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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28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개선광정(改善匡正)’ - 4. 앞으로는 너를 베드로라고 부르겠다!
본문 : 요한복음 1장 42절(35~42절)
그런 다음에 시몬을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로구나. 앞으로는 너를 게바라고 부르겠다." ('게바'는 '베드로' 곧 '바위'라는 말이다.) <새번역>
성경에는 극적 반전을 보여주는 인물이 참으로 많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이 된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다윗, 히스기야, 호세아, 바울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수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모두 각 자 하나님 앞에서 반전 가득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반전의 인물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베드로’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시골 마을의 어부에서 사람 낚는 어부로 부름 받아, 예수님을 가장 곁에서 보필하는 수제자가 되었고, 멋진 고백에 대한 칭찬과 동시에 사탄이라는 꾸짖음을 듣기도 했습니다. 절대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노라는 말이 무색하게 예수님을 모른다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시 자신을 찾아온 예수님으로 인하여 온전히 회복되어 정말 수제자다운 삶으로 마무리했던,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 바로, ‘베드로’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반전의 인물 베드로와 예수님의 첫 만남에도 반전이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성경에서 두 가지 다른 장면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마태, 마가, 누가에서 등장하는 만남입니다.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걸어가시다가, 두 형제,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와 형제간인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나는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마태복음 4장 18~20절, 새번역>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가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마가복음 1장 16~17절, 새번역>
누가복음은 조금 더 세밀하게 그 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을 그치시고,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깊은 데로 나가,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아라." 시몬이 대답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대로 하니, 많은 고기 떼가 걸려들어서,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자기들을 도와달라고 하였다. 그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히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베드로 및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은, 그들이 잡은 고기가 엄청나게 많은 것에 놀랐던 것이다. 또한 세베대의 아들들로서 시몬의 동료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뭍에 댄 뒤에,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갔다. <누가복음 5장 4~11절, 새번역>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는 모두 어부로서 일을 하고 있던 베드로를 불러 ‘사람 낚는 어부’로 삼으시겠다는 첫 만남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조금 다른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시몬 베드로와 형제간인 안드레였다. 이 사람은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서 말하였다.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소." ('메시아'는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그런 다음에 시몬을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로구나. 앞으로는 너를 게바라고 부르겠다." <요한복음 1장 40~42절, 새번역>
바로, 침례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가 자신의 형인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리고 오면서 예수님과 베드로의 첫 만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중요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지금부터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베드로를 처음 부르셨을 때 베드로는 아직 ‘시몬’이었습니다. 시몬 베드로라고 기록하고는 있지만 사실상 12제자 중 열심당원 시몬과 구분하기 위하여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라고 소위 설명을 달아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마태, 마가, 누가 복음에서 예수님이 베드로를 처음 부르셨을 때 베드로는 베드로가 아니었고, 시몬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베드로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까? 흥미롭게도 각 복음서마다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특별히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복음서들의 기록 연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먼저 가장 먼저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마가복음이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 직전 정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주후 80년대, 요한복음은 주후 95년경입니다. 이렇게 기록된 연대가 빠른 순으로 보면서 성경 기록을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열둘을 임명하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덧붙여 주신 시몬과, <마가복음 3장 16절, 새번역>
가장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에서는 3장에서 12제자의 이름을 밝히면서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덧붙여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누가복음입니다.
열둘은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누가복음 6장 14절, 새번역>
역시나 누가복음도 12제자의 이름을 밝히면서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신 시몬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마태복음도 이와 비슷합니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첫째로 베드로라고 부르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과 <마태복음 10장 2절, 새번역>
마태복음도 역시나 12제자의 이름을 소개하면서 베드로라고 부르는 시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는 베드로에 대한 아주 특별한 기록이 등장합니다.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마태복음 16장 18절, 새번역>
마치 이 구절에서 베드로를 처음 베드로라고 부른 것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사실 기록을 살펴보았다시피 이미 베드로라고 부르셨지만, 지금은 그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신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계신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왜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는지, 베드로의 그 유명한 고백, 바로 이 고백을 통하여 알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 새번역>
그래서 요한복음의 기록이 더욱 더 의미가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복음서 중에 가장 늦게 쓰여 졌지만 베드로에 대한 첫 만남에 대해서 가장 먼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시몬을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로구나. 앞으로는 너를 게바라고 부르겠다." ('게바'는 '베드로' 곧 '바위'라는 말이다.) <요한복음 1장 42절, 새번역>
자, 이제 예수님과 베드로가 처음 만난 장면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갈릴리 호수에서 처음 만난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동생이었던 안드레의 소개로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처음 만난 자리에서 예수님은 시몬을 보고 게바, 즉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예수님이 베드로와 안드레가 일하는 갈릴리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시몬의 배인 줄 모르고 오른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에서의 첫 만남에서 여전히 헷갈려하고, 복잡해하고, 확신이 없었던 시몬의 배에 올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듣게 하실 기회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가장 가까이서 예수님이 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고, 고기가 가득 잡히는 경험도 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보시니, 배 두 척이 호숫가에 대어 있고, 어부들은 배에서 내려서, 그물을 씻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 배 가운데 하나인 시몬의 배에 올라서, 그에게 배를 뭍에서 조금 떼어 놓으라고 하신 다음에, 배에 앉으시어 무리를 가르치셨다. <누가복음 5장 2~3절, 새번역>
예수님은 요한복음의 기록대로 안드레를 통하여 베드로를 처음 만나셨고, 이 갈릴리 호수에서 두 번째 만남을 통하여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 모두 이 후로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라고 베드로를 설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드렸던 질문 그러면 언제 베드로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까? 라는 질문에 아주 쉽게 한 줄로 요약하면 베드로라는 이름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주셨던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신 것에 대해서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그 이유를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너무도 중요한 또 한 구절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한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후에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에 있던 베드로를 다시 만나러 간 장면입니다. 그리고 다시 만난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첫 마디를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아침을 먹은 뒤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장 15절A, 새번역>
한 번이 아닙니다. 3번이나 ‘베드로’가 아니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부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분명 처음 만남 때부터 베드로는 늘 베드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이 자신을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때 베드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예수님의 이 의도적인 호칭을 통하여 자신이 예수님께 어떤 행동을 한 것이고, 지금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서 발견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현재 다시 예수님을 모르던 시절, ‘요한의 아들 시몬’의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 번째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때에 베드로는, [예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이나 물으시므로, 불안해서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먹여라. <요한복음 21장 17절, 새번역>
여기서 마태복음 16장 16절보다 더 중요한 고백이 등장합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에서 다시 베드로로 회복되는 고백입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고백이고, 다시 예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고백이고, 왜 처음부터 자신을 베드로라고 부르셨는지 깨닫게 되는 고백입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새번역>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공동번역>
처음 만남부터 자신을 ‘게바’라 불러주신 예수님에게 베드로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정말 최선을 다해서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자신보다 사랑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너무도 사랑했지만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자신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미 예수님께 달려오면서부터 사랑과 존경으로 예수님에 대한 예의를 갖춘 것입니다.
