알거리며 건방을 떨던 시절에는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쉽게 흥분되고, 설레이며 신이 났다.
구름 한 조각도, 노래 한 소절에도, 거리의 인파에도 설레이며 낭만과 향기를 느끼고, 차 한 잔만으로도 아름다운 언어들이 시가 되어 나왔다.
그것은 속에서 차올라 뿜어져 나오는 생명의 기운이었다. 그 기운을 뭔가에 열중하며 소모시킬 수 있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울하고 슬퍼서 견디지 못하던 시절, 나에게 젊음은 그렇게 열기로 왔다.
세월에 속도가 붙어 어느새 몇십 년이 지난 지금, 내 몸에서 다시 열(熱)이 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때와 똑같은 열이 아니라 온몸에 기운이 빠지면서 집중력이 흐려지고, 진땀이 나게 하는 열이다.
같은 태양이어도 떠오르는 태양과 지는 태양이 다르듯이 피어오르는 열과 지는 열은 다르다. 자다가도 마치 열병을 앓는 사람처럼 숨이 막히는 열기로 이불을 제키고 열숨을 헉헉거려야 했다. 간헐적으로 치솟는 열은 강단에서 설교하는 중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가 없다. 그럴 때면 눈치채는 일이 없도록 약간의 몸살 기운인 양 얼버무려야 하는 고독을 느낀다. 젊음이 사그라지는 과정이 이렇게 힘들고 불쾌한 것인 줄 몰랐다.
젊음을 주체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생각으로 정리되고 익기도 전에 가슴이 먼저 더워지고, 봄날 바닷바람 같은 나부낌으로, 설레임과 일렁임으로 흔들렸던 불안정한 시절, 갈등과 번민으로 시달리던 시절, 가슴앓이를 하던 아프디 아팠던 시절, 그리하여 이 혼탁하고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이 가라앉으면 더 소신껏 영적인 삶을 살아낼 것 같았던 시절, 그래서 노도(怒濤)와 같은 젊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던 시절, 이 젊음만 지나가면 나라는 존재가 보석처럼 더욱 투명하게 반짝일 줄만 알았다. 그랬던 젊음이 이제 가고 있다.
젊음이 열로 시작되어서 열로 가는 것처럼 남녀의 사랑도 계절로 표현한 노래가 있다.
‘♬....봄날에는 꽃 안개 아름다운 꿈속에서 처음 그대를 만났네. 샘물처럼 솟는 그리움 오색의 무지개 되어 드높은 하늘을 물들이면서 사랑은 싹텄네. 아지랑이 속에 아롱젖은 먼 산을 보며 뜨거웠던 마음. 여름 시냇가 녹음 속에서 반짝이던 그 눈동자여, 낙엽이 흩날리는 눈물 어린 바람 속에 나를 남기고 떠나야 하는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
피어오르는 열기와 삭아져 가는 열기는 느낌이 다르다. 봄과 가을의 기온이 비슷하다고 해서 춘추복을 마련해서 입기도 하지만 그 옷을 둘로 구분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다른 빛깔일 것이다.
바울은 인생의 가을에서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물기 오르는 생명의 계절인 봄에 비해서 가을은 메마르고 삭막하지만, 가을하늘과 물은 얼마나 투명하고 맑은가.
어떤 것이 더 좋고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열기로 생명의 계절은 피어오르지만 내 몸에선 젊음의 열기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패하는 겉 사람에 비해 날로 새로워지는 속사람을 느낄 수 있었던 바울은 세상에서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진정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가온에세이≫
- 2003. 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