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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坡州市]
역사
삼국시대에 고구려의 영역에 속하여 파해평사현(坡害平史縣)과 술이홀현(述爾忽縣)이 설치되어 있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편 때 파해평사현은 파평현(坡平縣)으로 개칭되어 내소군(來蘇郡)의 영현으로 되고, 술이홀현은 봉성현(峰城縣)으로 개칭되어 교하군(交河郡)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도 계속해서 파평현과 봉성현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1018년(현종 9)에 파평현은 장단현(長湍縣)의 속현이 되었고 봉성현은 양주(楊州)의 속현이 되었다. 그 뒤 1062년(문종 16)에 파평현이 개성부(開城府)에 내속(來屬)되었으며, 1106년(예종 1)과 1172년(명종 2)에 각각 파평현과 봉성현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그리고 1387년(우왕 13)에는 봉성현이 서원현(瑞原縣)으로 개칭되면서 감무 대신 현령이 파견되었다. 조선 초인 1393년(태조 2) 서원현이 이민(吏民)들의 청원에 의해 군으로 승격되었으며, 1398년에는 파평현과 서원군이 합해져 원평군(原平郡)으로 개편되었다. 1414년(태종 14)에 교하현이 내속해옴으로써 1,000호(戶) 이상이 되어 다음해에 원평도호부(原平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418년에는 교하현이 다시 독립함에 따라서 1,000호 미만이 되어 마땅히 군으로 강등되어야 할 것이나 이민들이 호소하여 그대로 도호부로 남게 되었다. 1460년(세조 6)에는 왕비 정희왕후(貞熹王后) 윤씨의 고향이라 하여 파주목(坡州牧)으로 승격되었으며, 1504년(연산군 10)에 이곳이 유행지소(遊幸之所)로 되어 파주목이 폐지되고 이웃 고을에 분속되었다가 1506년(중종 1)에 다시 파주목으로 복구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1613년(광해군 5)이의신(李懿信)에 의해 교하천도론(交河遷都論 : 지세가 노쇠해진 한양에서 파주의 교하로 서울을 옮기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논의에 그치고 말았다. 1895년(고종 32) 부군제 실시에 따라 파주군으로 고쳐져 한성부 관할이 되었으며, 다음해 13도가 설치되면서 경기도 관할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교하군 전역과 양주군 · 고양군 · 적성군(積城郡) 일부가 각각 파주군에 폐합되어 주내 · 천현 · 월롱 · 광탄 · 조리 · 임진 · 파평 · 와석 · 청석 · 탄현 · 아동 등 11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으며 1934년에는 청석면(靑石面)과 와석면(瓦石面)이 합쳐져 교하면으로 되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자, 종래 연천군 관할이었던 적성면과 남면이 이 군에 편입되었으며, 다음해남면은 다시 양주군으로 편입되었다. 1963년에는 전 장단군 군내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 임진면에 편입됨에 따라 이웃 연천군과의 행정구역 조정이 대폭 이루어졌고, 1972년에는 전 장단군의 장단면 · 진서면 · 진동면이 이 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 아동면(衙洞面)이 금촌읍으로, 임진면이 문산읍으로 각각 승격되었으며, 1979년 군내면 백련리 통일촌(統一村)에 군내출장소(郡內出張所)가 설치되었다. 1980년주내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가 1983년에는 파주읍으로 개칭되었고, 같은 해양주군 백석면 기산리 · 영장리가 광탄면에, 파평면 이천리가 문산읍에 편입되었으며, 광탄면 영장출장소(靈場出張所)가 설치되었다. 1987년 광탄면 기산리 일부가 양주군 백석면으로 편입되었다. 1989년 교하면 상지석리의 일부가 조리면에 편입되었고, 천현면이 법원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90년 장단면 정동리가 설치되었다. 비옥한 평야와 관광 명소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역사적인 지역으로서 1996년 3월 1일 금촌읍 전체가 동으로 되고 군 자체가 시로 승격되었다. 2002년 4월 1일 교하면과 조리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유물 · 유적
