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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사는 시대와 동떨어져 공자왈 맹자왈 골백번 좋은 구절 들춰봐야
고개한번 돌려줄 사람 있을까. 그래서 <고전기행, 사설여행>도 12월 둘째주 세째주에 일어난
사건 중에 대자보로 이어지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 같은 주제도 고전과 연결시켜 보고
코레일의 철도가 선다. 지하철이 선다는 소리에 예전 마차와 관련된 고사도 돌아봤다.
그리고 시절이 한해와 이별을 해야 하는 송년 분위기라
춘향가 중 '이별가'에 나오는 <시호시호 부재래>로 다시 올 수 없는 이해는 우리에게 무슨해였던가?
거기에 북한에서 일어난 2인자의 처형 사건과 함께 뜬 '양봉음위'를 우리의 고전 '배비장전'과
연결해서 비유해 보기도 했다. 생각 같아서는 한편 한편에 대한 진지한 원전 해설도 덧붙이고
못 다한 이야기도 보충하고 싶은데, 연말까지는 이렇게 바쁜 일정을 보내야 하기에 오늘은
전체적인 개괄을 해 드리고, 방송된 원고를 올려 드릴까 한다.
다만 한곳 '선시선종'에 대해서는 한마디 덧붙여 말할 게 있어 이 주제에 대해서는
첨언을 해볼까 싶다. '시작도 좋고 끝도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일까?' 또는
'시작도 멋지고 끝도 멋진 인간관계란 어떤 것일까? ' 이런 걸 생각하며 '선시 선종'에 대해
조금은 생각해볼 시간 가져볼까 한다. 우선 방송된 원고들부터 소개해 본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배비장전과 양봉음위(陽奉陰違)’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이종구씨 오늘은 사설여행이라면서요.
종구 배비장전 이야기 생각나시죠?
희은 배비장이 겉으로 여자 안 좋아한척 했다가. 제주목사랑
애랑이랑 짜고서 골탕 먹이는 이야기잖아요. 애랑이 집에서
자루에 묶이고 뒤주에 갇히고, 결국 훌러덩 옷 벗은 꼴로
사람들 앞에 나와야 했던 배비장의 굴욕도 익살 스럽구요..
종구 배비장 위선도 문제가 있죠. 그냥 여성은 아름다운 꽃이여.
인정 할 것이지. 난 여색에 꿈쩍도 안해. 그러다 당한건데
자, 그 배비장전 이야기를 사자성어로 한번 풀어 볼까요?
희은 여색을 탐하지 않은 척 했다가 애랑의 유혹에 넘어가
망신 당했으니깐 ‘패가망신’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종구 그도 일리 있습니다만, 배비장이 겉으로 선비인 척
도학자인척 했다가 나중에 애랑에게 쏙 빠져서 속내를
들켰으니깐 ‘표리부동’이라고 해야겠죠.
희은 그럼 배비장을 놀려 주려고 음모를 꾸민 방자나 애랑은
사자성어로 뭐라고 해야 할까요?
종구 배비장전에 방자는 겉으로 상전을 잘 모시는 척 하면서
속으로 애랑이랑 짜고 배비장 개망신 시킬 일을 꾸미잖아요.
희은 배비장이 애랑이 집에 자는데 애랑 남편처럼 달려들어 겁주고
달려든 게 방자였잖아요. ‘적반하장’ 아닌가요 그 방자?
종구 꾸민 일이니 연극으로 했다지만 방자도 자루 속에 있는
상전을 때리기도 했으니 이건 ‘적반하장’ 정도가 아니라
‘구밀복검’이라고 해야겠죠.
희은 방자는 배비장에게 ‘구밀복검’을 했다. 그 사자성어 뜻은?
종구 겉으로 상전 잘 모신척 해 놓고 상전 개망신 줄
일을 꾸몄으니 ‘입으로는 꿀을 발라 아부치면서 뱃속으로는
칼을 품은 <구밀복검> 아니겠어요?
희은 그렇다면 제주 목사가 ‘저 겉으로 여자 안좋아한 척 하는
배비장 유혹해서 넘어 뜨려라’ 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애랑이는
배비장 사랑하는 척 잘 모시는 척 했던 그 연극 역시도
뱃속에 칼을 품은 ‘구밀복검’인가요?
종구 제주명기 애랑을 ‘양봉음위’로 해석해 보는건 어떨까요?
희은 ‘양봉음위’ 요즘 북한에서 장성택 숙청하며 나왔던 말이잖아요.
종구 <겉으로 따르는 척 하면서 속으로 딴 마음 품는다> 이게
요즘 북한에 유행하는 ‘양봉음위’ 니깐 배비장을 유혹해
파탄 나게 한 애랑에게 맞는 말 아닌가요?
희은 애랑은 연극으로 그랬던거고. 나중에 서로 웃으면서
익살스럽게 끝난 이야기지만 실 생활에 ‘양봉음위’나
‘구밀복검’이나 ‘동상이몽’ 이렇게 나가면 결국 깨지는거잖아요
종구 사람과 사람 사이 안팍으로 똑 같이 살기 힘들단 이야기죠.
우리 주변에 ‘양봉음위’하는 사람들 누군지 잘 보이는가요?
여 ‘고전기행 사설여행’ ‘배비장전과 양봉음위’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원앙자수를 보여줘도 바늘은 주지 말거라. 몇가지 오해가 생기고 동시에
한가지 확신을 갖게 하는 구절이다. 그 사람이 아니면 그 기예를 넘겨주지 말거라.
