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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
김 성 한
이것은 인간 생활이 아닌 그 무엇이다.
―W. 블레이크―
홍 만식(洪萬植)은 항용 자기를 북악산(北岳山)에 올려 놓았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헐 수 할 수 없는 건달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두 가지 직업이 있었다. 그 하나는 정거장에서 석탄을 상습적으로 훔쳐 내는 일이니, 그의 명명에 의하면 석탄 반출 작업이었다. 또 하나는 공상이었다. 이것도 그가 붙인 명칭이 있으니, 그것은 사고 구축 작업(思考構築作業)이라 하였다. 반출 작업은 작업 개시로부터 판매 처분에 이르기까지에 세 시간이면 족하였다. 이로써 일금 팔백 환의 수입을 얻으면 우선 이틀을 살게 마련이었다. 그 외의 시간은 구축작업에 바치는 것 이었다. 만식으로서는 이것은 일생 일대의 중요한 사업이었다. 구축이 완료되는 날이면 원자탄이 완료된 것과 마찬가지로 이 강토에 큰 폭발을 일으킬 것이요, 그로써 미증유의 역사적 변혁을 이룩하리라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항상 반출에 육감하고 구축에 심각하였다. 그 날 새벽 만 하더라도 가마니에 쑤셔 넣은 석탄을 걸며지고 철길을 따라 흙벽돌 후생 주택 마을로 향하노라니까 뒤에서 철도 침목에 울리는 구둣발 소리와 함께 ‘누구야!’ 하는 고함 소리가 터지기에 돌아다보니, 모표나 얼굴은 신새벽의 어둠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으나, 희미하게 등진 하늘에 뚜렷이 나타난 윤곽과 한쪽 어깨 위로 쑥 돋아 오른 총끝으로 보아 경비원에 틀림없었다. 그는 두툼한 석탄덩이를 불쑥 쳐들면서 픽 돌아섰다.
“보는 대루다, 어쩔 테냐!”
경비원은 한 걸음 물러서면서 총을 어깨에서 내리는 태세를 취하였다.
만식은 때를 놓치지 않고 총을 잡아채어 냅다 던지고 경비원의 멱살을 잡아채면서 외쳤다.
“이건 내 생명이다. 건드리다간 대가릴 까 준다. 알았어?”
경비원이 수그러지는 것을 보고 그는 유유히 돌아섰다.
이 같은 확고 부동한 신념도 이를테면 그 구축 작업의 한 개 소산이었다. 바지저고리 군인으로 방위군에 입대했을 때 나무 잎사귀를 붙인 작자가 쌀 세 가마나 도둑질해 가는 것을 보고 눈에서 불이 일어서 한 대 후려갈겼다가 영창에서 사흘 굶은 일이 있어도 그것은 그저 아니꼬운 도가 그 극에 달한 데 지나지 않았다. 군인으로 만 오 개년 복무하면서 훈장을 두 번이나 타도록 용감히 싸웠으나 움직일 수없는 신념이라는 것은 느껴도 보지 못하였다. 지금 같은 마음의 태세는 실로 제대 후 일 년 동안 서울 장안의 으리으리한 사무실에 고두(叩頭)하고 고급 자동차에서 흙물을 얻어맞는 사이에 자라, 남산의 소나무를 얼싸안은 순간에 대성(大成)이 된 것이었다. 교원으로 취직하러 들면 경력이 없어 안 되고, 관청에 취직하러 들면 감원 선풍이 불어서 안 되고, 회사에 취직하려면 유력한 인사의 소개가 없어서 안 되고 품팔이를 하려면 자리가 없어서 안 되었다. 아침 점심을 굶고 거리를 헤매다가 해는 저무는데, 몸을 의지하고 있는 옛날 전우의 어머니의 표득스러운 눈초리가 눈에 떠올라 그만 용기를 잃고 보니 갈 곳이 없었다. 그저 바로 가까이 있는 남산으보 어슬렁어슬렁 올라갔다. 올라가다 보니 서장기가 한꺼번에 쏟아져서 머리가 아찔해지는 바람에 그냥 소나무 그루에 주저앉았다.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전쟁에 나가서 얼마든지 뒹구는 시체를 보았었다. 죽음이란 그 따윌 것이다. 그것은 물론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슨 물건도 아니었다. 물건이란 하여튼 어떤 존재 이유가 뚜렷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체에 무슨 존재 이유가 있느냐? 궤짝이나 돌멩이가 더 잘났는지도 모른다. 아니 단연코 잘났다. 뻐기지 않는 것만으로도 위대한 일이다. 나로 하여금 아니꼬운 감정을 일으키지 않는 것만 해도 저 아래 미끈한 자동차에 몸을 실은 작자들보다 월등 낫다.
하루 세 끼 밥을 얻어먹지 못해서 거시를 울리는 작자는 어떠냐? 이건 궤짝이나 돌멩이에 비할 바 아니다. 시체 이하다. 시체에 존재 이유가 없는 몇 갑절로 존재 이유가 없다. 죽으면 썩어서 없어진다. 이것이 나에게 트인 단 하나 길이다. 좋다. 죽자.
배가 쓰리면서 잔등이 아파 왔다. 그 순간 고기가 몹시도 먹고 싶어졌다. 고기를 한 번 실컷 먹었으면 당장 죽어도 원이 없을 것만 같았다. 닭·돼지·개·소가 번갈아 머리에 떠올랐다. 이웃집 셰퍼드 생각이 났다. 좋은 팔자를 타고 나서 전에 높은 벼슬을 지냈다는 사람의 은총을 독차지하고 하루 세 끼 고기를 빼지 않고 먹는다고 하였다. 고기를 먹은 고기를 먹는다! 요놈의 개를 때려잡아서 씹어 먹어야겠다!
