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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량촌 적벽장량 과 궈량 터널(Guoliang Tunnel) 해발고도1700m 태항산 깍아지는 절벽 위에 형성된 자연 부락이다.
애상인가(崖上人家)라는 마을을 지나면서 왼쪽을 내려다 보면 궈량촌의 참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마을을 대표하는 절벽 장랑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관경대가 서너 개 있습니다. 그 관경대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모두 달라서, 하나씩 서서 바라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위의 사진은 절벽 장랑으로 올라오는 길로 여기에 사는 사람의 굴곡진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직벽 절벽 위에 기둥처럼 우뚝 솟아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난간을 넘지 않도록 바랍니다' 라고 써 놓았는데... 난간을 넘으면 바로 천애 절벽인데 누가 감히 넘으려고 할까요?
붉은 색갈의 석영 홍암이 만든 절벽은 장관으로 날씨 좋은 날, 석양이 질 때 이 자리에 서서 붉은 절벽에 비치는 저녁 노을을 바라 본다면 누구나 가슴이 벅차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아쉽게도 뿌연 운무에 덮여버렸습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철에는 그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절벽 위에는 애상인가(崖上人家)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는데 저런 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조상 대대로 살아오는 이 마을 사람의 삶은 정말 위대합니다.
먼 산의 봉우리가 중첩해 보이고 가장 높은 태항산 위로 장밋빛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기라도 하면, 그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정녕 아름다울 것입니다.
중국에서 산다는 게 무슨 곡예(아크로바틱)입니까? 애상인가(崖上人家)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절벽 끝으로 갈라진 틈이 보이시죠? 그 위에는 관경대를 만들어 구경하는 사람의 심장이 멎을 지경입니다.
그래서 운대산 홍석협에서 본 것처럼 이곳도 붉은색의 석영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천지개벽한 곳이 무척 많습니다. 제법 이름난 석림이나 장가계 등도 옛날에는 바다였다가 천지 개벽해 지금은 육지가 되었다고 하지요.
장엄하고 경이로운 풍경이 있는 그곳에 바로 궈량촌이 있다네.. 돌로 지은 집 위로 한가롭고 평화로운 흰 구름이 피어오르고,, 감미로운 바람은 귓불을 간지럽히며 지나간다네.. 농부는 애상인가(崖上人家) 위에서 오래도록 사랑하는 사람과
저 멀리 조금전 우리가 올라오기 시작한 길이 보입니다. 오늘은 운무로 말미암아 제대로 된 풍경을 볼 수 없습니다.
흔히 중국의 그랜드 캐년이라 불리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태항산(太行山)은 많은 분이 아시는 곳으로 특히 한국 산악회에서 자주 트레킹을 오는 곳이기도 하지요.
아마도 신선이 떼거리로 만명이나 산다는 의미인가 본데 왜 그럴까요? 물론 산이 기가 막히게 좋으니까 모여 살겠지요.
위의 사진에서 보시듯 뱀처럼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홍암절벽을 뚫어 길을 내고 절벽장랑이라 부르는 터널을 통하여 한참 오르다 보면 절벽 위에 마을이 있어 그 마을을 궈량촌이라 부릅니다.
절벽 장랑이 만들어진 후부터는 신선들이 발을 끊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선이 놀던 곳에 인간이 와서 노니까 쪽 팔려서... 랍니다.
모두 맞는 말씀입니다. 그게 바로 이 마을의 모습이니까요.
이 마을은 돌밭이라 이렇게 돌로 무덤을 만들었는데 무덤 위에 하얀 종이를 덮은 이유는 하얀색이 죽은 혼령을 좋은 곳으로 인도한다고 믿기 때문이죠. 이렇게 지역에 따라 노는 귀신도 다르다는 게 무척 신기합니다.
같은 인간이면서도 죽은 후, 다른 모습에 잠시 생각해 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산속에 있느냐, 밭 귀퉁이에 있느냐 아니면 집안 가운데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결국, 잠시 숨을 쉬며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지 세월이 지나면 세상 어느 누구나 같아집니다. 죽고 나면 잘난 놈도 없고 못난 놈도 없습니다.
위에 보이는 나무는 이 마을에서 제법 오래된 나무입니다. 돌밭에서도 오래도록 잘 살아간다고 고류유풍(古柳遺風) 이란 이름을 이 나무에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서한(西漢) 말기, 후에 광무제가 된 유수가 왕망과의 어느 전투에서 패하고 줄행랑을 칠 때입니다.
하늘이 자신을 버렸다는 것을 알고 몰래 태항산 줄기를 따라 줄행랑을 치다가 우연히 이 버드나무 옆을 지나게 되었답니다.
이곳에는 버드나무가 많아 잎사귀가 무성한 버드나무 숲 속으로 몸을 숨기기도 좋았지만 이 산은 돌산이라 먹을 게 별로 없어 버드나무 잎을 따먹으며 겨우 목숨을 부지하게 된 것이지요.
다시 권력을 잡은 후 이곳에 있는 고류(古柳)인 버드나무에 대해
마땅히 그 때의 공을 생각해 나무에 딱히 해줄 게 없어 봉공류(奉公柳) 라는 멋진 이름을 하사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버드나무들도 점차 퇴색되어 갔지만 이 마을의 버드나무는 언제나 나뭇가지와 파란 잎은 한창 때처럼 태평성대를 노래하는 듯 하다고 합니다.
이곳 태항산에는 유방이 세운 한나라의 목줄을 끊고 신나라를 세운 왕망을 기리는 고개인 왕망령도 있고 유방의 먼 후손이라고 우기며 왕망의 시대를 끝장낸 유수를 기억하여 이름을 붙인 유수성도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절벽
무척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 전경
절벽위 궈량촌 마을,,
마치 한폭의 그림 같은 궈량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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