기예를 더럽힐 사람이라면 진수를 건네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동시에
어렵게 수련하고 쓰디 쓴 경험에 의해 얻어진 소중한 가치를 지닌 걸 손쉽게
넘겨주면, 그렇게 간절히 목말라하지도 않고, 뼈를 깎아보는 구도의 맘도 없는
자에게 도매금으로 넘겨주면 학문도 예술도 기술도 발전이랄게 뭐 있을까.
그저 쉽게 얻어진 정보로 이리 저리 팔아 먹기 좋은 상품 대접 받을 것인데.
하지만 줘야 할 사람이라면 원앙자수고 바늘이고, 본을 뜨던 자수판이고 다 줘야
하는거 아닌가? 그 판단과 선택이며 결정은 오직 스승과 제자 사이만 가능할 터이지만....
요즘 쓰잘데 없이 자기 것에 대해 고가의 가격을 매겨놓고
청기와 장사하는 사람들, 무슨 경매장에서 몇 백억을 홋가했다는 작품들을 보면
씁쓸하다. 결국 돈으로 웅변하는구나. 그래 죽은 다음에도 돈으로 잘난 걸 선언하는구나.
원앙금침에 금실 좋은 부부가 떠나고 자수명인 바늘은 녹슬었는데, 겨울밤 바람소리만 차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원앙자수와 바늘 鴛鴦繡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이종구씨 오늘은 고전기행인가요?
종구 ‘원앙 자수와 바늘’ 이야기를 돌아볼까합니다.
희은 흔히 들었던 그 ‘원앙금침’ 이 생각나네요.
원앙자수가 아름답게 새겨진 이부자리란 말 아닌가요?
종구 아름다운 부부금실 소원하는 자수였죠. 그런데
우리 선인들은 그 ‘원앙자수는 보여줘도 바늘까지 줘선
안된다’는 말을 남겼거든요.
희은 작품은 보여줘도 작품을 완성하는 솜씨는 쉽게
건네주면 안된다는 건가요? 그게 청기와 장사 마음 아닐까요?
종구 그래서 두가지 측면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죠.
우선 여기 실학자 성호 이익이 ‘거우반삼’이란 글에서 말한
원앙 자수와 바늘 이야기 보실까요.
희은 (낭송) 원앙으로 수놓은 솜씨는 그대에게 보이겠지만 / 鴛鴦繡出從君看
가진 금바늘 딴 사람에게 쉽게 넘겨주진 말라 / 莫把金針度與人
이 구절을 성호 이익은 어떤 뜻으로 했던걸까요?
종구 오랜 세월 어렵게 터득한 예술의 경지나, 절묘한 기술을
그냥 쉽게 넘겨 버리진 말라. 배우는 사람이 우선
간절하게 찾고 연구하고 터득해 나가는 인고의 세월도
필요한 법이란 뜻을 담고 있거든요.
희은 그렇다면 요즘 같이 핵심만 그냥 정답만 간추리고
그렇게 과정 대한 경험도 안해보고. 정답찍는 지름길
습득하게 해주는 그런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말 같은데요.
종구 일테면 절묘한 기술이거나 절륜한 예술이거나
그걸 구하고 찾는 사람의 노력이 없이 그냥 덥석
얻게된다면, 그렇게 쉽게 생각한다면 발전이나 깊이가
있겠느냐 그런 뜻으로 볼 수도 있는 구절이죠. 여기 보세요.
희은 이 글은 그 유명한 퇴계 선생과 고봉 기대승이 오랜 세월
편지로 사단칠정 논쟁을 벌렸던 글 아닌가요?
종구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이 주고 받은 <이기왕복서>에 있는
구절인데요. 여기에 또 ‘원앙자수와 바늘’ 잠깐 돌아볼까요?
희은 (낭송) 성현의 말씀과 가르침을 아깝게 여겨서 어떻게 한사람에게만
은밀히 전할 리 있겠습니까. 해와 달처럼 환하게 하여
눈이 있는 사람은 다 볼 수 있게 하는 게 성현의 가르침
아니겠습니까. 한 사람에게만 알려 준다면 그게 바로
‘원앙자수를 보여주되 바늘은 건네주지 말란 말’ 아니겠습니까?
종구 이렇게 정리하면 되겠죠. 모두에게 큰 가르침과 일깨움이 되는
것은 숨기고 아껴선 안된다. 다만 예술과 기술은 배우려는 자가
간절히 찾고 수련할 때 그 바늘을 건네 줄 수 있을 것이다.
희은 우리 시대 소중한 가치를 가진걸 너무 쉽게 뺏으려 해도 안되겠지만
그걸 너무 아껴서 숨기는 것두 문제 아닌가 싶습니다.
‘고전기행 사설여행’ ‘원앙자수와 바늘’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들 하십니까? 여기에 고전적 답을 한번 찾아 보고 싶었다.
계곡 장유가 왕비가 된 딸을 둔 배경을 두고 경기도 안산 벽촌에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세월을 보내니 동네 사람들이 보기 딱해서 술이며 안주 들고가
위로 했다는 것이다. '부원군 마마댁 요즘 안녕들 하십니까?'
