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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것으로 죽음보다 더한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운좋게 죽음을 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자신을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빨리 헤아려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죽을 「사死」자는 원래 가명으로, 과거 생의 업으로 감득한 과보가 다하여 이 몸을 버리고 다른 종류의 몸을 받는 것일 뿐이다.
불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정말 어찌할 방도를 몰라 단지 지은 업에 따라 유전할 뿐이다.
이제 여래께서 중생을 널리 제도하시는 정토법문을 들었으니, 마땅히 믿음과 발원으로 염불하여 왕생할 자량을 미리 마련하고, 생사윤회의 환같은 괴로움을 면하길 기대하며 열반하여 영원히 머무는 진실한 즐거움을 증득하여야 한다.
부모. 형제 및 여러 권속들 중에서 만약 중병에 걸려 낫기 어렵게 된 사람이 있으면 마땅히 효순과 자비의 마음을 내어서 그에게 염불하여 서방극락에 태어나길 구하라 권유하고, 아울러 조념해야 한다. 이로써 병자가 죽음을 마치고 정토에 태어나게 한다면 그 이익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지금 열거할 때 세 가지 중요한 일은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이 왕생을 성취하는 근거로 말이 비록 거칠지라도 뜻은 불경을 바탕으로 한 것이니, 이 인연을 만난 사람은 빠짐없이 실행해 주시기 바란다.
세 가지 중요한 일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병자에 맞게 일깨워주고 위로하여, 바른 믿음이 생기도록 한다. 둘째, 조념하는 사람은 반을 나누어 바꾸어 가며 염불하여, 병자가 정념을 이어가도록 돕는다. 셋째, 절대 망자를 옮기거나 움직이지 말고 흐느껴 울지 않도록 경계하여, 일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막아야 한다.
만일 이 세 가지 법에 따라 그대로 행하면 틀림없이 과거 생에 지은 업(宿業)을 없애고, 정업淨業의 인因이 늘어나 부처님께서 접인하심을 입고 서방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
왕생하면 범부를 뛰어넘어 성인의 흐름에 들어가 생사를 요탈하고, 정진 수행하여 반드시 불과를 원만히 이룰 것이다. 이런 이익은 전부 육친권속들이 조념한 힘에 의지한다.
이렇게 행할 수 있으면 부모님께는 진실한 효도가 되고, 형제자매에게는 진실한 우애가 되며, 자식에게는 진실한 사랑이 되고, 친구나 다른 사람에게는 진실한 의리나 진실한 은혜가 된다. 이처럼 자신에게는 정업의 인을 기르고, 동수에게는 믿고 따름을 일깨워 오래도록 지속하면 어찌 서로 배우면서 염불하는 풍조를 만드는 것이 어렵겠는가? 이제 하나하나씩 설명하는 것은 어떻게든 임종시에 이르러 어찌할 바를 몰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첫째, 병자를 선교방편으로 일깨워주고 위로하여, 바른 믿음(正信)이 생기도록 한다.
부디 병자가 일체를 내려놓고 일심으로 염불하도록 권하라. 만일 인계해야 할 일이 있으면 빨리 인계하도록 하고, 인계한 후에는 그 일을 상관하지 말고 곧바로 「나는 지금 부처님을 따라 불국토에 왕생하겠다. 이 세상의 모든 재산과 즐거움, 육친권속, 갖가지 육진경계는 모두 장애가 되고 재앙과 손해를 받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념에도 연모하는 마음을 내지 않겠다」고 생각해야 한다.
모름지기 자신의 일념 진성에는 본래 죽음이란 없는 것이고, 죽음이라 함은 이 몸을 버리고 다른 몸을 받는 것일 뿐이라 알아야 한다. 만약 염불하지 않으면 선업과 악업의 힘에 따라 선도와 악도에 다시 태어나게 된다. 선도란 인간 세상과 천상이고, 악도란 축생 아귀 지옥이다. 수라는 선도이기도 하고 악도이기도 하니, 저 닦은 인과 감득한 과가 나란히 선과 악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명종에 임할 때 일심으로 「나무아미타불」 부처님 명호를 염하면 이 지성으로 염불하는 마음으로써 반드시 감응하여 부처님께서 크게 자비심을 발하고 몸소 손을 드리워 접인하여 왕생하게 한다.