일어서다가 쏘러질 듯해서 소나무를 얼싸안았다. 장안의 불빛이 하늘의 별같이 눈에 들어왔다. 쳐다보니 소나무 가지가 활짝 퍼졌다. 이 때 그는 대오 각성한 것이다. 후에 그는 사고 구축 과정에서 이 때의 경험을 ‘生의 章典’이라고 명명하고 그 진리를 근자 식지(近者食之)라 표현하였다. 이것이 우주의 기본 철칙이라는 것이었다. 우선 이 소나무는 뿌리 근처의 자양분을 들어다 먹고 산다. 그랬다고 소나무는 지옥으로 가야 하나? 옛날 남산에서 울었다는 호랑이는 이 산에서 뛰노는 토끼를 들어다 먹었겠다. 그랬다고 호랑이는 지옥으로 갔을까? 저 아래 월급 이만 환 받으면서 양담배·자동차·고기가 그립지 않은 양반들도 필시 주위에서 들어다 먹을 것이 뻔하다. 이 대목에서 그는 회심의 미소를 띄었다. 하나님이란 작자는 원래 꽁생원이어서 자기 것만 다치지 않으면 그만이다. 제 동산에서 열매를 하나 따먹었다고 자자손손 쫓아다니면서 못살게 굴지마는, 천하의 물건들이 자기끼리 들어다 먹는 것은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그것을 일일이 관계했다가는 하루에도 몇십 만 개씩 벼락을 떨어뜨려야 할 것이 아니냐? 시끄러워서 못 할 노릇이다.
홍 만식은 자기가 배고픈 이유를 분명히 알았다. 들어오는 철학을 몰랐던 것이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이런 진리는 그 편린도 들어 본 일이 없었다. 교수라고 꾀죄죄한 옷을 입은 위인들이 되지 못하게 안경은 열에 아홉이나 쓰고, 한다는 소리는 아리수토텔레스의 형상이니, 플라톤의 이데아니 했겠다.
“야—— 나는 배고프다!”
그는 속으로 외쳤다.
생각이 이에 이르고 보니 셰퍼드는 의당 자기의 셰퍼드였다. 잡아먹는 것도 자유요, 안 잡아먹는 것도 자유였다.
그는 돌멩이를 들고 산을 내려갔다.
일 년 만에 처음으로 아무 꺼리낌 없이 아주머니를 불렀다.
“아주머니, 밥 좀 주시우.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
기관수로 취직해서 집에서 자는 날보다 밖에서 자는 날이 더 많은 친구의 어머니는 아무 대꾸도 없이 48도 각으로 쏘아보다가 한 마디 던졌다.
“취직이 됐나 부구나. 내일은 서쪽에서 해가 뜨게 생겼군.”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입도 15 도쯤은 비뜰어지는 듯하였다.
“취직은 안 됐소이다마는 밥은 먹어야 살겠는걸요.”
그 순간 48도는 50도가 되고, 15 도는 20도로 변하면서 얼굴빛도 달라졌다.
“취직도 못 한 주제에 사람은 왜 놀리는고?”
“아, 누가 놀렸나요?”
“배고프구 어쩌구, 되지 못하게스리. 누가 느으 식몬 줄 알았더냐? 어서 썩 물러가라! 이젠 이에서 신물이 난다!”
전등불을 반사한 노파의 두 눈은 짐승의 눈같이 번뜩이고 내휘두르는 오른팔도 제법 재빨랐다.
만식은 두말 없이 웃통을 어깨에 걸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무엇인가 머리에 가득 차고 가슴 밑에 달라붙었던 시장기도 하랫배로 쓰윽 내려가서 사라져 버렸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불러 분노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로서는 쳇증에 침을 한 대 맞은 때같이 그 어떤 것, 맺혔던 것을 떼어 버린 심사였다. 맺은 것은 어느 누구도 아니었다. 제 줄에 자기를 동여맨 거미가, 사는 방도는 제 줄을 물어뜯는 길밖에 없었다. 만식은 남산에서 끊어진 줄을 50 도 각 시선 앞에서 털어버린 것이었다. 정의·인정·조국애·체면 따위가 조각조각 부숴져서 딩굴었다. 엄연한 물리 화학의 법칙 속에 놓인 자기, 생활학의 세계에서 굼틀거리는 자기를 의식하였다. 빛은 반사를 요구하고, 낮이 가면 밤이 오고, 매는 꿩을 잡아먹고, 꿩은 버러지를 잡아먹는 세계였다. 그는 사멸로 이르는 흐름 속에서 간단없이 떠내려가는 자기를 의식하였다. 다른 만물은 이 생의 흐름이 끝나는 마지막 선에서 사(死)의 단애로 굴러 떨어지게 마련이었으나, 자기 자신은 처음부터 시체로, 피동적으로, 둥둥 떠내려가면서 바위에 부딪고, 물 속에 빠져, 갈수록 상처만 더하여 가는 존재였다. 비참은 의식 있는 시체의 숙명이었다. 서른 한 살에 해하(垓下)에서 죽을망정 송 양왕(宋襄王)은 될 것이 아니었다.
그는 휘파람을 불면서 맞은편 줄 몇 집 건너에서 애꾸눈 처녀가 경영하는 조그만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제대하고 처음 만났을 때, 친구가 약주 한 되로 축하해 준 이래로 가끔 어머니의 눈을 속이면서 데려다 주던 집이었다. 속에는 글줄이나 들어있다는 소문이었다. 그러나 항상 애꾸가 훼방을 놓아서 구하려는 직장에서도 두 손을 흔들고, 총각들은 돌아섰다고 하였다. 언제나 자기를 짓밟으려는 이 애꾸에 대한 보복책으로 그는 진한 색안경을 쑤고 있었다.
만식은 그다지 깨끗하지도 못한 식탁에 웃옷을 내던지고 앉으면서 외쳤다.
“백반 한 상 주시우.”
구석에 혼자 앉아서 약주를 들이키다가는 졸듯이 끄덕이던 손님이 게스무레한 눈초리로 건너다보고는 또 끄덕이기 시작하였다.
소반에 얹은 음식을 앞에다 늘어놓으면서 여자는 쉴 새 없이 입을 놀렸다.
“미스터 홍, 오늘은 좋은 일 있나 부죠. 내가 알아맞출까? 취직이 됐죠? 틀림없지 뭐유. 그쵸? 이거 축할 해야겠는데요. 왜 대답이 없어요? 에―또 0K 약주 한잔 드려야지.”
휘싸고 돌아갔던 여자는 조그만 주전자와 사기컵을 들고 와서 옆에 앉았다.
“꽤 시장했던 모양이군요. 자, 이 술은 내가 내는 거요. 아이구 저렇게 밥이 쏟아져 들어가서야 술이 들어갈 자리가 있어야죠. 자 기분 좋은 김에 어서 한잔 드세요.”
만식은 따라 주는 것을 받아서 죽 들이키고 컵으로 식탁을 탁 쳤다.
“누가 기분 좋댔어?”
