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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5일 (임진) | ||||
몽고 서계(蒙古書契)에 이르기를,
“조선 국왕(朝鮮國王)께 아룁니다. 건주우위 도독(建州右衛都督) 사오장(沙吾章)이 황공하게도 글로 주달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하면 전에는 정직하게 해마다 황제의 명령에 복종하여 시행하였고, 지금 아들 사오(沙吾)가 우리 위(衛)를 거느리고 황제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으나, 사랑과 구휼(救恤)이 들어오지 아니하므로 또 우리 사오가 만인(蠻人)을 거느리고 같이 싸워서 도적이 비로소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당신네 변경의 사람이 이쪽에 와서 지금 여기에 있으므로, 마아을두(馬阿乙豆)를 만포현성(滿浦縣城)에 보내어 글로 주달하여 아무쪼록 조선 국왕의 자비(慈悲)스러운 마음을 바랍니다. 이는 황제의 성지(聖旨)에도 ‘알았다’ 하셨습니다. 정덕(正德) 13년”【이상은 몽고 서계(書契)의 사연인데, 몽고학(蒙古學)이 번역하여 아뢴 것이다.】 하였는데, 병조에 계하(啓下)하였다. 【원전】 15 집 475 면 【분류】 *외교-중앙아(中央亞)
놀라고덜 계시져...? 저도 이 글을 발견하고 잠을 못 이뤘답니다.
건주여진 사오장이... 조선왕에게 보낸 협박편지입니다. 당신네가 우리에게 구휼을 않 베풀어 줬으니... 내 아들이 만인(蠻人)들을 데려와 같이 난동을 부려 당신네 국경 백성들을 인질로 잡았단 글입니다. 어설픈 몽골어로 써서...한자로 옮기기도 애매했던 티가 납니다. 몽골어에 서투른 글이였단 거져...
그래...
얼핏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글이지만...
횡간을 예리허게 보면... 유대 메이슨들이 숨겨놓다...깜빡하고 실수해 빠트린...놀라운 역사의 진실이 들어납니다.
자, 뭐냐...
건주여진 추장 사오장은...몽골어로 협박편지를 보냈습니다. 고로, 건주여진은 몽골어를 쓰는 몽골족이니...여진이 곧, 몽골이란 얘기입니다. 따지지들 마시고 계속 들으십시요.
또한, 건주위 추장 사오장은...자기아들이...만인(蠻人)들을 데려와 날리를 치고 조선 국경인들을 잡아갔다니... 건주여진과 몽골족은...그대로 만인(蠻人)들이란 증거며...만인(蠻人)은...하멜의 화란인들이기도 하니...
건주여진과 몽골은 화란(네덜란드)인들이란 얘기며... 그러니... 곧, 징기스칸은 네덜란드 대칸이란 얘기입니다. 말 끊지들 마시고 계속 들어나 보십시오...
더 중요한건... 하멜표류기를 잘 보면... 하멜일행이 탐라도에 표류하고... 탐라도사람 중 일본말 좀 아는 사람이...아...따노...기리스단(크리스찬)...데스...까...? 라는 아주 아주 생 초보적인 일본어 질문을 했더니... 말 안통해 해적으로 몰려 다 죽는줄만 알았던 화란애들이...화색이 확 돌아서... 야~! 야~!....즉,, 예스~! 예스~!..라고 응답했다니...
화란 애들은...즉, 역사가 다 아는 남만(南蠻)애들은... 일본어가 유창한 왜놈들이었단 빼도박도 못할 증거인 겁니다...!!!
저의 논리가... 정말 정연하져...?
탄력받은 김에 더 나갑니다.
고로..징기스칸은...누루하치는... 네덜란드대칸이자...바로 일본천황였단 얘기가 성립돼는 거입니다...!!!
당연,일부는...현 중궈공산당의 부역자들로 의심돼는...중원조선설 세력들에게서... 이런 테클들이 들어올 겁니다.
