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답사 - 정선 <사북역>
1. ‘사북역’, 이 이름은 묘한 울림을 주는 단어이다. ‘사북사태’라는 오래 전 일어난 광부들의 저항의 상징으로뿐 아니라, 가난한 시절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한 마지막 출구로서 선택한 ‘광부’의 삶에서 느껴지는 절박감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막장’이라고 표현되었던 광부의 삶은 가난뿐 아니라 벗어날 수 없는 인생의 ‘절망’에서 때론 마지막 탈출구의 역할도 했었다. 40년 전 사북의 광산을 찾았던 것도, 허무의 끝을 만나기 위한 시도였는지 모른다. 비록 그 속으로 들어가는 대신 포기할 수 없는 현재의 삶으로 돌아섰지만 말이다.
2. 하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광산’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사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했다. 석탄 산업대신 ‘강원랜드’라는 카지노 도박장이 들어선 것이다. 사북은 고통과 희망이 교차했던 산업의 현장에서 욕망과 절망이 분출하는 환락의 공간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일확천금의 헛된 탐욕 속에서 돈과 육체까지 몰락하는 슬픈 상황을 반복했다. ‘탄광’ 대신 ‘강원랜드’로 상징되는 사북은 점차 나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사북이라는 오래된 기억만이 남겨져있었다.
3. <제천역>에서 떠날 수 있는 ‘역답사’의 사전 여행으로 ‘사북역’을 선택한 것은 오래전의 기억과 풍문 속에서 변화했다는 현재의 사북을 비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태백선 이용자가 적은 다른 역과는 달리 사북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사북’에 온 것일까 궁금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역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역 플랫폼에 조성된 ‘석탄차’의 상징물은 이곳의 기억을 소환한다. 역 앞은 강원도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관광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세련된 여성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술집 작부의 요란스런 화장과도 닮아있었다.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는 모텔, 마사지홀, 술집 들은 탐욕과 욕망의 분출구에 모여든 사람들의 허무한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 사북은 이제 탄광의 매캐한 공기대신 싸구려 쾌락의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4. 돌아갈 기차 시간에 여유가 없어 강원랜드까지 걷지는 못했지만, 다음 정식 답사 때는 천천히 걸으면서 과거의 공간이 얼마나 변모했는지 확인하고 싶다. 그리고 술집에 앉아 돈과 욕망에 관해 열정적으로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듣고 싶다. 술집이나 식당보다 더 많은 전당소의 풍경은 그들의 욕망이 얼마나 통제할 수 없는 사슬에 매여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한다. 무너져 내리는 사람들의 돈으로 살아가는 ‘사북’, 분명 활기는 있지만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는 활력일 것이다. 잠깐 동안의 만남이지만 그곳에서 확인한 것은, 과거의 고통은 ‘희망’이었지만, 지금의 고통은 단지 ‘탐욕’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첫댓글 - 카지노 개장 때의 희망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제대로된 휴양지의 모습을 기대했던 사람들의 실망감. 큰 물고기가 아닌 잔챙이들이 모이는 흙탕물만 남아있다. 자기 수렁에서 허우적거릴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