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 편
우겨쌈을 당하여도 쌓이지 아니하며
요절: 16절
내용 관찰
59편은 “사울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려고 그 집을 지킨 때에"라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이 역사적 배경은 삼상 19:11에 “사울이 사자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그를 지키다가 아침에 그를 죽이게 하려 한지라"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시고"(1), “악을 행하는 자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피 홀리기를 즐기는 자에게서 나를 구원하소서"(2)하고 호소합니다. 그런데 5절에서 갑자기 "일어나 모든 나라를 벌하소서" 하고 간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8절에서도 "모든 나라들을 조롱하시리이다”고 열방을 거론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시편 2편으로 가 보아야만 합니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2:1-2) 이것입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포위하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을 예표로 삼아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모든 나라가 분노하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대적하게 될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2:4과 59:8을 대조해 보십시오. 다 같이 "주께서 저희를 웃으시리니 모든 열방을 비웃으시리이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포위당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나의 산성"(9,16,17)으로 고백합니다. 구약의 산성, 피난처, 도피성 등은 신약에 와서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성취되었습니다.
3절을 보면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엎드려 기다리고 강한 자들이 모여" 즉 합세하여 치려하오니 한 말씀이나, "그들이 저물어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고"(6)라는 표현에서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벤전5:8)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먹을 것을 찾아 유리하다가 배부름을 얻지 못하면 밤을 새우려니와”(15)한 말씀은 "배부름을 얻지 못함" 즉 사탄의 궤계가 결코 이루지 못할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을 죽이지 마옵소서"(11)합니다. 왜입니까? “나의 백성이 잊을까 하나이다”고 그 이유를 말합니다. 일견 무자비한 듯한 이 말씀이 계시록에서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9:6)고 응하게 됨을 보게 됩니다.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16) 합니다. "밤을 세운다"는 15절과 "아침에 부르오리니"의 16절의 대조를 보십시오. 지금이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눅22:53) 하신 밤의 시간이라면, 원수가 소멸되는 그날은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의 시간입니다.
묵상해 봅시다.
59편의 배경이 무엇입니까?
열방을 벌하소서의 뜻이 무엇입니까?
대적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묘사되어 있습니까?
적용: 사도바울은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고후4:8)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산성(9,16,17)이십니다.
암송: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16)
제 60 편
대적을 밟으실 자
요절: 12절
내용 관찰
60편은 짧지만 전체가 전쟁 시입니다. 그리고 ‘전쟁은 여호와께 속 하였다'(삼상17:47, 대하20:15)는 사실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일이나 여호사밧 군대가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을 패퇴시킨 일들은 구속의 역사를 대적하는 사탄의 음모를 하나님의 군대가 물리친 전쟁이 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이 전쟁을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1-5에서 다윗은 한때에 패배가 하나님의 징계에 의한 것이었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니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1)합니다. 구속의 역사란 다름 아닌 "회복“의 역사인 것입니다.
"주를 경외하는 자"(4), "주의 사랑하시는 자"(5) 에게는 한때의 패배는 있을 수 있어도 영원한 패배란 없습니다. 그러므로 승리를 의미하는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4)라고 승리를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6상) 함과 같이 다윗의 확신은 하나님이 당신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신 언약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얻게 된 확신입니다.
89:35에 "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 번 맹세 하였은즉 다윗에게 거짓을 아니할 것이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뛰놀리라"(6) 합니다. 그의 확신과 기쁨이 어떠함을 말씀해 줍니다. 승리에 대한 확신은 가나안 안에서의 통일국가를 이루실 것과(6-7) 이방 적대국들에 대한 승리로(8) 나타납니다.
다윗은 세 번 기름 부음을 받았는데 왕으로 예선해 놓으셨을 때(삼상16:13)와 유다 왕이 되었을 때(삼하2:4)와 통일왕국의 왕으로 등극할 때(삼하5:3)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져야 할 예루살렘, 그리스도가 탄생하셔야 할 다윗성은 다윗 때에야 비로소 여부스 사람에게서 빼앗을 수가 있었습니다(대상11:5). 그리고 대외적으로도 다윗이 통치하는 동안에는 모압 에돔 블레셋 등의 적대국들을 제거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아직 끝난 것은 아닙니다.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9)하고 누군가를 찾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12)고 말씀합니다. 대적을 밟으시는 이는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이 전쟁은 창3:15에서 시작되었으며, 계시록에 가서 완성될 것입니다.
60편은 전투적인 교회가 영적인 싸움에서 일시 패배한 듯하여 낙망하여 있을 때에 하나님이 그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신 그 말씀에 의지하여 격려될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묵상해 봅시다.
1-3절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둘째 부분에서 무슨 말씀을 상기합니까?(6)
대적을 밟으실 이는 누구이며, 언제 성취될 말씀입니까?
적용: 성도들에게는 한때의 패배는 있어도 영구한 패배란 없습니다.
암송: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