속으로는 '당신 같은 대단한 분네가 우리 동네로 와서 우리가 안녕들 못하답니다'
그런데, 정작 계곡 장유는 '안녕들 못합니다. 그런데 축복을 받았지요' 하면서
역설을 늘어논다. 그가 말한 역설은 요즘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세상이 날 아무리 흔들고 힘들게 해도 내 마음 편하면 축복이요
내 손으로 농사짓고 밥짓는 이게 축복이요. 당파 독사들 꼴 안보고 사니 이게 축복 아니냐?'
자신의 딱한 처지를 뒤집어서 그 가운데 축복이 있노라 해석한 장유의 씨름판
배지기 수법이 통쾌하면서 후련하기도 하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장유의 해장정사기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오늘은 고전기행 쪽으로 가실건가요?
종구 조선 중기 문신 계곡선생 장유의 ‘해장정사기’
잠깐 만나볼까요?
희은 해장 정사기 하니깐 요즘 생각으로 ‘해장 땅에서 생긴
정사’ 그런 거 아닌가요?
종구 그때 정사는 애정문제가 아니죠. ‘수양하려구 조용한 곳에
지은 집도 정사라하구. 학문연구나 종교수련을 목적으로 지은
집도 정사‘라 했거든요.
희은 그럼 계곡선생 장유가 안산 땅에서 마음수양하고자 지은
해장정사란 집에서 생긴 일을 기록한 것이겠군요.
종구 조선 한문학 4대가에 들기도 했던 장유인데요. 일생동안
큰 전쟁을 세 번이나 겪었죠.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병자호란 때는 호조판서를 지냈구요. 그런 장유가 벼슬을
버리고 경기도 안산 쪽 시골로 내려갔던거죠.
희은 한양에서 장관급 생활을 했던 고관이 경기도 벽촌으로
내려 왔는데 해장 마을 사람들이 부담 됐겠어요.
종구 여기 ‘해장 정사기’ 일부분을 보면 장유의 시골살이 모습이
그림 같이 떠오를겁니다. 간추린 글로 음미해 볼까요?
희은(나옹) ‘귀하신 분이 안산 촌으로 들어오셔서 농사를 짓고 사니
우리 해장 사람들이 보고 듣기 평안치 않습니다.
날마다 거름냄새 코를 찌를 것이고, 파리떼 모기떼 뱀까지
괴롭힐텐데, 시골이라 찾아오는 사람들도 줄어들 것이라
삼가 위로하는 마음으로 술통을 들고 찾아 왔습니다. ’
종구 계곡선생 장유의 딸은 효종대왕의 왕비 였으니 부원군
세도 부렸을건데 50대 후반 시골살이 했던겁니다. 그걸 마을
사람들이 보기 딱해서 술통을 들고 찾아 와 위로하는거구요.
희은 한양 고대광실 살 사람이 경기도 벽촌에 내려와 농사짓고
사니 보기 딱해 술통들고 왔다. 이때 계곡 장유는 뭐라고 응답?
종구 요즘 말로 ‘안녕치 못합니다. 하지만 축하해 주세요’
이렇게 답을 하고 있거든요.
희은 ‘안녕치 못합니다’ 그래놓구서 ‘축하해 주세요’ 이건
무슨 뜻으로 했던 말일까요?
종구 가난해서 가족들 안녕치 못합니다. 병들어 이내 몸 안녕치
못합니다.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광채를 덮고서 살지못해
안녕치 못하답니다.
희은 요즘 한 대학생이 ‘안녕들 하십니까?’ 물어서 화제가 됐는데
50넘은 왕비의 아버지요 우의정까지 올랐던 계곡 장유
만년이 결코 ‘안녕하지 못했다’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축복을 받을 일이 뭐 있다고,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했대요?
종구 내손으로 농사지어 밥 먹을 수 있으니 축복 아니냐?
세상이 내 마음을 진흙탕 만들 수 없으니 축복아니냐?
산이고 냇가고 동물이고 서로 친해졌으니 축복 아닌가?
모기 독사 걱정이라니/ 세도가 혓바닥만할까? 독사보다 무서운
당파싸움 벗어나 전원에 사니 축복 아닌가?
희은 네, 결국 사는꼴은 안녕들 못하는데. 마음으로는 축복받았노라
감사하며 농촌생활 받아 들인다는 말 아닌가요?
‘고전기행 사설여행’ ‘장유의 해장 정사기’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몇해 전에 '선시선종善始善終' 글을 썼던 게 있는데, 송년과 연말 분위기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추기경의 선종, 이때문에 선종이란 말이 한때 회자됐었다. 그때
국내 모 신문사 기자가 재빨리 이 '선종'이란 말이 莊子에게서 나왔노라며 호들갑 떨었는데
그 기자분 어떤 고전 전문가에게 물었는지 몰라도, 장자보다 200여젼 전에
춘추좌전에 선종이란 말이 등장한다. 그걸 지적해서 모모한 곳에 전하기도 해 봤지만
반응이 없다. 아닌 것이면 바꿀 줄도 알고 틀렸으면 고칠 줄도 알아야 하는데, 모르니깐
그게 그거라고 그냥 건너들 간다. 밥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없는 일이라면서......
국내 인문학계 수준이나 고전연구 베이스가 이 정도인가 실망했던 적이 있다.
좌전에서 처음 나온 '선종善終'과 장자에서 나온 '선종善終' 은 서로 다른 철학을 가지고있다.
이 부분 길게 논증하자면 말이 길어질 것이니. 잘라서 말해보자.
