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기후위기로, 혹은 미세먼지로 이미 100만에서 400만 명이 죽었는데, 애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정한 장소, 특정한 사건에는 공감하지만 분산된 피해에는 무감각한 것이 자본주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코로나 19로 사망자수를 매일 보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 숫자가 천만이 되기까지는 무덤덤하게 뉴스로 즐길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기후위기를 반기는 사람들과 나라도 있다. 어리석다고? 그들의 생각은 반대다.
해운업자들은 북극의 빙하가 완전히 녹아내릴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북극해가 열리면 바렌츠 해의 러시아 무르만스크 항을 출발한 유조선이 캐나다 해안까지 가는데 일주일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경비절약은 말하는 것이 어리석을 정도다. 아랍에미레이트의 수도 아부다비에서 미국 텍사주까지 가는 거리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베네주엘라에서 일본으로 가는 유조선이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1만 2,000킬로미터를 단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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