“그럼 기분 안 좋아요? 그다지 덤지두 않은데 웃통을 벗어제끼구 ‘백반 한 상 주시우’ 어쩌구 하니 좋은 줄 알았지 뭐유. 취직은 또 안 됐군요?”
만식은 힐끔 쳐다부고 이번에는 제 손으로 연달아 두 잔을 부어 마셨다.
“취직? 허…….”
“왜 웃어요?”
“우스워서 웃지.”
“무에 그렇게 우스워요? 오늘은 좀 이상한데요. 무슨 수가 났나 부죠? 취직 됐죠? 틀림없죠?”
“내가 취직 되고 안 되고가 그렇게 중대 문제요?”
“이것 봐요. 꽁생원이 이쯤 용길 내는 데는 무슨 곡절이 있을 거 아니우? 그렇게 용길 내세요. 사내 대장부가 항상 죽는 상을 하구 그게 뭐예요?”
구석지에 앉았던 사나이가 비틀거리면서 일어섰다.
“어―어, 부부 싸움은 개두 안 말린다구 일찌감치 후퇴해야지. 얼마유?”
이순간 두 사람은 전기에 감전된 듯한 충격을 받고 무의식 중에 마주 보고 웃었다. 여자는 얼른 계산을 마치고 제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그래 취직은 정말 안 됐어요?”
전과는 달리 가라앉은 말투였다. 만식은 나머지를 다 따라 마셨다.
“취직이 될 리 있나요? 안 되죠.”
여자는 물끄러미 식탁을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그럼 어떡허실래요? 강파른 세상에 이대로 가다간 미끄러지는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요. 미끄러지는 수밖에 없어요. 미끄러져서 굴다가 지옥에 떨어지면 그만이지요.”
애꾸는 말없이 일어서 약주를 더 가져다가 그에게 권하였다.
침묵이 흘렀다.
여자는 옆에 있는 빈 주발에 반쯤 술을 따라 마시고 식탁에 얹은 두 팔 위에 얼굴을 떨어뜨렸다.
만식은 먹고 난 소반을 옆으로 밀고 다시 술을 들이켰다.
여자가 얼굴을 들었다. 색 안경 너머로 보이는 외짝눈이 말똥말똥하였다.
“…·인생은 덧없는데 한번 웃는 데도 계산이 있는 세상이에요. 이래도 사람의 생활인가요? ·…·어떡 허실래요?”
“……계산을 분명히 해야죠. 그게 기본이니까. ……난 생각이 좀 달라졌지요. 미스 김은 사람을 내세우지마는 아직 밑바닥을 모르는 얘깁니다. 그전 점심이면 우선 아침을 먹었고 저녁이라면 점심을 먹은 사람의 사고 방식입니다. 사람이기 전에 먼저 생물이라는 걸 깨달았단 말입니다. 생물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자가 인간을 어떻게 찾습니까?”
애꾸는 대답이 없었다. 쥐 한 마리가 땅바닥을 가로질러 달아났다. 만식은 할 말이 많았다. 애꾸가 하나님이나 된 듯이 이 세상을 고발하고 싶었다.
지게꾼이 지게를 내려 문간에 들여 놓으면서 들어왔다. 여자는 일어섰다.
“어서 가 주무세요.”
만식은 웃통을 어깨에 걸치면서 그를 건너다보았다.
“나 돈 없어.”
“알구 있어요.”
그에게 등을 돌린 애꾸는 벌써 지게꾼을 상대로 약주 거래를 시작하고 있었다.
만식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떠내려가는 존재가 아니라 활기 있게 헤엄치는 생명이 거기 있었다.
그는 문을 나섰다.
한두 번 으르릉거리던 셰퍼드는 곧 그를 알아보고 잠잠해졌다. 아침 저녁으로 대하는 정의(情誼)를 발휘한 것이었다. 만식은 웃통에 얼른 두 팔을 끼고 협낭에 들어있는 돌멩이를 어루만졌다. 개고기 생각이 아까처럼 간절한 것은 아니었다. 그 생각은 이미 사라져 없었다. 그러나 이 개만은 기어이 때려잡아야만 했다. 먹는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보니 죽여야 할 이유가 머리에 떠오르지를 않았다. 머리에 떠오르고 안 오르고 간에 죽이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심정이었다. 대문간에 쭈그리고 앉은 개를 중심으로 양쪽 협낭에 두 손을 넣고 그는 어둠 속을 왕복하면서 죽여야만 하는 이유를 찾았다. 이 셰퍼드는 나보다 월등 고급이다. 건방지다. 이렇게 이유를 세워 보았다. 그러나 곧이어 너보다 약은데 건방지지 말라는 법은 어디 있느냐? 이렇게 반박이 나왔다. 이 놈의 개는 육실나게 밉살스럽다. 이런 이유를 세워 보았다. 네 눈에 거슬리는 건 다 죽어야 하나? 하여튼 죽이는 건 틀림없는데 그럼 그 죽이는 소이연은 어디 있느냐?……·이거 시시한 수작이다. 건달을 일 년씩이나 학고 보니 궁상만 늘었다. 개새끼 한 마리 처치하는 데 궁상이 무슨 궁상이냐? 이유 없다. 죽인다! 이 위대한 발견을 성취한 만식은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이때 열 댓 살 먹은 식모가 쪽대문으로 모가지를 내밀고 두리번거리다가 도로 걷어 가지고 들어갔다. 그 순간 만식은 완전 무결한 이유를 발견하였다. 이놈의 셰퍼드가 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만으로 이놈의 개는 죽어자빠져야 했다. 그는 혼자 씩 웃으면서 돌멩이를 불끈 쥐었다.
“메리, 메리!”
나지막하게, 그러나 힘 있게 불렀다. 개는 뒷발로 서면서 그가 내민 왼손에 매달렸다.
“네 사주 팔자는 오늘 밤으로 끝난다. 하나님이 그렇게 정한 걸 낸들 어떡하니? 널 죽여야 내가 살겠다. 요 배불룩이야!”
이 때 대문이 활짝 열리면서 몽둥이를 든 사나이가 소리를 지르면서 나타났다.
“이 도둑놈아, 지금 한 소릴 다시 해 봐라!”
뒷짐을 진 이 집 주인 사나이의 호통에 장단을 맞추듯이 한쪽 손은 잔등에 얹은 채 한쪽 손으로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요 부랑당 놈 같으니라구. 개는 왜 건드리는 거야. 너 따위 열 마리 주구두 못 바꾸는 개다. 그렇잖아도 네놈 유심히 보구 있던 참이다.”
