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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협력의 시대
엡 4장 4~6절
성덕교회 백시종 장로님의 「돼지감자 꽃」이라는 소설 속에
「망고 파라다이스」라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 팔라우 섬이 나오는데 어느 날 이 섬에서 체육대회가 열립니다.
경품은 일제 피아노 2대입니다.
며칠 전부터 이 피아노를 전시하면서
원주민들에게 체육대회의 흥을 돋우셨습니다.
체육대회 당일에 사상 최대의 원주민들이 모였습니다.
첫 번째 경기는 육상 달리기입니다.
일등으로 달리던 선수가 2등과 간격이 많이 벌어지니까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2등 이하의 선수들이 어느 정도 따라 붙었습니다.
그러자 일등으로 달리던 선수가 다시 치고 나갔습니다.
2등 이하의 선수들과 다시 격차가 벌어졌습니다.
더 이상 따라 잡을 수 없는 격차가 났습니다. 그러자 2등 이하의 선수들이 경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관중들은 누구를 비난했을까요?
일등한 선수를 비난했을 까요? 경기를 포기한 선수를 비난했을까요?
관중들은 일등한 선수를 비난합니다.
왜냐하면 ‘왜?’ 2등 이하의 선수들과 간격을 너무 벌려서
2등 이하의 선수들이 경기를 포기하게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2등 이하의 선수들도 함께 달릴 수 있도록 해야지
2등 이하의 선수들이 포기하게 한 1등 선수가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야구 시합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팽팽하던 경기가 뒤에 가서는 큰 점수차로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지고 있는 팀이 경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그러자 관중들은 이기고 있는 팀을 또 야유했습니다.
왜 너무 많은 점수를 벌려서 상대팀이 포기하게 만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2017년 6월 4일에 스페인의 유소년 축구리그에서
발렌시아 유소년팀이 지역의 라이벌 팀을 25:0으로 이겼습니다.
그렇다면 코치가 잘했다고 상을 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해고당했습니다.
왜냐하면 왜 어린 선수들에게 굴욕감을 주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혼자 잘하는 것보다 함께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에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2등 이하의 사람들도 주님께는 소중한 사람이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가복음 10장 42~44절에서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등 이하의 사람들 중에는 1등보다 더 훌륭한 사람도 많다는 것입니다.
이천 하이닉스를 2012년 3조 3747억에 매각을 하려고 할 때에
너무 비싸다고 이 회사를 인수하려고 하는 회사가 없었습니다.
결국 SK그룹이 인수를 하여 SK하이닉스가 되었는데
지금은 한 달에 1조원씩 버는 황금 거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회사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협력과 공존의 가치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2015년 노사협력으로 임금 인상분이 결정되었을 때에
임금 인상분의 10%와 회사가 10%를 합해서 20%의 임금인상분을
협력업체에 지원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렇게 대기업 노사가 함께 마음을 모아
협력업체와 상생을 추구할 때 오늘의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정글의 암사자는 혼자서 충분히 사냥을 할 수 있습니다.
혼자 사냥해도 충분히 자기 먹을 것은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자들은 무리지어서 사냥을 합니다.
왜냐하면 무리지어서 사냥하면 훨씬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글로벌 기업도 혁신을 이루기 위해 어떤 협력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품만 만들지 말고 플랫폼을 만들라고 합니다.
플랫폼은 기차역의 승강장을 말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플랫폼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데
가상공간이든지 실제공간이든지 사람들이 어떤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모이면 그 모인 장소를 플랫폼이라고 합니다.
요즘 글로벌 기업은 이런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플랫폼에 그 기업의 핵심기술을 공개합니다.
애플은 매년 6월에 애플의 새로운 소프트웨어 기술들을 공개하고 있고
구글은 운영체계 특허기술 API를 전면 공개하여 누구나 활용하게 했습니다.
미국의 전기차 테슬라도 전기차 특허기술 1400여개를 무료로 공개했고
토요타도 수소차 특허 5680개를 공개했습니다.
핵심기술을 공개하면 안 될 것 같은데 공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레고는 레고를 움직이게 하는 신제품의 구동체제가 해킹 당하자
구동 프로그램의 기술을 전면 공개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이 기술로 새로운 레고를 수없이 만들어내면서
레고 회사가 전례없는 호황을 누린 것입니다.