선사시대의 유적으로 적성면 가월리에 적성면 가월리에 파주 가월리와 주월리 유적(사적, 1994년 지정), 월롱면 덕은리의 파주덕은리 주거지와 지석묘군(사적, 1966년 지정), 교하읍의 파주 다율리 · 당하리 지석묘군(경기도 기념물, 1992년 지정) 등이 있다. 관방유적으로는 탄현면 성동리에 파주오두산성(사적, 1991년 지정), 적성면 구읍리에 칠중성(사적, 2002년 지정), 월롱면 덕은리에 월롱산성지(경기도 기념물, 2004년 지정)가 있다. 불교 유산으로는 광탄면에 파주용미리마애이불입상(보물, 1963년 지정), 영장리에는 1995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파주보광사숭정칠년명동종, 보광사(普光寺)에 1979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보광사대웅보전, 월롱면 덕은리에 용상사(龍床寺), 진동면 동파리에 1995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파주마애사면석불 등이 있다. 이외 광탄면 용미리에는 파주 혜음원지(사적, 2005년 지정)가 있다. 유교 유산으로는 법원읍 동문리에 파주 이이 유적 내의 자운서원(사적, 2013년 지정)과 자운서원묘정비(사적, 2013년 지정), 파평면 눌로리에 1983년 경기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파산서원, 금릉동에 1983년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교하향교, 파주읍 파주리에 1992년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파주향교 · 파주향교대성전, 적성면 구읍리에 적성향교, 월롱면 덕은리에 용주서원(龍洲書院) 등이 있다. 능과 묘로는 탄현면 갈현리에 조선 인조와 인조 비 인열왕후(仁烈王后) 한씨의 능인 장릉(사적, 1979년 지정), 조리읍 봉일천리에 조선 예종 비 장순왕후(章順王后)와 성종 비 공혜왕후(恭惠王后), 영조의 장자 효장세자(孝章世子 : 眞宗)와 그의 비 효순왕후(孝純王后)의 능인 공릉 · 순릉 · 영릉(사적, 1970년 지정), 광탄면 영장리에 소령원(사적, 1991년 지정) · 수길원(사적, 1991년 지정)이 있다.
이 밖에 광광탄면 분수리에 윤관장군묘(사적, 1988년 지정), 탄현면 금승리에 황희선생묘(경기도 기념물, 1976년 지정), 법흥리에 정연묘역(경기도 기념물, 1993년 지정), 문산읍 사목리에 황희선생영당지(경기도 기념물, 1976년 지정), 파평면 율곡리에 이세화선생묘(경기도 기념물, 1981년 지정)가 있다. 또한 조리읍 장곡리에 이회선생신도비(경기도 유형문화재, 1984년 지정), 파주읍 향양리에 성혼선생묘(경기도 기념물, 1981년 지정), 연풍리에 윤곤선생묘(경기도 기념물, 1987년 지정), 법원읍 동문리에 사적 파주 이이유적 내에 위치한 신사임당묘(사적, 2013년 지정) · 이이선생묘(사적, 2013년 지정), 진동면 하포리에 허준묘(경기도 기념물, 1992년 지정)이 있다. 그리고 적석면 무건리에 김덕함 묘 및 신도비(경기도 기념물, 1993년 지정), 광탄면 분수리에 심지원(沈之源) 묘 및 신도비(경기도 기념물, 1992년 지정), 탄현면 오금리에 공효공박중손묘역내장명등(보물, 2001년 지정) 등이 있다. 이외 월롱면 덕은리에 춘곡정탁묘역(경기도 기념물, 2000년 지정), 교하읍 당하리에 파평윤씨 정정공파묘역(경기도 기념물, 2002년 지정), 진동면 서곡리에 유항한수묘역(경기도 기념물, 2003년 지정), 진동면 하포리에 사제김정국묘역(경기도 문화재자료, 2003년 지정) 등이 있다. 고건물로는 문산읍 사목리의 반구정(경기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 파평면 율곡리의 화석정(경기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등 황희, 이이가 만년에 자연을 벗삼아 학문을 논했던 정자가 있다.
근대문화유적으로는 6·25사변으로 인해 생겨난 것으로 임진각(臨津閣) · 통일공원(統一公園) · 판문점(板門店)과 자유의 다리(경기도 기념물, 1996년 지정) 등이 있다. 자유의 다리는 임진강의 남과 북, 분단된 국토의 남북을 잇는 가교로서 길이는 약 83m이다. 이외에 장단면 동장리에 2004년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유산)로 지정된 구장단면사무소 · 2004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구장단역터 · 2004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경의선증기기관차, 2004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장단면 도라산리에 경의선장단역죽음의다리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산남동 · 송촌동 일대의 한강하류재두루미도래지(천연기념물, 1975년 지정)와 적성면 무건리의 파주적성면의 물푸레나무(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 다율동에 교하물푸레나무(경기도 기념물, 2002년 지정)가 있다. 무형유산으로는 탄현면 법흥리에 1971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된 궁시장과 2000년 경기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된 탄현면 금산리에 금산리민요가 있다.
