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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법어--마하반야바라밀이라는 말의 창조력(1)
금주의 법사--각화사 주지 혜담 스님
~~~잠깐 지은 죄로도 무간지옥에 빠지게 되느니라. 사람 몸을 한 번 잃으면 만 겁을 지내도 다시 얻기 어려우니라. 젊은 시절이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은 달음질 치는 말과 같고, 사람의 목숨을 믿을 수 없는 것은 산 위에서 내려 붓는 물보다 빠르니라. 오늘은 비록 살아 있다 하지만 내일을 다시 보증하기 어려우니라.~~~(보살계 서문 중에서)
<법문내용>
존경하고 사랑하는 불광법회 법등가족 형제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또한 유튜브를 통해 전국에서 오늘의 불광법회를 함께 하고 계시는 전국의 사부대중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형제 여러분의 가정에 부처님의 자비위신력이 넘쳐나고 마음이 다들 청안하시길 축원해 마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에 동녘에서 해가 떠오를 때 하늘을 봤더니 얼마나 맑고 청량한지 마치 제가 6~70년대에 있는 것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청명했습니다. 이런 맑고 청명한 5월의 향기가 여러분의 가정에 가득하길 또한 빌어마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드릴 제목은 '마하반야바라밀이라는 말의 창조력'이라 했습니다. 제목 자체가 거창해서 할 말도 상당히 많지만 40분 정도 하고 다음에 마무리지을까 합니다. 법회보에 나오는 것처럼 '운명의 원형'이란 말이 있습니다. 저는 출가 전에 울산에 있는 태광산업이란 기업에서 1년 반을 설계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주로 망가진 기어를 설계해서 주물공장에 보내서 만들어오는 것입니다. 기어를 다시 만들기 위해 설계할 때 다 재서 모형을 뜨고 주물공장에 보내면 거기서 코아를 만들어 주물을 붓는데 주물을 부을 때 원형 자체가 발라야 기어가 바르게 만들어지지 만약 원형이 비뚤어지면 잘못된 기어가 만들어지지요. 물론 오늘날은 3D 프린트가 나와서 옛날과는 다를 겁니다. 그러나 세상의 만사는 원형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도 원형이 있는데 그 원형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가 오늘 말씀드릴 내용입니다.
우리에게는 남을 비방 시기하고 헐뜯는 마음도 있고 아니면 보살의 마음으로 자비롭고 넉넉하고 남을 격려하고 돕는 마음도 있습니다. 시기하고 헐뜯는 마음을 다 버리고 남을 돕고 함께 살아가는 보살의 마음이 더 낫겠지요. 그것을 원형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는 불광법회 형제 여러분으로서는 마하반야바라밀이라는 마음의 원형을 간직해야 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의 원형을 간직하는 것이 염송인데 제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화엄경』의 일체유심조, 일체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는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사실 마음이 무엇인가 하는 데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대해서 부처님께서는 유식에서 심의식이라고 세 가지로 나눠진다고 합니다. 첫째 유식불교에 나오는 제8아뢰야식으로 우리의 운명을 처음으로 갖고 다음 생에까지 이어가는 것으로 심이라고 했습니다. 다음은 제7 말나식인 의로서 분별식으로 시기하고 분별하는 것을 의라고 합니다. 셋째는 식으로 제6식으로 보통 의식이라 합니다. 사실 세계적으로 의식에 대해 연구하는 대학이 많습니다만 우리나라 대학은 잘 모르지만 유명한 미국의 유수대학에서는 거의 '의식연구소'가 있습니다.
사실 의식이란 우리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의식이 어디에서 생겨날까요? '뇌의식의 기초'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 저자가 잘못 생각하는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뇌속의 피질에서 의식이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이 일부 학자들의 주장입니다. 아무도 의식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생기는지 아직 발견 못했습니다. 뇌과학자 사이에서도 정확한 이론이 없습니다. 그냥 말 좋아하는 과학자들이 의식은 뇌속에 있다고 하지만 뇌속의 어디에 있는지 밝힌 사람은 없습니다. 뇌속에는 의식이 없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35,000년 전에 큰 깨달음을 이뤘다고 하는 람타에 의하면 의식이란 물질적으로 아무 것도 없는 광대한 무이지만 잠재적으로 모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양자물리학에서도 양자는 아무 것도 없는 텅빈 공이면서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한량없는 공덕이 함장되어 있다는 것을 이름해서 공, 보이드라고 합니다. 공에서 바로 의식이 나오고, 의식이 나오면 거기에 에너지가 있어서 뇌속에서 생각을 만들어내고 생각은 정지화면으로 보관하는데 정지화면을 우리는 보통 생각이라 말합니다. 생각이 현상세계를 만들어낸다고 하는 것이 의식에 대한 대체적인 설명입니다. 저는 이 설명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공 자체, 양자장 자체 거기에서 의식이 형성되고 그것이 세상을 만든다는 이론이 맞다고 볼 때 일체유심조의 심은 제8아뢰야식을 가리키기 보다 오히려 제6식인 의식을 가리키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 의식을 우리가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달라지겠죠.
