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정말 필요한 곳에 쓰이지 못한다면 죽은 기술이나 마찬가지다.”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는 첨단기술. 그러나 지구촌에 사는 사람 중 90%는 이 기술의 수혜를 누리지 못한다. 삶을 개선하기 위해 기술이 절실하게 필요한 개발도상국의 빈곤층과 혁신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나 대학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이가 있다. NPO법인 코페르닉(kopernik)의 나카무라 도시히로(中村俊裕) 공동대표다. 그는 혁신 기술을 가진 곳과 현지 NGO 등을 연결, 필요한 기술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
그는 개발도상국의 빈곤층이 원조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소비자라고 의식을 바꾸어가고 있다. 코페르닉의 비즈니스 모델은 간단하다. 혁신 기술을 가진 기업이나 연구소가 신청을 하면 코페르닉은 그 기술을 심사해 웹사이트에 소개하고, 개발도상국의 NGO가 그 기술이 자신의 지역에 필요하다고 호소하면 공개 모금이 시작된다. 공개 모금된 돈으로 기술을 가진 회사가 제품을 생산해 현지 NGO에 전달하는 모델이다.
인도네시아 본부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그가 잠시 프로모션을 위해 일본을 찾았다.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그는 셔츠에 그려진 코페르닉의 로고를 가리키며 “한국의 동료가 디자인한 것”이라고 넌지시 한국과의 관계를 강조한다. 바쁜 일정으로 피곤할 텐데 그는 시종 밝은 표정으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전 세계에서 하루에 2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사람이 24.7억 명이나 되고, 1.25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사람도 13억 명에 달합니다. 남아프리카에서는 인구의 75%(55만 명)가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아시아에서도 2명 중 1명(700만 명)이 전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11억 명이 안전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있으며, 오염된 물로 인한 설사나 탈수증으로 하루에 4000명의 어린이가 목숨을 잃습니다. 장작 같은 연료를 사용해 실내공기 오염으로 숨지는 사람이 연간 130만 명이 넘습니다….”
그는 탄탄한 토대와 통계를 바탕으로 개발도상국 빈곤층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했다.
“유엔이나 정부 차원의 개발 원조는 각국 정부의 고위관리, 외교관, 유엔 관료가 주축이 되는 매우 좁은 세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시스템으로 빈곤층을 줄이기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는 많은 제약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아이디어를 모아 좀더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지요.”
2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한마디로 잘나가던 유엔 직원이었다. 유엔에 들어가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의 꿈이었다. 유엔 고등판무관으로 전 세계 전쟁터와 빈곤지역을 다니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던 일본인 여성 오다카 사다코를 보면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는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도 떠났다.
1999년 2월, 영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했을 때 그의 나이 24세였다. 그는 유엔에 들어가기 위해 유엔에 수없이 편지를 쓰고 인터뷰 수락을 기다렸다. 그의 요청에 유일하게 귀를 기울여준 곳이 제네바에 본부를 둔 유엔고등판무관실(UNHCR) 본부였다. 그 후 유엔사회문제연구소, 도쿄의 매킨지를 거쳐 다시 유엔개발계획(UNDP)의 직원이 되었다.
유엔에 있는 동안 그는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의 빈곤층 사람들을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각국의 대통령을 비롯한 요인이 그의 업무 파트너였다. 유엔에서 일하기를 그렇게 열망했던 그가 11년 넘게 일하던 유엔을 그만두고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겠다며 NPO 법인을 설립한 것이다. 장래가 보장되었던 유엔을 그만두겠다니 가족도 놀랐고, 유엔도 놀랐다. 하지만 그의 문제의식은 뚜렷했고 의지는 확고했다.
“유엔이나 국제기관이 현지 정부를 통해 실시하는 빈곤층 지원에 한계를 느꼈어요. 식량이 지원되고 다리가 건설된다 해도 개도국 주민들이 원하는 진정한 의미의 생활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요.”
