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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24시간 편의점 夜行記 그림/글: 장천석
몇 년전에 한 동안 편의점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삐거덕거리는 사무실운영비만 아니면 감히 상상도 못했을 선택이었습니다. (당시에 작은 출판사를 차리고 있었습니다. '소와달미디어'라는...)
그때 마침, 편의점계약 말료전까지 봐달라는 아는 분의 가게(수지타산이 안 맞아 위약금 때문에 계약말료까지 기다려야하는 자포자기상태)이었고, 잠만 줄이면 열달정도는 견딜만한 경험일것도 같았지만, 무엇보다도 월130만원을 준다기에 용기내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싱겁게 살아온 인생을 허비한 죄값치고는 짧은 열달동안의 경험이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잠 못이루는 육체 노동 속에서도 마음은 무척이나 평화로웠구요, 정신차릴 계기가 되었기에 좋은 추억으로 남습니다. (편의점에서 파는 신간서적들을 밤새도록 읽어 좋았구요)
제가 근무하던 시간은 밤 11시에서 아침 9시까지 일요일만 빼고 주 육일을 보냈었습니다.(퇴근하면 사무실로 와서 오후 세시까지 일하다 자고..) 손님이 없는 밤시간때라 힘든건 별로 없었는데 평소에 못 느껴본 별천지라 그 당시 일기처럼 적어놓은 몇가지 에피소드들을 간추려서 올려봅니다. 여기 올린 것 중에서 몇 점의 그림은 그 당시 새벽녘 편의점 카운터 밑에서 그렸기에 볼때마다 기분이 아립니다.
1. 편의점 첫 인상
들어서면 냉장실 한복판 큼지막하게 알록달록 눈에 확 들어오는 문구가 있습니다.
<우리 점포에서는 가장 신선한 상품을 맨 앞줄에 진열하고 있습니다.>
알고보면 유효기간 짧은 녀석들 순으로 진열함을 아시길..공갈문구이지요. 그러나 비싼 물건값만 빼면 말 그대로 진짜 편리한 가게입니다.
비싼 물건도 없는데 하루 평균 2백여만원의 매상이 올라가는 편의점.소프트드링크, 막대기아이스크림(하드), 가공유제품, 캔디/쵸콜렛, 삼각김밥류, 즉석식품(컵라면 등), 쿠키/스넥, 냉장식품...순으로 팔립니다. 매일 1,000여명의 손님들이 2,000여개의 상품을 사가니까 한 사람당 2,000원어치 팔아주는 꼴입니다. 바코드로 조종하는 편의점의 온라인 시스템이 아주 편리합니다만 역시, 오프라인의 운영이 없으면 빛을 잃고 말 것 같네요.
서소문의 가로등은 다섯시면 일제히 소등을 하지요. 잠시 어둠이다 싶더니만 바로 밝고 신선한 새벽 햇살이 가게앞을 대신합니다. 이렇게 새벽기운이 괜찮은 줄 예전에 미쳐 몰랐습니다.
2. 노숙자 손님들
노숙자도 편하니까 편의점을 많이 찾더군요. 제가 세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보면,
첫째, 자립형입니다. 매일 돈을 갖고 찾아옵니다. 구걸 이었겠지만, 당당히 돈주고 사먹습니다. 가끔은 이삼백원 애원하며 깍아달라고는 하지만 그럭저럭 애교로 봐줄만합니다. 냄새도 덜나고...(돈에서만 말입니다.)
이 사람들은 동료애가 깊어 가끔 누구 생일이면 오천원짜리 와인과 깡통 아몬드캔(짭짤한 맛)도 삽니다. 하지만 절대 컵라면은 안 먹습니다. 봉지짜파게티에 물부어 먹지요.(양도 많고 싸니까...나름대로 터득한 노하우인 듯 싶습니다. 가계부도 쓰는듯 계획이 있어 보이더군요.)
그리고 역사에도 박식합니다. 술냄새 입냄새 풀풀 풍기면서 일제때 거지왕 김춘삼과 수표교다리밑 시절의 김두한을 들먹이며 열변을 토합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 선배야, 알어! 우린 족보가 있다구." 하면서...