광덕대선사께서는 '반야심경 강의'에서 공만 있는 있는 것이 아니고 공이 아닌 것, 불공이 있다고 썼습니다. 지난번 말씀드린 것처럼 이 법은 한국불교에서 뿐 아니라 중국, 일본 불교 어디에서도 말씀한 적이 없고 최초로 말씀하신 분이 광덕스님입니다. 다른 스님들은 이런 말한 적이 없습니다. 기껏 공을 말하면 아공과 법공, 아와 법이 다 공한 것을 말하지 불공처를 말한 적은 없습니다. 스님께서 어디에 근거를 두고 이런 말씀을 했을까 수십 년 책을 찾아보다가 5년 전에 『맛지마 니까야』를 접하면서 보니까 '공이 전부가 아니라 불공이 있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공이 아닌 것이 근본이라고 나와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당시에는 『맛지마 니까야』가 한국에 번역되어 있기 전이었는데 어떻게 이것을 아시고 책을 쓰셨을까 생각하니 이건 필시 큰스님께서 공자리를 깨달아서 쓰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불공 자체에서 삼라만상, 산하대지가 현진광이고, 육도중생이 여래공덕의 시현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습니다. 산하대지가 전부 진리의 나툼이고 육도중생, 우리의 사는 이 모습이 바로 여래 부처님 공덕의 시현이라는 뜻입니다. 부정적으로 보면 참 힘듭니다. 저는 요근래 한 달 정도 참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너무하다. 이건 인간도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괴로워하고 힘들어하지만 그것을 박수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생 삶이 힘든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불공의 자리에서 보면 육도중생의 삶,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삶이 부처님 공덕의 시현, 나타났음이라 봤을 때 우리 삶은 얼마나 큰 영광이 있습니까? 우리는 고통을 받으려고 세상에 온 것이 아니고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나와 있는 겁니다. 나름대로 자기에게 맞는 세상을 창조하고, 우리의 공덕을 창조하기 위해 우리는 이 세상에 생을 받은 겁니다. 이것은 중요한 겁니다.
이것을 우리 마음에 새길 때 공덕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하나 우리는 반야바라밀의 생명임을 알게 됩니다. 즉 반야바라밀의 생명은 영원하고 청정하고 무량공덕을 갖고 있는 겁니다. 그 생명을 내가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면서 가슴에 새길 때 그것이 내 마음의 원형이 되는 겁니다. 원형이 되기 때문에 모든 것은 내가 바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서 큰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길 일과정진을 지켜라고 하셨습니다. 하루에 10분, 20분이라도 잊지 말고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겁니다. 내 마음의 원형을 마하반야바라밀로 만드는 겁니다. 누구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원형을 만들었을 때 내 삶이 그만큼 여래 공덕의 시현으로 현상세계에 마음을 나투게 됩니다. 나툰다는 것은 특이한 말로 한문으로는 현현이라 합니다. 자주 말씀드리지만 형제 여러분이나 저 모두가 진리의 시현이라 업보중생으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아침에 맑은 하늘을 보면서 정말 휘황찬란한 아름다운 세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품반야경』 「권지품 제 34」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교시가야, 자네는 반드시 반야바라밀을 받아지니고 독송하며, 남을 위하여 설하고 바르게 사유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아수라가 욕심을 내어서 삼십삼천과 싸우고자 하면 교시가야, 자네는 이때 반드시 반야바라밀을 송념해야 하고 그러면 모든 아수라의 나쁜 마음이 바로 소멸되고 다시는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법회보 참조)
여기 내용으로는 33천과 아수라가 싸움을 벌일 때 천상의 사람들이 마하반야바라밀을 송념하면 아수라의 나쁜 마음이 소멸되고 다시는 생기지 않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하반야바라밀을 송념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한다고 말합니다. 3~40년 된 이야기인데 어느 스님 교수가 큰스님을 찾아왔을 때 저는 옆에서 들었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은 참 좋은 제목입니다. 이것을 고안해서 법회를 한다는 것이 참 놀랍습니다.' 하면서 찬탄인지 비난인지 모를 말씀을 큰스님께 드렸는데 큰스님은 같잖았던지 아무 대꾸도 않으시고 싱긋이 웃고만 계셨습니다. 뒤에 보니 /아무 것도 모르면서 왜 그런 말을 하느냐'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품반야경』에 나오는 것처럼 마하반야바라밀의 송념이란 경에 나와 있는 것으로 부처님께서 마하반야바라밀을 송념하라고 했습니다. 33천과 아수라가 싸울 때 그걸 물리치기 위해 송념하라 했습니다. 『대품반야경』에서는 송념이라 했는데 스님께서는 왜 염송이라 했을까요? 쉽게 생각하면 부처님을 염불하듯이 송으로 하니까 염송이라 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아닙니다. 1997년도에 저는 '반야불교 신행론'이란 책을 냈습니다. 이것은 아마 한국불교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반야바라밀의 신행에 대해서 정리한 책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보면 반야바라밀의 염송이 있습니다. 왜 불광법회에서는 반야바라밀을 염송한다고 하는가에 대해 정리해두었습니다. 사실 저희가 공부할 때 반야경이 하도 많기 때문에 어느 반야경에 실렸는지 모릅니다. 