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차:
○때: 2021.11.16(화)
○코스: 세종시 전동면 미
곡리 고산사-운주산성-운
주산(460m) 정상/운주산
성-망경산 정상(385M,망
경대)-동림산 정상(458M)
-민태절(삼중리 시민스포
츠센터(택시비 10,000원/
원점회귀)
○구간거리/평균속도:
13.3KM/2.3KM
○후기: 오늘은 경기도 동
탄에 사는 외손자 집 방문
겸, 주말에 있는 인천 부평
구 친구네 딸 결혼식 참석 차 5일간 일정으로 산행을 떠났습니다. 첫날인 오늘
은 동탄으로 이동중에 경
유지인 세종시 전의면과 전동면 사이에 걸쳐 있는 세종시 최고 높이의 운주산
과 망경산-동림산을 이어 타려고 전동면 고산사를 들머리로 삼았습니다. 고
산사 주차장에 파킹 후, 사
찰 경내를 돌아 본 뒤 운주
산 정상에 오르자 커다란 '백제의 얼 상징탑'이 건립
되어 있었는데, 찬란했던 옛 백제의 흥망성쇠를 느낄 수 있었으며, 특이하게도 정상석 대신 고유문 비가
세워져 있어 의아했습니
다. 고유문(告由文)은 국
가나 일반 개인의 집에서 큰일을 치르고자 할 때나
, 치른 뒤에 그 이유를 신명
이나 사당에 모신 조상에게 고하는 글을 말한다는데,
운주산 고유문 비 후면에 그 내용이 기록돼 있었습
니다. 비교적 이정표는 잘 설치되어 있었지만 별로 찾지 않는 산인지, 낙엽이 발목까지 빠질 정도로 수북
히 쌓여 있는데다, 원형 나
무 계단을 좁게 설치한 급
경사 코스가 많이 있어서, 오르 내릴 때 미끄러워 속
도를 내기가 힘들 정도였습
니다. 중간중간에 임도를 경유하는가 하면 중요한 갈
림길 두어 군데가 이정표가 없어, GPS가 없으면 알바
하기 십상인 곳이 있었습니
다. 그러나, 바람이 살랑살
랑 부는 추울 정도의 기온
이라서 봉우리를 수도없이 넘나드느라 힘은 들었지만,
그다지 땀이 나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하산 후 택시를 불러 원점회귀해야 했는데, 삼중리 시민스포
츠센터 앞에서 카카오 택시
와 우버택시 및 세종시 연
합 콜택시를 호출했으나, 모두다 시내에서 멀리 떨어
진 곳인데다 벽지라서 그런
지 콜이 잡히지 않고 버스
도 다니지 않아, 할 수 없이 관할 구역인 전동면 112 파출소에 긴급하게 보호를 요청하자, 파출소장 혼자 근무라서 직접 올 수는 없
고 택시를 긴급 출동 시켜 준다기에, 40여분 이상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10
분내로 온다는 택시는 17
분이 돼도 안오던 순간, 그
토록 뜸하던 택시였는데, 빈택시가 때 마침 지나 가
기에 잡아 타고 원점회귀
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한편, 약속 시간을 한참 초
과해도 안오던 택시 기사에
게 전화를 걸어 취소 통보
했더니, 경찰의 부탁으로 다와 가는데 취소하면 어떻
게 하냐고 불만을 제기했지
만, 약속을 지키지 않은 자
신의 행위는 반성하지 않고 제탓만 하기에 어이가 없었
지만, 저 또한 오후 5시가 넘어 일몰 시간이 다된 마
당에 경기도 동탄까지 이동
해야 해서 어쩔 수 없는 선
택이었지만, 그 택시기사에
게 미안했습니다. 어쨌든 택시를 타고 가는 도중에라
도 반대편에서 온다는 경찰
에 부탁한 빈 택시를 만났
으면 환승하려 했지만, 이
동 중에 5분 이상 도로상
에 택시가 보이지 않은 걸 보면, 다와 간다던 그 택시 기사 말은 한참 오고 있는
줄은 모르지만, 다와간다던 말은 거짓이었습니다. 차제에 시골 지역 산행시 택시 호출이 곤란할 수 있
는 점을 참고해야 하며, 부
득이한 경우엔 저처럼 112
에 부탁하면 자기들이 직접 현장에 출동하여 목적지 까
지 태워다 주거나, 택시를 보내 준다는 점도 알아두면 좋겠습니다.