그럼, 역사기록에 나오는...빤스도 안입고 다니던 왜(倭)는 뭐냐고...? 유럽애들도 중세부터나 타이즈만 입다 바지입었지...바지 대충 입었긴 마찬가지였다고 대답하렵니다.
그럼,역사 기록화나 수 많은 역사기록엔... 난쟁이 왜는 난쟁이족속으로 나오고...그래 왜(倭)라고 했는데 어떻게 설명할 거냐...? 사람 키란 건...괴기등의 고단백을 얼마나 잘 먹었냐 못 먹냐로 판가름 나니.... 시대와 지역에 따라 왜(여진몽골 네덜란드인)족들도...가끔은... 난쟁이같이 변했을 수도 있다 대답하지여...
그럼,결정적으로... 화란 애들에게...여기(탐라도)는 어디냐 허니...여긴 오질도로 알고 있는데...?..했고... 중국은 뭐냐 했더니...대명(大明)...대방으로 아는데...?..했고... 세계의 서북방향은 뭐냐 했더니...달단(타타르)인데...했고... 여기(탐라)에서 정동쪽은 뭐냐 했더니...일본이고...낭가사기(나가사끼)이고...우리가 거기가다 망가진 건데...했답니다.
밑에 원전글에 명확한 증거가 나옵니다.
그럼, 만(蠻)이란... 서북쪽 대서양 해양족(蠻)들이 ...호주나 태평양제도... 인도남부를 점령했던걸 남만(南蠻)이라 했다는건 명확한데... 동쪽의 조선에서도 정동쪽에 일본이 있다니... 그럼, 유라시아를 빙 둘러 다 만인(蠻人)들의 나라요... 만(蠻)은 곳 일본이요 왜(倭)라니... 일본(倭)는 ...대서양 북단부터...아프리카 ...호주... 인도양... 태평양...극동의 일본열도까지를 다 다스리던... 세계 대 제국의 천손족이란 말도 돼네여...?..라고 물으신다면...
이리 대답하렵니다.
일본 건주여진 몽골 대칸 천황인 ...사오장이...이랬지 않습니까...협박편지로여... 조선국왕께 아뢴다고여...존대...존댓말을 했습니다...!!!
고로...유라시아 해안을 다 정복한... 일본 건주여진 화란 몽골대제국은... 그 가운데 지중해,흑해의 대륙조선 중조를 받드는 머슴들였단 강력한 증거니...우린 천손족이고...
우리의 조선 중종대왕은... 조선 징기스 중종대칸 임페리얼 천황(朝鮮 成吉思汗 中宗大干 皇帝 天皇)...이신 이치입니다!!!
그리고 중국(中國)이란... 시대에 따라 전통적인 천자의 지역과 권위를 차지한 강국의 황도를 이른단 설보단... 역사내내...구한말까지 오로지 조선만의 경기도 황제도성을 말하는 것으로... 지중해& 흑해지역에서 꼽자면...
자..보자....어디가 적당할까...
헝가리는 아직 좀 미개하니...흉노라고허고 패스...러시아(아라사)는 달단이고 몽고라 하고... 그 서쪽인 사한국은 대서양 넘어 아메리카에 있었다 하고...그게 아파치족들이라 하고... 불가리는 부여정도로 허고 ...
고구려와 형제라 우기는 투르크(터키)에 아아랏산이 있지...거길 무조건 백두산으로 하고... 근데 터키애들은 좀 까만게 거슬리니...백두산 근처에 있는 돌궐,말갈, 여진으로 하고... 패스...
보자... 파리..멋지긴 헌데... 프랑스...원숭이 골을 파먹고..말도 좀 시끄럽고...키들도 좀 작어...그래 패스...
독일... 여자들이 좀 딱딱허게 생겼으니 좀 꺼림직해서...한양 기녀와 궁궐 궁녀로는 못마땅허니 패스...
스페인.., 지난 월드컵때 편파판정 어쩌구 꼬장부리고 했으니...대조선의 중조인 중국인들은 아닐테니 패스...
