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 이진
하늘색 꽃무늬 원피스가 바람에 항아리기 된다. 엄마 허리 아래로 생긴 푸른 항아리 속으로 어린 내가 들어가 숨었다가 밖으로 나왔다 반복하며 깔깔거린다. 엄마는 즐거워하는 날 더 북돋으려고 치맛자락 속에 동그래진 내 얼굴을 살포시 감싸주신다. 잊히지 않는 어린날의 기억. 바람은 그렇게 오늘도 날 그리운 엄마에게 데려가 준다.
꼭 10년째다. 엄마가 느닷없이 우리 곁을 떠난 지. 그것도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날 난 어린 아들을 업고 멀리 외출해 있었다, 요양병원에 가서 엄마 곁을 지키는 대신 그저 멀리멀리 도망쳐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날아온 남동생의 메시지
“누나, 엄마 돌아가셨어. 빨리 와.”
머리가 멍해지고 온몸이 새하얗게 타내려갔다. 다리 힘이 풀려서 한 발짝도 뗄 수 없었다. 등에 붙어 조용히 자고 있던 아이가 뭔가를 느꼈는지 순간 울어댔다.
무슨 정신으로 병원 장례식장까지 갔는지 지금도 생각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입관할 때 잠든 것처럼 누워있던 엄마. 장의사가 수의를 입힐 때 언뜻 보인 엉덩이 중앙에 생긴 욕창의 흔적. 그 때문에 더 서럽게 울었던 것. 노란 명주 같은 천으로 엄마발이 감싸일 때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발뒤꿈치를 부딪치면 엄마가 가고 싶은 세상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엉뚱한 생각을 했던 것 등.
엄마 장례를 다 치르고 집에 돌아와 방안에 덩그라니 남은 침대 위에 털썩 누었다. 나이든 사람에게서 나는 약간의 땀 냄새 같은 게 풍겼다. 침대 밑에 숨겨둔 작은 상자. 그 속엔 엄마의 오랜 악세서리가 가득했다. 그 중에서 엄마가 늘 차고 다녔던 목걸이만 꺼내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곤 그대로 잠이 들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땐가 소풍가는 날이었다. 그 당시 반장이었던 아이가 교장선생님 도시락을 싸오기로 했었다. 그런데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부반장이었던 내게 그 짐이 고스란히 넘겨졌다. 새벽부터 분주하게 도시락을 정성껏 준비하는 엄마 뒷모습을 보며 난 큰 죄인이라도 된 양 서 있었다. 찬바람이 조금 부는 아침이었는데 엄마는 도시락 준비할 때 입던 반팔티 그대로 입고 오단 찬합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날 따라 학교 근처 언덕길까지 함께 갔다. 곁눈질로 엄마를 슬쩍 훔쳐보는데 귀밑으로 땀이 흘러내렷다. 찬합 든 손에는 닭살이 돋았다. ‘잠바라도 걸치고 나오지.’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학교 앞까지 가지 않고 엄마는 언덕길 조금 지나서 멈춰 섰다.
“여기서 부턴 들고 갈 수 있지?”
엄마는 내게 찬합을 건네고 빨리 가라고 손짓했다. 찬합이 어찌나 무거운지 핑 돌았던 눈물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엄마 살아계실 때 가족여행이란 걸 가 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람들처럼 엄마를 하늘로 보내고서야 가족여행을 떠났다. 엄마는 가고 없는데 세상 끝나지 않고 잘도 돌아갔고 우리 중 누구하나 죽지 않고 잘 살고 있었다. 세상 사는 일이 다시 한 번 놀랍고 아이러니 했다.
대학 졸업 후 한동안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때가 있었다. 어느 날 엄마는 내가 너무 걱정되었는지 집근처에 있는 산에 오르자고 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운동화 구겨 신은 채 앞서가는 엄마를 뒤따랐다, 날이 흐렸다. 산 중턱에 사람들이 쉴 수 있게 작은 쉼터가 있었다.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소나기가 내렸다. 엄마와 나는 졸지에 쉼터에 갇히는 골이 되었다. 쉬이 그칠 것 같던 비가 더 세차게 내리고 거센 바람까지 불어 일순, 캄캄해졌다. 엄마는 쉼터 안에서 빗소리도 들었다가 그 작은 공간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빠른 보폭으로 왔다갔다 했다.
“엄마, 나 쉬 마려.”
“뭐?”
“쉬 마렵다고.”
“사람도 없는데 여기서 그냥 싸.”
“여기서?”
난 잠시 더 참고 있다가 결국 쉼터 한쪽에 쭈그려 앉아 쉬를 했다. 근데 내가 다 싸기도 전에 엄마도 바지를 내렸다. 비바람 소리에 아무도 모르게 우리 모녀는 알 수 없는 쾌재를 불렀다.
지나다가 우연히 금은방에 들렀다. 엄마 목걸이가 색이 바래서 세척을 해얄 것 같았다. 목걸이 맡기고 잠시 기다렸다.
“저, 손님. 이거 금 아닌데요.”
“네에?”
“이거 금목걸이 아니고 이미테이션이라구요.”
금속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14k 이상이 아니면 악세서리를 못한다. 난 엄마를 닮아서 그렇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엄마에게 그 흔한 금목걸이 하나 없었다니 충격이었다.
결혼하고 한 번은 엄마 뵈러 갔다가 느즈막히 집을 나섰는데 그대로 서 계셨다. 뒤돌아서 계속 들어가라고 손짓 하는데도 여전히 망부석이셨다, 순간 기분 좋은 야릇한 바람이 불었다. 멀리 우뚝 서 있는 엄마는 항아리 치마가 아닌 헐렁한 바지를 입고 계셨다, 지나는 바람이 엄마 두 다리를 감고 있었다. 앙상한 나뭇가지 두 개가 조금은 휘어진 듯 버티고 있었다.
엄마가 바람을 타고 나비가 되어 하늘을 소풍한 지 꼭 10년. 사계절을 열 번이나 보내며 엄마의 바람결을 자주 경험한다. 바람이 내게 말한다.
“엄마는 멸치 같았지.”
“자신을 모조리 우려내고 가벼이 떠나는…….”
오늘도 바람이 분다. 나는 눈을 감는다. 하늘색 꽃무늬 항아리가 내 얼굴을 감싼다. 어디선가 진한 국화향이 밀려온다. 난 살며시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