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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Majestic sweetness sits enthroned)
작사 : 사무엘 스티넷(Samuel Stennet, 1727~1795)
작곡 : 토마스 헤스팅스(Thomas Hastings, 1784~1872)
이 장엄한 찬송가의 가사는 사무엘 스티넷이 지은 것으로 그는 아이작 왓츠, 필립 도드리지, 찰스 웨슬리, 존 뉴턴, 윌리엄 카우퍼 등과 함께 당대 영국 최고의 찬송시 작가들 중 하나였다. 스티넷은 1727년 영국 데본셔의 한 침례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조셉 스티넷이나 아버지 에드워드 스티넷은 모두 유명한 목사들이었다. 아버지 스티넷은 어렸을 때 런던 리틀 와일드가의 교회에 부임하였다. 그리고 스티넷은 1748년부터 아버지가 시무하는 교회에서 부목사로 10년간 있다 아버지가 죽자 그의 뒤를 이어 그 자신이 세상을 마칠 때까지 그곳에서 시무했다. 스티넷은 뛰어난 설교가로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의 문학적 소질을 물려받아 많은 찬송시를 남겼다. 또한 1763년에는 에버딘의 킹스 칼리지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영국국교를 반대한 종교자유운동에 가담한 지도자들 중 한명이었으며, 그 운동과 관련된 많은 저서와 논문을 남겼다. 그는 1795년 8월 25일 영국의 머스웰 힐(Muswell Hill)에서 6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 찬송가는 스티넷 목사가 리틀 와일드가 교회의 담임목사로 취임할 때 자신의 설교를 뒷받침하기 위해 작사한 것이다. 그의 설교는 “승리의 그리스도”란 제목으로 아가서 5장 10~16절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자 작사한 39편의 찬송시는 친구인 존 리폰(J. Rippon)에 의해 1787년에 편찬된 「찬송가 걸작선」에 처음 수록되었는데 이것도 그 중 하나이다.
이 찬송가의 곡조는 헤스팅스가 이 찬송시를 위해 작곡한 것으로 1837년에 출판된 「맨하탄 모음집」에 처음 소개되었다. 장엄한 곡조 덕택에 이 찬송가는 한국교회에서 즐겨 불려지는데, 2장의 “찬양 성부 성자 성령”도 이 곡조에 맞추어 불려진다.
해설
1절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
영광이 해 같이 빛나네 해 같이 빛나네
1) 핵심 의미
이 절은 하늘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은 단지 위대한 선지자나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주님이십니다.
'빛나고 높은 보좌'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와 왕권을 나타내며, '해 같이 빛나는 영광'은 인간의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거룩함과 영광을 상징합니다.
2) 성경적 근거
① 이사야 6:1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이사야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절대적인 주권을 보여 줍니다.
② 요한계시록 4:2-3
사도 요한은 하늘에 보좌가 있고 그 보좌에 앉으신 이를 환상 가운데 보았습니다. 보좌는 하늘의 통치 중심이며,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리입니다.
③ 히브리서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찬송에서 주님의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난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찬양하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④ 마태복음 17:2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변형되셨을 때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났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난 사건입니다.
3) 신학적 해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부활 이후에 비로소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성자 하나님은 성육신 이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영광을 가지셨습니다(요 17:5).
따라서 이 절은 예수님을 단순히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영광의 주님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신앙적 교훈: 성도는 세상의 권세와 영광보다 영원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2절 지극히 높은 위엄과 한 없는 자비를 뭇 천사 소리
합하여 늘 찬송 드리네 늘 찬송 드리네
1) 핵심 의미
이 절은 그리스도의 두 가지 속성을 함께 노래합니다.
- 지극히 높은 위엄: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권세와 왕권
- 한없는 자비: 죄인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구원하시는 사랑
주님은 위엄만 있으신 분도 아니고 자비만 베푸시는 분도 아닙니다. 거룩하고 전능하신 주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는 사실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2) 성경적 근거
① 요한계시록 5:11-13
요한은 수많은 천사와 모든 피조물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을 찬양하는 광경을 기록합니다.
특히 요한계시록 5장 12절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께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돌립니다.
이 말씀은 찬송가의 '뭇 천사 소리 합하여 늘 찬송 드리네'라는 표현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② 시편 103:8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하나님의 자비는 성경 전체에 나타나는 중요한 성품입니다.
③ 에베소서 2:4-5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시고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3) 신학적 해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리스도의 위엄과 자비가 십자가에서 함께 드러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는 거룩한 재판장이시지만, 동시에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천사들의 찬양은 구속받은 성도들의 찬양과 함께 하늘의 예배를 이루며, 모든 영광은 하나님과 어린양께 돌아갑니다.