교육 · 문화
옛 교육기관으로는 조선시대 지방 교육기관인 향교가 파주 · 교하 · 적성 등 세 곳에 있는데, 이는 파주군이 조선시대에는 파주목 · 교하현 · 적성현의 셋으로 독립되어 각기 교육기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향교는 국가에 소속된 학교로서 지방에 있는 양반자제들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조선 중기 이후 용주서원(龍州書院) · 파산서원(波山書院) · 자운서원 등이 설립되면서부터 관학인 향교에만 의존하던 것을 탈피하여 서원에 들어가 공부하게 됨으로써 근대교육 이전에 있어서의 교육기능은 향교와 서원이 거의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현재의 교하초등학교가 1907년 사립 선성학교(宣城學校)로 가장 일찍 개교하였고, 1909년파주보통학교와 적성보통학교가, 1914년문산보통학교가 각각 개교하였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57개교, 중학교 24개교, 고등학교 17개교, 특수학교 2개교와 웅지세무대학교가 있다. 문화시설로는 군립도서관이 있어 교육 ·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며, 문화원에서는 매년 10월 중에 율곡문화제(栗谷文化祭)를 개최하고 있다.
민속
이 지역의 중요한 민속놀이로는 원평민속농악놀이(原平은 파주의 옛 이름)를 들 수 있다. 농악놀이는 우리나라에 예로부터 전래되어오는 독특한 고유의 민속놀이로서, 옛날에는 어느 지방에서나 성행했으나 이 고장에서는 한동안 소멸되었던 것을 10여 년 전부터 일으켜 경기농악의 원형을 재연하게 된 것이다. 농악놀이는 음력정월과 팔월 한가위 · 사월 초파일 · 오월 단오 · 백중날 등 우리의 전통적인 명절이나 뜻있는 날에 노는 것으로 평소에는 농사에 종사하면서 두레패를 꾸며 공동작업으로 능률을 올리고 또한 대동단결을 목적으로 하여 계절적으로 놀기도 한다. 가을의 수확이 끝나면 동네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걸립농악(乞粒農樂)을 꾸며 골고루 갖추어 동네를 돌기도 한다. 이때에는 우선 기를 앞세우고 풍물잡이 · 영좌 등 20∼30명으로 편성되며 12채가락을 치며 동민들과 함께 어울려 흥겹게 노는 것이 보통이다. 놀이가 끝나면 집집마다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고사반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는 멋진 덕담으로 축원을 해준다. 동제로서 유래가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패동심학산(尋鶴山) 산신제는 이 산이 영험한 곳이라 하여 3년마다 못자리가 끝나는 음력 3월에 날짜를 택해 밤 12시에 행해진다. 산 상봉에 있는 넓적한 바위를 제단으로 하여 이곳을 복바위라고 하며, 쇠머리를 바치고 제물을 올려 축문을 읽는 등 모든 절차를 거쳐서 엄숙히 진행된다. 제를 지내기 전에 동네 어른 중에서 제관을 뽑아 목욕재계하고 부정한 일이 없게 근신함은 물론, 관례에 따라 모든 것이 엄격히 규제된 가운데 진행된다. 이 산신제는 5개 리가 합동으로 지내는데 산신제가 끝나면 마을사람들은 동네별로 음식을 장만하여 먹으며 각각 포장을 치고 함께 어울려 논다. 이 때 무당들이 3일간 농사의 풍년과 마을의 평안, 소원성취를 빌며 굿을 하는데 굿이 끝나는 대로 하산하게 되어 있다.