핵심기술을 공개하면 서로가 동반성장하게 되고
동반성장하게 되면 결국 자기 자신에게 유익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서 천재가 되지 말라고 합니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함께 생각하고 함께 협력하는 플랫품을 만들라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협력입니다.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회사가 잘되려면 직원들의 협력이 중요하고
교회가 부흥하려면 당회와 성도들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잘나간 사람이라 해도 혼자서 하는 것은 모든 게 무리입니다.
혼자 하는 것보다 둘이 함께 하는 것이 낫고
셋이 하는 것보다 넷이 함께 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전도도 혼자 나가지 말고 둘씩 짝을 지어 나가라 했습니다.
마틴 노왁의 <초협력>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인류 역사상 강한 자가 번성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는 자가 번성했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전도서 4장 12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협력의 반대 상황은 갈등입니다.
갈등은 칡넝쿨과 등나무가 함께 꼬여 있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갈등이 발생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겨버립니다.
하지만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당 GDP의 27%를
갈등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국민 한 사람으로 계산을 하면
한 사람당 사회갈등으로 매년 900만원씩 손해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갈등으로 손해 본 것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회의 분쟁 때문에 한 영혼이 주님을 떠난다면
그 비용 또한 어마어마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서 갈등보다 협력을 선택해야 합니다.
당회가 협력하고, 성도들이 협력하고
또한 시찰회가 협력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협력하면 훨씬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보면, 실제적으로 협력이 약합니다.
개인들을 보면 신앙도 좋고 열심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체를 보면 협력은 잘 되지 않습니다.
때론 협력을 하다가도 자주 협력이 깨집니다.
이것은 당회를 하면서 수없이 느꼈던 왔던 일일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밝혀 준 것이 죄수의 딜레마 게임입니다.
한 검사가 공범 두 명을 잡아 기소하려고 했으나 증거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 상태로 기소한다면 두 공범은 재판에서 낮은 형량을 받을 것이 뻔했습니다.
검사는 이들에게 죗값을 제대로 치르게 하기 위해
자백을 받아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검사는 두 죄수를 각각 다른 방에서 취조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너희 둘 중에 한 사람만 자백을 하고 나머지는 끝까지 무죄를 주장한다면,
자백을 한 사람은 무혐의 처리를 해주고
끝까지 무죄를 주장한 사람은 10년을 감옥에서 살게 된다.
두 사람 모두 자백하면 각각 5년을 살게 되고,
둘 다 자백하지 않으면 6개월만 살게 된다. 자백을 하겠는가?”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백하겠습니까? 침묵하겠습니까?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만약 두 죄수가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당연히 자백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겠지만,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정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자백을 안 하자니 상대방을 믿을 수 없고,
자백을 하자니 자신의 범죄를 인정해 높은 형량을 받을 것이 걱정됩니다.
그런데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상대방의 협력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침묵보다는 자백을, 협력보다는 배신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협력보다는 배신을 선택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침묵을 가정하면 침묵(6개월)보다 자백(석방)이 낫고
상대방이 자백을 하면 침묵(10년)보다 자백(5년)이 낫다는 것입니다.
이런 유형의 딜레마가 또 있습니다.
‘공공재화의 딜레마’ 혹은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영국 어느 농촌에는 누구든지 마음껏 소를 끌고 나올 수 있는
공동 방목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농부들은 경쟁적으로 더 많은 소를 끌고 나왔고,
결국 방목장은 황폐해져서 더 이상 풀이 자라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두 딜레마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개인적으로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는 최악의 결과를 나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최악의 결과를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북한이 핵개발을 하는 것은
북한 집단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 같지만
전체를 보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양평도 보면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공기 좋고 물 좋은 산속으로 들어가 집을 짓습니다.
하지만 전체를 보면, 양평의 아름다운 자연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교회는 수십년 전부터 개교회주의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개교회는 교회 부흥을 위해 매우 합리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랑의 교회가 건축을 할 때에
개교회는 건축을 해야 한다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을 했지만
한국교회 전체에는 너무 나쁜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형교회의 세습도 개교회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을 했지만
한국교회 전체에는 너무 나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 안에서도 수없이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개인은 매우 합리적인 선택은 했지만 교회는 큰 풍랑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 실족을 하고 교회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두 딜레마를 보면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보다 비합리적은 선택,
즉 이타적인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 7가지를 말했습니다.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요, 부르심이 하나요, 주도 한 분이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다”고 이시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의 교회라고 합니다.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에서 교회는 하나의 교회라고 했습니다.
