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요동성은 수나라와 당나라의 수차례 침략을 막아낸 고구려 최전방의 요새였다. 요동성의 위치를 통하여 고대 요동과 고구려 강역이 어디까지 였는지 알 수 있다. 자치통감 등에 따르면 고구려 요동성은 한나라 양평성이었다.
기원전 300년경 전국시대 연나라 장수 진개가 고조선을 침략하고 연장성을 쌓았는데, 연장성은 조양에서 양평까지 이어졌다. 연장성의 동쪽 끝인 양평이 한나라 양평성이자, 고구려 요동성이었다. 연나라 장수 진개의 고조선 침략 기록을 토대로 요동성의 위치를 밝힌다.
https://youtu.be/UMGWMxwXhgA
첫댓글 사마천사기 평준서, 한서 무제기, 한서 식화지, 후한서 동이열전에 나오는
창해군(하북성 중동부 지금의 창주시 지역)의 정확한 내용은,
고구려, 부여, 동옥저, 예=동예와 위만조선(낙랑군), 삼한이 만주와 한반도가 될 수 없는 이유이니
♥역사교수들과 역사학자 누구도♥ 창해군의 정확한 내용을 국민들에게 알릴 수가 없는 게지요
♥한서 식화지에♥ (위만조선을 정벌하기 위해)
팽오가 예맥(=예=동예)에서 (위만)조선까지 길을 뚧으려고 (한 무제가) 창해군을 설치하니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가 바람이 몰아치듯 소란스러워 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漢書 卷二十四下 食貨志 第四下』 : 彭吳穿 穢貊 朝鮮, 置滄海郡, 則燕·齊之間靡然發動.
따라서
예맥(=예=동예)에 설치한 창해군의 위치인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인 하북성 중동부의 지금의 창주시에
한무제가 창해군을 설치하였며, 예맥(=예=동예) 서쪽에 위만조선(낙랑군)이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됩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에 따라)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에
삼한은 예=동예=예맥=창해군의 남쪽으로 한무제가 설치한 창해군은 연나라와 제나라 사이이니,
창해군은 하북성 중동부 창주시이고,
예=동예=예맥=창해군의 남쪽의 ♥삼한의 위치는♥ 산동성과 강소성 안휘성이 됩니다
■사마천사기 조선열전에 따르면 패수서쪽은 한나라 요동군이고,패수동쪽이 요동외요=진고공지=상하장으로
상하장에 위만조선이 건국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요서군 동쪽이 요동군, 요동군 동쪽에 위만조선(낙랑군),
위만조선(낙랑군) 동쪽에 예=동예=예맥=창해군(하북성 중동부 지금의 창주시) 입니다
♥요수의 동쪽이 요동군이라는 주장은♥
당나라 학자 장수절이 사기정의(AD 736년 편찬)에서 최초로 주장한 내용으로
단어 뜻을 어문학적으로 풀이한 내용이며 ♥♥사실이 아님니다
(요서를 요수의 서쪽으로 해석하고 요동을 요수의 동쪽으로 풀이하여 주장함)
♥『사마천사기 몽염열전』
♥진나라가 천하를 병합하자 이에 몽염에게 30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북쪽으로 융적을 쫓아내게 하여 황하 남쪽 땅(오도로스 지역)을 점거했다.
장성을 쌓으며 지형에 따라서 험난한 요새를 만들었으며,서쪽 임조에서 동쪽 요동까지 길이가 일만여 리나 이어졌다
【집해】 서광이 임조는 룡서에 속한다고 했다
【정의】 ♥사마정은 요동군은 요수 동쪽에 있고,♥
진시황이 쌓은 장성의 동쪽은 요수에 닿았고, 장성의 서쪽(서남)은 해(섬서성 서쪽 황하)에 닿았다고 했다
[원문 史記列傳 권88 蒙恬列傳]
秦已并天下, 乃使蒙恬將三十萬眾北逐戎狄, 收河南. 築長城, 因地形, 用制險塞, 起臨洮,
【集解】徐廣曰 : 「屬隴西.」 至遼東,延袤萬餘里. 【正義】遼東郡在遼水東, 始皇築長城東至遼水, 西南至海(之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