두번째, 빈대형입니다. 자립형 노숙자 옆에 붙어 다니며 얻어 먹습니다. 먹고 싶은 것도 많아서 이 물건 저 물건 만져만 봅니다. 특히 삼각깁밥을 쪼물닥쪼물닥 꾹꾹 눌러가며 만져만봅니다. (나중에 출근길 여자 손님들이 그걸 다 사들고 갑니다. 알면 못 먹을 테지요?)
세번째, 무대포형입니다. 무작정 카운터에 들러붙어서 일주일 굶었으니 못 얻어먹은 일용할 양식을 거저 달라고 때를 씁니다. 처음엔 측은해서 반품용 삼각김밥을 줘봤더니, 다른 동료데리고 매일 찾아옵니다. 물귀신이 따로없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나가라고 실랑이를 벌리다가 노숙자 남방을 잡았더니 손이 안 떨어 지데요. 파리잡는 끈끈이보다 더 강력했습니다. 이 유형이 제일 더럽고 제일 끈질기게 사람맴을 아프게 만듭니다.
3. 주변에서 일하는 새벽단골 손님들
이호선 시청역 지하철에서 신문가판대를 운영하시는 아저씨는 보름달 빵 한개와 농심사골큰사발면을 매일 사가십니다. 여섯시 사십분 어김없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이 되면 카운터에 미리 준비해 둡니다.그러면 아저씨는 흐믓함에서인지 5분 인생덕담을 늘어 놓습니다. 매일화제가 바뀝니다.
근처 빌딩 청소하는 젊은 아줌마는 비타오백을 날마다 한개씩 마시고 가구요, 대기업 중역처럼 보이는 중년 신사분(아마도 기러기 아빠인 듯)은 곰보빵 한개와 커다란 딸기우유를 마시구요, 옆에 럭셔리한 빽을끼고 쏜살같이 들어왔다 딸기맛, 포도맛, 오렌지맛캬라멜을 사가는 대머리 총각도 있네요.
마치 재방송을 보는 듯 매일매일 똑같습니다. 내가 어제의 나인지 오늘의 나인지 헷갈릴정도입니다.
4. 러시아꼬마 10살짜리 '블라디미르라이스키'
한참바쁜 7시 40분에 꼭와서 8시에 나갑니다. 뭘사러 오는 것이아니라 근방에 있는 러시아학교 등교시간을 맞추는 듯 싶습니다. 카운터에 턱대고 서서 내가 바코드찍으면 손님 거실러 줄돈을 암산해서 불러줍니다. 정확합니다만, 귀찮아 죽겠네요. 시시콜콜 따지고 들어서 말입니다. 그래도 점점 정이들어갑니다. 한국말을 잘하는 블라디미르라이스키가 말이죠.
내일도 오면 츄파츄파 막대사탕 한 개 쥐어주고 싶네요.(꽁짜로..)
5. 출근길 여자 손님들...
요즘 여자가 다시보이기 사작합니다. 이해 안되는 부분이 너무도 많습니다. 자기 뒤에 계산할 사람들이 많은 줄 알면서도 굼뱅이 저리가랍니다. 남자는 물건사고 계산할때 돈을 미리 준비하는 편인데, 여자들은 일단 어깨에 맨 핸드백을 카운터에 풀어놓고, 핸드백 열고, 그 속을 한참을 뒤지고, 지갑을 찾고, 삼단지갑꺼내서 잔돈과 지폐를 따로따로 거스름돈과 비교분석한뒤에 지불을합니다.
예를 들면, 950원이면 1,000원짜리 지폐와 50원짜리 동전을 주고 100원을 거실러달래놓고는 주고나면 20원짜리 봉지를 달라는 식입니다. 결국 100원짜리 동전 한 개를 만들려다가 80원(오십원짜리 동전 1개와 10원짜리 동전 3개)을 받는 꼴이지요. 자신의 지갑속의 잔돈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려고 눈물겹게 머리를 씁니다. 왜 그래야만하는지 답답합니다.(아마도 지갑이 무거워 지면 힘드니까?)
그리고, 물건을 고르다가 구석에 떨어트리면 줍지않고 다른 것을 집어들고 오는 여자, 스타킹을 사면서 이게 어디까지 올라오는 거냐고 물어보는... 얼굴 빨개지게 하는 여자, 삼각김밥사이에 생리대 껴서 카운터에 놓는 여자, 1,050원어치 물건사고 신용카드 내미는 여자, 물건담아 줄때까지 한없이 기둘리는 공주님...