이집트... 아...스핑크스 피라미드...이게 조선 중조의 황릉이면 제격인데...역시 애들이 너무 까맣고 경박하니... 그저 조선황제들의 무덤터라하고...
음...보자... 로마...로마로 허자... 박혁거세는 헤라클레스로 하고...시대는 좀 않 맞지만...알렉산더를 광개토대왕이라 하자... 온조,,?,,,씨저 쯤으로 할까...?
올림프스산은...단군 제천단이고... 파르테논 신전은 조선천자의 천단(天壇)일 수 있고... 원형경기장은...신라 화랑들의 무술시범장소로 제격이고...아니 백제 싸울아비(사무리이)들의 격투장으로 할까...? 제우스신전은...말 그대로 청구국 치우씨의 신전이니...딱 들어 맞고... 이태리 여자들...괜 찮다...쭉쭉빵빵 조선 궁녀들론...쫌 시끄러워 그러지 정렬적이다... 이순신장군도 붉은수염였다니...무조건 눈도 파랗고...코도 뺑코고...완벽한 닷윗같은 하얀 백인인 거니... 머릿카락색깔 같은건 따질것 없다.
근데 지중해 조선의 후예여야할 내 얼굴은 왜 이러지...? 메슨들이 백인인거 감추려 마법을 걸은 걸거여...몇 대만 거치면 하얀 백인으로 거듭날거여...그럼...
그래. 여깁니다... 이태리 로마를 단군조선부터 구한말까지도 변함없었던 조선의 황도인 중국(中國)으로...결정했습니다.
파미르 이동의 중원....? 여자들도 상대적으로 좀 못생기고...황사불고... 현재는 냄세도 좀 나고...사람 살데 못 돼니...뭔 오랑케가 살았는지 알 바 아닙니다.
그 더 동쪽의 한반도...? 뭔 괴물들이 살았는지 알 바 못 됍니다.
섭섭하면... 까짓거...그럼... 혹, 극동으로 이동한 일본 여진몽골 네덜란드 대칸 천황의 황인종 군대가 점령한 극동 속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현 열도일본도 그럴 거고여...그걸 메이슨들이 원 조선이라 속이는 겁니다. 역사 찾아봐야 중원까지밖엔 조선이 없었다 하려고 맨 극동으로 빼놓기 위해서...
쭉쭉빵빵 여인들...멋진 석조건물들... 따스한 지중해의 바람...이탈리아...로마...거기로 결정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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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제 정신상태가 어때 보입니까...?
너무 엄청나다고여...?
지중해조선 연구자님들에 비하면... 아직 한 참 모지랍니다.
밑에 하멜표류기 당대의 또다른 조선실록을 보면서... 저의 위와 같은식 대입이 과연 정상인지 여러분이 판정해 주십시오.
그냥 못본 척 하고 넘어가려도... 뭔 기본적인 생태나 환경까진 몰라도... 동서남북 방위라도 대충 맞아야... 조선이 여기다 저기다...정상적이고 정중한 논박을 하지요...
너무 어처구니 없어 글을 썼으니...비판을 위한 비판이라고만 하지들 마시고.. 왜 이런 유치한 글을 써야만 했는지도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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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평(雜評) | ||||
이아정(李雅亭)의 비왜론(備倭論)에 대한 평(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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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중간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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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정(雅亭)이 이르기를,
앞서 길리시단(吉利施端)이라 하는 자가 만박(蠻舶)을 따라 일본 도원(島原)에 와 정박하고 야소교(耶蘇敎)로 백성을 현혹시켜, 하늘에 기도하고 일을 전폐하며 살기를 싫어하고 죽는 것을 기뻐하니, 관백(關白)인 가萑(家康)이 이를 잡아 죽였다. 이때 소서행장(小西行長)도 사건에 연좌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인조(仁祖) 16년(1638)에 도원(島原)에 귀양가 있던 행장(行長)의 가신(家臣) 다섯 사람이 다시 사교(邪敎)로 선동하였는데 그 도당(徒黨)이 3만 6천 명에 이르렀다. 그들이 비후주 태수(肥後州 太守)를 습격하여 죽이자 관백(關白)이 군사를 동원하여 섬멸하고 나서 우리나라에 청하기를 ‘그 남은 무리로서 바다 연변에 오가는 자들을 염탐하여 알려 달라.’고 하였다.
