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회, 정말 기억이 크게 남겠습니다.
올해 대회에 꾸준히 나가겠다고 마음 먹고,
첫 광주 대회에 예선루트를 처음으로 완등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월드컵이라 운좋게 출전했던 월드컵에서 준결승까지 갔습니다.
(고놈의 억수로 내리는 비 때문에 준결승이 취소되어 준결 루트를 두 번 등반하는 운까지... ^^)
그리고 서울시장기 대회에서는 세계 대회를 준비하는 선수들의 미출전으로 억세게 운좋은 4위를 했고요.
참 기분 좋은 일들만 있었습니다.
전 올해 운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지난 주 노스페이스 대회에서는 올해 가장 성적이 저조한 9위로 마감했지요.
결승을 못갔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등반은 너무 즐거웠고요, 추락도 너무 즐거웠습니다.
결승 못가서 마음이 안좋은게 당연한데 저는 그런 내색을 보일 용기도, 요령도 없었지요.
그냥 즐겁고 들뜬 마음으로 결승 루트에 붙은 선수들의 현란한 몸놀림을 보면서
일요일은 즐겁게 보냈습니다.
응원와 준 내 동생, 현철 오빠, 그리고 은희씨와 윤표씨, 아, 그리고 항상 대회 관전을 즐기시는 광훈선배님까지
맥주 한 모금 마시며 들뜬 기분으로 재밌게 결승을 관람했습니다.
내가 결승 루트를 갔다면 어디까지 갔을까? 아, 저기에서 아마 버둥대다 떨어졌겠지?
아, 저 크럭스에서 가는 방법이 다 다르네.
남자 결승에 진출한 원일형과 종열형, 멋진데.
하늘이, 중학교 몇 학년이지? 키가 좀 크면 퀵드로 걸기 쉬웠을 텐데,
와, 홀드 사이에 무릎을 끼워서 균형을 잡고 클립!
즐겁게 경기를 보고 나서 대림동 와서 간만에 삼겹살을 아주 맛나게 먹었지요. ㅎㅎ
이번 대회의 등반은 이제까지 해왔던 등반과 특별히 다른 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냥 무지 즐거웠어요.
다른 대회에서는 '잘하자', '이완을 잘 하자, 힘을 빼자', '오르자, 오르자', '추락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덮치기 전에 더 빨리 움직이자' 하는 나름대로 그날 경기의 목표를 되내이며 경기를 했습니다. 그런 목표가 집중에 도움이 크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번 대회는 그런 긴장감이 전혀 없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계속 긴장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컨디션이 너어어어무 좋고, 기분도 너어어무 좋았지요. 대기실에서도 등반할 때도, 심지어는 추락할 때도.
왜 추락이 즐거웠나 생각해봤더니, 제 빌레이를 봐주신 최석문님의 능수능란한 빌레이 덕분이었습니다.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었는데 걱정도 태산이라 생뚱맞아 보일까 그냥 지나쳤네요.
좋은 것도 넘치면 나쁜 거죠.
이런 좋은 컨디션이 처음이라 ㅋㅋ 적응을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님, 경기날 아침에 파스타를 먹어보니 괜찮아서 너무 오버해서 음식 조절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너무 많은 탄수화물 섭취가 경기력에 영향을 주는 걸까요?)
어쩜, 지난 4위를 해 보고 자만심이 스멀스멀 배었는지도 모르지요.
혹은, 동생이 처음 내 경기에 와 줘서 그 덕분에 컨디션이 달라졌는지도 모르지요.
히히.
원인은 잘 모르겠지만 이토록 긴장감 없이 즐겁게 등반한 날은 처음이었습니다.
이제 클라이밍을 시작한지 8년째.
클라이밍에 대해 뭔가 좀 내가 안다고 생각했는데
경기에 출전하면서, 그리고 경기지도자 자격증을 위해 공부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가 알고 있는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뭘 알고 있었던 걸까 민망할 정도로.
등반경기가 등반(클라이밍)의 전부가 아님은 알고 있습니다. 다행이에요.
경기에서 느끼는 부분이 이렇게 결이 많다면 다른 등반, 다른 등산에서 느끼는 부분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흐르는 홀드 앞에서만 작아지는 줄 알았더니 세상에서도 저는 많이 작네요. 키도 물론 작고.
더 크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 듭니다.
욕심이겠지만 마음이 더 커져서 세상을 더 크고 섬세하게 느껴보고 싶습니다.
이게 등반경기에 나가는 제 마음입니다.
이번 주 에이스 식구들은 선운산으로 등반을 갑니다.
원래 우정대회를 포기하고 에이스 식구들과 함께 하려고 했는데
스폰서(?)가 나타나서 에이스 식구들을 저(?)버리고 저혼자 우정대회에 나갈 예정입니다.
다음 경기에서 제가 또 어떤 느낌을 받게될지 무지 기대됩니다.
저 혼자 몰래(?) 몸을 빼서 혼자 놀러가는게 좀 에이스 식구들께 죄송한 마음도 들긴 하지만
에이스에는 든든한 분들이 많으니 괜찮겠지요.
눙치는 발언인가요? ㅋㅋ
첫댓글 좀 땡겨서 찍어주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완등가야 돼 라고 외치시는 그 분은 뉴규
찍사 : 클라이밍을 전혀 모르는 우리 남동생.
완등 외치시는 분 : 광훈형이라고 생각함. ^^
열정에 박수를...짝짝짝
이제 하산토록 하여라 '청출어람' 이라했던가.... 그열정 오랫동안 가져가길 바란다..^^
오르는 내내 몸이 아주 가벼워보이는걸? 잘했어!...완등할수 있을것 같았는데..쬐금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