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늘 언젠가를 꿈꾼다. 언젠가 뜻밖의 수확이라도 이뤄질것처럼.
언젠가 돈이 많이 생길것 같다. 세계 각지 려행이라도 마음껏 할수 있을것 같다.
언젠가 절절한 사랑이라도 할것 같다. 창밖에서 떨어지는 노오란 락엽을 바라보며 이쁜 커피잔 들고 카페에서 련인과 마주앉을것 같다.
언젠가 큰 영예를 떨칠것 같다. 언젠가 큰 권력을 잡을것 같다. 언젠가 큰 행복을 누릴것 같다. 언젠가 뭔가 크게 터질것만 같다…
나에게도 언젠가… 이런 꿈이 늘 부풀어있었다. 언젠가 항주 서호에 려행가고싶었다. 서호의 푸른 물결, 바람에 하느작거리는 수양버들, 고풍스러운 건축양식… 그림이나 텔레비죤에서만 보아오던 그 풍경을 감상하고싶었다. 마침 이번에 상해에 갔다가 120원만 내면 려행차로 쉽게 서호에 갈수 있음을 알게 되였다. 꿈꾸던 서호가 바로 내곁에 있었다. 서호에 도착하여 언젠가라는 내 꿈을 이루었지만 웬지 마음은 쓸쓸했다. 그냥 며칠전 예고 없이 발생한 아픔이 서호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마음의 여유마저 빼앗아갔다. 워낙 푸르디푸른 서호의 풍경에 심취되여야 했을텐데, 마치 황제라도 된듯이…
내가 꿈꾸던 언젠가가 현실로 이루어졌지만 웬 일인지 환상속에서 갈망하던 그 아름다움을 느낄수 없었다.
언젠가 상해야경을 보고싶었다. 어릴적에 텔레비죤드라마 《밤상해(夜上海)》를 보면서 상해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밤의 도시라고 생각했다. 동방명주탑에 올라가 하늘의 별무리가 쏟아져내린듯한 상해의 야경을 마음껏 감상하고싶었다. 그런데 동방명주로 찾아간 날은 국경절 전날 밤이라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대여섯시간 지루하게 줄을 서야 된다고 했다. 너무 늦으면 돌아가는 전철이 끊기기에 포기할수 밖에 없었다.
상해에서 돌아오는 날은 밤비행기였다. 언젠가 볼거라고 꿈꾸었던 상해야경을 볼 기회가 생겼다. 높이 떠서 아래로 굽어보는《별꽃도시 밤상해》―얼마나 아름다울가? 그런데 비, 태풍때문에 비행기가 제 시간에 뜨지 못한단다. 이윽고 밤비행기가 취소되였다고 통지했다.
모두들 항의했지만 결국 호텔로 밀려갔다. 꽤 고급스러운 호텔이였지만 언제 비행기가 뜰지 몰라 기분은 엉망이였다. 호텔에서 마련한 음식을 먹고 낯선 사람과 한방을 쓰며 초조하게 기다려야 했다. 지진때문에 페허속에 갇힌 사람처럼 불안했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쳐있다가 이튿날점심에야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렇게 상해의 야경을 보려던 꿈은 산산쪼각이 났다.
내가 꿈꾸던 또 하나의 언젠가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그런데 나는 언젠가를 꿈꾸느라 수많은것들을 놓쳐버렸다.
언젠가 바라볼 상해의 야경을 꿈꾸느라 시골의 야경을 무시했다.
언젠가 감상할 항주 서호의 아름다움을 꿈꾸느라 고향의 실개울을 무시했다.
언젠가 산책할 소주의 원림을 꿈꾸느라 고향의 들꽃을 무시했다.
언젠가 도취될것 같은 향산의 단풍을 꿈꾸느라 고향의 무성한 나무잎을 무시했다.
언젠가 다녀올 남경장강대교를 꿈꾸느라 시골의 징검다리를 무시했다…
기실 고향의 산천초목은 그 무엇보다도 소박하고 진실하고 참된 아름다움이였다.
들꽃 한송이도 그윽한 향기였고 단풍잎 하나도 아름다운 련가였으며 실개울 흐름도 청아한 노래소리였는데…
망연하게 꿈꾸던 그 언젠가때문에 수많은 오늘의 소중한것들을 덧없이 잃어버린것을 드디여 알게 되였다.
막상 언젠가라는 아름다운 환상을 이룰 시기가 왔어도 그 환상이 눈가루처럼 흩날려버릴수도 있었다. 가령 이루었다 해도 뭉게구름처럼 부풀어오르지 않을수도 있었다.
언젠가… 그곳에는 결코 아름다움만이 있는것이 아닐것이다.
하물며 세월이 흘러 언젠가가 될 때면 우리는 머리가 희고 주름살도 가득하며 눈도 어두워지고 걸음걸이도 휘청거리고 사고력도 무뎌질것이다…
그때면 희망보다 실망이, 건강보다 아픔이 더 많을것이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나는 그 언젠가를 상상하느라 그냥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서도 언젠가 고백할 때가 있겠지 하고 기대리기만 했었다. 그러다가 끝내 말 한마디도 못하고 그냥 그 사람을 떠나보냈다. 그 어리석음, 그 아픔, 그 후회, 그 허무함, 그 쓸쓸함…
인생에 언젠가 황홀하고 위대하고 큰것이 웅크리고 앉아있는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것 같다.
물론 언젠가를 꿈꾼다는건 희망과 에너지를 줄수 있는 좋은 면도 있지만 대신 수많은 오늘을 지루하게 평범하게 무시하며 흘러보냈다. 어리석게도 그 언젠가만을 꿈꾸는 사이 물방울이 바다에 흘러들듯이 수많은 오늘들이 흔적없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비행장 대기실에서 결항한 비행기를 기다리며 끊임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비 내리는 정경도 그야말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문뜩 했다. 명멸하는 가로등아래에 쏟아져내리는 비가 멋스러웠다.
누군가 핸드폰에 올린 고향의 벼이삭, 단풍이 든 나무, 모아산 산책길을 감상하면서 내 고향에도 이런 아름다운 풍경이 있었음을 먼곳에 가서야 드디여 알게 되였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것들을 소중하게 향수하지 못한 후회가 갈마들었다.
이제라도 언젠가란 아득한 나날을 꿈꾸기보다 반짝이는 오늘을 만들어가고싶다.
오늘의 구석의 내 자리라도 소중히/
내 짝들이 잠간 맘에 안 들더라도 소중히/
내가 하는 일이 짜증이 나더라도 소중히/
나의 운명이 억울해도 소중히/
매일 연인을 만나는 그런 설레이는 마음으로 오늘을 맞이하고싶다. 뜻깊게 벅차게…
다시는 언젠가 별을 따오는 그런 꿈만 꾸지 않을것이다.
오늘저녁 직접 옥상에 올라가 밤하늘의 별을 바라봐야겠다. 구름에 가리워 별이 조금 희미하게 보일지라도 걸상을 딛고 더 높이 서서 내 마음의 별을 바라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