이때에 제주(濟州) 사람이 표류하는 사람을 보고 시험삼아 왜어(倭語)로 길리시단(吉利施 端)이라 부르니 표류인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조정(朝廷)에서는 박연(朴延)을 보내 조사해 오게 하였다. 박연 역시 표류해온 사람으로서 훈국(訓局)에 예속되어 있으니, 본명이 호탄 만(胡呑萬)이었던 것을 박연이라 개칭한 자이다. 박연이 표류인을 보고 말을 건네면서 눈 물을 흘리니 표류인들이 모두 귀속하기를 원하였다. 그리하여 드디어 경외(京外)의 여러 군 영(軍營)에 부속시켰는데, 그 중에는 성력(星曆)을 잘 아는 자와 조총과 대포(大礮)를 잘 만 드는 자들이 있었다.
14년간 전라 좌수영(全羅左水營)에 역류해 두었던 여덟 사람이 몰래 고깃배를 타고 도망하여 장기(長崎)로 갔다. 대마도주(對馬島主)가 서계(書契)하기를 ‘아란타(阿蘭陀)는 바로 일본의 속군(屬郡)인데, 지금 귀국에 머물러 있던 여덟 사람이 장기로 도망왔다.’ 하고, 또 말하기를 ‘그 나머지 귀국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필시 야소교(耶蘇敎)를 학습하는 자들일 것이니 집요한 말로 공갈하여 권현당(權現堂) 향화(香火)의 자료로 삼게 보내주십시오.’ 하였다. 우리나라는 비로소 표류인이 아란타 사람인 줄 알기는 했으나 그들이 일본의 속군(屬郡)이 아니라는 것은 깊이 분변하지 못했다. 일본은 교활하고 사나운 나라로서 우리나라의 강한 이웃이 되는데, 하이(蝦夷)를 능멸하고 홍모(紅毛)를 농락하여 오직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였으니 호랑이에게 날개를 붙여 준 셈이다. 천하의 사변은 무궁하고 환란은 소홀히 한 데에서 생기는 것이니 평상시 무사할 때에 헤아리지 않을 수 없으며 사방 오랑캐의 정상도 역시 멀리 떨어져 있다 하여 소홀히 여길 수 없다.”
하였다. 도원(島原)의 사실은 《통문관지(通文館志)》에 보인다. 관백(關白)의 염병설(染病說) 하문(下文)에 보인다. 과 화산(火山)이 갑자기 일어난다는 말은 구본(舊本)에 말하였다. 기괴 황홀하고 변사 다단하여 그 당시 우리나라 자문(咨文)에도 역시 깊이 믿을 수 없다고 말하였다. 대개 섬멸했다는 것은 과장한 말이며, 해외로 도망치는 도당(徒黨)들에 대하여 왜인들은 그들이 우리나라 지경에 이르러 올 것을 염려하고 이처럼 위협적인 말을 하여 잡아 보내주도록 요청한 것이다. 외사(外史)의 기록을 보아도 오직 26인이 같은 날에 목숨을 잃었다고 되어 있을 뿐, 군사를 일으켜 접전한 일은 없다. 왜인의 말은 이처럼 과장되어 준신(準信)할 수 없다.