○차기산행지
■산 소개
○운주산(雲柱山,460M)
은 세종시 전의면과 전동면
에 걸쳐 있으며, 세종시에
서 가장 높은 산이다. 정상
에 서면 천안과 청주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으며, '백제의 얼 상징탑'이 있어
찬란했던 옛 백제의 흥망성
쇠를 느낄수 있다. 정상석
은 없으며, 고유문 비가 이
를 대신하고 있다. 고유문
(告由文)은 국가나 일반 개
인의 집에서 큰일을 치르고
자 할 때나 치른 뒤에 그 이
유를 신명이나 사당에 모신 조상에게 고하는 글을 말한
다. 운주산 고유문 비 후면
에 그 내용이 기록돼 있다.
정상 근처에 운주산성(고
산산성)이 있으며, 중턱에
는 고산사가 자리잡고 있다
. 한편 운주산(雲柱山)은 글자 그대로 ‘구름이 머무
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따라서, 산 정상에 오르면 천안과 공주ㆍ조치원과 청
주를 비롯한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삼국시대
에 벌써 산성을 쌓은 것도 그만큼 군사적으로 중요했
기 때문일 것이다. 외성 3098m, 내성 543m
의 운주산성은 운주산 정상 3개의 봉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백제 때 축조된 포곡
식(包谷式) 산성으로 고산
산성으로 불리며, 군데군데 복원돼 있다. 서기 660년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 부
흥운동의 구국항쟁지로 평
가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산성으로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기념물 제 79호)로 관리되고 있고, 운주산 정
상에는 “백제의 얼 상징탑”
이 우뚝 서 있다. 고산사에
선 백제가 멸망한 날에 백
제 부흥운동을 하다 죽은 혼령을 위로하는 고산제를 지낸다. 그래서 그런지 이 사찰은 온통 백제 투성이에
다 타임머신을 타고 천년
을 넘게 거슬러 올라가 새
천년 백제 부흥운동이라도 일으킬 기세다.
○망경산(望京山,385m)
은 서쪽으론 운주산과 동쪽
으로는 동림산으로 연결되
는 능선상에 있는 산이다.
나즈막한 산이지만 북쪽으
로 천안 흑성산과 은석산 너머 멀리 한양의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산이라 하
여 망경산이라 한다. 전국 여러 곳에 망경산이나 망경
대(望京臺) 등의 지명이 분
포하는데, 고도가 높지 않
지만,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어 얻은 이름으로 보인
다.
‘경(京)’은 한양 혹은 임금
을 상징하며, 나라에 상(喪
)을 당하면 한양을 향해 망
배(望拜)나 망곡(望哭)을 했던 곳이어서 유래되었다
고 한다.
○동림산(東林山,458m)
은 충북 청원군과 세종시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동쪽
에 있는 숲'이라는 의미이
지만 처음엔 오동나무 동
(桐)자를 써서 '동림산(桐林山)'이라 불렀는데 언제
부터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십자봉(十字峰)'이라고도 불리는 정상에 서면 세종과 충남 충북을 동시에 품어볼 수 있으며, 석축 산성의 터
가 있다. 정상에는 '삼중리 편입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데, 청원군 강외면 삼중리
에서 연기군으로 편입되었
다가 현재는 세종시가 된 것을 기념하는 비다.
○고산사는 세종특별자치
시 서북쪽의 운주산에는 등산로 초입에 고산사(高
山寺)라는 크지 않은 절이 있다.
