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와 숙녀/박인환 詩 [시낭송: 박인희]
(배경음악: 김기웅 작곡, 편곡)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生涯)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少女)는
정원(庭園)의 초목(草木) 옆에서 자라고
문학(文學)이 죽고...
인생(人生)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孤立)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作別)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燈臺)...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未來)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木馬) 소리를 기억(記憶)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意識)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靑春)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雜誌)의 표지(表紙)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노래: 목마(木馬)와 숙녀(淑女) 작사: 박인환 詩 시낭송: 박인희 배경음악: 김기웅 작곡, 편곡 앨범: [세월아, 봄이오는길] 앨범정보: 정규앨범. 1974년 |
박인환(朴寅煥, 1926~1956)
박인환 詩人김기림과 함께 우리나라의 모더니즘 詩人의 대표적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전후 폐허 공간을 술과 낭만으로 누비며 고민하며 살았던 그는
유명한 시 '목마와 숙녀'와 '세월이 가면'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30세의
한창 나이에 그가 사랑하던 거리에서 통음(痛飮) 끝에, 그의 싯귀절처럼
술병처럼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목마와 숙녀'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페시미즘의 미래'라는 시어가 대변하듯
6·25전쟁 이후의 황폐한 삶에 대한 절망과 허무를 드러내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
영국의 소설가. 20세기 영국의 모더니즘 작가로 독창적인 소설 형식에 공헌
했으며, 당대의 가장 뛰어난 비평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아버지 레슬리 스테판은 '18세기에 있어서의 문학과 사회'의 작가였다.
울프는 1912년 레너드 울프와 결혼했으며, 1917년 그와 함께 호가스 출판사를
세워 자신의 작품을 출판했다.
1895년, 어머니가 사망하자 울프는 최초의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1904년 아버지가 사망하고 울프는 두 번째 정신이상증세를 보여 투신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1912년 레오나드 울프와 결혼하고 1915년 소설 '출항'을 출판. 1919년에는
'밤과 낮'을간행했다. 1925년에는 '댈러웨이 부인'이 큰 인기를 얻었고,
1927년에는 '등대로'가, 1928년에는 '올랜도'가 호평을 받았다.
1941년 3월 28일 우즈 강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행방불명되었는데, 강가에
울프의 지팡이와 발자국이 있었다. 이틀 뒤에 시체가 발견되었으며, 서재에는
남편과 언니에게 남기는 유서가 있었다.
자살의 원인으로는 허탈감과 환청, 정신이상 발작에 대한 공포심 등으로
추정된다.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