춘추좌전에서 말하는 '선종'은 한 사람이 세상을 떴을 때, 그와 관련된 친인척과 지인들은
서로 화해하며 고인이 즐겁게 가도록 멋지게 갈무리 해 달라는 장례의식과 마음을 중심으로 한
'산자의 화해와 죽은자의 멋진 송별'의 뜻이 있다. 장자의 '선시선종'은 그야말로 해방된
삶의 자유로움 속에 거침없이 멋지게 살아 보는 달관자 갈무리가 있다. 이 부분 서로 세세하게
말하자면 길어질 이야기다. 내가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의병장 유인석이 말한 그 한마디다.
'좋게 시작해 좋게 끝장 보는 게 열에 한둘 정도이다!' 인간관계 그렇게 잘 만나서 잘 마무리
짓고 좋은 얼굴로 살기 힘들더란 말이다. 나도 요즘 이 말치레를 하구 있다.
시작은 좋았는데~~~ 하면서 후회하지 말아야 할 텐데~~~ 결국 웃어야 할텐데.......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멋진 갈무리 선시선종善始善終’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오늘은 고전기행 길인가요? 사설여행 길인가요?
종구 한해를 잘 마무리 해야 하는 때이니.
‘선시선종’에 대해 잠시 돌아볼까요.
희은 사자성어로 된 ‘선시 선종’, 선종이란 구절만 딱 떼놓고
보면 몇해전 김수환 추기경님 선종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종구 그 선종이, 바로 <선시선종> 에서 온 말이지요.
한 사람이 일생을 잘 마치고 이 세상을 떴을 때
옛 사람들은 선종이란 말을 쓰기도 했거든요.
희은 그 선종이란 말 연원을 따지자면 시간이 모자랄텐데요?
종구 선종이란 말이 장자에게서 나왔다고 했었죠. 그런데 장자가
말한 선종보다 먼저 기록된 게 ‘춘추 좌전’ 문공 15년 조에
처음 등장하죠. 그때는 선종이 ‘떠난 자나 보내야 하는 자나
서로 좋게 마무리 하는 의례와 마음가짐’을 뜻했구요.
희은 그 ‘선종’이란 말이 그럼 장자에게 오면서 비슷한 뜻으로
전해 졌던건가요. 아니면 장자 나름의 생각으로 해석됐을까요?
종구 장자 <대종사> 편에서 ‘선시선종’이란 구절이 등장하죠.
<복 받은 삶, 자연 속에 자유롭게 걸림없는 삶.
시작도 좋을시고 끝내는 것도 좋을시고! > 그런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이 선종이 훗날 삶을 잘 마친 분들을
추모하면서 ‘선종 하셨다’ 그렇게 쓰기도 했던거죠.
희은 우리 역사 속에 이 ‘선시 선종’을 가지고 논평한 인물들도
있지 않을까요?
종구 조선 중기 문신 계곡 장유가 백사 이항복을 추모하는
<제 백사 이상공 문>에 있는 한구절, 여기 보세요.
희은 (낭송) ‘백사여, 높은 학문과 위대한 덕성으로
신시 선종 멋지게 삶을 마친 한사람 이상공 일러라’
종구 우리가 잘 아는 ‘오성과 한음’의 오성이 백사 이항복이죠.
이항복의 삶, 참 시작도 멋지고 마무리도 멋진 훌륭한
삶을 살았다는 뜻으로 ‘선시 선종’이란 말을 했던거구요.
희은 그런데 우리 현실에선 시작도 좋고 끝도 좋기가 참 힘들잖아요
종구 냉정한 말이지만 구한 말, 의병장 유인석은 시작과 끝에 대해
이런 냉철한 말을 새겨 놨죠. 여기 <의암집> 이 구절 보세요.
희은(낭송)시작이 좋았더라도 끝이 나쁜 경우는 열이면 늘 여덟아홉이고
시작이 나빴더라도 끝이 좋은 경우는 열에 한둘도 되지 않는다.
종구 비관적인 소리로 들릴겁니다. 하지만 주변 한번 돌아보세요.
시작이 그럴싸 했다 싶더니 갈수록 나빠지는 경우들이 많더라.
희은 그럼 잘 마무리하는 한둘이 있기에 희망이 있고 소중한
등불이 된다는 뜻 아닌가요?
종구 우리가 의병장 유인석의 말을 뒤집으려면 그 시작할 때
각오와 초심을 간직하고 끝을 멋지게 장식해야겠죠.
올해를 마무리하는 여러분 힘들어도 잘 갈무리 하시길빕니다
여 ‘고전기행 사설여행’ ‘선시선종’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12좌창 형장가의 도화유수桃花流水’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이종구씨 오늘은 사설여행 차레 아닌가요?
종구 경기 12좌창 중에 ‘형장가’ 한구절 돌아볼까요?
희은 경기12잡가라고도 하잖아요. 거기에 ‘소 춘향가’ ‘집장가’
‘형장가’ 있던데. 춘향이 매맞고 그런 장면들 아닌가요?
종구 그렇죠. 경기창으로 춘향가 수난대목을 주제별로 노래한
셈인데요. ‘형장가’ 끝에 구절 한번 볼까요?