설화 · 민요
이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소개비냥의 전설」은 자신의 힘을 믿고 행패를 부리다가는 더욱 힘이 센 장사를 만나서 곤욕을 치르게 된다는 교훈이 담긴 이야기이다. 탄현면 대동리의 소개비냥은 과거에 절벽으로 되어 있었고, 아래는 수심이 깊었으며, 비냥 위로는 겨우 한 사람이 지나다닐 정도의 소로가 나 있었다고 한다. 옛날 이 고을의 장사 김승경은 주먹으로 내려치면 바위가 갈라질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인근 마을을 드나들면서 행패가 무척 심했다고 한다. 김승경이 하루는 소개비냥에서 말을 타고 가다가, 역시 말을 타고 오는 젊은 초립동이를 만나게 되었다. 서로 길을 비키라는 시비 끝에 김승경이 화를 내며 젊은 초립동이를 발로 걷어차니, 초립동이는 말과 함께 벼랑 밑 강물로 떨어졌다. 그러나 사람과 말이 수면에 닿는 순간, 이 초립동이는 말을 안고 그 높은 벼랑을 단숨에 뛰어올라 왔다. 초립동이는 놀라서 도망치는 김승경을 잡아, 몹쓸 짓을 많이 한 김승경의 한쪽 팔과 다리를 부숴 더 이상 행패를 못하게 하였다. 이에 크게 깨달은 김승경이 성격이 불량하고 행패가 심한 세 아들을 엄히 훈계하여 착한 사람이 되게 하였다는 내용이다. 또 다른 설화는 적성면 두지리 앞강에 마치 말이 머리를 물에 대고 있는 듯한 형상의 용머리[龍頭山]에 얽힌 전설이다. 옛날 이 용머리 근처에 살았던 구두쇠노인에게 시주를 하러 왔다 거절당한 중이, 용의 목에 해당되는 부분을 가리켜 명당이니 묘를 쓰면 큰 부자가 되리라고 하였다. 이 말을 믿은 구두쇠노인이 그곳에 묘를 쓰자, 혈을 끊게 되어 핏물이 솟아오르고 노인은 망하고 말았다는 내용이다. 이 밖에 적성면 장좌리의 「장자못전설」, 파평윤씨의 시조 윤신달이 강을 건널 때 강물이 말라서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는 「여음탄전설(如飮灘傳說)」, 윤관이 죽자 그의 여진족 첩인 웅(熊)이 몸을 던져 순사하였다는 「곰소전설[熊潭傳說]」, 3,000명의 도둑이 웅거하여 그 이름이 되었다는 월롱산 뒤편에 있는 삼천도둑골의 지명유래담 등이 이 고장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고장에 구비전승되는 민요는 노동요와 타령요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경기도지방의 일반적 특징이다. 노동요 중에는 「모내기소리」가 대다수인데 이는 이 고장이 평야지대로 논농사가 주이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을 들면 「허나허나」(모내기소리)인데 이는 선창중답식의 노래로 후렴이 ‘허나허나’로 되어 있다. 이것은 ‘하나하나’의 와음으로 모를 하나하나 심어간다는 뜻이다. 그 일부를 소개하면 “천하만민들 농민들 들어보소/ 허나허나 한알기로구나(후렴)/ 한톨종자 땅에 묻어 공력들여 길러서(후렴생략)/ 허나소리 나기를 연달아 들어보소(후렴생략)/ 여기저기 꽂아도 마늘모로만 심어라…….”와 같다. 가락이 단조롭고 느리나 일의 속도에 따라 변화된다. 선창자가 가사를 부르면 다른 여러 사람들은 후렴을 합창하면서 모를 낸다. 가사는 모를 가지런하게 잘 심어서 풍년을 맞자는 내용이 일반적이고 더러는 쉬 늙어가는 인생의 허무를 노래하기도 한다. 「범벅타령」은 4음2보의 운율이 정연한 가창민요로 가락은 단조롭고 느리며 가사는 샛서방을 둔 아내의 불륜장면을 목격하여 샛서방을 쫓아내는 극적인 내용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설화적 민요이다. 민요와 소설과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는 노래이다. 그 일부를 소개하면 “……/ 이도령이 나려와서 여보여보 문을 여오/ 계집년의 거동보소 문열랜 소리에 깜짝 놀래 김도령 주체를 어찌할까/ 삼대사대 내려오던 뒤지 속에다 집어넣고/ 금거북 자물쇠로 어슥비슥 채워놓고/ 문열러 나가면서 계집년이 하는 말이/ 외방 장사 나간다드니 아닌 밤중에 웬일이오/ 이도령 하는 말이/ 고개고개 넘어가서 돌팔일 만났거늘/ 일년신수를 보니까는 삼대사대 내려오는 뒤지로 해서/ 안된다기에 뒤지를 캐러 들어왔소/…….”와 같다. 문답형식과 해학성이 뛰어난 희곡적인 내용은 지난날 우리 조상들의 오락성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산업 · 교통
