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이면 우리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행사가 있다. 바로 문학기행이라는 미명아래 문학의 향기가 살아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다. 올해도 어김없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 여정을 시작했다.
경기도 안성하면 일반인들에겐 안성맞춤인 유기가 제일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단연코 청록파 시인중의 한 분인 박두진 선생과 조병화 선생을 떠올릴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분들의 향수가 그리워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문학인이라고 해도 우리로서는 감히 그 이름조차도 거론하기 힘든 문단의 거목들이 아니던가!
찔끔거리며 흔적만 살짝 내보이는, 오늘 만큼은 진정 반갑지 않은 빗줄기의 동행이 얄궂기만 하다. 그러나 우리의 여정엔 그 무엇도 방해의 요인이 될 수 없었다. 비를 맞으면 어떻고 동행하는 인원이 적다한들 이유가 될까, 지금 우리에겐 즐거움이 충만해 있고 저렇게 먹거리 또한 풍요로운데......
아산, 둔포를 지나 평택에 진입했다. 평택과 안성의 경계선인 원곡면에 들어서자 우리의 첫 일정지인 3.1 운동 기념관에 도착했다. 촉촉한 비를 충분히 흡수한 잔디밭이 짙은 초록의 빛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1919년 3월 11일 작은 동리 단위로 동시 다발적으로 만세운동이 눈덩이 부풀 듯 커져 만세고개에서 독립 만세를 외쳤고 주재소의 일본인들을 물리치는 호국의 산 증인이 이곳이다.
요즘은 어느 고장을 가든 문화유산 해설사가 있어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년의 지긋하신 분이 안내를 해주어 기행의 편안함을 누릴 수 있었다. 그 분의 안내로 조병화 시인의 편운재 문학관도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물론 안성이 친정인 내가 부족한 부분은 수시로 체크하고 있으니 회원들이 내심 흡족해 하는 눈치였다.
양성면 난실리 문화마을의 편운재 문학관은 그 입구에서부터 문학의 운치가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곳이다. 현대시인 중 가장 많은 시집(37권)을 발간하신 片雲 조병화 선생의 모든 것이 마치 살아 있듯이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박두진 시인이 은둔의 조용한 성격이라면 조병화 시인은 쾌할하고 매사에 적극적인 통이 큰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도 그러한 그 분의 면모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아름다운 편운동산과 고향을 찬미하는 <우리 난실리>의 시비가 그곳을 나서는 모든 이들의 발목을 잡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말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었다.
오전 기행만을 목적으로 참가하신 시인 안학원 선생 때문에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래서 가끔 친정인 안성에 오면 가족들과 자주 찾는 양성면의 별난 매운탕 집으로 버스를 돌렸다. 미리내 성지를 먼저 둘러보기로 했는데 그리하면 안 시인께서 점심을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매운탕 집은 항상 손님들이 북적거리는 유명한 곳이다. 이른 시간이다 싶어 갔는데도 벌써 주차장엔 차들이 한 자리들 차고 앉아 뜨거운 열을 뿜어대고 있었다.
나의 제의로 회원들은 이 집의 별미인 버섯 육개장으로 모두 통일했다. 특히 아침을 거른 사람들은 온갖 버섯이 듬뿍 들어간 이 얼큰한 육개장에 비지땀을 뻘뻘 흘려가며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었다.
金剛山도 食後景이라고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나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매운 것을 싫어한다는 관광버스 기사님에게 내심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이 하루 내내 내 꽁무니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잠시 休眠(휴면)을 즐긴 덩치 큰 버스는 우리를 싣고 신나게 안성을 향해 내달렸다. 안성 시내에 접어들자 안 시인을 고속버스 터미널에 내려 드렸다. 다행이도 서울 가는 버스가 바로 있어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아쉬운 이별의 손을 흔들며 다음 목적지인 박두진 시비로 향했다. 여기서부턴 안내자가 없어 내가 그 임무를 맡아야 했다.
안성 문학 기행은 작년 내가 고문으로 있는 예솔회에서 다녀간바 있어 쉽게 안내를 할 수 있었다. 고향이라는 큰 백그라운드도 이럴 때 한몫 하는 것 같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 있다고 이곳에서 25년을 보고 자랐으니 함께 온 회원들보다는 하나를 알아도 더 알 것 아닌가! 은근히 피어오르는 회심의 미소가 나를 기쁘게 했다.
안성시립 도서관 입구에 꿋꿋한 기개로 세워져 있는 혜산 박두진 시인의 시비를 첫 대면하면서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조지훈, 박목월과 함께 우리나라 청록파 시인의 한사람인 박두진 시인은 경기 안성 출생으로 1939년 문예지 <문장>에 정지용의 추천으로 등단하여 30여권의 시집과 평론촵수필과 촵시평 등을 통해 우리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문단의 거목이다. 문학뿐 아니라 수석과 서한체에도 능하여 <서한체>와 <수석연가>등 전문서적을 출간하기도 했다.
뜻밖의 선물은 안성시립 도서관에 마련된 그 분의 기념관을 이곳 도서관장의 살뜰한 안내로 생각지도 않은 그분의 면면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안내 표시가 없어 모르고 지나쳤다면 두고두고 아쉬워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선한 인상이 매력적인 젊은 도서관장의 친절함이 아직도 아련함으로 가슴에 전해진다.
