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 다녀 왔습니다. 지리산 최고의 비경이라는 칠선 계곡이 10여년의 휴식년제 끝에 올해와 내년 5,6월과 9,10월에 개방을 한다고 해서 오래 꿈꾸어 왔던 칠선 계곡을 탐방하고자 연휴에 어렵사리 팀을 모았습니다. 나도 원래는 연휴에 다른 계획이 있었으나 변경되는 바람에 급히 팀을 모았지요. 그래서 승용차 두 대, 8명의 팀을 구성하였습니다. 국립공원 지리산 홈피에는 칠선 계곡은 부분 개방하는데 1회 40명을 인터넷으로 신청받아 일주일에, 올라가기 2회, 내려오기 2회로 공지하고 올라가기 8시간, 내려오기 7시간으로 장터목 산장 등에 예약을 전제로 하고 있었습니다. 15일 전부터 예약을 받는다는데 나는 어차피 신청이 끝났을 거라고 예측하고 그냥 한번 가보려고 하였습니다. 재작년 천왕봉에 올랐을 때 천왕봉 바로 밑 칠선계곡 입구에 아무도 없었고 그 때는 휴식년제 구간이라 아쉽게 그냥 내려 왔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막상 날을 잡고 보니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무척 험하다는데 무사히 갈 수 있을까. 등반대장님은 추성리에서 올라 가기를 원하셨지만 나는 시간도 더 걸리고 워낙 힘이 들 것 같아 내려오자고 하였습니다. 그 분은 오랜 휴식년제 끝이라 길이 많이 없어졌을 것이어서 올라가기가 길 찾기는 좋을 거라는 의견이셨지요. 그래도 하여튼 체력이 문제라서 내려가기로 하고 천왕봉을 오르기는 최단코스가 백무동이니 추성리에서 숙박하지 않고 백무동에서 자기로 하였습니다. 백무동이 숙박시설도 많고 좋을 것이므로. 1단은 오후 2시 분당에서 출발하기로 합니다. 걱정이 되어서 오전에 2시간 쯤 집옆의 불곡산을 연습 등반합니다. 2시 약속 장소에 조금 늦게 도착한 분이 있어서 2시 30에 출발합니다. 경부 고속도로가 많이 막힌다고 하여 중부 고속도로로 가는데 진입하기가지 막히고 시간 걸리고 중부 역시 어찌나 막히던지. 연휴의 교통 사정을 너무 만만히 본 것 같습니다. 5,6시에는 백무동에 도착하려니 했는데 웬걸 그 시간에 겨우 오창 휴게소에 도착하였습니다. 대전 판암 IC를 지나서야 막힌 길이 뚫립니다. 함양에서 88도로로, 지리산 IC를 나와 마천 백무동에 도착하니 밤 8시30분입니다. 2단은 아마도 11시도 넘어야 도착할 것 같습니다. 숙소를 알아보니 예약도 없이 온 탓에 빈 방이 없습니다. 예약이 중요합니다. 다행이 예약이 취소된 20명이 자고도 남을 커다란 방이 하나 비었답니다. 넓은 방위에는 2층에 다시 방 두개가 있는 곳입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식당 주인에게 묻습니다. 추성리에서 칠선계곡으로 천왕봉을 갈 수 있는가. 주인은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대답을 합니다. 10여년 통제를 하니 추성리 주민들이 강력히 항의하여 올해 일단 개방을 하는데 한번에 40명씩 일주일에 두번을 허용한다고. 왜 그곳으로 가는가 여기 백무동으로 오르면 안전한데. 한신계곡도 마지막에 가파르지만 칠선 계곡은 그에 비할 바 아니다. 엄청 험하다. 더 겁만 납니다. 일단 밥 먹고 조심스런 약간의 반주 후 일단 잠을 자기로 합니다. 그러면서 내내 걱정이 됩니다. 11시간 내지 12시간의 산행을 감당할 수 있을까? 비록 작년에 선자령 백두 대간 코스를 탄 적은 있지만 그때도 9시간 정도였는데. 길이 고속도로였는데. 이곳은 10여년 출입 통제 지역인데. 위험해서 통제했던 지역인데. 그러면서 마음 속으로 생각을 고쳐 먹습니다. 안되겠다. 일행보고 칠선골로 하산하라고 하고 나는 그냥 백무동으로 내려와야겠다고. 그러고 나니 맘이 편해져 잠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용기의 문제입니다. 몸은 그에 따르는 것이지요. 마음이 약해지니 새로운 도전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미리 겁부터 내는 셈이지요. 그러니 시도를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보고 싶은 여러 산들을 어떻게 하나.
