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청안(淸安)은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도안(道安)과 청당(淸塘)이 합쳐진 지명이다. 도안현은 고구려 때는 도서현(道西縣)이라 불리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 도서(都西)로 바뀌고 고려 초에 도서를 도안현으로 고쳤다. 청연현(淸淵縣)은 신라 때의 청당으로 바뀌어 1018년(현종 9) 도안과 청당이 청주에 속하게 되었다. 1405년(태종 5) 청주에 속해있던 청당현과 도안현을 합하여 청안현이라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청안군으로 승격하였으나,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청안군이 폐지되었고, 서면(西面)은 청주에 편입하였고, 나머지 일원은 괴산(槐山)으로 편입해서 청안면이 되었다.
성씨의 역사
청안이씨(淸安李氏)에는 시조를 달리하는 두 파가 있다.
충원공파(忠元公派)의 시조 이양길(李陽吉)은 시호가 충원(忠元)으로,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여 공민왕 때 검교시랑(檢校侍郞) 예빈시동정(禮賓寺同正)을 역임하였으며 이때 왕에게 직간하였는데 그 노여움을 사서 제주판관(濟州判官)으로 내려갔다가 1361년(공민왕 5) 10월 가을적홀고탁란(加乙赤忽古托亂) 때에 순절하여 1등 공신에 녹훈되고 청안군(淸安君)에 봉해졌으며 영남파(嶺南派)의 중시조로 분파되었다.
또한 충간공파(忠簡公派)의 시조 이한번(李漢藩)은 시호가 충간(忠簡)으로, 고려 충렬왕 때 문과에 올라 한림학사(翰林學士)와 영광군사(靈光郡事)를 거쳐 국사원검열관(國史院檢閱官)을 지낸 뒤 1363년(공민왕 7) 홍건적을 막은 공으로 추성보리공신(推誠保理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책록되고 청안백(淸安伯)에 봉해졌다. 이한번의 아들 이광경(李光慶)은 조선에서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지낸 후 호남파(湖南派)의 중시조가 되었다.
이 두 파는 예전에 시조를 이학년(李鶴年)으로 설정하였으나 최근에 여러 가지 증거에 의해 사실이 아님이 밝혀져서 세보에서 이를 수정하였다.
주요 세거지
경상북도 영일군 청하면 청계리
경상북도 월성군 안강읍 일원
경상북도 월성군 외동면 일원
경상남도 울주군 청량면 율리
경상남도 울주군 온양면 발리
경상남도 울주군 농소면 상안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청안이씨는 4,264가구 총 13,549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