간간이 부서지는 빗줄기가 고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우리에게 미움을 받을까봐 시원하게 자신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렸으니 우리에겐 참으로 어여쁜 날씨를 제공해 준 셈이다. 여름 내내 무섭도록 토해 내던 폭염이 지금 어설픈 몸짓으로 우리의 곁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순간 누군가 한마디 툭 던진다.
“오늘 문학기행 날짜 누가 잡은 거예요, 날씨 정말 끝내준다!!”
하루가 여삼추처럼 시간을 잡아먹고 있다. 어느덧 우리를 칠장사에 던져 놓은 버스는 커다란 기지개로 咆哮(포효)하며 휴식을 취하고 우리는 소설과 영화 속에서 더 유명한 칠장사의 역사 속으로 조금씩 발을 내딛었다.
칠장사는 아주 작은 절이었지만 기품이 있고 정겨움의 풍광을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칠현산이 수호하듯 감싸 안은 칠장사는 인목대비와 가파치 그리고 임꺽정의 역사 인물로도 상당히 유명한 곳이다. 키는 작지만 빈틈하나 없어 보이는 그러면서도 자비로운 주지 스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왠지 더욱 정겹다는 느낌이다.
오래된 정자나무 아래에 졸졸 흐르는 계곡물이 너무나 반갑다. 옆에는 밑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이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음에 충분했으며 입 속으로 시원하게 전해지는 聖水(성수) 같은 환희를 느낄 수 있음에 또한 행복했다.
약수터 앞에서 만난 문화해설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노신사의 노련한 말솜씨와 친절함은 잠시나마 우리 회원들에게 시원한 청량제와도 같은 행복을 전해주었다. 사람 냄새가 정겨움으로 다가오는 안성에서의 오후가 점점 끈적거림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는 우제봉 회장님께서 준비해 오신 삶은 돼지고기가 술잔을 즐겁게 해 주었고 하금수 회원의 삶은 찰옥수수는 아침부터 기분 좋은 여행의 한 몫을 톡톡히 해 주었다. 억지 휴가를 내면서까지 참석해 주신 시인 고광철, 남자의 몸으로 여행의 모든 준비를 꼼꼼하게 챙기신 이병헌 사무국장 등......
이제 우리의 마지막 기행지인 양성면 소재 미리내 성지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모시고 있는 천주교 성지로서 미리내라는 말은 은하수의 순 우리말이다. 이 성지에 “미리내” 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천주교 신자들이 피운 불빛이 깊은 밤중에 보면 은하수처럼 보인다는 뜻에서이다. 문학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곳이지만 새로운 경험은 우리 문학인들에게 있어 또 다른 삶의 원동력을 제공한다. 그래서인지 미리내를 찾음에 있어 누구 한 사람 이의가 없었다.
김대건은 1821년 충남 당진군에서 신앙심이 깊은 집안에 태어났다. 1863년에 사제의 필요성을 느껴 신학생으로 중국 유학길에 오르고 1845년 8월에 한국 최초의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곳은 입구에서부터 비석과 청동 모형으로 예수 박해의 순서를 볼 수 있게 했다. 언제와도 내 삶의 신선한 에너지를 심어주는 이곳은 진정 순결함의 메카가 아닌가 싶다. 입구에 들어서자 수녀 한 사람이 서명 노트를 들고 다가오더니 무조건 서명하라고 했다. 성지 옆 골프장 개설을 반대하는 서명이었다. 우리 예산 문학의 어른이신 신석근 선생님과 신익선 시인께서 일말의 제고도 없이 시원하게 서명을 하고 뒤를 이어 몇몇 회원들도 뜻을 같이했다.
대성당엔 미사 준비를 한창하고 있는 듯 했다. 우리는 그 위로 올라가 이런 저런 방법으로 순교한 성자와 성녀들을 둘러보면서 그 잔인함에 소름이 돋았으며 가슴에 뜨거운 무언가가 치켜 오르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무거운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곳을 나왔다. 깔끔하게 정돈된 넓은 성지를 걸으며 잠시 긴 호흡을 토해냈다.
이제 아쉬운 안성으로의 여정을 접어야 한다. 무거운 발걸음이지만 우리의 가슴에 그리웠던 문학의 향수를 가득 안겨 준 정겨운 안성에서의 행복을 우린 잊지 못할 것이다.
해질녘에 보이는 모든 것은 너무나 아름답다. 내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기에 더욱 즐거웠던 2004 여름 문학기행이 저물어간다.
시나브로......
첫댓글 강선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지난번 안성지역 안내와 그리고 이렇게 기행문까지 써 주시니 감사합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곳의 기행문도 읽고 싶네요. 수현씨 화이팅!!
제가 가고 싶었던 곳을 다 들리셨네요 정말로 부럽습니다, 저도 가고 싶은데 시간을 맞출수가 없으니 발만 동동구를 수밖에요, 아 수호 천사님이셨군요 역시 필명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국장님 빠트린 곳 없는지요???정우님과 서영님 정말 오랜만이군요...제가 요즘 정신 없이 동분 서주 하고 있답니다^^한번 꼭 뵙고 싶은데...기회가 오겠지요..건강하세요^^*
수호천사님! 즐겁게 후기를 읽었습니다. 보람있고 즐거웠던 여행 이었군요.꼼꼼하고 알찬 후기를 보니 못간게 더욱 한스럽군요.언제나 밝고 활기찬 님의 활동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