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쨍쨍 나다가도 갑자기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가 하면 금세 하늘이 청명해지는 여름날에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열무에 풋고추 닥닥 갈아 넣고 부드럽게 버무려 담근 김치, 가마솥에 물을 펄펄 끓여 삶은 콩을 맷돌로 곱게 갈아 국물을 만들고 거기에 국수 한 덩이 말아 넣고는 후루룩 먹던 고소한 콩국수. 땀 흠뻑 흘려가며 일한 후 먹던 새참과 여름 별미는 추억으로 남아 여름만 되면 그 맛이 더욱 그리워진다.
“어린 시절 새벽 동이 트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어머니의 얼굴을 보기란 그리 쉽지 않았어요. 아이 셋을 키우며 집안일은 물론 들일까지 하셔야 했던 어머니기에 어깨가 더욱 무거우셨겠지요.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부엌에서 어머니는 두 개의 가마솥에 밥과 국을 안치셨어요. 그러고는 아궁이 한가득 솔가지를 채워 넣고 바삐 찬거리를 준비하셨죠.
그 옛날, 음식 만드는 데 남다른 재주와 욕심이 있었던 어머니는 바쁜 시간을 쪼개 집에서 한 시간도 넘는 거리에 있는 시내까지 나가 요리를 배우곤 하셨어요. 일식부터 중식, 양식까지 못 만드시는 요리가 없었죠. 소풍 때면 김밥 대신 초밥을 싸주셨고 탕수육과 깐풍기도 집에서 만들어주셨어요. 저는 어머니가 요리를 하실 때면 그 옆에서 보조 역할을 자처했는데, 그 덕분에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손맛도 여물어갔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들에 나가 계실 때면 남자 형제 대신 부엌일은 늘 제 차지였어요. 어머니의 점심을 밭이나 논으로 가져다드리는 것은 물론, 가끔은 끓는 물에 밀가루 반죽을 뚝뚝 떼어 넣고 감자와 파란 호박을 총총 썰어 넣은 수제비를 옹기 항아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서 새참을 나르기도 했지요.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엉덩이 한번 땅에 못 붙이고 일하시는 어머니가 유일하게 편히 앉을 수 있는 시간은 식사시간뿐이었어요. 앉아서 편하게 밥 드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시절 먹었던 음식들은 모두 제철 식재료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어요. 어린 열무를 다듬고 생고추를 갈아 열무김치를 담가두었다가 보리밥에 고추장 넣고 쓱쓱 비벼 먹기도 하고, 시원한 열무 국물에 국수를 한 타래 넣고 말아 후루룩 먹기도 했지요. 고소한 콩국수 역시 열무김치 없이는 제맛을 내기 어려웠어요.
제 고향인 청양의 고추가 맵고 단단해지기 시작하면 그때 먹었던 열무김치와 입안에서 탱글탱글 미끄럼을 타던 보리밥이 생각나요. 어머니가 즐겨 해주시던 음식들의 냄새와 맛을 느끼면 그제야 ‘아! 여름이 성큼 다가 왔구나.’ 하고 계절을 느끼게 되지요.”
출출한 속을 달래주던 간식 쑥갠떡
어머니는 바닥에 엉덩이 붙일 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쑥갠떡에 떡살 문양을 꼭 넣어주셨어요. 수레바퀴, 격자, 국화, 모란 모두 네 가지 문양이 있었는데, 각각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지요. 수레바퀴 떡살에는 인생이 무난하게 잘 굴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격자에는 격조 있고 품위 있게 도덕적으로 잘 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해요. 국화와 모란에는 자식들이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고요.”
쑥갠떡
만드는 법
1 쑥은 깨끗이 손질해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파랗게 데친다.
2 멥쌀은 8~12시간 정도 물에 불렸다가 건지고 물기를 뺀 다음 소금을 넣어 빻는다.
3 ②에 쑥을 넣고 한 번 더 빻아 체로 내린다.
4 쌀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익반죽하고 동글동글하게 떼어내 납작하게 만든 후 찜통에 쪄 한 김 식힌 다음, 참기름을 바른다.
