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복(五福)
임병식 rbs1144@hanmail.net
내가 사는 시내 중심가에는 전남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주류도매상 ‘오복상사(五福商社)’가 있다. 나는 한때 이 사무실을 자주 출입했다. 주인인 이 회장이 내가 근무하던 부서의 유관단체장을 맡고 있어서 상의할 일이 있을 때면 들르곤 했다.
당시 이 업소의 간판은 세로로 세워져 있었다. 한데 그 간판이 이색적이었다. 나는 그것을 볼 때면 촌스럽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너무 흔히 듣는 말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수복강녕(壽福康寧)이니, 건안다경(建安多慶)과 같이 너무나 노골적으로 복을 비는 문구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라면서보면 그 말을 얼마나 자주 들었던가. 누나가 시집을 가기위해 장만한 상보나 베갯모에서도 수복(壽福)이라고 수놓아진 것을 보았고 방안에 쳐놓은 횃댓보에서도 그것을 보면서 자랐던 것이다.
고래로 사람들은 사는 동안 으뜸의 축복으로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 (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꼽았다. 즉, 오래살고 복이 있으며 몸 건강하고 편안하며 덕을 좋아해 즐기며 제대로 살다가 편히 눈을 감는 걸 바랐다.
더러는 또 다른 덕목으로 유호덕 대신 귀(貴)함과 고종명 대신 자손중다(子孫衆多)를 꼽기도 한다. 사람이면 모두다 한결같이 바라는 소망들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상사(商社)에 오복이란 말을 넣은 것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을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아무튼 그 도매상은 그런 염원을 안고 산 때문인지 잘되고 있었다.
사람에게 닥치는 불행은 흔히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소년등과(少年登科)를 꼽는다. 하면 왜 이것이 문제일까. 어려서 급제를 하면 크게 성공한 것이 아닌가. 하나, 여기에는 다분히 경계의 뜻이 담겨있지 않은가 한다.
어려서 등과를 하면, 자칫 경망해져서 안하무인이 되고 그래서 실수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남이(南怡) 장군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사람을 가려 사귀지 못하고 천하의 간신배 유자광에게 빌미를 주어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던가.
얼마 전에 머리는 좋으나 인격을 닦지 못한 탓에 법정에서 노인을 폄하하는 발언을 하여 인품이 천박하다는 말을 들은 법관도 있었다.
맹사성(孟思誠)에 관한 이런 이야기가 전해온다. 소년등과를 한 그가 고승을 찾아갔다. 그런데 스님은 그의 찻잔에 물이 넘치도록 따르는 것이었다. 그가 왜 이런 무례한 짓을 하느냐고 했다. 그러자 바로 그대의 태도가 그러하다고 따끔하게 일갈했다. 그 후로 그는 크게 깨닫고 겸손을 실천했다고 한다.
두 번째의 불행은 중년상처(中年喪妻)를 든다. 현실적으로 이해가 가는 말이다. 꿈을 펼치고 나아가려는 시기에 그런 불행을 당하면 눈앞이 캄캄해질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의 말년무전(末年無錢) 또한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앞가림을 할 돈이 없다면 기본적인 체면유지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이면 다 복을 바라나 갖추고 살기는 어려운 일이 아닌가 한다. 지인들의 가정 형편이야기를 들어봐도 어딘가 한군데는 아쉽고 안타까운 사정이 있음을 알게 된다. 하기는 일찍이 다산 정약용 선생도 독소(獨笑)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有栗無人食 多男必患飢 (중략)
翁嗇子每湯 婦慧郎必痴
양식 있는 집엔 자식이 귀하고
아들 많은 집엔 굶주림이 있다
(중략)
아비가 절약하면 아들은 방탕하고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바보다.
그러면서 가실소완복(家室少完福), 즉 집안에 완전한 복을 갖춘 집은 드물다고 했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한다. 평생에 진사 이상의 벼슬을 삼가고 흉년에는 논밭 사기를 금기시한 경주 최부자도 그 부귀는 영원히 잇지 못했고,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이름을 붙인 뒤주를 두고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한 운조루의 주인도 그 부귀가 계속 이어진다는 말을 들을 수가 없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인생사란 착한 일을 한다고 계속 복이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염원하고 빈다고 해서 성취되는 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다만, 오복을 바라는 것이 사람의 바람이라면 진실되고 착하게 사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다만 그저 안빈낙도(安貧樂道)하면서 지극히 평범한 이치를 수용하는 가운데 자족(自足)의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오복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2015)
첫댓글 절대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근본이 욕심에 한이 없는 게 문제인가 합니다.
토정비결을 컴퓨터로 분석해보니 길흉화복이 반반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좋다는 점괘에 눈을 박고 그것을 애써 확대해석하며 좋아라하고
불리한 이야기는 애써 외면하며 모른 체한다고 합니다.
요즘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를 많이 생각해 봅니다. 좋은 벗 사귀면서 욕심 내려놓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도다.........
인생을 유유자적하는 군자의 삶, 건강하고 씩씩한 사내 좀생이나 좀팽이 같은 삶 말고
즉, '괜찮다, 틀림없다, 문제없다'는 사람 말입니다.
인을 생활화 하면서 예를 지키고 의의 길을 걷고, 그 자리에서 주변 사람에게도 이를 실천시키고,
설령 궁벽한 생활에도 혼자서 실천하는 삶 말이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안분지족의 삶의 태도를 견지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일은 아니지만 나이들어 생각해보니 그게 바른 태도가 아닌가 많이 생각합니다.
청석선생님의 글속에 가끔씩 들어 있는 한시들도 저에게는 깨달음이 큽니다.
작품을 정독하다보면 나름 깨닫고 느낀것도 있을 겁니다. 열심히 엵어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현대수필 . 월평에 오른 작품
선생님의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잘 묻어있는 글이네요. 높은 데도 처할 줄 알고 낮은 데도 처할 줄 아는 자족의 은혜를 배웠다는 바울의 고백이 생각이 나네요. 안분지족.. 진정한 오복이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오복상회의 간판을 보고 진정한 복이란 부귀영화를 누리는 삶이 아니라 안분지족을 하는 삶이 아닐까 하고 써보았던 글입니다.