전 토지의 41.3%가 임야이고 경지는 19.3%이며 하천 7%, 도로 2.6%, 공장용지는 0.9%이다. 임진강과 한강 하류의 유역평야에 입지한 파주시는 기름진 곡창지대의 하나인데 경지 중 논은 8,848㏊, 밭은 4,558㏊이다. 이들 농경지에 연풍 · 오산 · 공릉저수지 등이 관개용수를 제공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감자 · 콩 이외에 채소류로 배추 · 무 · 파 · 마늘 · 호박 · 오이 · 참외 · 수박 등이 생산되고, 특용작물로는 인삼 · 참깨 · 들깨, 과실류로 사과 · 배 등이 생산된다. 농가 인구는 전체 인구의 8.7%인 2만 7132명인데 농업인구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제조업 인구는 전체인구의 10.6%인 3만 3056명이다. 수도권 개발유보지역에 속해 있고 군사분계선에 가까이 접해 있어 2·3차 산업의 발달이 부진했으나 통일로와 자유로의 개통으로 서울과의 접근이 쉬워지면서 소규모의 공장이 계속 집중하고 있다. 주요 광산물은 규석과 석회석이 생산되고 제조업은 조립금속공업 · 섬유공업 · 식료품공업 · 비금속공업 · 종이인쇄공업 등이 발달하고 있다. 최근 LG필립스LCD단지가 조성되면서 최첨단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수많은 제조업체들이 들어서고 있다. 상업시설로 정기시장 · 상설시장 등이 있다. 금촌장이 1·6일, 문산장이 4·9일, 법원장이 3·8일, 봉일천장이 2·7일, 신산장과 적성장이 5·10일에 열린다. 이곳에서는 나물류와 채소류, 그리고 토산품 · 생활필수품이 거래되고 있다. 상설시장으로는 금촌시장 · 문산시장 · 선유시장 · 파주시장 · 연풍시장 · 자유시장 · 봉일천시장 · 광탄시장이 있다. 도로는 국도 1호선이 남북으로 지나고 있는데 이 도로는 1972년 4차선으로 직선화되어 통일로로 명명되었다. 이 도로의 개설로 서울∼파주간의 지역 교류가 활발해졌다. 그리고 문산읍에서 국도 37호선이 동북진하고 있다. 1993년 4차선 도로가 한강과 임진강변을 따라 서울에서 임진각까지 개통되었는데 이 도로는 자유로라고 불린다. 이 도로의 개통으로 일산∼문산읍의 발전이 촉진되고 있다.
관광
이 지역에는 광주산맥의 영향을 받아 저산성 산지들이 기복을 이루면서 동쪽으로 치우쳐 있고 임진강이 한강으로 흘러들면서 주변에 많은 관광요소의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월롱면 덕은리에서 발견된 고인돌 무리는 이곳에 서기전 7∼8세기경부터 사람들이 살아왔음을 밝혀주고 있는데, 동양에서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교하리와 다율리를 비롯한 곳곳에는 청동기시대의 유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남과 북을 잇는 서부 교통의 중심지이었으므로 역과 원이 많은데 대표적인 곳으로는 광탄원이다. 특히, 파주는 서울∼개성거리가 거의 같은 지점에 위치하여 나그네가 많이 머무르던 곳이며 안성장 다음가는 파주장은 쇠전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파주 사람들은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보다 사람과 문물이 거쳐 지나가는 길목으로써의 구실이 더 컸던 지역이다. 또한, 파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임진강 주변은 자연경관이 빼어나 관광지가 발달되어 있다. 하상은 물살이 빠르고 강변에는 층층이 톱날 모양으로 깎인 바위가 늘어서 있어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 외의 주요 관광명소로는 용미리의 부처돌입상, 덕은리의 옛주거지와 고인돌군, 갈현리의 장릉, 조리면의 공 · 순 · 영릉, 교하동한강 하류의 재두루미도래지, 파주읍 봉서리의 통일공원, 탄현면오두산의 통일전망대 등이 있다. 또한 법원읍 동문리의 자운서원, 광탄면 부수리의 윤관장군묘와 영장리의 보광사, 문산 마정리임진각 전면에 있는 반공전시관, 사목리의 반구정, 파평면 율곡리의 화석정, 파주향교 등이 있어 서울 시민의 안보의식을 높여줄 수 있는 좋은 관광코스이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4-08 15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