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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금호 해오름예술촌장 | 남해에는 미조와 은점, 양화금에서 고기잡이 배를 타는 15명의 동티모르 청년들이 있다. 중국인들이 돌아가고 난 빈자리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온 그들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50여년전 우리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그러했듯이 월급의 대부분을 자기나라로 보내고 있다.
이들은 바다일이 없을 때 한번씩 해오름예술촌에 놀러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이들과 커피도 한잔씩 하고 짜장면도 한 그릇씩 같이 먹다보니 정도 들어 어느 한날, 그들에게 "너거 나라 돌아갈 때 내 좀 따라가면 안 되겠나?"하고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한마디가 동티모르라는 생소하고도 위험한 나라를 여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개발이 안 된 나라라고 하며, 여행주의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쉽지 않은 여행이 되겠지만 현지인인 이들과 함께 간다면 별 문제 없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사실상 불과 한 달여 전에 가장 추운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바이칼호수 지역을 다녀온 터라 다시 가장 더운 나라를 간다는 것에 대해 건강상의 염려가 되었으나 `이런 기회를 놓치면 언제 그런 오지를 여행할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추스르며 배낭을 싸기로 했다.
비용 때문에 한국에 온지 3년 만에 비로소 집으로 간다는 `밴리또`와 `도밍고` 이 둘과 함께 인천공항에서 8시간의 비행 끝에 새벽 2시 인도네시아 발리의 덴바사공항에 도착해서 현지비자를 발급받아 입국허가를 받은 뒤 어렵게 숙소를 잡아 잠깐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다음날 동티모르 딜리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나갔으나 아예 공항청사에 들어 갈 수도 없었다. 아뿔싸, 이들을 믿고 나선 길인데 이들 또한 처음인데다 타지의 여행경험도 전무하니 모든 걸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데리고 가는 꼴이 되어버린 격이다. 비행기 표가 있어야 공항에 들어갈 수 있으니 어쨌든 밖의 어딘가에서 표를 구해야했다.
두 사람을 공항 밖에 앉혀 놓고, 착해 보이는 자가용 영업기사를 골라 콩글리시와 만국공통어인 손짓발짓을 보태가며 두어시간 만에 시내여행사에서 어렵사리 표를 구하기는 했으나 그것도 내일 출발하는 비행기라 할 수 없이 하룻밤을 더 묵을 수밖에 없었다.
세계적인 여행지 발리를 하루 더 즐기라는 계시라고 생각하며 두 명을 데리고 발리 투어에 나서기로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내 평소 신조를 따라 기꺼이 즐기다보니, 싸고 깨끗한 펜션 `놈하우스` 주인과의 인연도 만들어졌으며, 발리 근교에 살면서도 십년 만에 만나본다는 `도밍고`의 여동생 집에 들러 환대를 받으며 발리해변과 유명관광지와 루왁커피 맛도 즐기며 세상의 모든 일이 `다 좋은 것`도 `다 나쁜 것`도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다음날 아침 동티모르 수도인 딜리로 가는 슈리아 항공기를 잡아탈 수 있었다. 작은 비행기 안에는 외국인이나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으며, 모두가 텔레비전에서 늘상 보아왔던, 총을 치켜들고 고함을 지르던 전쟁투사들 같아 보였다.
피부색과 모양새가 조금 다를 뿐이다. 선입견을 버리고 그들과도 친구가 되어보자고 스스로를 애써 달래며 두 시간여의 비행 끝에 드디어 딜리공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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