인조(仁祖) 16년(1638) 무인에 마도왜(馬島倭)가 와서 말하기를 ‘남만(南蠻) 사람 길리시단 (吉利施端)이 비전(肥前)ㆍ비후(肥後)의 경계인 도원(島原)지방에 와 있으면서 하늘에 기도하고 백성을 현혹시키는데, 그 무리가 30여 만 명이나 되어 세력이 몹시 성대하였다. 금년 정월에 강호(江戶)로부터 집정(執政) 송평이두수(松平伊豆守)로 총독(總督)을 삼고, 축전수(筑前守)로 부장(副將)을 삼고, 세천월중수(細川越中守)로 차장(次將)을 삼고, 살마수(薩摩守)로 또 그의 차장을 삼아 소탕하게 하였는데, 그 군사 80여 만 명이 서로 버티고 결판을 내지 못하다가, 2월에 비전수(肥前守)가 선봉이 되어 진격함으로써 남김없이 소탕하였다.’고 하였다. 선전관(宣傳官) 유시성(柳時成)을 보내 병부(兵部)에 보고하였다. 병부(兵部)에 보고한 그 대략에 이르기를 ‘차왜(差倭)의 말에 《도원(島原)의 적이 패하던 날 사랑(四郞)이란 자가 있었는데, 나이 겨우 16세로서 신통한 술법을 부려 변환하여 그 존망(存亡)을 알 수 없다.》하고, 또 말하기를 《관백(關白)의 염병(染病)이 심하여 실직(失職)한 무리들이 사랑(四郞)의 잔당과 뭉쳐 난을 일으키므로 관백이 송평이두수를 명하여 남김없이 소탕하였다.》고 한다. 생략함. 그들이 이르는 도원(島原)에 발생한 변(變)에 대해서도 그 허실(虛實)이 자세하지 않고, 사랑(四郞)의 변환에 대해서도 그 말이 허황하다. 그리고 또 도주(島主)가 강호(江戶)로 가는 것과 하개(賀价)를 기필코 거절하는 것은 무슨 의도에서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 인조(仁祖) 22년(1644) 갑신에 보내온 도추(島酉) 평의성(平義成)의 서계(書契)에 이르기를 ‘남만(南蠻)에 야소종문(耶蘇宗文)이 있어 이암보도(里菴甫島)에 출몰하는데, 이암보도는 중원(中原)과 조선 사이에 있다. 종문(宗文)은 바로 길리시단(吉利施端)의 잔당이니, 혹시라도 표류하여 이르거든 하나도 놓치지 말고 체포하기 바란다.’ 하였다. 곧바로 이 뜻을 가지고 병부(兵部)에 보고하였다.
○ 23년(1645) 을유에 도추(島酉)의 글에 이르기를 ‘황당선(荒唐船) 한 척이 장기도(長崎島)에 정박하였는데, 자신들의 말이 《천천국(天川國)이 남만(南蠻)과 섬라(暹羅) 사이에 있는데 종문(宗文)과 추장(酉長)도 있다. 이들은 장차 당선(唐船)을 만들어 조선의 해로(海路)를 통해 일본으로 들어오려고 한다.》고 하였으니, 각 진(鎭)으로 하여금 엄히 조사해 체포하도록 하기 바란다.’ 하였다. 차왜(差倭)가 또 말하기를 ‘작은 배를 빌려 타고 친히 연해(沿海) 를 살펴보겠다.’ 하고, 또 말하기를 ‘지도(地圖)를 주어 참고로 삼게 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수사(水使)에게 청하여 말하기를 ‘모든 포구(浦口)를 탐지하여 이국선(異國船)의 유무(有無)를 확인해 달라.’고 하였으니, 이 전후 네 차례의 서계가 한결같이 이런 내용이었다.
○ 27년(1649) 기축에 왜관(倭館)에 머물고 있는 왜인들이 밀서(密書)를 가지고 와 역관(譯官)에게 보이는데 그 말씨가 몹시 불공스러웠다. 이른바 야소종문(耶蘇宗文)은 곧 왜인의 반적(叛賊)인데, 한인(漢人)의 상선(商船)에 자취를 감추고 연해에 출몰하므로 왜인들이 몹시 걱정거리로 삼았다. 일찍이 본국에 청해오기를 ‘만약에 상선이 표류해 오거든 즉시 체포하여 보내달라.’고 하였는데, 지금 표류해 온 배를 그들에게 알리지 않고 바로 상국(上國)에 알리므로 그 감정을 사는 것이 날로 깊어간다.