크게는 600부 『대반야경』이 있고 27권 『대품반야경』이 있고 10권 짜리 『소품반야경』도 있는 것처럼 많은 반야경이 있기 때문에 반야경만 연구해도 책이 몇 권 될 겁니다. 실제로 일본 교수의 경우에 반야경 종류만 연구한 책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각 반야경마다 다 있습니다. 『대품반야경』에 나오는 이 부분, 반야바라밀을 송념하라는 부분이 4~5페이지로 나와 있습니다. 『대반야경』 428권에서는 반야바라밀을 염송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큰스님께서는 반야바라밀 염송하는 수행법을 말씀하실 때 『대반야경』을 보시고 정한 겁니다. 광덕큰스님께서 불광법회 만들어 마하반야바라밀을 수행법으로 생각하실 때 『대반야경』에 나오는 부분을 보고 정하신 것이고 저는 『대품반야경』을 공부했기 때문에 송념이라고 적었습니다. 참 안타까운 것은 반야경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이 대한민국 전체에 없습니다. 광덕문도 뿐만 아니라 다른 스님도 안 합니다. 그래서 제가 죽고 나면 이것을 우리 형제들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줄 수 있는 맥도 끊어지겠다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갖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 형제 여러분이 이것을 스님들에게 알려줘야 될 겁니다. 거꾸로 되는 거죠. 여러분은 그런 막중한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는 이유는 『대반야경』 428권에 나와 있고 그래서 우리는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합니다. 염송을 외운다고 하는데 외운다는 건 외울 송자를 씁니다. 외운다는 건 수학공식과 단어를 외우는 건데 염불하듯이 계속 같은 말을 읊조리는 건 외운다는 말을 안 합니다. 외운다고 말하면 이상하니까 염불 혹은 염송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렇게 염송할 때 우리의 생명에서는 마하반야바라밀의 원형이 형성되는 겁니다. 우리의 삶이 그 원형이 나타나는 것으로 전개됩니다. 가끔 잘못 생각해서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헐뜯는 마음이 생길지라도 원형이 나타날 때는 그 시기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겁니다. 그래서 마하반야바라밀을 항상 염송하라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잘 사는 방법입니다. 33천은 천상의 제석천으로 보신각의 종을 33번 치는데 어떤 사람은 33번 치는 것을 독립운동 33인이라 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천상인 33천의 천상 세계를 연다는 의미로 종을 33번 칩니다. 아수라는 끊임없이 33천에 도전합니다. 천상 세계의 여자들이 예뻐서 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벌입니다. 전쟁을 벌일 때마다 부처님이 일러주신 대로 천상세계의 사람들이 마하반야바라밀을 송념하니까 바로 그 나쁜 마음이 소멸되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이것은 도깨비 방망이입니다.
큰스님께서도 법문시에 마하반야바라밀은 도깨비 방망이란 말을 여러 번 하셨고 지금도 호법법문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 불광의 형제들은 모두가 마하반야바라밀이란 도깨비 방망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좋지 못한 마음이 났을 때 그냥 마하반야바라밀 하면 그 마음의 원형이 마하반야바라밀로 바뀌고 그때 우리 삶에는 심도깊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게 신앙의 힘이죠. 막연하게 마하반야바라밀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내 생명의 원형이 그렇게 결정되어 있으니 그 원형을 꺼내서 쓰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염불 염송을 하더라도 이것을 꺼내 쓰는 방법을 모른다면 헛일이죠. 그래서 이것을 꺼내쓰는 지혜가 있을 때 우리는 불자 중에서도 반야바라밀에 입각한 불자가 되는 것이고 이것을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데에 불광불자들의 사명이 있는 겁니다. 전법오서가 나오는 것이 바로 이 이치입니다. 신도를 많이 모으기 위해 전법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네 생명의 원형을 마하반야바라밀로 무장시키라는 것을 전해주고 그렇게 살라고 하는 것이지 불광에 사람을 많이 모으자는 게 아닙니다. 이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서 마하반야바라밀이 이 땅에 가득 해서 모든 사람이 마하반야바라밀 속에서 행복하게 사는 그런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해 마지 않습니다. 오늘 이 정도로 줄이고 다음 기회 있을 때 두번 째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불광인의 선서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우리는 불광법등입니다. 전법으로 최상의 보은을 삼겠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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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토록 혼란스러운 현장을 잘 알려주시고 법문을 기록해 주시느라고 바라밀 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일요 법회를 끝낼 수 있었으련만,
일요법회를 배려의 마음으로 오전 9시에 시작했는데...
우리가 불사한 법당에서 하는 법회가 불법이라며 소리치는 저 객기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온 음향 기기의 최대치로 소리 지르니, 불광 형제들이 난청이 될 것 같습니다
제발, 불광 스님 및 방해하는 저분들, 부처님 되시길 바람 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