오이와 가지로 만든 손님을 위한 여름 한상차림
“바쁜 여름이었지만 귀한 손님이 오시면 상에는 늘 특별한 메뉴가 오르곤 했어요. 오이무름국과 가지선이 바로 그것이지요. 오이무름국은 여름에 주렁주렁 열린 오이를 따서 속을 파고 쇠고기와 표고버섯 등을 다져 넣은 뒤 한 번 지진 것을 냄비에 담아 고추장을 푼 육수를 넣고 얼큰하게 끓여 먹는 별미예요. 표고버섯과 쇠고기의 담백함, 고추장의 얼큰함 그리고 오이의 싱그러움이 어우러진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지요.
시골에서는 가지를 주로 볶거나 쪄먹는데, 특히 가지선은 표고버섯과 쇠고기를 가지에 다져 넣어 담백하고 모양도 참 예뻐요. 오이무름국과 가지선 모두 쟁여놓은 귀한 쇠고기로 만드는 데다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특별한 손님이 오셨을 때만 맛볼 수 있었어요. 여기에 양파, 고추, 깻잎으로 담근 장아찌 몇 가지만 곁들이면 근사한 한상차림이 완성된답니다.”
- 1 오이무름국. 2 깻잎장아찌. 3 고추장아찌. 4 양파장아찌. 5 가지선.
기본재료 오이 250g, 쇠고기(우둔) 100g, 다진 쇠고기(우둔) 70g, 느타리버섯 50g, 풋고추 개, 달걀 1개, 밀가루 1큰술, 식용유 큰술, 청장·소금 작은술씩, 물 5컵 [쇠고기 양념장] 다진 파 작은술, 청장 작은술, 다진 마늘 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다진 쇠고기 양념장] 다진 파 3작은술, 다진 파 작은술, 소금·다진 마늘 작은술씩, 후춧가루 약간
만드는 법
1 오이는 길이 1㎝ 정도로 썰어 속을 파낸다. 쇠고기는 가로 2㎝, 세로 3㎝, 두께 0.5㎝ 정도로 썰어 분량의 양념장을 넣고 양념한다. 다진 쇠고기는 분량의 양념장으로 간한다.
2 느타리버섯은 길이 5㎝, 폭 0.5㎝ 정도로 찢어둔다.
3 ⓛ의 오이 속에 다진 쇠고기를 넣고 앞뒤로 밀가루를 입힌 후 달걀을 풀어 달걀물을 씌운다.
4 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③의 오이를 위아래로 뒤집어가면서 노릇하게 지진다.
5 달군 냄비에 쇠고기를 넣고 볶다가 물을 붓고 센 불에서 끓인다.
6 ⑤에 오이와 느타리버섯을 넣고 끓이다가 청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풋고추와 홍고추를 넣은 다음 2분 정도 더 끓인다.
가지선
기본재료 가지 2개, 쇠고기(우둔) 100g, 표고버섯 3장, 달걀 1개, 소금 1큰술, 식용유 큰술, 잣 1작은술, 청장 작은술, 물 2컵, 실고추 약간
[양념장] 간장·설탕·참기름 1작은술씩, 다진 파·다진 마늘 작은술씩, 후춧가루 약간
만드는 법
1 가지는 씻어서 4㎝씩 길이로 썰고 2.5㎝ 깊이로 십자 칼집을 넣어 소금물에 30분 정도 절였다가 물기를 닦아둔다.
2 쇠고기는 길이 4㎝, 폭과 두께 각각 0.2㎝ 정도로 채썰기하고 양념장의 를 넣어 양념한다.
3 표고버섯은 물에 불렸다가 기둥을 떼고 길이 3㎝, 폭과 두께 각각 0.2㎝ 정도로 채썰기하고 남은 양념장 을 넣어 양념한다.
4 달걀은 황백 지단을 부쳐 곱게 채썰기한다. 실고추는 1.5㎝ 길이로 자른다.
5 양념한 쇠고기의 와 표고버섯을 섞어 칼집을 낸 가지 속에 채워 넣는다.
6 남은 쇠고기를 냄비에 깔고 그 위에 ⑤의 속을 채운 가지를 얹는다. 물 2컵을 붓고 청장으로 간을 맞춘 후 센 불로 끓인다. 물이 끓으면 중간 불로 낮추고 국물을 끼얹으면서 10분 정도 더 끓인다.
7 ⑥에 황백 지단, 실고추, 잣 등 고명을 얹어낸다.
/ 여성조선 (http://woman.chosun.com/)
진행 강부연 기자 | 사진 이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