예수가 사랑하시는 제자가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시다" 하고 말하였다. 시몬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서, 벗었던 몸에다가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내렸다. <요한복음 21장 7절, 새번역>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정말로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그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용서와 회복의 길을 다시금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통하여 베드로는 이제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줍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 새번역>
그리고 왜 자신의 이름을 베드로라고 지어주셨는지 깊게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조금도 반석 같지 않고, 모래와도 같은 자신을 처음부터 ‘반석’이라 불러 주시면서 오래 참아주심으로 결국은 그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찾아와 다시 교회가 되게 하는 실로 살아나는 교회, 살리는 교회,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 새번역>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위하여 오래 참아주신 예수님께 회개함으로 시작해서 베드로가 보인 하나님의 역사는 실로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자신과 같은 모든 이들에게 한 가지 길을 보여주고 열어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반석이 되어 교회가 될 수 있으니, 그 누구라도 ‘베드로’가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이렇게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는 베드로입니다.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는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으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살아 있는 귀한 돌입니다. 살아 있는 돌과 같은 존재로서 여러분도 집 짓는 데 사용되어 신령한 집이 됩니다. <베드로전서 2장 4~5절A, 새번역>
자신이 먼저 그 모퉁이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욱 더 중요한 정체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새번역>
베드로는 이제 자신을 베드로라 부르신 이유에 대해서 명확하게 깨달은 것입니다. 베드로라는 이름 속에 숨겨진 택하심을 받은 족속, 왕과 같은 제사장, 거룩한 민족,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모두 발견하였고,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베드로라고 결정하고 부르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름처럼 베드로가 될 것을 알고 계셨기에 그 베드로가 될 때까지 믿고, 응원하시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도 동일하게 부르십니다. 우리도 베드로입니다. 우리도 교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고린도전서 3장 16절, 새번역>
주님께서는 이미 우리라는 반석 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소금과 빛이라고 이미 결정하고 부르신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짠 맛을 되찾게 하겠느냐? 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려서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숨길 수 없다. <마태복음 5장 13~14절, 새번역>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소금과 빛이기에 언젠가는 그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을 믿고, 응원하시고,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를, 아니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예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 새번역>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이 복음이 전해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쓰신 편지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3절A, 새번역>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오늘로 7월 설교 시리즈, 그릇된 것을 고치어 바로 잡는다는 뜻의 ‘개선광정(改善匡正)’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주어도, 서술어도, 목적어도 그릇된 것을 고치어 바로 잡으시길 간절히 축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드로의 이야기를 통하여 이 개선광정이 여러분의 삶에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바로, ‘정체성’에 대한 개선광정입니다. 여러분의 정체성을 흔들어대는 모든 그릇된 것을 고치어 바로 잡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게바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이고, 반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빛과 소금입니다.
우리는 예배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처음부터 우리의 정체성은 결정되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처럼 우여곡절을 겪으며, 극적 반전 드라마를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요한복음 1장에서 베드로 같지 않았지만 베드로로 시작한 베드로는, 요한복음 21장에서도 요한의 아들 시몬을 뛰어넘어 베드로로, 십자가에 거꾸로 박힐 때까지도 베드로였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아야 합니다. 흔들리기는 했지만 아주 넘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삶을 통해 끊임없이 ‘개선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개선광정을 펼치고 계십니다. 그 개선광정에 여러분도 평생을 끊임없이 동참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여러분의 정체성을 지켜내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우리가 누구인지 결코 잊지 않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바뀐 적이 없습니다. 끝까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언약의 피를 흘려서 양들의 위대한 목자가 되신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이끌어내신 평화의 하나님이 여러분을 온갖 좋은 일에 어울리게 다듬질해 주셔서 자기의 뜻을 행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자기가 기뻐하시는 바를 이루시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이 영원무궁히 있기를 빕니다. 아멘. <히브리서 13장 20~21절, 새번역>
결단 찬양 - 온전케되리 + 너는 교회가 되어라 후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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