희은 이 대목 말이죠. (낭송) <석벽에 섯는 매화 나를 보고
반기는 듯, 도화유수 묘연히 뚝 떨어져 굽이 굽이 솟아난다>
종구 앞에 사설엔 춘향이가 모질게 곤장을 맞고 눈물에 피범벅된
채로, 변학도에겐 날 죽여라. 해놓구 이도령에게 ‘날 살려주오’
처절한 모습인데요. ‘도화유수 묘연히 뚝 떨어져 굽이 굽이
솟아난다’ 이렇게 마무리 하고 있거든요. 무슨 이야길까요?
희은 우선 ‘도화유수묘연’ 그 구절부터 풀어야겠군요.
그리고 <뚝 떨어져 굽이 굽이 솟아난다> 와 연결해야겠죠?
종구 아시다시피 ‘도화유수묘연’은 이태백의 시 ‘도화유수묘언거’를
줄인 말이거든요. 복사꽃이 흐르는 물에 아득히 떠 가는
그 구절 그림을 빌어와서 처참한 춘향이 모습을 빗대고있죠.
희은 앞에서는 ‘석벽에 섯는 매화 나를 보고 반기는 듯’ 했었죠.
춘향이 절개나 겨울에 피는 매화의 절개가 같대는 건가요?
종구 그렇죠. 헌데 춘향이 절개를 매화랑 비교해 놓구
개울물에 떠 흘러가는 복사꽃이 등장한 뜻은 뭘까요?
희은 이태백이 말한 복사꽃 흐르는 물은 별천지 세상 아닌가요?
종구 여기 춘향은 매맞고 기절했으니 죽을 둥 살둥 별천지겠죠.
‘형장가’ 마지막 구절 <뚝 떨어져 굽이굽이 솟아난다>
붉은 복사꽃이 물굽이를 넘어 흘러가듯이 매맞은 춘향이
몸 구석 구석에 핏빛이 솟아나 있더란 거죠.
희은 푸른강물에 붉은 복사꽃이 흐르는건 이태백의 신선같은
별천지였는데, 곤장 맞은 춘향에겐 ‘하얀 옷 섶 굽이굽이
핏물이 솟아 난 차마 볼수 없는 형상이었다는 말 아닌가요?
종구 그렇죠. 형장가 끝에 나오는 두 개의 꽃, 매화는 춘향의 절개고
복사꽃은 춘향의 고통을 대변한 피에 젖은 모습인 셈이죠.
여기 고려 문신 유승단이 노래한 <도화유수> 보세요.
희은 붉은 복사꽃 떠 흐르는 물에 무릉도원 어디런고
신선땅 찾다 찾다 배를 돌려 돌아가더라/
종구 원래 도화유수는 신선들 무릉도원 별천지였지만
형장가에선 참혹한 인간세상 형벌받은 별천지, 그 춘향의
하얀 옷섶에 흐르는 피어린 고통의 복사꽃이더란 역설이죠.
희은 굽이 굽이 솟아난게 춘향이 옷섶에 핏빛 뿐 아니라
억울한 통한의 눈물과 터져 버릴 거 같은 분노도 느껴지는데요
종구 사람이 받는 형벌엔 언제나 복사꽃 흐르는 핏물 같은 한이 있는거죠.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도화유수’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쫑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등장하는 맹타(孟佗)의 처세술은 이름을 도둑질하는 수법에 대한 것이다.
우리 말로 손도 안대고 코를 푸는 처세 비결을 보여준 셈이다. 보통은 돈이나 뇌물을
정확한 표적을 향해 쓰려고 애 쓰는데, 여기 등장한 맹타는 발상을 확 뒤집는다.
환관출신이 출세해서 제후가 됐다. 그 제후에게 잘 보여서 한 자리 해야겠는데
그래서 후한 영제 때 출세한 환관 장양(張讓)에게 뇌물 싸 들고 대문앞에 줄을 설 때
맹타는 발상을 확 뒤집어 제후 장양보다 잘나게 보이는 깜짝쇼를 기획한다.
그리고 열심으로 장양의 하인들에게 뇌물을 먹인다. 먹고 또 먹은 하인들이 미안할 만치
먹였다 싶을 때 맹타는 하인들에게 딱 한가지 부탁만 하겠노라. 오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날이다. 내가 행사시간에 좀 늦게 나타날 것이니. 내가 보이거든 박수치고
소리 좀 질러 줘. 장양의 하인들 여지껏 받아 먹은게 있는데 그깟 돈 안드는 일
박수치고 소리 질러주는게 뭐 대단하랴 싶어. 걱정말라구 한다. 그리고 제후인 장양보다
늦게 나타나 엄청난 박수와 환호를 받는다. 그날로 사람들이 환관출신 장양보다
잘난게 맹타인 줄 알고 맹타에게 뇌물 보따리를 디밀기 시작한다. 잔머리 도사 맹타는
그걸 덥석 덥석 다 먹는게 아니라 그대로 장양에게 패스한다. 장양이 이놈 거둬주면
두고 두고 괜찮겠다. 그렇하고 원없이 밀어 줬다는 이야기다. 요즘 나와 설치는 깜짝쇼
2천년 전에 다 해 먹은 거 재방송하고 있는 줄이나 아는건지.......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장양과 맹타 처세술 고사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이종구씨 어떤 구절인가요?
종구 장양과 맹타 흥미로운 처세술 한가지 돌아볼까요?
희은 장양과 맹타란 사람 어느시대 어떤 관계인가요?