또 한 대 후려갈기는 손을 힘껏 잡아채니 주인은 모루 쓰려졌다. 버둥거리는 것을 발길로 차려는 순간 몽둥이가 어깨를 내리쳤다. 맞아서 휘청거리는데 이번에는 잔등을 후려갈겼다. 만식은 앞으로 쓰러졌다. 일어서려는데 옆구리에 발길이 들어왔다. 그는 덮어놓고 발길의 부인공을 걷어안고 자빠지면서 마구잡이로 얼굴에 주먹 질을 하였다. 주인이었다.
“몽둥인 집어치워라! ·…·만식아, 이 자식아! 이ㅡ자식이.”
목덜미를 잡아채면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전우였다. 그의 억센 손아귀에 이기지 못해서 주인을 놓고 만식은 일어섰다. 몽둥이가 또다시 그의 잔등을 갈기는 바람에 휘청 거리다가 쓰러졌다. 날쌘 전우는 몽둥이를 잡아채어 팽개치고 사나이를 뒤로 탁 밀쳤다.
“술 취한 사람보구 이게 무슨 짓이요? 만식아 가자.”
겨드랑에 넣은 전우의 팔에 끌려서 어느 새 모인 군중을 헤치고 몇 발자국 물러갔다. 손에서 피가 흘렀다. 손바닥이 일자로 찢어진 것이었다. 뒤에서는 쇠사슬에 매여 빙빙 돌면서 찡찡거리는 셰퍼드의 소리에 섞여 욕설이 날아왔다.
“고ㅡ한 놈, 두구 보아라!”
어둠 속에 번뜩이면서 애꾸의 얼굴이 쓱 내밀었다.
“바ㅡ보!”
산봉우리에 앉은 독수리 같은 눈초리로 만식은 내려다보았다. 독수리가 꿩을 잡아먹고 때로는 사람이라는 짐승들이 기르는 닭을 잡아먹었다고 해서 독수리를 탓할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생물의 본능이다. 본능은 권리를 요구한다. 그렇다, 권리다. 나는 원래 생물이다. 내 권리를 행사해야겠다. 이것은 하늘의 명령이다.
배부른 작자들은 인간이라는 것을 창조해 냈겠다. 그리하여 인간을 동물이라는 생물과 구별하였겠다. 자기네는 동물이 아니고 인간이라고. 잘났다고. 배는 부르고 할 일은 없으니 머릿속에서 갖은 요물을 조작해 낸 것이다. 이 따위 조작꾼들을 예로부터 철학자라 하여 떠받들어 왔다. 이 자들을 떠받들어 배불리 먹여 놓으면 별의별 색 동 저고리가 다 터져나왔다. 그리하여 인간이라는 요물 위에다가 가지각색 색동 저고리를 입혔겠다. 도덕이다, 정의다, 의리다, 인간애다, 애국이다, 애족이다, 가치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색동 저고리에다 또 가지각색 노리개를 붙임으로써 교수도 되고 박사도 되고 권력 있는 인간 동물의 총애를 받아서 고깃점이나 더 얻어먹고 못나도 잘난 척하다가 땅 속에 들어가서 구데기 밥이 되었겠다. 인간아, 네가 언제 네 먹을 것을 남에게 주고 굶어 죽은 일이 있느냐? 그렇게 애족을 잘 하는 인간들이 왜 굶어서 헤매는 나 한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못 던지느냐? 요놈의 인간 연극을 뒤집어 엎어야겠다. 알룩달룩한 양갈보 장식을 잡아 벗겨야지. 나 홍 만식은 인간이 아니다. 생물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동물이다. 동물은 무엇이나 닥치는 대로 먹고 살 권리가 있다. 덤비는 놈은 때려 눕힐 권리도 있다. 힘이 모자라면 맞아서 죽을 뿐이다.
아니 이것부터가 만각(晩覺)이다. 이 북한산에서 보이는 서울과 그 주변만이 아니다. 온 천하가 다 보인다. 힘 있는 놈은 없는 놈을 긁어서 살쪘다. 살을 깎아 먹고 이제 뼈를 부수려고 든다. 색동 저고리 요물은 오동오동 씹는 뼈다귀에 맛을 들였다.
그의 눈에는 이 강산의 도시와 농촌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인간을 가장한 짐승들이 간교와 아유의 모든 힘을 다해서 물어 뜯는 정경이 역력하였다. 그는 외쳤다.
― 나는 물어 뜯긴 고기를 찾으련다! ―
정거장에서 기차가 기적 소리와 함께 풍풍거리면서 떠나갔다. 검은 연기가 뻗쳐 올라가다가 하늘에 퍼졌다. 공상은 공상을 낳아서 연기의 소종래(所從來)를 따져 보았다. 따지다가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그것은 석탄이었다. 연기를 뿜는 놈은 석탄이다, 정거장마다 산더미같이 쌓인 석탄! 얼마든지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석탄. 이것을 몰랐구나. 만천하의 석탄은 내 석탄이다! 나는 석탄에 권리가 있다.
이 날 밤부터 홍 만식은 석탄 반출업자가 된 것이었다. 내 것을 내가 가져가는 것이니 반출이라는 것이었다.
홍 만식이 경찰에 걸려든 것은 두 가지 혐의 때문이었다. 그 하나는 일전에 술이 취했을 때 셰퍼드 주인의 엉덩이 껍질이 벗겨졌다 해서 상해죄 혐의요, 또 하나는 정거장에서 석탄을 훔쳤다 해서 절도 혐의였다.
전등불 밑에 대자로 자뿌라져서 구축 작업을 하는 판에 기침 소리도 없이 문이 활짝 열리면서 상판 두 개와 권총 한 자루가 불쑥 들어왔다. 놀라서 일어나 앉는 순간 벌써 쇠고랑은 두 손목을 묶었다. 뒷벽에 걸린 들창으로 들여다보던 두 눈이 오른쪽으로 미끄러지더니 키가 훨씬 크고 뚱뚱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단닫히 묶었어? ·…·응, 네가 홍 만식이지, 일어서!”
건달에다가 도둑과 어깨를 겸한 악질 중의 상악질이라는 것이 그들이 받은 정보였다. 삼각형으로 일어선 두 눈으로 쏘아보던 만식의 말투도 곱지 않았다.
