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섶길 6-1 산성길 구간을 걸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못다 걷고 실패했습니다. 대추리길도 중간에 용화사에서 잠깐 낮잠자고 일어나 정신 못차리고 일부구간을 놓치긴 했지만 그래도 종착지점까지는 갔습니다. 다른 구간들도 문제가 있을 때 우회를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끝내 못 다 걸은 구간은 이곳 산성길이 처음인 것 같네요.
산성길은
청북읍사무소 - 용성리산성 - 비파산성 - 자미산성 - 무성산성 - 청북읍사무소
로 돌아오는 순환 코스입니다. 청북중학교 학생들과 오전에 소금뱃길 답사를 마치고 점심을 먹었는데 시간이 넉넉한 것 같아 온김에 산성길을 걷겠다 마음먹고 나섰습니다.
내심 숲길을 따라 걸을 수 있으니 좋겠다 싶은 마음도 있었고 잘 보존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경기도 파주에서 군생활을 했던 저는 적절한 참호나 약간 깊게 파놓은 산등성이의 땅 혹은 능선을 따라 살짝 돋아놓은 흙무더기나 돌무더기 정도를 생각했기 때문에 산성길에 실망보다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큰 비가 예보되어 있었지만 노을길을 걸을 때 비를 맞으며 걸었던 경험이 좋아서 그것 또한 기대하는 바였습니다. 산성길 초입에서 부터 크게 고생을 하게 될 거라곤 생각 못한 순진한 기대였습니다.
우선 잠깐 있었던 그나마 걷기 좋았던 구간 동영상을 먼저 보여드릴께요.
이 날의 즐거운 산길 걷기는 5분도 안되는 짧은 이 두 곳 뿐이었습니다. 흑흑...
청북읍사무소 모퉁이를 돌아 바로 짧은 횡단 보도를 건너면 나오는 길입니다. 이때까지는 좋았습니다. 희희낙락 했죠.
일단 길이 없었습니다. 흑흑.... 길이~~~~~~~~~~~~~~~~~~~~없었어요!!!!!!!
그래도 약 50미터 정도의 숲을 헤치고 나가면 길과 만날 수 있다고 해서 들어섰습니다. 사방에 나뭇가지들의 부러진 부분들과 온통 거미줄들이 쳐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헤치고 나가는데 두루누비는 분명 길이라고 표시를 하는 곳인데 숲 한복판인 겁니다. 그 짧은 길을 헤쳐나오는데 30분이 넘게 걸렸습니다. 나와서 가방을 벗었더니 온통 거미줄에 나뭇가지에 온 몸은 땀범벅이 되어버렸습니다. 정글도와 긴팔 옷과 마스트 모자를 쓰고 길을 개척해야 하는 구간이었습니다.
이날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길을 헤쳐나와 무덥을 끼고 다시 용성산성으로 가는 산길에 들어서려는데 이번에는 방금 전보다 더한 수풀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그나마도 두루누비가 지시하는 길에는 아무런 표지도 찾을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아예 울창한 풀 숲이라서 들어설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별 수 없이 빙 돌아서 약사사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약사사를 따라 무성산 둘레길을 오르는데 바람이 거세게 불며 숲 전체가 어두워지기 시작하더군요.
약사사에서 무성산 둘레길을 따라갔습니다. 동영상에서 보이시는 곳은지도에서 보이는 삼각형으로 된 무덤입니다. 거기서 두루누비가 지시한 길을 따라 들어갔더니 빨간색 동그라마로 표시된 제 위치에 있게 됐죠. 비는 크게 쏟아지고 숲속에는 길이 전혀 없고 두루누비는 계속 앞으로 전진하라고 하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크게 다칠 수 있겠다 싶더군요. 다른 곳과 다르게 이런 저런 큰 돌들이 주변에 툭툭 튀어나와 있는 것을 보니 산성이 있었다는 것을 알겠더군요. 그냥 돌이 다른 곳보다 많아서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지 인위적인 어떤 장소나 물체가 있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울울창창한 나무 숲이었습니다. 옆으로 쓰러진 나무 들은 마치 하늘을 향하는 것이아니라 허공을 향해 사방으로 자라난 나무 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나와 약사사 방향쪽으로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청북중학교 학생들과 산성지를 답사한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하는데 제가 길을 찾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날 숲속을 많이 헤매고 다녔습니다. 도저히 돌아서 충북읍사무소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아 폭우를 핑계로 길 걷기를 중단하고 돌아와 완전히 뻗어버렸습니다.
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길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사람이 계속 다닌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금새 자연은 그곳에 길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이들의 기억을 자연에서 지워버립니다. 신포길과 황구지길이 인간이 만들고 있는 것 때문에 걷기 어려운 구간이 생겼다면 산성길은 인간의 손이 전혀 타지 않아서 "길" 이라는 것이 없어진 사례일 겁니다. 자연에게 그 품에서 "길" 이라는 작은 공간을 빌렸다면 그 빌린 공간은 인간의 손으로 갈고 닦아야 겠죠. 조금은 아쉬웠고, 많이 고생한 산성길 답사 이야기였습니다. 푸념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