3시에 잠이 깹니다. 아무리 뒤척여도 다시 잠들지 못하고 4시에 기상하여 일행들과 4시 30분에 아침을 먹습니다. 그리고 도시락을 준비하여 5시 15분 출발합니다. 이미 날이 밝아오고 등산객들이 많이 오르고 있습니다. 장터목까지 넉넉잡고 4시간. 지도에는 4시간,또는 3시간 30분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부지런히 걷습니다. 생각보다 걸을 만하다고 느껴집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일행의 후미가 됩니다. 하동바위에 도착하여 잠시 숨을 고릅니다. 45분 걸렸습니다. 이어서 참샘. 도중에 인천에서 왔다는 아주 호탕하게 이야기 하는 아주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오릅니다. 참샘까지 1시간 15분. 지도에는 1시간 30분으로 표시되어 있는 곳입니다. 다시 올라 능선. 동아마라톤 대회에서 풀코스를 2시간 38분에 뛰었다는 일행 중 한분은 이곳에서 뛰어 올라갑니다. 고도를 높이면서 나뭇잎이 점점 작아집니다. 능선위로는 이제 막 잎이 피어납니다. 멀리 세석 쪽 능선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들립니다. 바람 소리입니다. 이내 능선에 세찬 바람이 붑니다. 작년 노고단에서의 그 세찬 바람, 그리고 지난 겨울 소백산의 그 매섭던 칼바람이 생각 납니다. 바람은 거세지만 그렇게 차가운 바람은 아닙니다. 장터목 산장이 보이는 제석봉 아래,7시 50분 쯤 도착합니다. 재작년 이곳에서 나무뿌리에 미끄러지고 돌부리에 걸려 넉장거리로 넘어져 크게 위험했던 바로 그곳입니다. 드디어 장터목. 8시 10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3시간만에 올라온 것입니다. 빨리 올라온 것이지만 일행 중 맨 뒤에 왔습니다. 언제나 선두였었는데 어느새 이제는 도저히 선두를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이내 제석봉을 오릅니다. 그리고 바람을 피할 만한 곳을 찾아 간식을 먹습니다. 고사목지대를 지나는데 고사목이 이제는 많이 눕혀져 있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통천문을 지납니다. 통천문 안쪽엔 아직도 두꺼운 얼음이 남아 있습니다. 드디어 천왕봉 턱 밑입니다. 짐작에 칠선골 입구로 보이는 곳으로 가 봅니다. 조금 더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일반 등산로를 조금 벗어난 곳으로 올라가며 올려다 보니 공단 직원 복장이 얼핏 보입니다. 다시 등산로로 돌아와 올라보니 역시 칠선골 입구를 공단 직원이 지키고 있습니다. 한참을 이야기 나눠보니 역시 40명씩 일주일에 두 번씩이랍니다. 그리고 곳곳에 지키고 있으므로 갈 생각을 말랍니다. 참 아쉬운 생각 한편으로 슬그머니 안도의 한숨이 스며드는 것은 어인 일일까요.