종구 후한시대니 지금으로부터 2천여년 전이죠. 환관을 통솔하는
장양이란 사람이 제후 벼슬에 올랐죠. 그러니 세도가인
장양 집엔 사람들이 북적북적했죠. 맹타는 그 집 손님이었죠
희은 권세 좋고 지체 높은 환관 출신인 제후 장양.
그리고 맹타란 사람이 등장했는데요. 맹타는 어떤 사람?
종구 맹타가 궁금하시죠. 그럼 이 이야기 들어 보세요. 사람들이
제후 벼슬을 받은 장양을 만나 보자고 줄을 설 때였죠. 그때
부풍 출신 맹타가 장양 집안 노비나 일하는 사람들에게
자꾸 선물을 사주고 돈을 쥐어 주는겁니다.
희은 뇌물을 쓰려면 바로 제후인 장양에게 쓰지 왜
장양의 집안 하인들에게 썼을까요? 하인이랑 아랫사람
부터 차근 차근 뇌물을 바칠 생각이었나요?
종구 선물을 받아 든 장양의 하인들도 이상하게 생각했죠.
그런데 하루는 제후인 장양 집에 많은 손님들이
모여드는데, 그때 맹타가 하인들을 감독하는
감노에게 부탁을 합니다.
희은 제후인 장양 집안 하인들을 관리하는 감노라면
그 역시 어깨에 힘 주고 살만한 사람 아닌가요?
근데 맹타가 감노에게 무슨 부탁을했을까요?
종구 (부탁) 이보시게. 내가 그동안 이댁 하인들에게
선물을 썼다면 쓴 사람인데. 부탁 한가지 들어주게나.
희은 그동안 주는대로 덥석 덥석 받아 먹었던 장양의 하인들
맹타의 말을 거절할 수 없는 처지 아닌가요?
종구 그렇죠. 그때 맹타가 하인들에게 말하기를
(사정) 여보게들 어려운 부탁도 아니네. 내가 조금 늦게
나타날 것이네. 그럼 자네들이 손님들 보는 앞에서
나한테 박수치고 환호 지르며 반겨 주시게나.
희은 뇌물을 장양 하인들에게 썼던 맹타가 부탁한다는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박수치고 만세 불러 달라는거라니요?
종구 맹타의 부탁대로 장양의 하인들이 맹타가 들어서자 일제히
박수치고 환호성을 울리니. 손님들이 척 보고서는
아, 저 사람이 이 집 주인 장양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구나.
해가지고 맹타에게 뇌물을 막 쓰더란겁니다.
희은 아, 가장 돋보이게 해 가지고 자기가 제일 잘 나가는 사람이다
광고를 한 셈이군요. 그래서 맹타에게 돈이 막 들어왔겠네요.
종구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돈을 죄다 모아서 장양에게 싹 바쳤더란
겁니다. 제후 장양이 기분 좋아서 한자리만 줬겠습니까?
희은 맹타가 자기 돈 한푼도 안 들이고, 세도가 기분 좋게 해주고
출세 줄 잡았다는 이야기잖아요.
종구 이 처세술, 아직도 쓸만할까요? 아니 맹타보다 더나
잔머리 쓰면서 아부하는 술수도 나왔겠지만요. .
희은 ‘고전의 샘터’ ‘장양과 맹타’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춘향가 이별가 중 <시호시호 부재래>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오늘은 사설여행으로 가볼까요?
종구 좋습니다. 춘향가 중 이별가 있죠.
희은 우린 지금 올해와 이별을 준비하는 때잖아요.
종구 아침이면 하루와 상봉하고, 밤이면 이별하구 사니깐
만나고 헤어지는 일 다반사 아니겠어요?
자, 춘향가 ‘이별가’ 중에 춘향모친이 했던 이 구절 보세요.
희은 (낭송) 시호 시호 부재래라/ 다시 젊든 못하느니/ 군자 숙녀
버리는 법/ 칠거지악 범치 않으면/ 버리는 법이 없는 줄을
도련님이 잘 알제~~
종구 이 사설은 춘향가 정정열 판본에 나오죠. 춘향모 월매가
이도령이 이별한다는 말에 춘향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버리려고 하느냐 따지면서 ‘시호시호 부재래라’ 바로 이구절.
희은 ‘시호 시호 부재래라’ 뭘 어쩌자는 소린가요?
종구 요즘 말로 풀면 한마디로 ‘이 좋은 때 다시 올줄아니?’
희은 아, 젊은 청춘 이 좋은 때 언제 다시 올줄 알구 이별이냐.
종구 그렇죠. 헌데 ‘시호시호 부재래’란 말이 어디서 나왔느냐하면요
거의 2천2백년 전에 나온 말이거든요. 초나라 항우하고
한나라 유방이 천하통일을 놓고 싸우던 초한시대에 말이죠.
희은 ‘시호시호 부재래’ 이 구절 나이가 2천년도 훨씬 넘었군요.
그땐 누가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종구 젊은시절 동네 건달패들 가랑이 사이를 기어 나온 굴욕 참구서
나중에 회음후란 제후가 됐던 한신 고사 기억할 겁니다.
희은 일시적인 분노를 꾹꾹 눌러참고 대야망을 이룬 한신
생각나네요. 나중에 한나라를 세운 공신이기도 했잖아요.
종구 그 큰 공을 세우고도 나중에 제거 된 ‘토사구팽’의
주인공이기도 했죠. 토끼를 잡았으니 토끼 쫓던 사냥개가
쓸모없다. 그래서 삶아서 먹히게 된다.