고산사는 가장 먼저 보이는 왼쪽의 전각이 ‘백제루’(百濟樓)다. 절집 누각으로는 매우 독특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백제루에는 ‘백제
삼천범종’이 걸려 있다. 백제가 멸망하고 당나라로 끌려간 의자왕, 나당 연합
군과 마지막까지 싸우다 비
명에 숨진 백제 부흥군의 원혼을 위로하고자 조성한 범종이라고 한다.
마당으로 올라서면 ‘백제국 의자대왕 위혼비’(百濟國 義慈大王 慰魂碑)가 눈에 들어온다. 위혼비 너머에 새로 조성된 전각은 ‘백제
극락보전’(百濟極寶殿)이
다. 당나라에 끌려가 세상
을 떠난 의자왕과 백제를 재건하려다 산화한 부흥군
의 극락왕생을 비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성격의 절이 운주산에 세워진 것은 부흥군이 최후
를 맞았다는 주류성이 바로 이곳이라는 믿음에서 비롯
됐다. 주류성의 위치를 두
고 역사학계의 견해는 홍성 학성산성, 서천 한산 건지
산성, 부안 위금암산성, 그
리고 고산사가 있는 세종 전의로 나뉘어 있다. 그런데 전의설(說)을 지지
하는 학자들은 이곳이 ‘농
사 짓는 땅과 멀리 떨어져 있으며, 돌이 많고 척박해 농사를 지을 수도 없다’는 ‘일본서기’의 묘사와 가장 근접하다고 본다.
실제로 홍성과 서천, 부안
은 서해안에서 멀지 않은 평야지대다. 나당연합군의 양방향 공세에 포위되다시
피 한 백제 부흥군이 아무
리 산성이라고는 해도 방
어가 쉽지 않은 곳에서 항
전을 마음먹기는 쉽지 않았
을 것이다. 반면 차령산맥 줄기로 둘러싸인 깊숙한 산골에 자리잡은 운주산은 부흥군이 숨어들기에 비교
적 적절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고산사는 1966년 창
건됐으니 천년 고찰이 수두
룩한 마당에 역사랄 것도 없다. 게다가 고산사가 백
제 부흥군의 원찰로 성격을 굳힌 것은 훨씬 이후의 일
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고
산사는 이미 세종시를 대표
하는 문화유산의 하나로 자
리매김하고 있다. 백제의 옛 땅에서 백제 유민의 원
혼을 달래는 절이라는 상징
성이 답사객들의 발길을 잡
아끄는 데다 절집도 갈수록 모양새를 갖추어 가고 있다
. 운주산성도 복원 작업으
로 상당 부분 옛 모습을 되
찾았다.
해마다 10월에는 고산사
에서 ‘백제 고산대제’가 열
린다. ‘백제 부흥군을 위한 천도제’인 셈이다. 세종시
를 대표하는 문화 이벤트로 자리잡아 갈 것이라는 기대
가 크다. 오늘날 눈에 보이
는 백제의 흔적은 너무나도 적다. 하지만 고산사는 꼭 옛것을 그대로 물려받아야 역사 유산이고, 문화 유산
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우리 역사를 풍요롭
게 하는 새로운 방법의 하
나를 고산사는 가르쳐 준
다.
○세종시 백제 복국 운동
사(운주산 백제의 얼 상징
탑) 관련 블로그
http://naver.me/xELw6urV
http://naver.me/5rdA3aQv
첫댓글 고산사,백제의 상징탑이 인상 깊게 다가옵니다 어디를 가시더라도 헛되이 보내시지 않는 모습이 좋아 보입니다
운주산 정상에 거대하
게 건립된 백제의 상징
탑이 있어서 놀랐습니
다. 서기 660년 백제
가 멸망한 후 풍왕과 복신, 도침 장군이 선
두가 돼 크게 떨치고 일어났던 백제부흥운
동의 최후 본거지로 역
사적으로도 중요한 운
주산성 정상에 '백제의 얼 탑'이 세워져 있었
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