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공원 앞에 위치해 있던 대구지방병무청에서 입대영장을 월요일 오전에 받고 이틀 뒤 수요일 오후에 입대하고 나서 6주간의 신병훈련을 마치고 남들은 백령도다 연평도다 혹은 김포로 여름 장날 개 팔리듯 사라지고 또 누구는 특과병으로 전국의 여러 곳으로 후반기 위탁 교육을 받으러 뿔뿔이 흩어지고 나니 포항에 배치 받는 동기들만 우두커니 남아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공수교육대 막타워 뒤에서 한창 짙어가는 포플러의 가을빛을 멍하니 쳐다보며 토요일 오후를 보내는 중 이었다.
수료식이 있었던 어제의 기억을 꿈결같이 몽롱하게 되새김질하기도 했지만 꼼봉(더플백)을 깔고 앉아 앞으로 실무에서의 생활이 어떤 공포로 다가 올지 불안해하고 있었다. 일년 내내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주계(식당)에서 흘러넘치는 음식찌꺼기가 시커멓게 썩은 흙탕물과 함께 흘러가는 도랑 하나만 건너면 실무부대였지만 천리 만리 떨어진 지옥과 같이 느껴지고 있었다.
훈련단 DI의 인솔에 따라 사단본부 연병장에 도착한 우리들의 머릿수를 확인되자 각 예하 연대에서 온 인사선임하사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각 실무부대로 다시 나뉘어져 걸어갔다. 이미 늦은 오후가 되어 약간의 한기를 느끼며 줄레줄레 걸어가며 바라본 서녁 하늘은 무척이나 곱게 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사단 전병력과 장비가 한꺼번에 도열한다는 사단연병장 가에 저절로 자라나 무더기를 이룬 코스모스가 흘러가는 시월 중순의 가을을 못내 아쉬워하며 나를 보고 어색한 손짓을 하고 있었고 석식을 해결하기 위해 이동하는 실무선임들의 줄지어 걷는 모습이 보였다.
십여분쯤 걸어 도착한 연대에는 무슨 일인지 병력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또 다시 인원파악을 한 우리를 이끌고 키가 멀대 같이 컸던 구대장은 주계로 갔다. 식사 시간이 지나 버려 이미 식기는 했으나 밥은 많았고 반찬은 무 깍두기가 노란 컨테이너에 담겨 나왔다. 하지만 그 식사가 그동안 입대하고 나서 먹은 가장 맛있는 밥이었다. 쌀과 보리가 7:3으로 혼합되어 있었던 훈련단에서의 식사는 맛도 맛이었지만 갖가지 명목을 가져다 붙인 DI들의 갈굼 때문에 느긋하게 먹을 수가 없었다. 불과 2-3분만에 허겁지겁 입으로 밀어 넣으며 생존을 위한 레이스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실무에서 처음 먹은 그날의 밥은 완전한 아끼바리 쌀밥이었고 뒤늦게 들어온 신병들을 오만 귀찮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주계병은 샘표진간장을 한통 던져주고 사라져 버렸다. 간장에 버무려진 흰쌀밥을 먹으며 실무는 무척이나 인간적으로 먹이는구나하고 잠시 착각하기도 했었다.
만족스러운 식사 후에 또다시 인원파악을 거치고 나서 그날의 마지막 과업인 석별과업을 병사 청소로 마감하고 나서 독가스실로 줄지어 끌려가는 유태인처럼 우리는 정해진 내무실로 들어갔다. 한낮에도 햇빛이 한줌도 들지 않을뿐더러 덩그러니 천정에 매달린 등 조차 희미해서 맞은편 구석에 앉은 동기의 얼굴이 어슴프레 했다. 며칠이나 이곳에 머물지 몰라 필수품 몇 가지만 내놓고 나자 원광대 한의예과를 다니다 왔다던 그 구대장이 다시 들어와 우리를 이 세상 제일 편한 자세로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면서 “1982년 국민성금으로 구입”이라는 표지가 붙은 15인치짜리 텔레비전을 틀게 했다. 그러면서 주말연속극으로 아주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으며 주인공 또한 무척이나 이쁘다고 감상적으로 말을 했었다.
가만히 헤아려 보니 우리는 이미 한달 반 이상을 텔레비전은 커녕 라디오조차 듣지 못해 도대체 바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있었다. 하기야 텔레비전이 있다한들 그걸 보며 희희낙락할 여유가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랜만에 야간훈련도 없고 무지막지한 DI들의 비상소집도 없었으니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을 제대로 즐길 수 있어 그때 구대장이 보여준 프로그램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 프로가 “아들과 딸”이었다. 김희애를 스타로 만들어 주었고 무명이었던 한석규를 일약 주류배우로 띄웠으며 ‘아, 글씨, 홍도야--’로 시작되는 노래를 중간 중간 불렀던 백일섭이 한동안 인기를 얻도록 해준 그 프로였다.
그 이후에도 한동안 그 프로가 방송되었겠지만 그날 밤 이후에는 본 기억이 전혀 없다. 아마 대대-중대-소대로 이어지는 실무부대로 배치되면서 새까만 이병이 감히 한가하게 주말저녁에 드라마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 이었으니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일찍 퇴근해서 할 일이 없는 요즘도 밤에 인터넷으로 그 프로그램을 가끔씩 보면 참 재미있다고 느껴진다. 벌써 스물두해 전 일이다.
첫댓글 친구의 기억력이 너ㅡ무도 또렷하여 한편의 다큐를 보는듯허이.나 또한 그시절이 있었던것 같긴한데 나의 머리속 그시절 그추억은 어제밤 비에씻겨 흣날려버린 황사모래처럼 희미하기만 하내그려...
무튼 친구덕에그 시절을 어렴풋이나마 추억할수 잇어서 고마울뿐이네.....
친구는 밤이면 집에서 해야할 숙제가 많아 힘들어서 그렇겠지만 홀로 사는 나는 전혀 그럴 일 없으니 아마 이런 거라도 잘 기억해야 될 듯하지
ㅋzㅋ////??????????????????????????
먼 소리고 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