○ 상고하건대 논한 바가 모두 변사 교휼(變詐狡譎)하여 믿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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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무엇 때문에 위와 같은 글을 쓰셨을까? 물론 압니다.
해국도지를 보면, 명사를 인용하여, 和蘭(화란)인에 대해 : <其人深目、長鼻,須眉發皆赤 : 그 사람들의 눈은 움푹 들어가 있고, 코는 길며, 수염 눈썹 머리 모두 붉다. >고 했으며, <據呂宋島者,乃西洋之大呂宋,以其國名名此島 : 여송을 점렴한 자들은 서양의 대여송이었는데, 그 나라의 이름을 이 섬 이름으로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만인"이란 말이 등장하는 것이며, "만"이란 조선에서 남방의 무지한 자들을 일컫는 비하성 말입니다. <화란은 속칭 홍모번으로 서북 해중에 있으며, 서북 불랑기와 접해있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왜"라면 "인종학적으로 대사건이 됩니다.
제가 농이나 하려고만 쓴 글은 아니고여...
저 위에 인용한 구절여...여진몽골 징기스 중종대칸 네덜란드 천황...그 글여...
그건 인도양에 구라파인들이 나타나기 이전인데...서북여진들이 끌고온 오랑케들 이름을 만인(蠻人)이라 표기했단 점입니다.
후대에 실록을 다시 정리하면서 남만 서양인들 명칭을 서북 서양인들 명칭에다 가져다 붙인 걸까여...?
고종때에 남만이 곧 양키들임을 알았을땐...당연 서북 러시아 인종도 만(蠻)과 같은 종이라 하는건 당연한데...
남만지역에 양이들이 나타나기 이전부터 서북 양이들을 만(蠻)이라 했던 것이 머리가 아픕니다.
후대에 첨삭이나...오자일 수 있겟져...?
또 왕조실록에 등장하는 <耶耶>라는 말은 야소교를 말하는 것으로 천주교(기독교)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건주여진 추장이 조선에게 협박했다는 중종조의 기록을 보면, 조선이 반도가 아닌 대륙지방에 있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건주"라는 곳이 조선의 서쪽과 서북쪽사이의 달단과 인접한 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록에서는 명나라 중엽에 화란인들이 항해하여 중국의 동남양지방에 와서, 조규(갈라파 : 조선에게 조공하는 나라였음)의 항구에 거하여 살면서 이곳 저곳으로 항해하여 부두를 건설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그 후대는 '이들을 가리켜 만인이라고 했다는 것에 의아해 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저 실록의 날짜가...인도양에 양이들이 본격 출연하기 이전인게 문제란 겁니다.
솔직히 말하면, 역사를 공부한다거나 연구를 할 때, 단편적인 기록 몇 개를 가지고 "주장"한다거나 "확정"해 버리는 일은 오류를 스스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 전대의 여러 고증과 그 후대의 여러 고증이 될 수 있는 자료들을 섭렵한 후에, "주장이나 확정"도 결코 늦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감이고...반성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지금이나 통칭 蠻.夷.濊.貊등을 오랑케라 통칭하지...
예전엔 엄연히 서북 이민족의 고유명칭이 오랑케입니다.
오량합,알란,울란,올론...다 발음은 한 가지라 보는데...뜻은 현제 몽골어론 붉은(빨강)이란 뜻이나...
원 말은...불같이 밝다는 뜻이라 보이고...해같이 밝은 금속인 황금(알튼,알탄,알란)의 변음들일까 합니다.
몽골어의 ㅌ"과 ㄹ"은...항시 같이 복음으로 쓰이니...알탄도 맞고...알란도 맞는 이치이니...