전통적인 방법의 원조로는 그들의 생활상이 그다지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고, 직접적으로 효과를 낼 수 있는 혁신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10년 2월, 그는 유엔을 휴직하고 영어 웹사이트를 구축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거처도 현지를 직접 살필 수 있는 인도네시아로 옮겼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설립 2년여 사이에 41개의 프로젝트를 가동시켰다. 11개국에 60여 가지 상품을 제공하며 6만3000명의 생활에 변화를 가져왔다. 코페르닉의 가장 큰 특징은 개도국 주민들이 지원의 손길에 의존하는 삶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즉, 무료로 원조 물자를 사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힘으로 제품을 구입하게 하면서 자존감을 되찾아준다. “저희가 추구하는 것은 ‘원조’가 아니라 세계인이 아이디어를 모아 빈곤층의 생활을 개선하자는 ‘비즈니스’입니다.”이 때문에 “방글라데시에 영세민이 소액대출로 자립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그라민은행을 만든 유누스가 있다면, 일본에는 코페르닉을 만든 나카무라가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나카무라가 생각하는 개발도상국에 필요한 기술은 1)개발도상국 사람들의 생활수준에서 맞고, 2)구입할 수 있는 가격이어야 하며, 3) 제품과 기술이 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 이 3가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을 갖춘 제품이라도 개발도상국 주민에게는 또 다른 공산품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코페르닉을 통해 제공된 기술 가운데 극적으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 것은 인간의 생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태양광 라이트, 정수기, 연료 효율이 좋은 조리용 랜턴, 태양광으로 재충전할 수 있는 보청기 등인데, 복잡할 것 같은 명칭과 달리 누구나 간단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이들 제품이 가져온 변화는 실로 놀랄 만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여성들은 하루 네 번씩 10L의 용기를 이고 물을 길어 나른다. 그는 이들의 고된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울퉁불퉁한 길에서도 한 번에 50L의 물을 운반할 수 있는 원통형 회전식 ‘큐-드럼’을 도입했다. 그 효과에 나카무라 자신도 크게 놀랐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의 한 마을은 어린이 4명이 동원돼 물을 길어 나르는 데 하루 평균 81분이 소요됐는데, 이 큐드럼을 도입한 후 운반시간이 50분으로 단축되었고, 물을 나르는 아이도 4명에서 2명으로 줄었습니다.”개발도상국에 거주하는 인구 중 80%는 전기를 사용하지 못한다. 조명을 위해 등유를 사용하고 열을 만들기 위해 장작이나 나무를 사용하는데, 매년 160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연기 흡입과 화재로 희생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태양광 라이트인데, 태양광 라이트는 생활 환경뿐만 아니라 경제수준까지 향상시켰다. 주민의 95%가 어둠을 밝히기 위해 등유를 사용했던 동티모르의 한 마을은 태양광 라이트의 보급으로 ‘가처분소득’이 크게 늘었다. 이 마을의 가구당 월평균 지출은 70달러인데 이 중 14달러를 등유 구입비에 사용했다. 이 마을에 3000개의 태양광 라이트를 도입하자 등유 구입비는 94%나 줄었고, 13달러의 가처분소득이 늘어났다. “태양열을 이용한 충전식 랜턴은 단지 불을 밝히고 등유 구입비를 절약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어요. 주민들의 마음과 미래를 밝히는 희망이 되었어요.”집안이 밝아지자 여성들은 밤에 뜨개질을 하거나 가내수공업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책을 읽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으며, 남자들은 낮에 밖에서 일하고 해가 진 후 집에 돌아와 소나 돼지 등 가축을 돌보게 되었다. 저축을 하는 가구도 조금씩 늘었다. 극적인 생활의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또 하나의 극적인 기술은 정수기였어요. 주스 스트로 같은 휴대용 스트로와 물통 2개를 연결하고 중간에 필터를 설치해 정수하는 극히 간단한 정수기를 도입했더니 배탈 나는 아이들이 눈에 띄게 줄었어요.” 빈곤층의 생활 수준이 낮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문맹률이 높다는 점이다. 교육 기회가 없어서뿐 아니라 눈이 나쁜데도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안경 같은 보조 도구의 도움을 받지 못해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나카무라는 안경을 보급하기로 했다. “안경은 다른 제품과 달리 단순하게 교체해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시력이 변하면 사용자가 직접 안경 도수를 조절할 수 있는 안경을 제공하는 것이었어요.” 그는 2년 전 자신의 어릴 적 꿈이었던 유엔을 완전히 떠났다. 인류의 기술로 개발도상국의 삶의 질을 바꾸는 데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나카무라 대표는 공존과 공생을 향한 비즈니스의 의미, 기업의 존재가치에 대해 많은 의문을 던졌다.“개발도상국은 한국이나 일본 등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차이 때문에 가능성이 있고,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기업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겠다고 하지만 현지 사정을 잘 모르고 있어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기업의 목적만을 추구하지요. 팔고 싶은 제품이나 자랑하고 싶은 기술이 아니라 그들에게 필요하고 그들의 경제력으로 구입할 수 있는 제품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사용하기 쉽고 고장 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제품이지요.”
필자 : 염동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