또한 「나는 업력에 매인 범부인데 어찌 잠깐 염불한 것을 가지고 생사를 벗어나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겠는가?」 의심하지 말라. 부처님께서는 대자비심에 십악. 오역의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도 임종시 지옥의 모습이 이미 나타났을지라도 만약 선지식이 염불을 가르쳐 혹 열 번 소리내어 염하거나 혹 한 번만 소리내어 염불해도 또한 부처님께서 접인하심을 입어 서방극락에 왕생함을 알아야 한다. 이런 사람도 이처럼 몇 마디 염불하여 왕생하거늘 어찌 업력이 무겁고 염불 횟수가 적다고 해서 의심을 낼 것인가?
모름지기 우리가 본래 갖추고 있는 진성과 부처님은 둘이 아니지만, 미혹과 업장이 깊고 무거워 받아쓸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 이미 부처님께 귀명하였음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나아가듯이 곧 나의 본래 존재하는 고향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거늘, 어찌 분에 넘치는 일이라 하겠는가?
또 부처님께서는 옛적에 발원하시길, “시방세계 중생이 저의 명호를 듣고서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좋아하여... 내지 십념에 저의 국토에 태어나지 못한다면 정각을 성취하지 않겠나이다.” 하셨다. 그래서 일체중생을 임종시 지성심을 발하고 염불하며 서방극락에 태어나길 구하면 손을 드리워 접인하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절대로 의심해서는 안 되니, 의심은 곧 자신을 그르치는 것으로 그 재앙이 적지 않다.
하물며 이 사바세계 고해를 떠나 저 극락세계에 태어남은 지극히 마음에 드는 일이니 마땅히 환희심을 내야지 절대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해서 죽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서방극락에 태어나는 연분이 없게 된다.
자심과 부처님과 서로 어긋나는 까닭에 부처님께서 비록 대자비심을 갖고 계실지라도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는 중생은 어찌할 수가 없다.
「아미타불」 온갖 덕을 갖춘 위대한 명호(萬德洪名)는 마치 큰 용광로와 같고, 우리가 이전에 수많은 생을 살며 지은 죄업은 마치 공중에 흩날리는 한 조각 눈에 지나지 않기에 업력에 매인 범부라 할지라도 염불한 까닭에 마치 용광로에 떨어진 한 조각 눈처럼 바로 사라져 찾을 수 없다. 게다가 업력이 사라지면 모든 선근이 저절로 늘어나 수승하거늘 왕생할 수 있을까, 부처님께서 와서 접인하실까, 어찌 그것에 대해 의심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이리저리 상세하게 설명해 일깨워주고 위로해주면 병자에게 저절로 바르게 믿는 마음이 생길 수 있으니, 이것이 병자를 위해 일깨워주는 것이다. 자신이 효도를 다하고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오직 이것에 있다.
[세속의 정에 따라 신에게 구한다든지 의사에게 진찰을 받는다든지 하는데, 이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천 명이 막 다하려고 하는데, 귀신과 의약품으로 어찌 죽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무익한 일에 정을 들이면 염불하는 일에 그 간절한 정성이 분산되어 부처님과 감응이 통하지 않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모님이 명종에 임하여 재물을 아끼지 않고 수많은 의사를 불러 진료하도록 하는데, 이는 효심을 파는 행동으로 세상 사람들이 내가 부모님께 효도를 다한다고 칭찬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천지 귀신들이 그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음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무릇 부모님 장례 등과 같은 일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 천재가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인화가 있게 마련이다. 자식 된 사람은 마땅히 부모님의 신식(영혼)이 알맞은 자리를 얻는 것을 중시해야지, 세상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것은 당연히 눈 밝은 이들에게는 한바탕 웃음거리도 못 되거늘, 하물며 온갖 궁리를 다해 얻으려고 하는 것은 실로 불효라는 큰 허물을 만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둘째, 조념하는 사람은 반을 나누어 바꾸어 가며 염불하여, 병자를 도와 정념淨念을 이어가도록 한다.
앞에서 이미 병자에게 바른 믿음이 생기도록 일깨웠으나 저 병자는 심약하다. 평소 염불을 전혀 하지 않았던 사람은 염불을 오래 이어가기 어렵고, 이전에 줄곧 염불을 해오던 사람이라도 죽음에 이르면 전부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지해야 비로소 염불하는 힘을 얻게 된다. 그래서 집안 육친권속들은 함께 효순. 자비의 마음을 내어서 그를 위해 부처님 명호를 조념해야 한다.