희은 정치판에서 가끔 들었던 ‘토사구팽’도 한신에게 나왔군요.
그럼 ‘시호시호 부재래’라 그 말도 한신에게서 나왔나요?
종구 사마천 사기에 보면 괴통이 한신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하죠.
‘공을 이루는건 어려워도 망치기는 한순간이오. 좋은 때라는건
얻기 어려워도 때를 놓치기는 쉬운 일이요. 지금 같은 좋은
때는 다시 오지 않을것이요’ 하면서 한고조 뒤엎어라 지금이다.
희은 반역을 하라고 종용하면서 했던 말이 ‘시호시호 부재래’ 였군요.
지금 같이 좋은 때는 다시 오지 않는다. 그래서요?
종구 하지만 한신은 끝까지 한 고조를 배반하지 않았죠. 그때
괴통이 했던 말이 ‘시호시호 부재래라’ 였던겁니다.
희은 그걸 춘향모가 이도령에게 전한 뜻은 그럼 ‘이 좋은 청춘
이 다시 없는 사랑 언제 또 올줄 알고 이별 소리냐?’
종구 얼씨구, 그거였죠. 자 ‘시호시호 부재래’ 오늘이 바로 그날
아닌가요. 오늘 같은 날이 어떻게 또다시 오겠느냐 그겁니다.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시호시호 부재래’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 고전코너 ‘고전기행 사설여행 --- 연무에 대한 노래들 ’
종구 역사와 인물 속에 온고이지신을 돌아보는
‘고전기행 사설여행!’
희은 오늘은 고전여행인가요?
종구 잠시 ‘연무’를 노래했던 구절들 돌아볼까요? 오늘은 조금
나아지고 있습니다만 어제 미세먼지와 연무가 대단했었죠.
희은 앞으로도 몸에 해로운 미세먼지들 자주 봐야 한다는데
그래도 오늘은 조금 낫네요.
종구 잠시 조선 초 한양에 낀 연무는 어떤 풍경이었는지
여기 박은이 한강에서 노래한 몇구절 음미해 볼까요?
희은 거의 6백여년 전 한양에 낀 연무 그림 한편 짐작해
보겠군요. 박은이라면 어떤 인물이었나요?
종구 태종임금, 이방원을 도와서 왕좌에 오르게 했던 인물이었죠.
훗날 요직을 두루 거쳤구요. 판 이조사 벼슬까지 했는데
그 박은이 한강변 쪽에 가득 낀 연무를 어찌 노래했는지보세요
희은 (낭송) 천지가 개벽할 때 이리 뿌연 연무 속 같았을까?
돛대를 치며 다시 배를 저어 안개 뚫고 나가니,
풀빛은 멀고 모래판은 긴데, 한강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저 까마귀 황새들/ 양화도 나룻가에 종일토록 연무천지리라/
안개 속에 맑은 시가 구슬처럼 빛났으면 좋으련만......
종구 그때 한양에 낀 연무는 지금처럼 미세먼지가 아니라
옛 사람들이 말하는 그냥 고운 먼지와 안개가 섞인 상태
였겠지요. 여기 박은과 같은 시대인 고려말 조선초 활약했던
문신 양촌 권근의 글 보세요.
희은 (낭송) 섣달도 다 지난 강촌에 꽃이 어디 있으랴! / 종일토록 매화를
찾다가 날이 저물었는데/ 홀연히 안개 속에 만난 옥같은 매화/
설마 붓 끝에서 나온 매화인줄 생각도 못했더라/
종구 그림 한폭 상상해 보세요. 안개와 연무 가득한 그 사이로
매화가 옥같이 고결한 모습으로 피어 있더란겁니다.
섣달 넘어 만나 본 매화가 너무 반가워 다시 보자니
붓끝에서 그림으로 그려진 매화인 줄 분간을 못하겠더라.
희은 동양화 한폭에선 안개와 뿌연 연무를 배경으로 피어 있는
매화가 이처럼 운치있게 그려지고 있군요.
종구 그런 그림처럼 고운 안개로 다가왔던 연무가 이젠 가슴 속
폐부를 쑤시고 틀어 앉은 미세먼지로 다가오고 있는 시절이죠.
자, 그래도 통일신라 최치원의 이 한마디로 연무 속에 기세를
올려 볼까요? 양마성 쌓으며 토지신에게 올린 글입니다.
희은 (낭송) 이 양마성 높이 쌓고/ 저 북으로는 회수의 달을 삼키고
남으로 장장의 연무를 단숨에 들이마신 기상으로/ 철옹성되어
길이 환난을 막는 양마성으로 서 있게 하소서.
종구 장강의 연무를 다 들이마시면서도 제 자리 우뚝 서 지키는
철옹성처럼. 우리도 저 미세먼지 앞에 서서 스스로 건강 지키며
미세먼지와 마주 할 수밖에 없는 시대 아닌가요?
희은 ‘고전기행 사설여행’ ‘연무와 안개’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카페
‘상암골 상사디야’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종구 좋은 자료나 담론은 ‘상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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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전을 읽는 것은 과거를 통해 현실을 보는 밝은 지혜를 갖고자 함이 아닐까요? 고전 - 그냥 고리타분한 할아버지 얘기가 절대 아닙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어떻게 현명하게 처리하느냐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거지요. 작가선생님 최고!!!