드디어 천왕봉입니다. 몇 번째일까. 한 열 번 되나. 멀리 반야봉과 노고단, 만복대, 왕시리봉, 삼도봉, 명선봉, 영신봉, 촛대봉, 연하봉, 세석. 지리산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다시 반대편으로 중봉, 하봉, 그리고 치밭목, 대원사까지. 바람불고 구름은 끼었어도 조망은 멀리까지 트였습니다. 매번 여름에 왔었기에 구름과 안개에 가리기 일쑤였는데 이번에는 봄철이라 조망이 좋습니다. 잠시 증명 사진찍고 (차례를 기다릴 때 지팡이 들이 밀고 순서를 차지하여) 잠시 쉬며 진행 방향을 의논합니다. 칠선골이 못내 아쉬운 한분은 치밭목으로 해서 대원사로 가자고도합니다만 일단 장터목으로 하산합니다. 전에 정상에서 한방울의 이슬이 못내 아쉬웠던 기억이 나서 준비해간 조그만 양주가 하산길의 다리를 아프게도 합니다. 장터목에 내려오니 사정상 쳐져있던 일행 하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반가웠습니다. 그 분은 그냥 백무동으로 하산한다고 하고 우리는 세석으로 향합니다. 나도 힘들지만 세석으로 나설 수 밖에 없습니다. 백무동 출발 다섯시간입니다. 여기서 세석까지 두시간. 힘들게 발걸음을 떼어 연하봉을 지나고 다시 사진 찍기 좋은 전망 봉우리를 지나 다시 이름 없는 봉우리. 그리고 그 밑에서 일행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12시 40여분. 그곳에서 쉬면서 도시락을 꺼냅니다. 식당에서 싸준 도시락이 그런대로 밥이며 반찬이 괜찮습니다. 김밥보다 훨씬 좋습니다. 점심을 먹고 이내 세석으로. 눈앞에 세석을 두고 촛대봉에 올라 섭니다. 세석평전에는 이제 막 진달래들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아마 다음 주 쯤 절정일 것 같습니다. 사진을 찍고 하산길. 나의 착각으로 하산길을 한번 헤매고 나서 백무동 하산길로 접어듭니다. 한신 계곡입니다. 전에는 한신계곡으로 올라 백무동으로 하산했는데 이번에는 역입니다. 생각해보니 세석에서 천왕봉 쪽으로만 올랐었는데 세석으로 오기는 처음인 것 같고 색다른 정취가 있습니다. 한신계곡 하산로 초입은 급경사입니다. 그리고 재작년 올라 왔을 때보다 등산로 정비를 많이 해놓았는데 대부분 돌계단입니다. 얼마를 헐떡거리고 내려오는데 일행이 쉬고 있습니다. 털썩 앉아 이정표를 보니 700미터 내려 왔습니다. 6.5Km인데. 40분 왔습니다.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다시 하산. 일행들은 앞으로 씽씽가는데 나는 엉금엉금입니다. 도저히 전처럼 속도를 붙일 수가 없습니다. 2KM지점부터 계곡물이 나타납니다. 점점 수량이 많아지고 곳곳에 소와 담이 펼쳐집니다. 비경의 지리산 계곡미를 유감없이 보여 줍니다. 정상주변엔 잎이 피기 시작하고 있으나 이제 그야말로 연두빛의 어린 잎들이 싱그러움을 더해줍니다. 한신폭포, 5층폭포, 가네소. 암반위의 맑은 계류와 시퍼런 담. 계곡을 이쪽 저쪽 넘나들며 내려옵니다. 5층폭포 전망대 만들어 놓은 곳에서 쉬고 다시 가네소 지나 계곡물에 발을 한번 담그고 백무동까지 내려오니 3시 10분. 한신계곡 하산하는데 3시간. 아침 5시 15분 출발하여 점심시간 포함 총 11시간의 지리산 산행을 마칩니다. 하산하고 조금 있으니 빗방울이 듣고 남원으로 오는 길엔 제법 굵은 빗방울이우리 차창을 때립니다. 일찍 산행을 시작한 것이 주효하였습니다. 남원은 춘향제 기간입니다. 추어탕으로 저녁 먹고 (관광객이 많이 가는 그 큰집 말고 현지에서 알 사람은 다 아는 현추어탕이란 유명한 집입니다.) 올라오는데 차가 어찌나 막히던지. 집에오니 새벽 1시 40분입니다. 지리산 산행을 모처럼 하였더니 웬만해서는 괜찮던 근육 몸살이 일어 다음날 불곡산 두어시간 산행으로 정리 산행까지 마쳤습니다.
이 싱그런 5월에 지리산. 가슴 벅찬 산행이었습니다. 칠선계곡은 또 다음을 기약합니다.
첫댓글 유익한 산행하였네요. 좋은 추억이 되길 바랍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짝짝짝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