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특강
최영태
● 그리스 역사의 기원
●아테네의 정치조직-민회-500인회-아레오파고스 귀족회의-아르콘(집정관)
①민회-500인회-아레고파고스(귀족회의)-아르콘(집정관)-스트라테고이(strategoi,핵심관리10명, 장군)
아테네인의 친족집단: 部族(부족,phyle)-宗族(종족, phratria)-氏族(씨족, genos)-家族(가족,oikos)
● 그리스의 사회․가족형태: 오이키아-게노스-프라트리아-부족-공동체(도리아인,이오니아인)
아테네인의 친족집단: 部族(부족,phyle)-宗族(종족, phratria)-氏族(씨족, genos)-家族(가족,oikos)
● 스파르타의 헤일로타이(helots)
●아테네의 헥테모로이(hektemoroi) 즉 ‘1/6을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사람들
미케네 문명(1600-1200)-도리아 인 침입(1100-800)-암흑기 말기 이오니아 지방 식민 건설-기원전 8세기 아티카 통합--아티카 통합이후 아테네의 정체는 귀족정-귀족과 평민의 갈등(7-6세기: 참주(tyranny)의 시대)-
아테네의 정치조직-민회-500인회-아레오파고스 귀족회의-아르콘(집정관)
그리스의 사회․가족형태: 오이키아-게노스-프라트리아-부족-공동체(도리아인,이오니아인)
아테네인의 친족집단: 部族(부족,phyle)-宗族(종족, phratria)-氏族(씨족, genos)-家族(가족,oikos)
그리스 체제의 기본 단위는 가족이었는데, 그리스어로는 오이키아(oikia)라 하며 대체로 한 남자와 그의 자식들, 그의 손자/손녀들로 이루어졌으며, 오이키아의 위에는 그보다 더 큰 단위인 게노스(genos), 즉 씨족이 있었는데, 이는 스스로 자신들을 공동 조상의 후손으로 여기는 성원들이 속한 오이키아들이 다수 모인 것이었다. 게노스 위에는 프라트리아(phratria)가 오는데 이것은 이론상으로는 여전히 혈족 관계에 근거하고 있지만(프라트리아라는 말은 프라토레스(phratores) 즉 형제들의 결사를 의미한다)사실은 존재했다고 믿기 어려운 혈연관계를 자처하는 게노스들의 집단이 이었다.
아테네의 프라트리아들에는 두 가지 유형의 구성원이 있었는데 게네타이(genetai) 즉 ‘게노스의 성원들’로 알려진 사람들과 의미을 알 수 없는 말인 오르게오네스(orgeones)이다. 이 구분에 대해서는 양자 택일적인 두 가지의 주요 설명들이 있다. 프라트리아가 형성되었을 때 그것을 구성하던 씨족이나 씨족들도 또한 게노스들로서 공적인 승인을 받았으며 따라서 나중에 받아들여진 씨족들은 다른 이름을 구해야 했다는 것이 한 설명이다.
그리스의 지배층은 아리스토이(aristoi), '최선의 사람들‘로서 그들의 지배권이 신들로부터 부여받은 것으로 여겨지던 소수의 사람들과 아리스토이가 부과하는 규율을 무엇이든 사려없이 받아들이도록 수세기 동안의 복종과 힘든 생활상에 의해 훈련받았던 온갖 수준의 다수의 사람들, 이들이 바로 데모스, 즉 평민이었다.
그리스의 노예제
스파르타의 헤일로타이(helots)와 크레타의 아페타이로이(apetairoi)가 억압받는 계층으로 고전기 그리스에도 존재했다. 아페타이로스라는 말은 사실 ‘프라트리아 성원이 아닌’라는 의미였다. 텟살리아(Thessalia)의 페네스타이(penestai:가난에 시달린 사람들), 시퀴온(Sikyon)의 코니포데스(konipodes: 먼지투성이 발의 사람들), 아라고스의 귐네테스(gymnetes:헐벗은 사람들)가 있다. 아테네의 헥테모로이(hektemoroi) 즉 ‘1/6을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사람들이다.
아테네 민주정치의 특징: 추점제, 수당제, 중임제한, 노예제와 아테네 제국.
①민회-500인회-아레고파고스(귀족회의)-아르콘(집정관)-스트라테고이(strategoi,핵심관리10명,즉 장군)
1) 킬론(Kylon)이 기원전 630년 메가라의 참주 테아게네스(Theagenes) 군대의 지원을 받아 아크로폴리스를 장악하고 아테네에서 참주정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2) 드라콘(Draco) 법전-620년-중벌주의-최초의 법전 공표-부채증가-헥테모로이로 전락
귀족정 시작
3) 솔론-아르콘(Solon)시대(기원전 594년)에 아테네인들은 네 가지 등급으로 분류되었다.
시민법정(heliaea)설치와 부족마다 100명씩 선출-400인회 구성
금권정치(Timocratia)-재산의 등급에 따라 참정권을 차등 부여
4) 페이시스트라토스(Peisistratos)의 참주정(561-528)과 그의 아들 히피아스(528-510년)의 참주정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아테나 여신과 디오니소스 신을 위한 대제전 거행.-아테네인의 동질감 증진
5) 클레이스테네스의 부족개혁과 도편추방법(Ostracismos)-(508년)-30개의 트리튀스
네 개의 혈연부족에서 10개의 地緣(지연)부족으로 개편하였음.