“네, 홍 만식입니다. 그래서?”
“그래서가 다 뭐야, 일어서!”
옆구리에 섰던 형사가 한 대 찼다.
“앉은뱅이가 아닌데 왜 야단이우? 백 번이라도 일어서죠.”
만식은 벌떡 일어서면서 주먹을 쥐고 팔을 펴려고 하였다. 손목이 마구 아팠다. 묶였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요것이 입두 악질이로구나, 군소리 했자 소용 없어!”
“군소리? 무에가 군소리요?”
삼각형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주둥아리가 여물었다. 도둑질에 사람을 치구받구, 가자!”
잔등에 모여든 손들이 밀치는 바람에 만식은 앞장을 서서 어둠 속으로 밀려 나왔다.
친구의 어머니는 마귀를 쫓듯이 문을 열어젖히고 주먹으로 문턱을 내리갈기면서 발광하였다.
“요 못된 놈의 자식이, 일년 내내 드러누워 처먹다가 이제 패가 망신을 시키는구나아ㅡ 날 잡아먹 어라아ㅡ 날.”
‘아ㅡ’ 하고 길게 빼는 목소리는 법 하늘에 여운을 남기면서 뒤를 쫓아왔다.
취조는 순조롭지 못하였다. 홍 만식은 어떻게 보면 똑똑한 것 같고 또 다르게 보면 정신 이상에 틀림없는 듯하였기 때문이다. 돌았다고 주장하는 축도 있고 돈 척하는 악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거장에서 석탄을 훔쳤지?”
“천만에요, 절대 훔치지 않았읍니다.”
“증거가 뚜렷한데 거짓말 말아.”
“무슨 증거가 뚜렷하단 말입니까?”
“악질이로군. 네가 훔처서 가마니에다 지구 우는 걸 본 사람이 있구, 그걸 산 사람이 있는데두 석탄엔 손두 안 댔단 말이지?”
“왜 손만 대요? 발두 대고 잔등도 댔죠.”
형사는 가까스로 웃음을 참았다.
“그러니까 훔친 거지 뭐냐 말이다.”
“내 걸 내가 갖다 먹는 것도 훔치는 건가요?”
“내 것이라니? 아 그래 서울 정거장 석탄이 네 거란 말이야?”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대구·동경·와싱톤·런던, 어디든지 내가 있는 고장 석탄은 다 내 겁니다, 내 거라니까. 석탄뿐 아니죠, 뭐든 내 힘닿는 데 있는 건 다 내 겁니다.”
취조관은 목에 핏대를 올리면서 내대는 이 억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몰랐다.
“너 형무소 밥을 한 십 년 먹어야겠다.”
만식은 주먹을 내휘두르며 딱 잡아떼었다.
“난 절대 형무소엔 안 들어갑니다.”
“네 맘대루 되나? 죄를 졌으면 넣는 거지.”
“당신은 법률의 기본두 모르는군요. 형무소란 건 소위 나는 인간입네 하는 ‘인격’을 가진 요물들이 들어가는 고장입니다. 개가 고등어를 훔쳐 먹었다구 형무소에 들어갑디까? 기둥이 부러져서 할머니의 허리를 분질렀다구 기둥이 형무소에 들어갑디까? 왜 그런지 아시우? 개나 기둥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자기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내게는 법률이 들지 않습니다. 나는 생물입니다.”
취조관의 두 눈은 갈수록 가느다랗게 되다가 나중에는 아주 딱 감겨 버렸다. 고개를 한번 기우뚱하였다.
눈과 입은 한꺼번에 열렸다.
“정신은 똑똑하지?”
“정신병잔 줄 알았수?”
“그 따위로 놀다간 어느 방맹이에 맞아죽을지 모른다. 모가지가 열 개 있어두 안 돼.”
“내 힘이 모자라서 죽는 거야 어쩔 수 있나요? 나는 내 법칙 하에 내 힘으루 사는 생물입니다. 다치지 마시우.”
홍 만식은 두 팔을 내휘저었다. 형사는 크게 한바탕 웃었다.
“그래서 이웃집 영감도 때려 눕혔군. 요컨대 개판으루 살자 이 말이지?”
“개는 개판으루 살 거구, 돼지는 돼지판으로 살 거구, 홍 만식은 홍 만식판으루 살죠.”
취초관은 별안간 눈을 부릅떴다.
“누굴 놀리는 거야? ”.
“큰소리 쳐두 소용 없읍니다. 그런 건 인간이란 요물이나 보구 하시우.”
“넌 크래 인간 아니야?”
“생물이라니까.”
형사는 온 낯이 웃음판이 되었다.
“잘 알았다. 이웃집 영감은 왜 때렸어 ? 둔부 찰상이라구 진단서가 왔는데.”
“하, 그것두 물을 필요가 없는 얘깁니다. 영감 엉덩이를 긁혀서 핏방울이나 홀린
모양인데, 이결 보시구려. 난 손바닥이 쭉 째졌읍니다. 그래두 문제 안 삼습니다. 생물이니까. 그 영감쟁이 산에 올라갔다가 소나무 그루에 엉덩일 벳겼더면 뿌릴 빼다가 유치장에 처넣을 뻔했군.”
취조관은 빙그레 웃고 말았다.
며칠을 두고 물어도 꼭 같은 대답이었다. 마지막에는 의사를 불러다가 정신 상태를 감정시켰으나 똑바른 결론은 얻지 못하였다. 이상한 듯도 한데 확정한 진단은 단시일 내에 내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일 주일 후에 형사가 가자는 대로 가 보니 서장실이었다. 전우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일선에서 조국에 바친 충성을 참작하고, 또 실제로 절도 행위는 처음이고 고소인의 상처도 대단치 않을뿐더러 그 환경을 보면 동정할 여지가 충분히 있기에 특히 관대한 처분을 해서 석방하는 것이니 이후 조심해서 젊은 나이에 앞날을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간곡한 훈시를 하고 전우더러 꼭 책임을 지라고 한 다음 끝으로 다짐을 받았다.
“이제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사람을 치는 일은 없겠지?”
그러나 홍 만식의 답변은 단호한 바가 있었다.
“필요한 물건은 언제든지, 훔치는 것이 하니라, 반출할 것이요, 방해되는 놈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적당히 처치하겠읍니다.”
서장은 전우를 돌아보면서 부탁하였다.
