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베드로를 치유하시는 부활의 주님
요한복음 21:1~25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 날, 예수님은 단독으로 시몬 베드로를 만나주신 적이 있습니다. 이 사실은 누가복음 24:33~35 말씀에 보면,
“곧 그 때에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열한 제자와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고 하였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5장 4,5절 말씀에서도,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 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이 두 부분의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은 부활 당일에 시몬 베드로를 개인적으로 만나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시고 확신을 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요한복음 21장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여러 제자들과 함께 있는 갈릴리 바닷가에서 특별히 베드로를 향하여 다시 만나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또 다시 만나시어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베드로가 부활 사실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는 아닙니다. 베드로에게 주님이 찾아오신 이유는 다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로는 베드로는 깊은 죄책감이 해결받아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 앞에서 며칠 전 예수님이 잡혀 대제사장의 집 안뜰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죄 때문에 깊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 죄책감이 해결되지 않으면 결코 베드로는 주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죄책감이 있으면 사람은 하나님 앞에 담력이 없어집니다. 양심의 책망을 인하여 주님을 위하여 일할 힘을 얻지 못합니다. 사도로서 주님을 섬기는 직분을 감당한다는 것은 양심상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책감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이유로는 베드로가 동료들 앞에서 그의 권위가 회복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을 결코 부인하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지만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세 번이나 계집 종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대죄를 범했습니다. 그런 마당에 자기가 다른 사도들과 함께 주님의 사도로서 일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가 죄책감이 해소될지언정 공적인 사도로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의 사도적 권위가 다른 제자들 앞에서 회복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 베드로의 허물을 공적으로 사해주시고 그에게 사도의 사명을 회복시켜 주시려 했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런 베드로에게 찾아와 주신 장소와 시간은 갈릴리 바닷가의 새벽 기슭이었습니다. 밤새껏 고기를 잡지 못하였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 해변에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얘들아 고기가 있느냐”
라고 묻습니다.
“없나이다”
라고 대답하자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그리하면 잡히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예수님이신 줄도 모르고 제자들이 순종하여 그물을 내리니, 놀랍게도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조차 없이 많았습니다. 그 장면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맨 처음 제자로 부르실 때 장면과 동일하였습니다. 그래서 함께 고기 잡던 사도 요한이 눈치 빠르게 알아채고
“주님이시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옷을 벗고 고기잡다가 당황하여 겉옷을 걸쳐 입고 바다에 뛰어들어 해변으로 헤엄쳐 나왔습니다.
해변가에 올라와보니 놀랍게도 이미 예수님께서 밤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채 밤을 새워 헛된 그물질을 한 제자들을 위하여 조반 식탁을 준비해놓으셨습니다. 또한 추울까봐 숯불까지 피워놓았습니다.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님은 배고프고 지친 제자들을 좀 더 싱싱한 고기를 많이 먹이고 싶은 나머지 금방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고 시킵니다. 베드로가 당장 일어나 달려가 금방 잡은 고기를 그물에서 가져와서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또 그 고기를 숯불에 구워 맛있게 준비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제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그들에게 일일이 식사를 친히 손으로 나눠 주십니다.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따뜻한 사랑이 잘 드러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배반한 것만을 문제 삼고, 그것에 마음 상해 있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지치고 배고프고 추운 상황까지 챙겨주시고 보살펴주시는, 자상하고 선하신 주님이셨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의 주님은 바로 우리 교회의 주님이시요 또 우리 각 사람의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식사를 다 마친 후에 이번 방문의 중심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에, 베드로는
“이 사람들이 다 주를 버릴지언정 나는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라고 큰소리쳤기에 예수님은 일부러 베드로에게 그렇게 다른 제자들보다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 말씀의 속뜻을 잘 알기에 마음이 아프고 죄송스럽고 깨어진 마음으로 대답을 합니다.
“주여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비록 주님이 잡히시는 날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지만 상황이 두렵고 험악해서 그랬지 주님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목숨 바쳐 사랑한 것이라고 감히 말하지 못하기에, 그는 예수님께서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하느냐고 물었을 때, ‘필레오 사랑’ 곧 아가페 사랑보다 좀 등급이 낮은 사랑, 친구끼리의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네가 나를 아가페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나는 주님을 필레오합니다.”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전의 사랑은 허풍이 담긴 사랑이었습니다. 예전의 사랑은 경솔한 사랑이었습니다.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화려하지 못하고 멋있지 못해도, 진실한 사랑, 책임지는 사랑, 최선을 다하는 사랑을 주님께 드린다는 솔직한 사랑 고백입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이 말씀은 사도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재위임장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감히 자신이 사도라 불리울 아무런 자격이 없었으나, 주님은 그의 진실한 사랑의 고백을 듣고서 이전의 모든 허물과 죄를 다 용서해주심과 동시에 그에게 사도의 사명을 다시 잘 감당하라는 임명장을 다른 사도들 앞에서 직접 선포해주신 것입니다. 그것도 베드로의 세 번의 부인에 대한 세 번의 확인 용서, 세 번의 직분 재임명을 반복해주심으로써, 확고하게 베드로의 재기를 도와주셨습니다.
