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60년을 산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결혼한 지 60년이 되도록 부부가 해로하여 회혼을 맞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슬하에 자녀들도 무탈하여야 한다는 회혼식의 필요 조건을 감안하면 회혼식을 치룰 수 있기란 더더욱 어려워진다." 회혼식에 대한 일반적 언급이다. 게다가 우린 6남매가 아닌가 확률적으로 맞추기 힘든 조건이다.
부모님은 일제 말기 태평양전쟁이 극에 달한 1945년(을유년) 2월 보름날 결혼을 하셨으니 금년 2005년이 같은 을유년으로 결혼 60주년이 된다. 슬하에 4남 2녀도 무탈하여 잘 지내고 있으니 회혼식을 치룰 수 있는 그 엄격한 조건을 통과하여 2005년 4월 3일 해운대 매리어트호텔에서 회혼식을 맞이할 수 있었다.
회혼식의 사전적 의미는
“부모님께서 혼인하신 지 60년이 되는 해에 자손들이 감사와 축복의 의미로 부모님께 잔치를 마련해 드려서 생에 보람을 느끼시게 하고 새로운 황혼의 청춘을 그려 보시도록 하는 장수잔치 행사로써 자식이 부모에게 보은하는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효 행사이다.”
회혼식은 효도 행사에 가장 많은 비중이 있다. 그러나, 이 날 행사시 가장 아찔한 순간은 어머님의 구토를 수반한 불편함이었다. 낮 12시 행사장으로 출발을 앞 두고 아침부터 어머님이 컨디션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동래에서 내려온 누나의 처방은 “멀미약을 반 병 드시라.”였다. 이 때 마침 도착한 엄서방이 어머님의 증세를 보고 언지에게 “맥박을 체크하여야 한다.”하고 혈압계를 찾았지만 준비된 혈압계가 없었다.
엄서방의 진단은 “혈압 상승으로 인한 두통 및 구토”로 진단을 하고 “내과 레지던트가 있는 종합병원으로 가야 한다.” 고 한다. 의사 엄상철의 심각한 표정에 우린 아연 긴장하였다.
어머님은 오랜만에 모이는 가족들을 위해 며칠 밤낮으로 단술, 떡, 산적, 나물, … 음식 마련으로 무리를 하셨다고 한다. 어머님은 예전부터 몸을 아끼지 않고 일 하시는 경향을 보아왔지만, 이젠 세월이 흐른 만큼 조심하셔야 하는데…
아버님도 많이 긴장하신다. 언지네와 부모님은 병원으로 향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행사장인 해운대로 향했다.
호텔 로비에서 재철형님네를 만났다. 백두대간 종주를 하는 재철형님의 검게 그을린 얼굴과 날렵한 몸매는 백두대간을 누비는 야생 동물을 연상케 한다. 그 옆의 형수님 또한 몰라 볼 정도로 날씬해져 있었다. 스포츠 댄스로 단련에 단련을 거듭하여 형수님의 결혼 전 전성기를 연상케 한다. 조용한 여자 양창은이 그 옆에 서니 퍼펙트한 가정이 된다.
김병주와 박연미도 로비에서 만났다. 김서방과 4번째 만남이 되니 정감이 간다. 김서방을 4번째 만나면서 1차원적인 혈연 관계(직접 피붙이)에서 벗어난 2차원적인 혈연 관계의 형성 과정을 느낄 수 있다.
로비에는 "5층 12시 양기재님, 최숙희님 회혼식" 안내문이 눈에 들어 온다. 에스켈레이터를 타고 5층 행사장으로 향했다. 한 벽면이 거의 유리로 된 5층 행사장은 해운대 앞 바다와 오륙도, 동백섬, 해운대 백사장이 한 눈에 들어 온다. 호텔 연회와 행사를 많이 가져왔지만, 오늘 처럼 아름다운 방은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이 정도 아름다운 방을 찾으려면 내공이 많이 싸여야 하는데, 누나의 내공이 무섭다. 부산여고 동문회 총무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순간 지나간다.
총 25명의 가족 중 유학 중인 양유정과 엄유림, 시험 준비 중인 양원석을 제외한 22명이 참가 예정으로 되어 있으니 참석률은 88%가 된다. 준비된 테이블 세개에 산재되어 앉았다.
12시에 식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어머님의 증세 여부에 따라 식을 못할 수도 있다. 오랜만에 만난 기쁨과 어머님의 증세에 대한 걱정이 교차하면서 해운대 바다만 모두 주시하고 있었다.
호텔측에 양해를 구해 2시간 정도 식을 연기시키고 병원에서의 전화를 기다렸다.
12시 반경 "어머님의 혈압은 180이고, 씨티 촬영을 하기로 했다." 는 언지의 전화가 왔다. 순간 걱정스런 마음이 짙어졌으나, 이어 반시간 뒤인 오후 1시경 "씨티 촬영 결과 이상이 없고 과로와 긴장으로 인한 혈압상승이었다는 진단과 함께 혈압 강하제를 투여받고 2시경에 행사장으로 도착할 수 있다." 는 언지의 전화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