“아무래도 보통이 아니야. 이제부터는 전적으루 자네 책임일세.“
전우와 함께 만식은 서장실을 등지고 나왔다.
홍 만식이 애꾸눈 처녀의 옆방으로 이사해 온 것은 유치장에서 나온 날 저녁이었다. 어머니가 없는 틈을 타서 석방을 경축하는 의미로 마음놓고 약주를 마시는 판에 장에 갔던 어머니가 돌아왔다. 노파가 방문을 여는 순간, 인간이 내뿜을 수 있는 최고도의 독기가 방 안을 돌아 만식을 쑥 찔렀다.
“너 이 도적 같은 눔아, 우리 집엘 다시 오다니, 썩 물러 못 가느냐!”
친구는 얼른 일어나서 앞을 가로막았다. 주름진 목수래는 헐레벌떡거리고 흰 치마폭에 가리운 젓가락 같은 두 다리도 분명 떨고 있었다.
“어머니 왜 이러시우 …….”
“왜 이러다니! 네 눔부터 도적이로다. …… 이 눔의 …… 집 부숴 버리고 나부터 죽어 번져야겠다아!”
어머니는 장을 보아 온 망태기를 방 안에 활짝 내던지고 부엌으로 들어 갔다. 만식은 흩어진 무우·배추·가자미 속에서 불쑥 일어섰다. 친구는 그를 돌아보고 손을 옆으로 젓고는 마당으로 뛰어내려갔다.
도끼를 들고 나온 어머니는 두 간짜리 이 집의 변변치 못한 기둥을 갈기면서 법석이 났다.
“집이 원수로다·…· 집을 없애야겠다아!”
친구가 도끼를 뺏느라고 서두는 판에 대문간으로 들이밀었던 수많은 얼굴 중에서 재빨리 움직여 들어오는 것이 하나 있었다. 애꾸였다.
“아주머니 진정하세요.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잡힌 손목을 다시 잡으면서 달래는 애꾸의 목소리에 노파의 발작은 한층 더 격렬하였다.
“이제 다아 망신이다. 저 눔의 도척 때문에 우린 다아 망했다. ……이걸…… 놔
라·…· 저 눔의 대가릴 부수구·…· 나두·… 죽어야겠다아――一―.”
네 손아귀 속에서 악을 쓰는 노파는 원숭이보다 클 것도 장할 것도 없었다. 마당 한 모퉁이에 내려서서 이 정경을 지켜보던 남식의 얼굴은 무표정 그것이었다. 팔백 환 가져다 주던 아침에는 이지러졌던 입이 헤벌어지고 깡깡 마른 팔이 곡선을 지은 입술의 운동과 함께 제법 묘하게 움직이던 바로 그 몸뚱이였다. 나무 뿌리가 똥물을 조금이라도 더 먹겠다구 굳은 땅 속에서 악을 쓰는 바로 그 법칙,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칙이 시들어 빠진 저 가죽 밑에서 마구 요동을 치는 것이었다. 만식은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빨았다가 연기를 휴우 내뿜으면서 노파의 치마가 벗어질 듯해서 주시하고 있었다.
“저 도척 같은 눔이·…·날 원숭이 보듯 하는구나아―.”
다시 치민 발작과 더불어 애꾸는 떨어져서 이 쪽으로 달려왔다.
“사람이 왜 그래요. 어서 우리 집엘 갑시다.”
이리하여 그는 애꾸의 뒤를 따라 대문을 나선 것이었다.
방에다 차려 준 저녁밥을 먹는 만식을 복도의 걸상에 앉아 뚫어지게 보던 애꾸는 한 마디 던졌다.
“미스터 홍, 잘 데 없죠? 우리 옆방에 있어두 괜찮아요.”
밥이 잔뜩 얹혀 있는 숟가락을 턱 가까이에서 멈춘 만식은 얼굴을 활짝 돌리고 말없이 노려보다가 오래간만에 웃음이라는 것을 터뜨렸다.
“허·…·총각이, 혼자 있는 처녀네 집에 있어두 괜찮을까?”
“무엇이 어때서요?”
“이웃집에서 바가지가 깨지면 깨졌다 걱정이고, 안 깨지면 안 깨졌다 걱정하는 이 숱한 입 속에서 견뎌 배길 수 있을까?”
애꾸는 씩 웃었다.
“걸핏하면 생물입네 하고 큰소리 치는 양반이 그렇게 신경이 예민해서야 어디 생물구실 하겠나이까?”
“나야 생물이지만 미스 김이야 인간 아닌가?”
“남의 걱정 말구 자기나 똑똑하세요.”
이리하여 만식은 애꾸 처녀의 식객이 된 것이었다.
자리에 드러누워서 천정의 그림 무늬를 세던 홍 만식은 눈을 감고 구축 작업을 시작하였다. 새벽에 짊어졌던 석탄 가마니가 유난히 무거워서 어깨에 멍든 것이 기분에 거슬렸다.
요 며칠을 두고 그의 사고 구축 작업은 ‘애꾸의 본질’이라는데 집중되었다. 아무리 보아도 애꾸는 보통 인간이 아니었다. 적어도 ‘生의 章典’을 터득한 존재였다. 오히려 자기같이 이 장전에 달라붙은 거짓이 아니라 발길로 차 넘 긴 듯학 기품이 있었다. 사변 때에 집이 폭격을 맞는 바람에 부모가 즉사하고 중상을 입은 남동생마저 며칠 못 가서 세상을 떠나자, 글자 그대로 천애 고하의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R 대학생의 신분도 여기서 끝났다는 것이다. 지금 이 집은 피난 갔던 부산에서 돌아와 폭격맞은 대지를 팔아 꾸민 것이라고 한다. 별로 쾌활한 것로 아니지마는 침울한 것도 아니요, 할 말은 다하는 위인이다. 노처녀가 그대로 늙을 작정이냐고 물었더니 서슴지 않고 노총각은 어쩔 작정이냐고 반문하는 용감성이 있었다. 이웃집에서는 ‘안경잽이’라는 별호를 등지고, 더구나 남자를 끌어들여 수작을 부린다고 쑥덕공론이 자자해도 까딱 없었다. 지나간 한 달을 두고 지극히 도덕률에 충실하고 이 나라 청년 남녀의 순결성에, 지대한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스스로 도덕성의 옹호자로 자처하는 동네 아낙들이 자진해서 소맷자락을 붙잡고 간곡한 충고를 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때마다 그의 대답은 지극히 간단 명료하였다.
