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4일 연중 34주간 목요일 (루카 21,20-28)
"주어진 오늘 하루를 충만하게 사는 것"
연중 마지막 주간 요즘의 전례 말씀은 모두가 ‘종말’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되는데, 오늘 복음 역시 최후의 그날,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 얘기합니다.
우리가 다 느끼는 거지만, 소풍 당일 보다 오히려 소풍 가기 전날, 기대감의 기쁨이 더 큰 것처럼, 이와 비슷한 원숭이 실험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능이 높은 원숭이가 주어진 미션을 잘 수행하면 그 대가로 일정량의 오렌지주스가 원숭이 입 속으로 주어지는 실험을 했는데,
영리한 원숭이는 매번 미션을 성공해서 오렌지주스가 나오길 기다립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미션 성공 후 10초 정도를 기다려야 주스가 나오도록 장치를 했는데, 원숭이는 주스를 기다리는 그 10초의 시간 동안, 연결된 뇌세포의 그래프 반응이 기쁨과 흥분으로 난리가 난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서 정작 오렌지주스를 먹는 동안에는 뇌의 반응이 그다지 즐겁지도 않고, 그래프 반응도 조용하다고 합니다.
이 실험이 말해주는 것은 쾌락이나 기쁨만 그런 게 아니라 ‘고통’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만약 오렌지주스가 아니라 전기충격과 같은 부정적인 대가가 주어진다면 결과는 완전히 반대가 됩니다.
전기충격이 올 거라는 사실을 모를 때는 오히려 전기충격의 고통은 견딜 만합니다.
그런데 30초 후에 고통이 가해질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30초의 시간은 그야말로 ‘지옥의 시간’이 됩니다.
고통이 올 거라는 사실을 알고 기다리는 시간만큼 끔찍한 시간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10볼트짜리 전기충격을 받을래, 아님 30초 후에 반밖에 안 되는 5볼트 전기충격을 받을래? 하고 물으면
보통은 좀 강력하더라도 바로 지금 전기충격을 받겠다고 할 겁니다.
여기서 묵상할 수 있는 것은 “행복은 예측할 수 없을 때 더 크게 다가오고, 불행은 예측할 수 없을 때 감당할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자주 하는 말인데, “무슨 일이든 미리부터 예측하거나 예상하지 마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만약 자기 예상(기대)가 빗나갔을 때의 실망감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니 그냥 지금, 여기 최선을 다 하면 된다는 말을 합니다.
행복감은 주어지는 ‘보상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감과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 (ex) 서프라이즈 선물이 더 기쁜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따라서 미래를 미리 안다면 행복도 그만큼 사라질 것입니다.
로또복권 1등 당첨 번호나 수능고사 정답이라면 모를까,
무엇이든 ‘미리 안다는 것’은 그닥 좋은 게 아닙니다.
미리 예측하거나 미리 겁낼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해답은 그냥 주어진 오늘 하루하루를 충만되게 살면 될 텐데, 이것이 바로 종말론적 삶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