오늘 다시 맹타가 환관출신으로 제후가 된 장양을 들었다 놨다 한 이야기 해설을 추가해 썼습니다만
맹타의 처세술 보면 요즘 잔머리들하고 차원이 다른게 그나마 미워할 수 없는 구석이 있거든요. 역시
춘향전에 <시호시호 부재래>에 등장하는 초한시대 괴통의 충고는 참 절박했던 상황인데 한신은 끝까지
유방에게 의리를 지켜 주는 대장부 다운 면모를 보이죠. 오히려 유방의 잔머리에 '토사구팽' 당하는
비운의 주인공으로 남게 됐지만요. 옛 사람들 살아 온 이야기 이래서 고전의 힘은 대단한 건데 요즘
아이들 이걸 고리타분하고 낡아 빠진 시대의 쓰레기 정도로 보니 우리 인문학이 이 지경 아닌가 싶어요.
말로 인문학 살리자
인문학의 근간이 뭐겠습니까. 우리 선비사회가 그렇게 소중히 여겼던 '문사철(文史哲)'이 기본 아니겠어요.
그런데 문학은 해봐야 밥 벌어먹고 살기 어려운 동네라서 일찌감치 구경꾼으로 나가 앉게 되고, 역사는 또
애들 외울 거 많아서 머리통에 부담 준다고 지 새끼들 머리통 용량 걱정해서 수능에 빼주니 역사 무서운 줄 모르게됐고, 철학은 애들 입에서 잘 해봐야 '개똥철학' 한마디로 깡통찬 시절 아닌가요?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과연 우리 국학(國學)에 뭘 할 수 있을까요? 어른들이 차레 차레 그 지경 만들어 놓구서 이제와 인문학 살리자. 기초학문 살리자 요란 법석 떨어봐야 누가 움직여 줍니까? 많이 늦었지요. 이러니 작가도
그냥 막장 드라마 소리 듣고 디지게 미운소리 들으면서도 광고 많이 붙고 방송국 돈 벌어다 주면
그 막장 작가 또 불러다 이번엔 더나 욕먹고 돈 벌어보자며 저리들 사는 꼴 아니겠어요. 그렇다고
저 같은 사람이 무슨 인문학에 대한한 뭐 갖춘 사람이란 뜻은 아닙니다. 적어도 문사철(文史哲) 분야는
젊은 시절부터 고민하며 살았더란 이야기죠. 근데 이렇게 한문 몇자만 또 꺼내면 이마빡에 내천자 긋어대며
아우 이 고루한 인간. 공자왈 고대인을 봤나. 상종을 안하려구들 하죠. 근데 국악방송에서 '신명심보감'이란
코너로 시작해서 햇수로 3년째 매일 하나의 주제로 고전과 오늘을 돌아보고 있죠. 나름 힘들죠.
누군가 했던 말 한마디를 제대로 이해 하려면 그 말을 했던 배경과 환경을 알아야 하니
당연히 역사적 검증을 해야하죠. 그 사건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하니 사실확인해야 하죠.
그가 살아 온 삶에 대한 나름의 평을 해야하니 철학적 판단을 할 수 밖에 없죠. 잘해봐야
4분짜리 꼭지 하나 쓰는데 품값이 엄청 들어가는 일. 그래서 작가들이 정말 쓰기 싫어하는 분야.
또는 몰라서 쓰고 싶지도 않은 분야. 그게 고전과 인물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논평인 셈이죠.
어떻든 진행 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요즘은 우리 판소리나 민요 정가 등 가사나 사설에서 발췌한
용어들 출처를 찾아 보는 작업도 나름 의미있고, 누군간 쭉 해야할일이죠
'문사철' 가까이서 그 분위기만 느끼고 자라도
사람 됨됨이가 달라지죠. 사고의 깊이가 달라지고요.
요즘 들어 젊은 날에 그러한 것들을 경험하지 못한 게
한이 되는군요. 논술공부 잘 하면 조리있고 논리적으로
사고 하고 말도 번드르 잘 하게는 되는데 겉똑똑이 싸움닭
만드는 공부입니다.
이사를 하면 서재에 있던 책을 버리는 기회(?)가 옵니다.
버리기 위해 한쪽으로 쌓아두는 책 1순위는 누렇게 변한 책(문사철)입니다.
쌓아 두고 다시 골라 남는 책은 역시 문사철입니다.
문사철 - 고루할까요?
천만에 만만에 콩떡입니다.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작품중 하나가 정치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정치를 하려면 주변에 많은 책사를 두어야 하는데, 그 책사중 으뜸이 장편소설을 쓰는 작가입니다.
장편소설? 그냥 책상머리에 앉아 연필만 들면 써질까요? 장편이 초등학생 받아쓰기 시험공부는 아닙니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얼개는 문사철에서 나옵니다.
文史哲 - 세상을 살아가는 밝은 지혜입니다.
군자의 서가를 보면
그 사람의 그릇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어떤 군자는 書室을 누구에게나 보이지않는다고 합니다.
TV에 나와 대담하는 사람들 뒷 배경 서실을 보면 가벼운 사람은 역시 서가에 꽂힌 책들도 무게감이 없더라구요
책을 많이 읽은 지도자는 좋은 정책을 실행했지만
가벼운 지도자의 정책 결과물은 양철판 위에 콩 볶은 것 처럼 가볍고 국민이 힘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