――할 일이 없군요. ㅡ
간혹 정성이 알뜰한 아낙네가,
―할 일이 없어서 그러나? 네 앞날을 생각해서 그러지. ―
하고 그 충정을 피력하면,
―어서 집에 돌아가 그 때묻은 치맛자락이나 빠세요. ―
하고는 핑 돌아서는 것 이었다.
그러기에 이웃간에는 애꾸가 바람이 나서 제대 군인과 죽자사자 한다는 소문이 여간 아니었다. 간밤에도 옆집 목수가 술에 얼근히 취해 가지고 들어와서는,
“압다 바람난 처녀의 술은 별맛이렷다. 한잔 주실깝쇼?”
하고 떠드는 것을 여자는 보기 좋게 뺨따귀를 후려갈겨 내쫓았다.
변명이라는 것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여자의 이론에 의하면 이 사람들은 개 같은 심사를 가진 물건들이어서 비린내나는 것에 몰렸다가는 서로 싸우고, 누가 돌멩이 하나 던져도 다시 그리로 몰린다는 것이다. 그 실례로 이 문제만 하더라도 한 패는 만식이가 몹쓸 놈이어서 다짜고짜 밀고 들어갔다거니, 또 한 패는 그런 것이 아니라 애꾸가 원래 할량이라 사내를 끌어들였다거니, 한 달을 두고 세밀한 고증(考證)과 이론 투쟁을 전개하던 끝에 며칠 전에는 마침내 이발관 마나님과 떡집 마나님이 맞붙어서 머리칼을 서로 뜯어젖히는 소동이 일어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사실 이 소동은 진리에 용감한 두 마나님의 머리칼이 몇 무더기 빠지고 끊어지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 분을 참지 못하는 떡장수 어머니의 횡설 수설을 듣고 있던 중학교 일년생 아들이, 부지깽이를 들고 나서서 원수를 갚는 통에 이발관 유리 다섯 장이 부서지고 구멍탄 난로가 뒤집어 엎어지는 반면에, 중학생의 뺨따귀에 직공의 촌자국이 시퍼렇게 멍들어 앉는 일대 전과를 남겼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만식은 애꾸로부터 별다른 것을 느낀 일은 없었다. 다만 신새벽에 팔다 남은 석탄을 걸머지고 오면, 뛰어나와 짐을 내려 주고, 가끔 안색이 좋지 못하다면서 닭을 잡아 주는 일은 있어도, 자기 방에 들어와 얘기하는 일도 흔치 않았다.
‘애꾸의 본질 ’은 무엇이냐? 그 심리 구조는 어떻게 생겼느냐?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단순하다. 그러나 이것은 천진 난만과는 그 유가 다르다. 멍청한 떡대의 단순성이 아니라 강철대의 단순성이다. 그렇다, 시뻘건 불에 달고 쇠망치에 얻어맞으면서 가스를 모조리 털어 버린 강철이다.
만식은 여기서 소리를 내어 웃었다.
문이 쓱 열리면서 애꾸가 빗차루를 들고 들어섰다.
“왜 웃어요, 혼자서? 미치광이같이.”
만식은 일어나 앉으면서 응수하였다.
“하여튼 앉으시지요.”
여자는 앉으면서 방 안을 둘러보았다.
“미스 김이 강철대라는 얘깁니다.”
“강철대? ·…·말괄량이란 말씀이죠?”
“말괄량으루선 후족하지, 코끼리괄량? 아냐 역시 강철대야.”
“이거 추키는 건지 깎는 건지 분간 못 하겠는데 그럼 미스터 홍은 무에죠?”
“나야, 생물이지.”
여자는 픽 웃었다.
“생물 생물 하지 말구 분명히 말하세요. 생물에두 여러 가지 있죠. 풀도 있구, 나무두 있고, 개두 있구, 소두 있쿠, 구데기두 있는걸요,”
재빨리 놀리는 애꾸의 입술을 보면서 만식은 씩 웃었다.
“가만 있자, 동물은 아닐 거구, 풀일까? 아냐 풀은 너무 약해. 나무라 나무 라, 응 그래 나무야. 꼿꼿하구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나무야.”
“무슨 나무예요?”
“…… 응·…·대야 대.”
“왜요?”
“꼿꼿하구 미끈하구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으니까 대지.”
여자는 입을 삐죽했다.
“피ㅡ 그런 척하는 거지. 무에가 그리 꼿꼿하고 미끈해요? 굽히지 않는다구? 그건 굽히지 않는 게 아니라 발악이에요. 쥐두 막다른 대목에서는 고양이를 문답디다.”
“발악은 꼿꼿하지 말라는 법이 어딨나.”
“발악이 어떻게 꼿꼿해요? 닥치는 대루 치고 박구 딩구는 게 그래 꼿꼿해요?”
“그럼 난 ‘닥치는 대루’야.”
“매소부로군요.”
만식은 한풀 꺾였다. 모욕까지 느꼈다.
“그럼 미스 김은 무어죠?”
“강철 이라구 하구서두.”
또 꺾였다. 캄플라지하느라고 담배를 피워 물고 공격을 시작했다.
“미스 김은 웃음이 있읍니까?”
“웃음? 호…… 이렇게 웃는 거 말이죠. 매일, 아니 쉴 새 없이 웃고 있죠, 속으루 말예요.”
“왜?”
“연극이 재미있어서요. 가만 세상을 내다보세요. 제정진 없는 광대춤 아니에요?”
“이거 해탈한 얘기로군, 그럼 미스 김은 광대가 아니겠군요?”
“누가 아니랬어요? 싫건 좋건 무대에 선 자가 춤 안 추구 먹구 살 수 있나요?”
이건 강철 이상이다. ― 만식은 압도되는 것을 느꼈다.
“미스 김두 여성인데 눈물은 있읍니까?”
“눈물?·…·전쟁 때 다 짜내 버리구 땅땅 말랐어요.”
만식은 옆으로 쓰러져서 한쪽 팔을 베개로 누웠다. 여자는 일어서려고 하였다.
“오늘은 쉬는 날인데 왜 그리 서두르시우? ……그래 결혼은 안 하구 늙을 작정인가요?”
“작정이야 요새 같은 세상에 무슨 작정이에요? 멋들어지게 춤 잘 추는 작자루서 애꾸두 괜찮은 이가 있으면 하죠.”
