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의 정체>
사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현재로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사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자료가 많지 않으므로 모르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사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태조 이성계가 어느 날 대신들에게 사리가 어떻게 해서 생기는가 하고 묻자 하륜이 대답했다.
“정신을 수련하면 정기가 생기고 정기가 쌓이면 사리가 생긴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다의 조개에도 보주가 있고 뱀에게도 명월주가 있으니 조개와 뱀이 무슨 도가 있어 그런 구슬이 생기겠습니까?”
당시 불교를 배척하는 국시를 의식하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태조는 신덕왕후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여 왕후의 원찰인 흥천사에 불사리를 모시고 명복을 빌었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했다.
조개의 몸 안에 모래알, 알, 기생충 같은 것이 들어가면, 진주층과 같은 물질인 진주질(眞珠質)로 이것을 둘러싼다. 이렇게 해서 생기는 것을 천연 진주라고 한다. 진주가 생기는 상세한 원인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았으나 진주질을 분비하는 외투막의 세포가 들어온 물질을 싸서 펄삭(Pearl sac)이라는 자루 모양의 조직을 만들어 둘레에 진주질을 분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인간의 몸에 생기는 사리를 진주가 생기는 것과 유사하다는 해석은 수많은 사리가 한 사람의 몸에서 생기는 것을 감안할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반면에 의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리를 몸의 신진대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종의 담석이나 결석으로 파악하고 있다.
인간의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은 대부분 유기물로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등 생명현상과 관여하는 물질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들 유기물질은 다비식과 같은 고온의 불길에서는 모두 연소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불길 속에서도 남을 수 있는 것은 무기물로 이루어진 뼈와 약간의 칼슘 성분으로 구성된 오색영롱한 사리뿐이다.
연세대학교의 이무상 교수는 사리 자체를 분석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칼슘을 많이 포함한 신장의 결석이나 담석이 사리가 됐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콜레스테롤로 이뤄진 담석은 노란 색깔)
‘우리 몸에서 가장 흔한 무기물이 칼슘이고 이 칼슘이 고열 속에서 다른 유기물질과 결합하여 어떤 화학변화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 뼈를 제외하고 우리 몸에 생길 수 있는 무기물로는 콩팥의 결석이나 간이나 쓸개, 기관지에 생기는 담석 등이 대표적이다. 콩팥 결석이나 담석은 모두 칼슘을 포함하며 나이가 많아질수록 잘 생기며 사실 돌 자체는 우리가 밥 먹고 사는 동안 계속 만들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병률이 30%, 증상이 있는 유병률이 8%나 되기 때문에 매우 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의학계에서는 정좌한 채 몇 년씩 움직이지 않고 수행하는 스님들은 영양상태도 좋지 않고 신진대사가 원활할 수 없기 때문에 결석이 생길 수 있는 확률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성철 스님도 15년간을 앉아서 잠을 잤기 때문에 유래 없이 사리가 많이 나왔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전세일 박사는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 몸 안에 생기는 결석(돌멩이)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 몸 안에서 돌멩이(結石)가 생긴다. 모래알도 생기고 자갈, 조약돌도 생기고 주먹만한 돌덩어리도 생긴다. 가장 흔히 생기는 장기가 담낭(쓸개)과 콩팥이다. 콩팥에서 방광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요로라고 한다. 이 요로에 모래알이나 자갈돌이 생겨 있는 것을 요로결석이라 부른다. 요로결석은 비뇨기과에서 발병 빈도가 높은 중요한 질환으로 전체 환자의 12%나 된다.
(중략) 쓸개에 생기는 돌을 담석이라 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색깔이 있는 것이 흥미롭다. 콜레스테롤로 이뤄진 담석은 색깔이 노랗고 사이즈가 크며 가장 흔한 편이다. 칼슘이 주성분으로 이뤄진 담석은 검정색이 나타난다. 그리고 칼슘과 단백질이 섞여서 생긴 담석은 갈색을 띤다. 담석의 자극으로 염증이 생기는 것을 담낭염이라 하는데, 이런 경우는 오른쪽 가슴 밑과 바른쪽 어깨에 심한 통증을 호소하게 된다. 담석으로 인한 통증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심하다.
(중략) 이빨에 생기는 돌은 치석이라 한다. 음식을 섭취한 뒤에 치아에 부착되는 치태(dental plaque)와 침샘에서 분비되는 무기질이 합해져서 돌멩이가 생성된다. 침샘에 생기는 돌이 타석(唾石)이며, 귀밑샘, 턱밑샘, 혀밑샘 등에 생길 수 있다.
