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특혜 채용, 왜 청년들이 더 분노하나
얄개 ・ 2025. 3. 11.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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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특혜 채용, 왜 청년들이 더 분노하나
- 공정과 상식 사회 가는 계기로 -
공정과 평등을 다룬 유명한 그림이 있다. 키가 다른 세 아이가 야구장 담장 앞에 서 있는 바로 그 그림이다.
담장 높이보다 키가 큰 아이는 야구 경기를 보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키가 보통인 아이와 작은 아이는 경기를 보려면 무언가를 밟고 올라서야 한다.
여기서 상자가 모두에게 한 개씩 주어지는 건 기회의 평등(equality)이다. 단, 이 경우에도 키 작은 아이는 경기를 볼 수 없다. 이때 키가 큰 아이가 자신이 밟고 있는 상자를 키 작은 아이에게 양보하면, 혹은 처음부터 상자가 그렇게 배분되면 세 아이가 모두 같은 눈높이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 이건 결과의 평등(equity)이다.
발판이 될 상자를 아이들에게 하나씩 주는 것과 각자의 형편에 따라 다르게 나눠주는 것 중 어느 것이 옳다는 정답은 없다. 그래서 기회의 공정함이냐 결과의 평등이냐 하는 건 끊임없는 논쟁거리가 된다.
이러한 가치관의 충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소재가 바로 시험이다. 결과의 평등을 강조하는 진보 진영은 모두가 똑같은 시험을 치르는 건 정의롭지 못하다고 말한다. 태어난 집안에 따라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모두를 같은 잣대로 평가하면 약자들에게 구조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수능 시험이다. 대치동에서 ‘학원 뺑뺑이’를 도는 학생과 농어촌에서 인터넷 강의로 공부하는 학생은 같은 출발선에 서 있지 않다. 그 격차를 좁히려면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 다양한 가치를 담아내야 한다는 게 그들 주장의 요지다. 정량 평가보단 정성 평가라는 것이다.
많은 청년이 여기에 반기를 든다. 이들은 수시보다 정시가 낫고, 사법고시도 부활시켜야 하며, 여러 단위의 평가에서 시험을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지방 의원을 뽑을 때도. 진보 진영은 이런 청년들이 시험 만능주의, 능력주의에 찌들어 약자를 보듬지 않는다고 힐난한다. 배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상자를 하나씩 나눠주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면서 말이다. 반쪽짜리 진실이다.
2030 세대가 시험으로 상징되는 능력주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이기심의 발로라기보다 현실을 향한 분노에 가깝다.
상자를 똑같이 나누지 않으면 키 작은 아이에게 더 많은 몫이 돌아갈까? 현실에선 오히려 키 큰 아이가 독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부모의 지위와 재력은 늘 정성 평가의 허점을 파고든다.
면접위원을 바꿔 아들을 채용했다는 의심을 받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 사무총장의 사례처럼, 툭하면 대두되는 입시·채용 비리가 그 사실을 증명했다.
중앙선관위 특혜 채용 논란을 보면 진보의 ‘꾸지람’보다 청년들의 분노가 현실에 더 가깝다는 걸 알 수 있다.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선관위 특혜 채용은 대부분 경력직 채용에서 발생했다. 관계자들은 서류·면접 점수를 조작해 고위직 자녀 채용에 편의를 봐줬다.
경남선관위는 직원 자녀 합격을 위해 면접에서 정당하게 점수를 받은 1·2순위자를 탈락 처리했다.
전남선관위는 아예 외부 면접위원들에게 서명만 한 공란 평정표를 낼 걸 요구한 뒤 자신들이 임의로 점수를 매겨 간부 자녀를 채용했다. 이러니 “차라리 시험 보고 한 줄로 세우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오는 거다.
[출처] 선관위 특혜 채용, 왜 청년들이 더 분노하나|작성자 얄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