앞으로 여성심리공부 많이 해야 장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등에서 식은 땀이 흐름니다.
6. 재활용 종이박스 쟁탈전
편의점과 근처 영업점에서 나오는 빈상자들을 고이접어 가게 앞에 수북히 쌓아 놓습니다. 제일 먼저, 근방에서 거주하는 노숙자가 찾아 옵니다. 보송보송한 이불과 요 대용으로 쓸려고 상자를 골라갑니다. 어느 노숙자는 키라도 재보 듯 여러개를 거리에다 이중으로 깔아 누워보고나서 서너개 골라갑니다. (아마도 이런 노숙자는 자립형일 듯 싶군요. 왜냐하면 주도면밀하니까...)
그 다음으로 생계를 목적으로 가져가는 사람들입니다. 첫째로는, 기업형입니다. 중년의 부부가 용달차로 수거해갑니다. 둘째로는, 구멍가게형입니다. 리어카를 몰고 오는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셋째로는, 프리랜서형입니다. 유모차를 끌고 오는 할머니가 계시는데 이분은 빈 병과 깡통도 골라 가십니다. 할머니가 제일 힘겨워 보이는지라 먼저 오셔서 양껏 가져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7. 대사관 보초병 의무경찰들
밤부터 새벽까진 의무경찰들이 주요손님입니다. 마치 편의점이 육군부대 피엑스(매점)와 흡사해집니다. 빵과 과자를 사서 윗 단추풀고 가슴 속에 담아가는 의경은 쫄병, 컵라면 불려서 느긋하게 신문보며 먹고 가는 의경은 고참들 같습니다만, 왜 그리도 남루하고 꼬질꼬질한지 모르겠습니다. 옷이며 얼굴들이며 말입니다. 사대문 안인데도 전방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처럼 보이니까요.
8. 차타고 지나가다 찾는 아베크족 손님
대체로 조수석에 탄 여자가 물건을 사러 들어 옵니다. 어디서 무얼하다 오는지 음료수들만 급히 골라 갑니다. 한 번은 어느 여자가 고르다 말고 핸드폰을 칩니다. "자기야! 뭐 마실래? 안돼 그건!!! 내가 골라 주는거 마셔, 알았지?" 그럴걸 왜 코앞에다 두고 전화로 물어보는지...이럴때가 제일 다리힘 풀립니다.
9. 있어도 좋을 것을...
처음엔 편의점에 담배도 현금서비스기도 없기에 편한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왠일입니까? 시도 때도 없이 들어와서는, "담배 주세요!" "그래요? 어디가면 파나요." "얼마나 가야 하나요." "여긴 왜 안 팔아요." "아저씨, 담배 피면 한 까치 빌릴 수 있을까요?" "맨솔도 괜찮아요!" 등등...무지무지 귀찮은 말대꾸가 꼬리를 물고 늘어지더군요. '차라리 팔고나 말지!' 싶은 심정이지요.
10. 진꿀아저씨 "까줘!"
뜨거운 물만 부으면 마실 수 있는 진꿀차(900원)가 있습니다. 매일 고시간에 배낭메고 찿는 오십줄의 남자손님입니다. 카운터에 와서 돈계산 할때 지갑에서 만원짜리를 수북히 꺼내서 세어보고 다시 집어 넣습니다.(왜 그렇까?) 그러고는 천원짜리 한 장꺼내 줍니다. 거스름 돈 백원을 챙겨 바지 주머니에 쑥 집어넣고 내게 말합니다. "까줘! 먹고 갈 거야!" 이 정도는 봐줄만 합니다만, 물붓고 구석에서 뜨거운 꿀차를 훌훌 마시기 시작하면 곤혹스럽습니다.
"아~~~흐~~~!!!! 아리아리 아~~~~~~~~~흐!!!! 어헉...."
머리카락이 쭈삣쭈삣, 온 몸에는 닭살이 돋아 납니다. 그리고 손님이 간 뒤에도 오랫동안 귓가에 맴도네요. (아~~~흐~~~!!!! 아리아리 아~~~~~~~~~흐!!!! 어헉....)
♬ 첫 사랑 - 故 이영훈 作曲(영화'보리울의 여름 OST'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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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미두있구...많은 공감두...철학이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