위장에서도 돌멩이가 생긴다. 이런 위석(胃石)은 이물질이 위내에서 지속적으로 응결되어 생성되는 것이다. 주로 우리가 삼킨 식물섬유, 모발(털), 약물, 면(솜), 플라스틱, 종이 부스러기 등에서 돌이 생겨난다.
통풍도 일종의 돌멩이이다. 요산이 축적돼 돌처럼 딱딱해지는데 가장 흔히 생기는 부위는 엄지발가락이다. 불교에서 얘기하는 사리(舍利)도 역시 돌인데, 우리나라 성철 스님에게서는 130여개의 사리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사리가 결석이라는 설명은 위에서도 지적되었지만 매우 아프고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리가 나온 스님은 모두 입적하기 전까지 결석으로 고통을 호소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성철 스님의 경우 목 부위에서 나온 수많은 사리가 결석이라면 거동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수행 많이한 스님에게서 나와)
서울대학교의 서정돈 교수도 사리가 결석이라는 의견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표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담석 또는 결석론도 사리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저 추론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담석 등의 칼슘 성분은 뼈보다도 열에 약하기 때문에 이 가설에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시신을 단시간에 고열에서 처리하는 화장의 경우는 아주 큰 뼈를 제외하고는 모두 타버리지만, 그보다 긴 시간 동안 태우는 다비 의식의 경우 어떤 요인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비식의 경우도 사리가 보통 사람에게서 거의 나오지 않고 수행을 많이 한 스님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다비 의식에 어떤 요인이 있다면 다비식을 치른 거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리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모두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정액 축적설도 있지만 그것도 근거가 매우 미약하다. 정액 축적설은 성생활을 하지 않고 참선으로 평생을 수행한 스님을 화장할 때 사리가 나온다고 알려진 통설인데 여승이나 평범한 불자로부터 사리가 나온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사리의 양이 법력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은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다. 사리의 양과 수행의 정도를 결부시키는 것은 사리가 한량없는 육바라밀의 공덕에서 생기며 매우 얻기 어렵고 으뜸인 복전이라고 설한 '금광명경(金光明經)'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사리공양에 의한 공덕의 유무 문제는 초기 불교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불교계 일각 수행 정도와 아무 관련이 없다)
일반적으로 고승으로 알려진 스님으로부터 사리가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1989년에는 평신도인 85세의 할머니로부터 사리가 77과나 나온 예도 있다.
1994년에는 교통사고로 숨진 75세의 할머니가 경남고성 공설화장터에서 화장을 했는데 불자가 아닌 이 할머니의 몸에서 청색, 황색, 회색, 흑색을 띤 400 여과의 사리가 나오기도 했다(일반 사람들에게도 사리와 유사한 것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엄밀한 의미에서 사리는 아니라는 설명도 있음).
이와 관련하여 공주 영명사의 정법 스님은 평신도나 일반인에게서 사리가 나오는 것은 전생에 그만큼 공덕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하튼 사리가 대중의 관심을 많이 끌게 되자 사리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과학자들은 인체에서 추출한 유기물이나 무기물을 고열로 처리해보면 무언가 단서가 잡힐 것이라며 실험을 역설했다.
반면에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사리를 굳이 과학적으로 분석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적지 않았다. 사리에 대한 분석이 사리에 대해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믿음에 손상을 줄 것이라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그런데 과학자의 호기심이 이러한 주장에 귀를 기울일 리 만무이다. 드디어 사리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시도되었고 인하대의 임형빈 박사가 사리 1과(顆)를 분석하여 결과를 발표했다.
‘지름 0.5센티미터 정도의 팥알 크기 사리에서 방사성 원소인 프로트악티늄(Pa), 리튬(Li)을 비롯하여 티타튬, 나트륨, 크롬, 마그네슘, 탈슘, 인산, 산화알루미늄, 불소, 산화규소 등 12종이 검출되었다.
사리의 성분이 일반적으로 뼈 성분과 비슷했으나 프로트악티늄, 리튬, 티타늄 등이 들어있는 것이 큰 특징으로 사리의 굳기 즉 경도는 1만5000파운드의 압력에서 부서져 1만2000천 파운드에서 부서지는 강철보다도 단단했다. 특히 결석의 주성분은 칼슘, 망간, 철, 인 등으로 되어 있는데다가 고열에 불타 없어지며 경도도 사리처럼 높지 않아 사리는 결석이 아니다.’
이종호(mystery123@korea.com · 과학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