만일 병자가 아직 마지막 순간에 이르지 않았으면 반을 나누어 염불하여야 한다. 반은 3개 반으로 나누고, 반마다 인원수는 몇 사람으로 한정하여야 한다. 한 반에 몇 명씩 정해 3반으로 나누어야 한다. 1반이 소리내어 염불하면 2.3반은 마음속으로 지념하는 식으로 각각 1시간 동안 염불하고, 2반이 다시 이어서 소리내어 염불하면 1.3반이 마음속으로 지념한다. 작은 일이 생기면 소리내지 않고 지념할 때 처리하고, 당번이 되면 단연코 자리를 떠서는 안 된다. 2반이 염불을 마치면 3반이 이어서 염불하고, 끝나면 다시 시작하는데 1시간 염불하고 2시간 쉬어서 설사 밤낮 이어서 염불해도 그렇게 힘들지 않다.
모름지기 다른 사람이 정념을 이어가 왕생하도록 기꺼이 돕는다면 나 또한 다른 사람이 조념해 주는 과보를 얻음을 알아야 한다. 게다가 부모님께 효도를 다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해야 한다고 말하지 말라. 설사 보통 사람을 위할지라도 또한 자신의 복전을 일구고 자신의 선근을 기르니, 실로 자신을 이롭게 하는 도이지 단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다.
조념염불로 한 사람을 정토에 왕생시킴은 바로 한 중생을 부처낙 되게 함이니, 이런 공덕을 어찌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
세 반이 서로 이어가 염불소리가 끊어지지 않는다면, 병자가 염불할 힘이 있으면 그 소리를 따라 작은 소리로 염불할 것이고, 염불할 수 없으면 귀를 기울여 자세히 듣고 마음에 딴 생각이 없으면 저절로 부처님과 상응하게 된다!
염불소리는 너무 높아도 안 되니, 너무 높으면 기가 상해 오래 지념하기 어렵다. 너무 낮아도 안 되니, 병자가 또렷하게 들을 수 없게 된다. 너무 빨라도 안 되고 너무 느려도 안 된다. 너무 빠르면 병자가 따라할 수 없고 또한 또렷하게 듣기 어렵다. 너무 느리면 숨이 넘어가서 또한 이익을 얻기 어렵다. 모름지기 높지도 낮지도 않게 하고,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하여, 한자 한 자 분명하게 한 마디 한 마디 뚜렷하게 하여 병자로 하여금 한 자 한 자 분명하게 귀에 들어가 마음에 두도록 하면 곧 쉽게 염불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염불할 때 법기는 오로지 인경만 쓰고 다른 것은 일체 쓰지 않는다. 인경소리는 맑아 듣는 사람의 마음자리를 청정하게 한다. 목어소리는 탁하여 임종조념에 쓰지 않는다.
또한 마땅히 「아미타불」 넉자 부처님 명호를 염해야 한다. 처음 염할 때는 「나무아미타불」 육자를 몇 마디 염하고, 이후는 「아미타불」 넉자를 전념하고 「나무」는 염하지 않는다.
글자 수가 적으면 염불하기 쉽기 때문이다. 병자가 염불을 따라 하거나 마음을 거두어 들을 때 모두 병자의 심력心力을 살펴야 한다.
집안의 육친권속이 이렇게 염불하고 밖에서 불러온 선우들도 또한 이렇게 염불한다.
인원수가 많든 적든 이렇게 염불하되, 모두 함께 염불하고 잠시 쉬었다가 또 염불하는 식으로 해서 병자로 하여금 불념이 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밥 먹을 시간이 되면 반을 바꾸어 먹어서 염불소리가 끊어져서는 안 된다. 만일 병자가 숨이 끊어지려고 하면 세 반이 모두 함께 숨이 거둔 이후까지 줄곧 염불해야 하고, 또한 다시 세 반이 함께 3시간을 더 염불해야 한다. 그런 후에 잠시 쉬고 정리하고 안치하는 등의 일을 처리해야 한다.
염불할 때는 친한 벗들이 와서 병자 앞에서 안부를 묻거나 위로를 해서는 안 된다.
추도의 감정으로 보러 왔다면 마땅히 약간이라도 따라 염불하는 것이 진실한 애정이고, 병자에게 이익이 있다. 만앨 세속적인 정으로 고해로 밀어 넣는다면 그 정은 비록 느낄 수 있지만, 그 일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이 일을 주관하는 사람이 이치에 밝아 미리 사람들에게 잘 설명하는가에 완전히 달려 있다. 인졍에 끌리어 병자에게 해를 끼쳐서 마음을 분산시켜 왕생할 수 없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셋째, 절대 망자를 옮기거나 움직이지 말고 흐느껴 울지 않도록 경계하여, 일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막아야 한다.