홍 만식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괜찮다는 건 안 좋기는 하지만 그저 참을 수 있다는 말이죠.”
“아무렴 애꾸가 좋을 사람이 어딨어요?”
“그건 발악이 아닌가요?”
“발악이란 건 억지의 요소가 많은 걸 말하는 겁니다. 애꿀 애꾸라구 하는 것두 발악인가요?”
만식은 용기를 가다듬었다.
“난 괜찮은 정도가 아닌데, 춤만은 아주 서투르지요?”
여자는 빗자루를 들고 일어서면서 허리를 꺾고 웃었다.
“춤이 아주 멋들어지게 될 공산이 큰데 열심히 해보세요.”
만식도 따라 일어서면서 여자를 껴안으려고 하였으나 그는 살짝 빠져나가 버렸다.
“안 돼요.”
정거장에서 석탄을 홈치다가 현장에서 붙잡혀 29일 동안 구류를 당하고 나온 다음 날 아침이었다.
조반상을 물리고 멍하니 앉은 그의 가슴 속에는 일시에 공허 그 자체가 몰려들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절망이기도 하였다. 이렇게도 인간 세상이라는 것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인 줄은 몰랐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태어나서, 그럭저럭 30년의 봄과 가을을 맞고 보내고 하였다. 때로는 인간이라는 것을 다른 족속 위에 놓고, 자기를 다른 인간 위에 떠받들면서 채색의 아롱진 구름을 그리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 여기 이 토굴 같은 방에 앉은 자기는 구름을 타려다가 모래밭에 떨어진 두더지에 다를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혹은 백만 장자가 되지 못해서도 아니었다. 먹을 것을 찾아서 이 골목 저 골목 찔룩거리고 돌아다니다가 마침내는 인간이 아니노라, 생물이노라, 발악을――그렇다. 여자의 말마따나 발악이다ㅡ 하는 동안에 인간의 밑바닥을 너무나 지나치게 본 때문이 아니냐? 흥 만식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어냐? 배고픈 김에 푸줏간에 들어가서 뼈다귀를 하나 물었다가 몽둥이에 얻어맞고 쫓겨나온 강아지와 다를 데가 어디냐? 발악을 할 때에는 그래도 무엇인가 속에서 꾸물거리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의욕도 힘도 기름도, 피나 물기마저 철저히 빠져 버린 수세미였다. 그것은 또 무엇이 무서워 서도 아니었다. 이것을 구태여 ‘무서움’으로써 표현한다면, 길가에 팽개친 돌멩이로서의 자기를 의식한 데 있다고 할 수 있을는지 몰랐다. 누가 발길로 차서 구렁에 넣고 삽으로 흙이나 한줌 덮어 주려무나.
여자가 보자기를 끼고 소리도 없이 들어와 옆에 앉았다.
“무얼 그렇게 생각하세요?”
“……”
“너무 낙심 마세요.”
“천만에.”
두 사람은 말없이 앉아서 창살을 물끄러미 내라보았다. 침묵이 흘렀다.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미스터 홍, 오해는 말아 주세요. 저도 저대로 많이 생각해 보았어요. ……우린 결국 인간이에요. 생물이니 강철이니 하고 빗나가 보아두 인간이지요.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 아니에요?”
만식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창살을 보고 있었다.
“……인간이란 말이에요.”
여자는 이렇게 되풀이하면서 만식의 얼굴을 살폈다. 만식은 중얼거리듯이. 대답하였다.
“그렇겠지요…….”
다시 침묵이 홀렀다.
여자는 머뭇저리다가 나지막하게 말하였다.
“오해 마세요. 미스터 홍은 여길 떠나야 합니다. 사람마다 무대가 있잖아요? 제 무대에 올라서야 사람 구실을 한다― 이것이 제가 이 한 달 동안 두구두구 생각한 결론이에요. 여기 그냥 있어서는 무대가 생길 가망이 없어요. 좁은 껍질을 쓰구 자신을 상대루 악을 쓰지 말구 넓은 세계를 상대해 보세요. 무대를 찾으세요. 그건 자신을 찾는 것두 되겠지요. 자기의 자세두 만들구요.”
만식은 비로소 얼굴을 돌렸다.
“자세? 이것이 내 자세지요.”
“아니에요. 그건 자세 이전이에요. 미스터 홍은 아직 자세가 없어요. 이를테면 여기 한 개 생명 있는 육체는 있어도 홍 만식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어요. 건방지다구 탓하지 마세요.”
만식은 뚫어지게 여자를 쏘아보았다.
“그럼 미스 김의 자세는?”
여자는 미소를 띠우면서 약간 상기하였다.
“저는 미스터 홍을 돕는 자세예요.”
만식은 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어떤 따뜻함을 느꼈다. 이북에서 단신 월남할 때 멀리 집 앞 큰바위 밑까지 바래다 주던 어머니의 눈물 괸 눈에 서렸던 그러한 따뜻함이었다.
“고맙소. ·…·허지만 세상이나 내 자신에게나 이제 바랄 건 아무것두 없읍니다.”
여자는 바싹 다가앉았다.
“아니에요. 개나리는 봄에 피고 도라지는 가을에 피지 않아요? …… 여기 양복 한 벌 있어요. 맞겠는지 모르겠어요.”
보자기를 풀어 헤치고 내놓은 새 양복에는 안에 ‘洪萬植’ 석 자가 수놓여 있었다. 만식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는 아무 말도 않고 양복을 빼앗아 보자기에 싸들고 일어섰다.
“오늘 떠나시란 말은 아니에요…….”
여자도 따라 일어서면서 말끝을 흐렸다.
“오늘 떠나는 게 좋을 상싶어. 일진이 좋아.”
여자는 머뭇거리다가 잠깐 기다리라고 하면서 자기 방으로 뛰어나갔다.,
복도에 걸터앉아서 만식은 구두를 찾아 흙을 털어 신고 일어섰다.
“이걸 갖구 가세요.”
신문지에 싼 것을 저고리 호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돈이었다. 말없이 마주 보다가, 만식은 두 손을 그의 어깨 위에 얹었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한 눈이 번쩍이면서 여자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괴로우시거든 언제든지 돌아오세요·…·기다리겠어요…….”
만식은 힘껏 껴안아 주고 밖으로 나섰다.
어쩌면 무슨 변동이 있을 듯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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