신앙적 교훈: 우리는 주님의 위엄 앞에서는 경외해야 하며, 주님의 자비 앞에서는 감사와 사랑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3절 영죽을 나를 살리려 그 영광 떠나서 그 부끄러운
십자가 날 위해 지셨네 날 위해 지셨네
1) 핵심 의미
이 절은 찬송 전체에서 복음의 중심을 이루는 부분입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으며, 죄와 사망의 지배 아래 놓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을 낮추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십자가에서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영 죽을 나'라는 표현은 단순히 육체의 죽음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죄로 말미암은 영적 죽음과 하나님과의 단절, 그리고 최종적인 심판의 문제까지 포함합니다.
2) 성경적 근거
① 빌립보서 2:6-8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자신을 낮추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셨으며,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본문입니다.
② 고린도후서 8:9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리스도께서는 본래 부요하신 분이시지만 우리를 위하여 낮아지셨습니다. 이는 성육신과 구원의 은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말씀입니다.
③ 이사야 53:5-6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고난을 당하신 종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이 본문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을 이해하는 중요한 구약의 근거입니다.
④ 베드로전서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예수님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죄가 없으신 분으로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3) 신학적 해설
개혁주의 신학에서 이 절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대리적 형벌 담당이라는 교리와 연결됩니다.
- 인간은 자신의 선행으로 죄의 형벌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으로서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분의 구속 사역에 근거하여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롬 3:24-26).
여기서 '그 영광 떠나서'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께서 신성을 버리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성을 유지하신 채 참된 인간의 본성을 취하시고 종의 자리까지 낮아지셨다는 의미입니다.
신앙적 교훈: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의를 자랑하지 않고 십자가의 은혜를 자랑해야 합니다.
4절 나 이제 생명 있음은 주님의 은혜요 저 사망권세
이기니 큰 기쁨넘치리 큰 기쁨 넘치리
1) 핵심 의미
이 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성도에게 주어진 새 생명과 승리를 노래합니다.
'나 이제 생명 있음은 주님의 은혜요'라는 고백은 우리가 스스로 생명을 얻거나 구원을 이루어 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생명을 선물받았다는 뜻입니다.
'사망 권세 이기니'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키며, 그 부활에 근거하여 성도도 장차 죽음에서 일으킴을 받을 것이라는 소망을 포함합니다.
2) 성경적 근거
① 요한복음 11:25-2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예수님은 부활을 단지 가르치시는 분이 아니라, 부활과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② 고린도전서 15:20-2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누릴 부활 생명입니다.
③ 고린도전서 15:54-57
사망이 승리에 삼킨 바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다고 선포합니다.
④ 로마서 6:4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 같이 우리도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부활의 능력이 장차 누릴 생명뿐 아니라 현재의 신앙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가르칩니다.
3) 신학적 해설
이 절에는 현재의 구원과 미래의 완성이 함께 나타납니다.
- 현재: 믿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습니다.
- 장래: 육체의 죽음이 있더라도 마지막 날 부활의 소망을 가집니다.
- 영원: 죄와 사망의 지배가 완전히 제거된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누립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세상 형편이 언제나 평안하기 때문에 생기는 기쁨이 아닙니다. 죽음조차 그리스도 안에서 최종적인 패배가 아니라는 부활 신앙에서 비롯됩니다.
신앙적 교훈: 성도는 죽음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지만, 죽음보다 강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5절 주님의 보좌 있는데 천한 몸 이르러 그 영광몸소
뵈올 때 내 기쁨 넘치리 내 기쁨 넘치리 아멘
1) 핵심 의미
마지막 절은 성도가 장차 주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직접 뵙게 될 미래의 소망을 노래합니다.
'천한 몸'은 죄와 연약함, 질병과 죽음의 영향을 받는 현재의 육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최종적인 운명은 무덤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성도는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게 됩니다.
2) 성경적 근거
① 빌립보서 3:20-21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 본문은 찬송가의 '천한 몸 이르러'라는 표현을 설명하는 데 매우 적절합니다.
② 요한일서 3:2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성도는 현재 주님의 영광을 부분적으로 알고 있지만, 주님이 나타나실 때에는 그분을 직접 뵙게 됩니다.
③ 요한계시록 22:3-4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얼굴을 볼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구원받은 백성이 누릴 영원한 복을 보여 줍니다.
④ 고린도전서 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현재의 제한된 지식과 장차 주님을 뵙게 될 온전한 교제 사이의 차이를 나타냅니다.
3) 신학적 해설
이 절의 소망은 단순히 죽은 뒤 천국에 간다는 생각을 넘어섭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최종적인 소망은 그리스도의 재림, 죽은 자의 부활, 몸의 영화,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제입니다.
구원은 영혼만 구원받고 육체는 버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몸까지 새롭게 하셔서 영광 가운데 살게 하십니다.
또한 주님의 얼굴을 뵙는다는 것은 단순히 눈으로 어떤 모습을 보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죄로 인해 가로막혔던 하나님과의 교제가 완전히 회복되고, 주님을 온전히 알고 사랑하며 예배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신앙적 교훈: 성도는 현재의 육체적 연약함과 고난 때문에 낙심하지 않고, 장차 주님의 영광에 참여할 소망으로 오늘의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