이로써 베드로는 완전히 쓰러졌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자비하신 손길을 통하여 다시 기적적으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님의 용서와 격려를 받아들여서 다시금 이제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승천 뒤에 모든 사도단을 이끌고 갈릴리 제자들을 지도하여 초대교회 설립에 귀하여 쓰임받습니다. 그를 통하여 예루살렘 교회가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였고 기적과 이적이 나타났고 후일에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하여 로마 전체의 복음화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그는 네로 황제 치하에서 로마 시에서 붙잡혀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했다고 합니다. 이로써 주님께서 그에게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써 주님의 기대에 걸맞는 삶을 살았습니다.
참으로 베드로의 내면 세계와 기질과 신앙을 보면, 충동적이고 우발적이고 직선적입니다. 그는 무엇이든지 남보다 먼저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남이 이것 저것 계산하고 있는 동안에, 그는 벌써 행동에 옮기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성격도 바람직한 면이 있습니다. 그는 풍랑이는 바다 위를 감히 걷겠다고 주님께 요청함으로써 믿음으로 바다 위를 얼마 동안 걷는 최초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먼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공식적인 고백을 함으로써 주님으로부터 큰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에 대한 애정이 늘 인간적인 점이 더 강하여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다고 했을 때 제자 중에 앞장서서 그러지 말라고 강력하게 항의하다가 주님께 ‘사탄아 물러가라’는 책망을 듣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목자가 잡힐 때 양들이 흩어지리라는 말씀처럼 제자들이 다 도망칠 것이라는 주님 예언을 듣고서, 자기는 죽는데도 주님과 함께 가겠다고 장담했다가 정작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부인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의 내면은 이처럼 연약하고 변덕스럽고 충동적이고 불안정이었기에, 예수님은 그를 만난 후에 대번에 알아보시고 곧장 이런 이름 하나를 붙여주었습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요 1:42)
왜 그렇게 불안정하고 충동적이고 허약한 내면을 가진 시몬에게 만나자마자 베드로 곧 반석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습니까? 이는 그의 내면에 허약한 약점도 많이 있지만 잘 다듬고 깎아주면 멋지고 단단하고 심지가 견고한 반석 같은 일꾼이 될 수 있음을 알아보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루 아침에 시몬이 바꾼 이름 베드로로 자꾸 부른다고 금방 반석과 같이 변해져서, 든든하고 흔들리지 않고 견고한 일꾼이 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넘어지고 쓰러지는 베드로의 실수 속에서도 그의 장점을 격려하면서 이끌어주고 격려해주고 기다려주었습니다. 그 이름 값을 할 수 있도록 늘 믿어주고 다시 사명을 안겨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베드로는 훌륭한 인격과 신앙인이요 지도자가 되어서 격동의 초대 교회 시대를 견고하게 세우는 기둥과 같고 반석 같은 사도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그를 믿어주고 사명을 재 위임해준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주님의 기대와 사랑에 걸맞게 일하고자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지금도 우리가 실패하고 연약할지라도 베드로에게처럼 동일하게 신뢰해주며 기다려주고 사랑으로 격려해주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가 다시 일어나 옛날의 허물과 실패를 완전히 떨쳐버리고 더욱 분발하여 더 멋있게 일할 줄을 믿습니다. 처음 우리에게 기대했던 주님의 기대를 주님은 한번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기억합시다.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 또 다시 용기를 내어 주님이 맡겨주신 직분과 사명에 최선을 다해 헌신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기도:주님은 지금도 세상 바다에서 실패와 허물로 힘겨워하는 우리들을 홀로 두지 않으시고 텅빈 새벽에라도 찾아와주시니 감사합니다. 실패하여 지치고 죄로 낙심한 우리들을 위하여 지금도 친히 따뜻한 숯불에 구운 빵과 고기를 나눠주시니 감사합니다. 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용서해주시고 믿어주시고 일을 맡겨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사랑과 신뢰에 합당하게 남은 생애 끝까지 충성하다가 주님 뵙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