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인의 삶
최춘해
나와 의성과의 인연은 1988년 3월부터이다. 청송군 진보면 광덕초등학교에서 2년을 지내고 3년째에 의성군 구봉초등학교로 전근이 되었다. 안동을 지나 일직에서 고운사로 들어가는 길이다. 물도 내리지 않는 냇가의 자갈밭길을 따라 트럭에 흔들리며 갔다. 내 인생이 자갈밭길에 들어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연 인연이 없는 낯선 곳이다.
낯선 땅에서 외로운 나날이 이어지는 사이에 글을 쓰는 사람들이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의성군 국어과 연구회에서 회장이라는 직책을 맡겨 주었고 의성문학회에서는 고문이라는 직책을 맡겨 주었다. 외로울 때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의성군 국어과 연구회에서는 구봉문원(九峰文苑) 2호를 냈다. 그 때 회장으로서 머리말에 쓴 것 일부분을 되살려 본다.
우리들은 늦다고 조바심하며 서둘지도 않을 것이고 슬로건을 내걸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을 것이다. 한 발 한 발 헛디디지 않게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면서 착실하게, 잔잔하게 안으로 다져 나갈 것이다.
시인, 작가라는 이름을 내세우기 전에 먼저 인간의 영혼을 가꾸어 가는 국어 선생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일제 식민지시대 우리 한국의 얼을 지켜 나가기 위하여 감옥 안에서 우리 한글 사전을 만드는 데 정력을 다 바치신 최현배님의 거룩한 뜻을 우러러 받들고 싶다.
우리의 얼이 담긴 국어로 내 혼을 보듬고 가꾸는 것을 보다 큰 보람으로 알고, 있는 힘 다 바치려고 다짐을 해 본다.
우리 회는 끈끈한 인정으로 모였다. 우리들은 떨어져 있으면 목소리가 듣고 싶고, 얼굴이 보고 싶어서 만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이 진한 사랑이 창작 의욕도 북돋아 줄 것이고, 우리 모임이 자라는 데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17년 전 의성군 국어과 연구회의 한 사람으로 활동할 때의 생각을 되살려 보았다.
원고 청탁서의 주제가 '의성문학에 바란다'라고 돼 있어서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 필자의 문학에 대한 생각을 몇 가지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작품이 정치적 방편이 된다거나 어느 집단의 선전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또 철학이 작품의 바탕에 깔릴 수는 있지만 앞세워져서는 안 된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사회 현실에 참여해야 옳은 것인가, 참여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이 문제는 오래 전부터 논의의 대상이 돼 왔다. 1920년대에 카프문학이 성할 때는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 된다고 했다. 말하자면 공산주의를 선전하기 위해 문학이 도구로 이용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 나라가 해방이 되고 공산주의 세력이 점점 약해지자, 문학은 어디까지나 순수해야 한다는 순수파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 후에도 순수와 참여는 끊임없이 의견 대립이 되어 왔다. 양쪽 의견이 각각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 생각으로는 극단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문학은 인생살이에 대한 내용을 바탕으로 현실 감정을 나타내거나 앞으로 바라는 꿈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현실이 작품 속에 반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실을 바탕으로 하되 반드시 부정적인 면만을 고집하거나 긍정적인 면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나타내되 반드시 서정이 깔려 있어야 한다.
현재에 가장 절실한 문제를 작품으로 승화시켜 밝은 사회를 만드는 데 한 몫을 하는 것이 문학인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현재 우리 나라에서 가장 절실한 문제는 무엇일까? 정직성이라고 생각한다. 정직성 없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어느 것도 제대로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만이 우리 민족이 살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법이나 정책도 뒷받침이 돼야 하겠지만 법이나 정책만으로는 일시적 방편은 될지 모르지만 국민의 의식이 따르지 않고는 성과를 거두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의식을 개조하려면 국민운동으로 온 국민이 참여해서 국민 누구나 나부터 정직해야 된다는 생각이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될 것이다. 그리하여 도산 안창호 선생이 한 말처럼 농담이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정직한 마음이 우러나오게 하는 길은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정직한 삶을 주제로 한 글을 많이 읽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글을 쓰는 우리들은 정직한 삶, 성실한 삶을 주제로 한 글을 많이 쓰는 것이 우리의 당면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둘째 남에게 베푼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작품을 쓰는 것은 혼자서 쓴다. 그러나 문학의 즐거움을 문학을 하지 않는 시민들과 함께 나눌 기회를 마련하려면 혼자의 힘으로는 안 된다. 내가 남에게 자극을 주고 또 내가 남의 자극을 받기 위해서는 문학 강연회나 문학 행사가 필요하다.
1996년 문학의 해에 서울 대회에서 '가장 문학적인 상'을 주었다. 문학인이 성의껏 돈을 모아서 문학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분을 각계각층의 전문 직종인 중에서 한 사람씩 뽑아서 67명에게 상을 주었다. 그 가운데 소년한국일보 사장 김수남 씨가 있다. 이분은 자신이 작품을 쓰지는 않지만 문학을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작품을 쓰는 사람은 작품상을 받을 수 있지만 이런 분들에게는 전혀 기회가 없었다. 문학의 해에 '가장 문학적인 상'이라는 이름으로 상을 줄 기회를 마련한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느껴진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남에게 도움을 받고 영향을 받았다. 문학인의 도움은 물론 비문학인의 도움과 영향도 받았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선배나 주위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으므로 나도 남을 위해 베풀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간혹 너무 이기적인 사람도 보인다. 남에게 배워야 하고 도움을 받아야 할 형편일 때는 열심히 따라다니다가 자신이 홀로 서기를 할 만하면 그만 발길을 돌린다. 동인회 모임에도 나타나지 않고 회에서 다같이 힘을 모아서 할 행사에도 협조를 하지 않는다.
문학을 하는 것은 값진 삶을 찾아가는 것인데 문단의 연륜을 쌓을수록 더 이기적인 인간이 된다면 문학을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못한 것이다.
끝으로 흙을 사랑하는 문학인이 되어야 한다.
흙은 우리의 뿌리요, 고향이다. 나를 낳아 준 어머니다. 흙을 사랑하는 사람은 고향을 아낀다. 옛것을 사랑하고 조상을 숭배한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마음이 두텁고 이웃을 사랑한다. 남이 어려울 때 도울 줄 알고 적은 것도 이웃과 나누어 가지려고 한다. 슬플 때는 함께 슬퍼할 줄 알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함께 즐거워할 줄 안다. 남과 더불어 즐겁게 살아간다. 어려운 일에는 앞장서서 남보다 더 많이 하려 하고 좋은 일은 남에게 양보하려 한다. 돌아오는 몫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려 한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흙을 사랑하는 사람은 내 이웃, 내 고장을 사랑할 뿐 아니라 겨레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도 두텁다.
<의성문학에 바란다>
최춘해 약력
1932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남.
196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와 '한글문학'지 추천으로 문단에 나와서 한국아동문학상(1980년),
세종아동문학상(1984년), 방정환 문학상(1993년), 경북문화상(문학부문)(1993년)등을 받았음.
지은 책으로는 동시집 "시계가 셈을 세면"(1967년), "울타리로 서 있는 옥수수나무"(2004년) 등 다수 있음. 산문집으로 "동시와 동화를 보는 눈"(2001년)이 있음.
구미 인동초등 교장으로 근무하다가 1998년 02월 말일 정년 퇴임 후 작품활동에 전념
현재 <최춘해 아동문학교실>(무료 강좌)
첫댓글 선생님은 언제나 흙 같은 분이십니다.
선생님의 따뜻하고 깊으신 마음이 그대로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