거란도 맞고...글단도 맞는 겁니다...계단...키탄...끼당....도 한 가지인 겁니다.
해무님께서도 조선사를 애정있게 바라보고 있는 것, 잘 압니다.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것이, <위키백과> 편집은 누가 하고 있는 것입니까? "태조 이성계"를 "아기발도"라고 했다는 것은 "어느 곳의 원전이나 설명에도 없는 말입니다." 위키백과는 기존의 통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사실상의 반도사학과 맥을 같이 하며, 또 위키백과의 편집은 그 편집인의 의도와 항상 맞물려 있다는 점입니다.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시킨 영웅입니다. "왜"는 서양세력과 손을 잡고 자신들의 국력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왜"는 동양계이지 서양계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또 바로 조선과 함께 늘 살았다는 것입니다.
공민제도 몽골이름 바얀바타르,티무르(발도,태무진)입니다.
당대 젤 유행하던 바투(강철,영웅)이란 용어니...조상이 몽골 다루가치인 이성계 아명이 몽골명이 없었을 수 없습니다...아미르 벼슬이면...10중 하나 둘은...아기바타르.아기티무르가 나오던 땝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하난 동의하고...하난 동의 못하겠습니다.
아기(아자로 시작돼는 몽골이름 약칭)+ 발도(바타르=벌트=강철=영웅)이란 뜻 맞습니다...
마자로 시작하면 마기...이런 뜻입니다.
고로, 상대 장수들이 둘다 원나라 문화권였다면...당대 유행하던 몽골이름이나 직함이 아자로 시작하는 사람들이라면...
바투(바타르,발도)란 뒷 존칭이 한창 유행했으니...동명이인이 아주 흔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기에 현재도 그런식의 몽골 동명이인이름은 한동내도 샇여있는 이치입니다.
언어자체가 우리같이 분명치 않아 그럽니다.
바투(발도)가 왜 왜(倭)가 됍니까...?
왜장이 당대 유행하던 몽골식 이름을 썼던 것 뿐인걸...발도(바타르)란 몽골어 쓰면 다 왜장이면...
깊착크한국 바투칸도 왜장이겠네여...?
참 간편하십니다.
왜놈이 양키말 좋아서...오바마상이라 자칭했다고...오바마가 왜(倭)가 돼는 건가요...?
뭔 영어를 하시는지...?
그러고 보니...내가 해무님이 딱 원하시는 타이틀로 낚시를 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
잠깐 "蠻(오랑캐)"에 대해 고민하다가, 해국도지에서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왜 왕조실록에 "蠻人"이란 단어가 등장했는지를...........大西洋(歐 羅 巴 洲)<耶 馬 尼> 總 記〔耶 馬 尼 / 為 歐 羅 巴 洲 巨 國, 於 諸 蠻 中 最 強 : 야마니(耶馬尼)는, 구라파(歐羅巴)주의 큰 나라이며, 여러 만(蠻)중에서 가장 강하였다. >고 하였습니다. 해국도지의 구라파주에 있는 나라들을 기록한 곳에 "만인"이란 단어가 쾌 등장합니다. 특히 영국여왕의 남편 역시 "만인"이라고 했군요. 참고해 주세요.
왜는 동서남북에 다 있습니다
충격!! 건주여진과 몽고의 정체는...왜놈(倭奴)들이였다.
간의 기별도 안갑니다.또한,
실록도 보시면서,집중으로 실록 보세요.나중에 글쓴거 수정 할겁니다.
또한,너무 나아가시지말고 세종황제가 정말로 죽었는지?납치되어서 다시 언어를 만들었는지 열공하는게
평안도 사람들이 모셔갔지만여.
명조 실록을 보시고,상해 골동품 사서 비싸게 구입해서 보세요.
왜 명나라?서쪽의 바다는 없는걸까요?
사서는 있는데...
궐한님의 스타일은 이런 글이 딱입니다. 앞으로 솔직한 글쓰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