병자가 막 임종하려고 할 때 바로 범부. 성인. 사람. 귀신을 판가름하는 시기는 마치 머리카락 한 가닥으로 삼만 근이나 되는 매우 무거운 물건을 매어 두듯이 너무나 중요하고 긴박한 상황이기 때문에, 오로지 부처님 명호로써 그의 신식(영혼)을 일깨워주어야지 절대로 씻거나 옷을 바꿔 입히거나 앓아누운 병상을 옮겨서는 안 된다.
병자가 어떻게 앉든지 누워있는지 그대로 내버려두고 병자의 몸짓에 따를 뿐 조금도 옮겨서는 안 되고, 또한 그를 마주하고서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흐느껴 울어서는 안 된다.
이때는 몸을 스스로 가눌 수가 없기 때문에 한 번 움직이면 손발이나 몸뚱이가 모두 구부러지고 꺾이며 비틀리는 종류의 고통을 겪는다. 고통을 느끼면 성내는 마음이 생겨 불념이 멈추게 되고 성내는 마음에 따라가 대부분 독을 지닌 부류에 떨어지게 되니, 더할 나위 없이 두렵다.
만일 비통해 하며 흐느껴 우는 모습을 보면 애정이 생겨 불념이 곧 멈추기 때문에 애정을 갖는 마음을 따라가 세세생생 해탈을 얻지 못하게 된다. 이때 가장 이로운 것은 일심으로 염불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고 가장 해로운 것은 망령되이 병자를 움직이거나 흐느껴 우는 것보다 더한 것은 없다. 만일 망녕되이 움직이거나 흐느껴 울면 성내며 원망하는 마음이나 애정을 갖는 마음이 생기게 되어 서방극락에 태어나고자 하는 생각이 아주 사라져 버린다.
또 사람이 막 죽으려고 하면 따뜻한 기운이 아래서 위로 올라가면 선도에 태어나는 모습이고, 그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악도에 떨어지는 모습이다. 그래서 「정수리에 따뜻한 기운이 있으면 성인으로 태어나고, 눈에 있으면 천도에 태어나고, 사람은 심장, 아귀는 배, 짐승은 무릎에서 기운이 떠나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은 발바닥으로 기운이 나간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여러분이 지성으로 조념을 해주면 저절로 서방극락으로 바로 왕생하니, 부디 자주 살펴봐서는 안 된다. 신식(영혼)이 아직 떠나지 않아서 혹 자극을 받아 급격하게 움직여 마음에서 번뇌와 고통이 생겨나면 왕생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죄과는 실로 무량무변하다. 원컨대 여러 친한 벗들께서는 각자 간절하게 염불하여 따뜻한 기운이 어디에 있는지, 나중에 어디에서 식는지 살필 필요가 없길 바란다. 자식된 도리를 하는 사람은 이런 일에 주의함이 진실로 효도하는 것이다.
만일 세간의 갖가지 세속적인 정에 따라 일을 처리하면 즉시 부모님을 거리낌 없이 고해로 밀어 넣는 것이며,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사람들을 초대하여 군중이 그를 칭찬하는 것으로 효도를 다할 수 있다면, 그 효도란 나찰녀의 사랑과 꼭 같다. 경전에 이르시길, “나찰녀가 사람을 잡아먹으며 말하길,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래서 너를 잡아먹는다」” 하셨다. 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효를 이렇게 행한다! 부모님께서 즐거움을 잃고 괴로움을 얻게 한다면 그것은 나찰녀의 사랑과 똑같지 않겠는가?
제가 이 말씀을 드린 것은 인정머리가 없다는 뜻이 아니고, 사람들마다 각자 실질적인 방법을 강구하여 망자는 왕생을 기약하고, 살아 있는 사람은 복을 얻어 효성 깊고 슬기로운 자손들의 일편단심 혈육에 대한 정성을 이루라는 말이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 좀 격해진 것 같지만, 진실로 부모님을 사랑하는 분이라면 반드시 양해해 주실 수 있을 것이다.
吾人一擧一動天地鬼神
諸佛菩薩 無不悉知悉見
만약 조금이라도(색욕 등) 삿된 생각이 생긴다면
우리의 일거일동을 천지의 귀신, 제불보살이
모두 알고 보지 않음이 없다고 생각하여야 한다.
사람 앞에서 감히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지 못하거늘,
하물며 불보살께서 삼엄한 곳에서
감히 그릇되고 비천한 일을 행하겠는가?
ㅡ 인광대사 문초청화록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서방정토 극락도사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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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나모아미따불 나모아미따불 나모아미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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