양평에도 많은 교회가 있고, 서울에도 많은 교회가 있지만
교회는 하나의 교회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한 분 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칼 바르트 신학자는 한 분 뿐이신 주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자기 정파의 이익이 되는 사람의 말을 듣고 따라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수없이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주님의 음성만 듣고 따라가겠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사람의 말만 듣고 따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두 딜레마의 경우처럼 이것 또한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이 때로는 교회의 분열을 가져 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가 하나의 교회라고 하는 것은
오직 우리 주님의 음성만 듣고 따라가고자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합리적인 어떤 정당성이 있다 할지라도
주님의 음성보다는 앞설 수 없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번성에 성공한 생명체는 개미입니다.
개미가 번성할 수 있는 힘은 바로 협력에 있었습니다.
개미가 새로운 군락을 만들기 위해서
젊은 수컷과 암컷 개미들이 짝짓기 비행을 합니다.
날개 달린 암컷은 수컷 여덟 마리와 혼인 비행을 하면서
평생 낳을 정자를 비축해 둡니다.
비행이 끝난 후 수컷은 죽고 젊은 여왕 개미는
수직갱도를 파고 들어가 제일 아래 방에 최초의 보금자리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녀가 떠나온 군락에서 가져온 버섯같은 균류 뭉치를 풀어놓아
군류 농사를 시작합니다.
농사의 성공은 새로운 군락의 미래에 매우 중요합니다.
여왕은 네 개의 날개를 섭취한 다음 소량의 알을 최초로 낳습니다.
여기서 최초의 일꾼이 등장하면
이들은 균류 작물을 섭취하면서 동시에 유충을 돌보게 합니다.
노동자들이 시중을 들고 먹이를 조달하는 동안
여왕 개미는 분당 20개의 알을 낳고 하루에 2만 8800개
1년이면 1000만 50개를 낳고, 평생 1억 5천만개의 후손을 생산합니다.
굉장한 번성의 능력을 보여 주고 있는데 이것은 알만 낳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개미사회는 고도의 협력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개미는 일곱 개의 하위 계급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곱 종류의 개미들은 대략 30가지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첫 번째 계급은 전체 몸의 4분의 1에 달하는 아래턱 근육으로 나뭇잎을 자릅니다.
두 번째 계급은 채집 터널을 이용해 잎 조각을 보금자리로 옮깁니다.
세 번째 계급은 처리 공정에서 이 잎들을 더 잘게 썰어 냅니다.
하지만 개미들은 이 잎들을 먹지 않습니다.
이들은 잘게 잘라 낸 잎들을 소화 효소를 풍부하게 담은 배설물과 혼합하여
균류를 자라게 할 퇴비로 바꿉니다.
퇴비에서 균류가 자라게 되면 영양이 풍부한 균류를 뽑아서
유충에게 먹여 새끼를 키우는 것입니다.
가장 작은 개미는 이 균류의 정원을 돌보면서
항생 물질을 생성하는 박테리아를 이용해 균류에 질병이 생기지 않도록 합니다.
그리고 폐기물 처리 등 보통 위험한 일들은 나이든 일꾼들이 하고
전쟁이 일어나면 늙은 여인네들이 나가 싸우고 젊은이들은 전쟁에 보내지 않습니다.
이렇게 고도의 협력 체계를 가지고 있는 개미는
지구상에서 가장 약한 생명체인데도
가장 많은 번성에 성공한 생명체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협력의 힘이라고 하는 것이 대단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결론 맺겠습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협력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협력해야 잘 될 수 있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인류역사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는 자가 살아남고 번성을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당회를 운영할 때도 협력을 선택하고
양평시찰회에서 양평을 복음화를 위해 협력을 선택하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의 음성만 듣고 따라가는 협력으로
이 시대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양평시찰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협력의 완성체 이신 것을 알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협력을 해야 더 유익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보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교회 전체의 덕을 세울 수 있는 선택을 통해서 협력이 일어나고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교회들이 협력으로 번성하게 하여 주시고
양평시찰회가 협력으로 양평을 변화시켜 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파트너스 활동을 통해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을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