3개의 집단-도시 트리튀스, 해안 트리튀스, 내륙 트리튀스,
아티카의 도시 지역, 내륙지역, 해안지역을 각각 10개의 트리타스(Trittys)로 구분
각 지역에서 한 개씩의 트리트스를 뽑아 추첨으로 각 부족에 할당.
과거의 부족제의 근간이었던 프라트리아가 정치적으로 해체되고 데모스를 기본단위로 함.-귀족들이 결정적인 타격을 받음.
6) 490년 페르시아와 전쟁-1차 -마라톤 평원에서 승리
480년-2차 페르시아 전쟁-살라미스 해전-해군의 중요성 부각-전쟁이후 하층민의 정치참여 강화-아이스킬루스(Aeschylus)의 『페르시아인』
7) 테미스토클레스(Tehmistolkes)483년-465)-델로스 동맹 결성(478-477)
8) 에피알테스(Ephialtes 462)-아레오파고스의 권한 축소(462)
9) 443-429년-페리클레스의 최고 권력의 시작.
배심원 수당을 처음으로 도입하여 하층민의 재판 참여를 유도하였다.
파르테논 신전 건축 공사 시작.-페이디아스
10) 펠레폰네소스 전쟁(431-404)
제1기 B.C. 431-421
제2기(415-404)
11) 데마고고스 시대(demagogos)-선동 정치가(429-411)
데마고고스는 원래 데모스(demos, 민중)와 지도자(agogos)를 합친 합성어로 ‘민중의 지도자’라는 중립적인 용어였다. 페리크레스 사후에는 열등하고 부패한 정치가, 선동적 정치가로 묘사되었다.
12) 411-404년 귀족들의 과두정 과두정(oligarchia)은 소수(oligos)의 지배를 말한다. 과두정에서 소수의 지배자가 될 수 있는 기준이 혈통이나 재산이다. 귀족정이 세습적인 혈통을 중시하는 측면이 있는 데 반해, 과두정은 혈통뿐만 아니라 재산도 중시했다. 둘 다 소수의 능력있는 자들의 지배이다.
-아테네에서 과두주의 혁명(400인회)
하층민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관직수당도 없앴다.
13) 레욱트라 전투(371)-스파르타가 테베에 패배함.
14) 카이로네이아 전투(338, Chaironeia)전투에서 아테네 패배 -멸망
15) 테베의 지배(B.C 371-362)
16)케로니아 전투(Chaeronea, B.C 338)-마케도니아 승리-코린트 동맹 결성
스파르타의 정치발전:①왕 2명-귀족평의회(게루시아)-자유농민-헤일로타이-페리오이코이
②공동식사제도(sussition-syssitia)와 부족교육
③ 7세-20세-30세-60세
리쿠르구스(Lycurgus, BC, 775-750) 전설적인 입법가
스파르타는 기원전 8세기에 경제적 혁명을 경험하게 된다. 스파르타는 식민화, 교역 및 제조업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대신에 인접 영토인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서부의 멧세니아에 대한 정복전쟁을 통해 해결한다. 즉 펠로폰네소스의 남동부, 즉 후대의 라코니아를 상당 부분 정복한 이후인 기원전 715년이 되면 스파르타는 그것의 병합에 따라 농경지를 두 배로 확대했다.
스파르타인 기원전1200년전에 남하한 도리아인이다.
스파르타는 시민과 상공업에 종사하는 페리오이코이(Perioeci) 그리고 농노인 헬로트(Helot)로 이루어졌으며 그 인구비율은 1:7:16이라고 한다.
성인남자 시민의 군복무기간은 20세에서 60세까지라고 하며7-30세까지 공동식사생활(phiditia or syssitia)-식사집단(messes)을 해야한다.
두 명의 군주가(디아르키아) 스파르타를 통치한다.-에우리폰티다이(Europontidae)가문과 아기아다이(Agiadae)가문에서 각각 1명)- 왕을 포함한 30명의 원로원(Gerusia)-민회(Apella)
이들 가문 밑에는 귀족적인 평의회인 게루시아(gerusia:council of Elders)가 있고 그 다음에는 스파르타인 자유농민이 있고, 끝으로 대부분 비도리아계 노동력인 헤일로타이(heilotai: helot)가 있다. 보다 후대의 역사에서는 이 계통이 다수의 페리오이코이(perioikoi:'둘러싸고 있는 주민들‘)의 존재로 인해 더욱 복잡해진다.
국정운영 실권은 민회가 선출하는 임기 1년의 5명의 에포르(ephor)에게 있었다.(집정관)
스파르타인을 라코니코라고 하는데 그것은 스파르타인이 과묵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스타르타의 리쿠르고스는 9천명의 토지 보유농 시민을 유지하려고 할당지를 양도할 수 없다고 규정하였다.
스파르타 자유민은 7세가 되면 집을 떠나 兵舍(병사)에서 생활하며, 20세에 군에 들어가며 30세가 되어야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으며 60세까지 군복무를 한다.
헤일로타이(heilotai: helot)-종속적 농업 노동자, 공공의 노예, 풀룩스(Pollux)는 자유인과 노예의 중간
페리오이코이(perioikoi:'둘러싸고 있는 주민들‘)-시민과 헤일로타이의 중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