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치기 박치기
-오스트리아 여행기-
북(book)치기와 박(park)치기는 내가 사는 이야기다. 북치기는 책을 통해 마음의 바람을 만든다는 뜻이고, 박치기는 내 성인 박, 영어로 하면 Park, 즉 공원을 의미한다. 소중한 내 삶의 주인공이 되어 그 정원에, 지구라는 정원에 나의 의미를 새기겠다는 바람이다.
바람이 바다를 움직여 파도를 만들 듯이 나도 내 삶을 움직여 기쁨과 보람을 만들고 싶었다. 책과 더불어 지구라는 넓은 정원에서 한 번뿐인 소중한 삶을 기쁨과 보람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오스트리아 여행은 시작되었다.
나는 유럽의 지붕인 알프스, 그 중의 한 곳인 티롤로 한 달간의 일정으로 7월 21일 인천공항을 떠났다. 티롤은 오스트리아의 작고 아담한 마을이다. 알프스 요정의 축복을 받아 겨울은 겨울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흰눈의 사랑을 받아 사계절 내내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이다.
아들과 나는 티롤에 첫발자국을 남기게 되었다. 첫날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에 큰 감동을 받았다.
7월 24일 비가 온다. 생소한 공간에 내리는 비는 내가 머물고 있는 1500m의 고지에는 비일지 몰라도 3250m의 고지에서는 흰눈이 되어 만년설을 포근히 덮고 있다. 사면이 절벽이고, 정상에서 남쪽 방향으로 내려가면 그 쪽은 이탈리아다. 스키를 타는 곳은 케이블카를 세 번 갈아타고 올라간 곳에 있었다. 슬로프의 길이는 3km정도이다. 경사도가 심해서 초보자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곳으로 안전망도 없다. 그렇지만 여름의 설경 속에서 스키를 즐기는 사람의 모습이 이채롭다. 누가 쉽게 여름에 눈을 접할 수 있으며, 또 스키를 즐길 수 있을까?
7월 27일 잠에서 일찍 깼다. 고지대라 산소가 부족하여 자주 머리가 아프고 쉽게 피로를 느껴 일찍 잠자리에 드는 습관이 생겼는데 오늘은 유난히 일찍 깼다. 새벽 4시 30분쯤이었다. 한국은 오전 11시 30분이다. 이곳의 시간이 한국보다 7시간이나 느리다. 입으로 나오는 말수가 줄어드니 마음에 쌓이는 말이 많아졌다. 눈으로 보이는 것들이 생소한 것들로 채워지니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영란에서의 보고 느꼈던 사물들이,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보였던 사물들이 새롭게 느껴졌다. 일상적으로 느껴졌던 것들이 매우 소중하게 다가왔다. 마치 훌륭한 사상가가 된 것처럼 지나온 삶이 새롭고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다.
8월 1일 입술이 부르텄다. 산정상은 영하 6도이다. 눈들이 얼어서 스키를 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을 많이 하기로 했다. 나는 여기서 침묵 속에서 대화를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사색하는 사람이 되어 혼자 중얼거리듯 또 다른 나와 대화를 나누었다. 영어로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지만 생각을 많이 하기로 했다. 결국, 이 많은 생각은 깊은 내면으로 빠져들어 성숙한 모습으로 바뀌어 주변의 사람들을 더욱 아름답게 떠오르게 하더니 결국 아내에게 편지를 쓰게 만들었다. 아주 긴 편지를.
이사야 43장 4절,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
이 말씀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 담았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인도하시고, 단련하시어 잊고 지냈던 소중한 것들을 새롭게 느끼게 하더니 더욱 소중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라는 가르침을 얻게 되었다.
오스트리아는 유럽의 중서부에 위치한 나라다. 먼 옛날 바다였던 곳이 습곡에 의해 산이 된 알프스와 그 왼쪽의 분지로 구성된 나라다. 큰 도시는 비엔나, 짤즈부르크, 인스부르크, 브레겐즈, 린츠 등이 있으며, 나는 주로 인스부르크에 있는 힌타툭스라는 곳에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편지도 쓰고, 등산을 겸한 산책도 하고, 스키를 즐기며 지내다 보니 도시가 그리워졌다. 아들은 잘 적응하고 있었기에 용기를 내어 혼자 지내보라고 말하고, 8월 5일에 나는 비엔나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아무런 예약 없이 비엔나 서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 깊은 저녁 10시쯤이었다. 아랍계의 남자들이 역의 잔디에서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보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마침 한국 사람이 눈에 보였고, 다가가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자기를 따라 오라고 했다. 자기도 숙소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숙소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하루 밤을 잘 쉬고, 다음날 저녁부터 비엔나 시청에서 무료로 두 달간 펼쳐지는 필름페스티벌을 관람했다. 오페라, 재즈, 오케스트라 연주 등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쇤부른 궁전, 푸른 도나우강, 요한 시트라우스의 동상이 있는 시민 공원 등을 다니며 많은 문화적 체험을 할 수 있었다.
8월 8일에는 짤즈부르크로 갔다. 모차르트가 탄생한 곳이다. 원래 짤즈라는 말은 소금이라는 말로 이곳에서 중세 때에 소금을 캤고, 소금을 거래했던 곳으로 당시 합스부르크왕가의 자금을 대던 중요한 도시였다.
모차르트의 생가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있었다. 숲과 성으로 된 언덕에 자리 잡은 이곳은 ‘사운드오브뮤직’이라는 영화로도 유명해졌는데 미라벨 정원에서 시작되는 사운드오브뮤직 투어는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의 필수코스로 다닐 만했지만 힌타툭스에 비한다면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다니던 곳으로만 다녔다. 그래서 유명한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 하지만 이곳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은 오히려 이런 곳보다는 내가 있는 힌타툭스같은 전원적 풍경이 펼쳐진 곳을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힌타툭스에는 한국인이 거의 없고, 오스트리아인들이 아주 많이 찾는다.
처음에 나도 유럽을 여행할 때는 유명한 곳이라 안내된 곳으로만 다녔다. 그러다보니 만나는 사람은 늘 한국 사람이었다. 유명하다고 하여 들렀지만 큰 감동이 들지는 않았다. 왠지 허전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런데 이곳 힌타툭스라는 곳은 자연과 더불어 사색하며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곳으로 참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스펀지에 스미는 물처럼 소리 없이 스며든 기쁨은, 풀밭에서 느끼는 향기가 되어 내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탈색시켜 버렸다.
“너의 뜻이 거기에 있으니 나는 멀리서 지켜보고 있겠다.”
소설 ‘낮은 데로 임하소서’에서 나오는 말이다.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든 그것들은 오로지 나의 기도와 능력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고 있었고, 멀리서 지켜보시는 분께 열심히 기도했고, 나는 이곳 힌타툭스에 오게 되었다. 우리 아이는 자신감을 얻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아빠가, 아니 가족이 자기를 너무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경로를 통해 깨달았다. 나 역시도 미리 길을 예비하시고 나의 생각과 느낌마저도 사랑으로 이르게 하시는 그 분을 더욱 분명히 믿게 되었다. 이 번 오스트리아여행을 통해서.
8월 20일,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소중한 내 삶의 주인공은 역시 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첫댓글 삶의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박선생님의 얼굴에서 나타나는 여유로움도 글을 읽으니 더욱더 느껴집니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는 사실도 다시 한번 새겨 봅니다.
우리는 선생님이 부럽습니다. 저도 또 다른 목표를 새울까 하는데 과한 욕심같아 참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